〈 143화 〉 3부 23. 신격이 변질되면 마력
* * *
원래는 대체 어느정도 되는 놈이길래 날 굳이 부르는건가 싶어 찾아갔던 거였다.
겸사겸사 나한테 뭘 요구하는 것까지 들어보고.
하지만 이래서야 이야기가 다르다.
저 뒤에있는 괴물로 대체 뭘 하려는건지, 굉장한 호기심이 동하기 시작했다.
"잠깐 나좀 봐주겠나?"
"아, 네. 네."
너무 노골적으로 칸 뒷편의 괴물만 보고 있던 탓인지, 한참을 혼자 주절거리던 그가 결국 날 불렀다.
"고맙군."
큼, 하며 다시 목소리를 다듬은 그는 곧 입을 연다.
이미 내가 일전의 지루한 이야기에는 흥미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곧바로 본론을 꺼낸다.
"그럼, 말했던대로...루시 양이 해줘야 하는 일은 간단하네."
뒷편의 유리관을 가르키는, 그의 손가락.
"저 괴물의 정보를 읽어내면 된다네. 무슨 짓을 써서든."
그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그런 말이었다.
뭘 알고 나한테 그런걸 부탁하냐는 둘째치고, 내가 그런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하는 목소리였다.
"...어, 제가요?"
"그래. 저 괴물의 정체가 무엇인지 그 힌트라도 얻어보자는 심정이지."
"정체가 뭐긴요, 사람이지."
내 말에, 한순간 멍한 표정을 지은 칸.
그 침묵에 나조차 뻘쭘해진다.
"거, 거기까지 알고있었나."
"당연하죠. 특유의 패턴이라는 게 있는데."
본래 인간이었던 존재는, 결국 뭔 수를 써서든 인간의 본질과 연결되게 되어있다.
'블랙드림'이라는 마약을 통해 얻게되는 '인간시절의 기억'도, 결국 마수일지라도 여전히 본질은 인간이기에 가능한 것.
아직 상위차원과의 연결을 끊는다는 목적이 성공하지 않은 이상, 개개인의 영혼은 생겨나지 않는다.
그렇기에 저 괴물도 본질이 인간이라는 건 변함없고.
한마디로, 아무리 괴생명체처럼 생겼을 지라도 본질이 인간이면 다 구분할 수 있다는거지.
"하지만 우리가 원하는 건 단순히 그 정도 수준의 정보만이 아니다."
"...뭐가 더 있어요?"
"혹시 이전에 이 괴물과 접촉해본 적 있나? 물리적으로 말일세."
접촉해본 적은 이미 두 번 있다.
첫번째는 정신을 잃지 않는것에 성공, 두번째는 졸도.
내 이야기를 들은 칸 소장은 수염 안에 감춰진 표정을 뒤틀었다.
"...음, 두번째는 졸도라고? 어째서?"
"그걸 저도 잘 모르겠다, 이말이죠. 중요한 걸 따지자면 정보의 양인데..."
어쩌면 두 번째로 접촉했던 괴물이 정보의 양이 더 방대해서, 내 뇌가 못받아들이고 과부화되서 그런걸지도 모른다.
"그런건가. 개체별로 그 수준도 천차만별이라는거군."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죠. 저도 이제 겨우 두 번 접촉해봤는데."
"음..."
잠시 고민하던 칸 소장.
단 둘뿐인 적막한 방 안에서, 그가 일어났다.
그가 향하는 곳은 뒷편의 유리관.
"그렇다면 가능한 한 많은 개체를 분석하는 게 정답이라는건가?"
"뭐...그렇겠죠? 접촉하지 않는 이상은 정보를 얻을 방법도 없으니..."
신격이 있다면 아예 이 괴물이 존재하는 공간 자체, 혹은 괴물 그 자체를 분석할 수 있겠지만...
지금 나에게 그런 데우스 엑스 마키나따위는 없으니, 만약이라는 가정은 제하자.
"그럼 루시 양, 혹시 이 괴물의 정보를 알아낼 수 있겠나?"
유리관의 문이 열리고 난 후에도, 괴물은 여전히 꿈쩍도 하지 않았다.
여전히 바닥에 가만히 앉아있을 뿐.
"...저 또 엎어지면 어떡하게요?"
"그럼 다시 다른 개체를 구해와야겠지. 될 때까지 반복하는거다."
"무식한 방법이네..."
그래도 이 방법밖에 없으니.
"원래 그냥 말만 들어보고 가려고 했는데."
"...딱히 강요하지는 않겠네. 간절한 부탁일세, 이건."
순수한 학자로서의 탐구심인가.
그도 아니라면...
"이번에는 따라온 애들 없어서 해주는거야. 나중에는 허락 받아야돼."
"알겠다. 친우들에게는 미리 전해두마."
"아니, 아니. 전할 필요는 없고, 그냥 내가 말 할게."
욕은 또 니가 다 얻어먹잖아, 그러면.
내가 하겠다고 하는거면 그나마 걱정 조금 받고 말지.
'차라리 애들 안 데리고 온 게 다행이네.'
만약 저 괴물과 접촉해서 다시 정신을 놔버린다 해도, 시간이 얼마나 흐르든 결국 여기서 있었던 '사무적인' 일 때문에 늦었다고 핑계대면 된다.
"그럼..."
심호흡을 한번 한 나는, 괴물에 손을 가져다댄다.
이번에는 내 뇌가 버틸 수 있기를 바라면서.
[킥ㅡ]
그리고 내 머릿속에 들어온 것은.
[01001001 01110100 00100111 01110011 00100000 01111001 01101111 01110101 00111111]
다시, 빌어먹을 숫자들의 향연이었다.
***
루시가 괴물과 씨름하고 있는 동안, 머지 않은 곳 폐빌딩이 무성한 폐허의 숲 사이.
몸을 숨기기 좋은 이곳에서, 사서는 마법진 단 하나와 씨름하고 있었다.
"후우, 돌겠군."
"도와줄까요?"
"아니, 필요없다. 이제 곧 완성이야."
수첩과 계속 비교해가며, 땅바닥을 계속해서 파내려가는 사서.
마법진의 규모도 규모였으나 그 복잡성은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그도 그럴게, 태초부터 '정신간섭'의 영역이란 순전히 초능력자 유형 초상능력자의 영역.
쉽게 말하자면...
이 마법진은, 한 인간을 대체할 수 있을만한 마법진이다.
"이제, 이걸..."
"아니, 거기가 아니고 저 위죠. 여기서는 E6 계열...."
원본이 된 쪽은 당연히 이유리.
이성주와의 일을 정리하고, 캠프로 가나 싶더니 곧바로 사서를 찾아온 이유리였다.
델리지아는 저 한구석에서 이들이 하는 일을 구경하고 있고.
어차피 완성도 머지 않았으니, 딱히 뭐라고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원본이 조언을 해준다는데 달갑게 받아야지.
"근데 여기...제가 말한 게 아닌 것도 조금 섞여있네요?"
"아, 그건..."
그건 알테리지아의 초상능력을 조금 따 온 것이다.
"알테리지아...알테리지아면..."
이유리의 머리에 떠오른 것은, 노년의 정장 신사.
겉보기와는 달리 그 또한 속 어딘가 한참 뒤틀려있었다.
그는, '광대'의 간부중 하나였으니.
"그런 녀석의 초상능력을 참고했다니. 대체 정보를 어디서 얻어가지고."
"뭐긴 뭐겠나. 당연히 아카식 레코드지."
"아..."
이유리의 정보는, 상위차원에 속해있는 것이기에 아카식 레코드로 관측조차 불가능하다.
그러니...마법진의 설계 극 초창기에는 알테리지아의 초상능력을 바탕으로 설계했고.
"뭐, 아무튼. 이제 완성이다. 테스트도 한 번 해봐야하니..."
하늘은 아직 화창하다.
'그러고보니, 이곳에 와서 하늘이 흐린 날은 못 본 것 같군.'
도시를 가득 덮은 이 눈들이 다 어디서 왔는지는 의문이다.
물론, 이 우주에 상식적인 일을 기대할 여유야 있을성 싶지만 말이다.
"여기는 E8, 옆에 C3 연계시키고..."
"아니, C3은 마력을 쓸데없이 분산시킨다. 여기서는 분산 대신 집중이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주변에 있는 진들이..."
그리고, 그로부터 장장 몇시간에 걸친 토론과, 마법진의 구현.
분명 난이도에 비해선 무지막지하게 빨리 끝난 일이었으나, 그에 들어간 노력을 비교하자면 다른 데 비할바 못된다.
사서와 이유리가 함께했기에 이정도였던거지, 아마 다른 학자들이 했더라면 족히 수 개월은 걸렸겠지.
그 고된 여정을 마치고 난 그들은 이미 녹초가 됐다.
"...정신, 나갈 것 같군."
"...이정도면 만족할만한 수준이네요."
그들의 앞에 놓인것은, 블록 하나를 통째로 뒤덮은 거대한 마법진.
인간의 무의식으로 진입할 '문'이 되어줄 희망이다.
"임상실험 따위의 여유는...있나?"
"시간이라면 충분하지 않나? 어차피 주 적인 학자의 상태조차 불명이건만."
그들이 마침내 작업을 끝낸 것을 본 델리지아가 다가오며 말한다.
잠깐 그를 흘긋 본 사서는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그래서 위험하다는거다. 우리가 지금 어떤 신세에 있는지는 알고 있나?"
"...무슨 신세라는 말이지?"
"쉽게 말하자면, 그의 몸 속에 들어와있다는 말이나 마찬가지에요."
이유리가 답했다.
"이곳은 그의 몸 속. 그리고 그는, 루시의 신격을 모두 빨아들여 사실상 신이나 다름 없는 존재."
물론 신이라고 하기에는 한참 부족하다.
그저 우주 하나가 '자기 자신'일 뿐이니.
자신이 우주로서 동작하는 것 뿐이다.
"하지만, 그 자기 자신에게 신격이 있다는 게 문제. 그렇다면 그 내부에도 신격이 존재하겠죠."
"그 말은 사서에게도 들었다. 이곳 전부 균일하게 신격이 분포되어있다는 말을."
"그럼 이야기가 빠르겠네요."
본래 그들의 세계에 존재하던 마력은, 한때 신이었던 소녀의 몸에 깃들어있던 신격이 터져나와 변질된 것이다.
마법이라고는 그저 상상과 설화의 전유물이었던 시대에, 격변을 가져온 사건.
그것은, 신이 죽으며 그 몸에서 뿜어진 일종의 잔흔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 우주의 경우는 다르다.
우리가 신의 몸 안에 들어와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니.
"그 말인 즉슨, '변질된 신격'인 마력이 아니라, 신격의 영향을 그대로 받는다는 것."
"그럼 무언가 문제라도 있나?"
"있죠. 단 하나지만."
본래 세계에서는, 일반인에게 마력을 강제로 주입하는 것 만으로도 마수가 됐다.
초상능력자 또한 몸에 한계치 이상의 마력을 강제로 주입하면 마수가 되어버린다.
변질된 신격인 마력조차 이럴진데, 날것 그대로의 신격은 어떨까.
"인간으로서의 형체를 잃어버리죠. 저 괴물들처럼."
이 세계로 떨어질때도, 신격에 너무 강하게 노출된 이들은 그 즉시 괴물로 변해버렸다.
여러 명이었던 사람들이 하나의 괴물로 변질되는가 하면, 하나였던 인간이 여러개의 괴물로 변질되기도 한다.
'순전히 재수가 없어서 그랬던 것 뿐이지만 말이죠.'
신격에 강하게 노출되느냐, 아니냐는 순전히 운이다.
그저 재수가 없는 이들, 그 중에서도 특히 재수가 없는 이들이 괴물로 변질된 것이다.
사람 수천명이 넘어왔으니 그 중 수 십 명은 괴물로 변질됐다 해도 문제될 게 없지.
"그러니 타임어택이라는거지. 너도 괴물이 되는 건 피하고 싶을 것 아닌가?"
사서가 델리지아에게 물었다.
델리지아는 말없이 납득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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