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0화 〉 3부 20. 급전개
* * *
내가 사서를 보고 놀란 이유는, 조사라는 것에 일주일씩이나 잡아먹었다는 것에 대한 황당함이 아니었다.
근본적인 문제는 따로 있었다.
"니가 왜 여기 와?"
"왜, 오면 안되나?"
그야 여긴 캠프 한가운데, 각자 배정받은 천막들이 모여있는 곳이니까.
이렇게 대놓고 들어와도 아무 문제 없는거 맞나?
"미친놈. 들키면 어쩌려고."
"들키지면 않으면 장땡 아니겠나."
사서가 태평하게 대꾸했다.
솔직히 말하자면...대체 왜 아직까지 사서가 숨어다니는 지 모르겠다.
그냥 이참에 다 까발려버리고 정식적으로 아군으로서 활동하면 좋을텐데.
그게 훨씬 더 편하기도 하고 말이야.
"...확실히 그게 더 편할 것 같긴 하지만...지금은 떄가 아니야. 될 수 있으면 그 순간을 최대한 미룬다."
"한 가지만 말해줘. 그거 개인적인 불편함 문제야, 아니면 까발렸을때 뭔가 더 큰 문제가 올 수 있어서 그런거야?"
"둘 다."
뭐가 문제라는 건지 모르겠다.
그래도 사서가 이유가 있다 하면 있는거겠지.
어느새 자세를 다잡고 경청할 준비를 마친 나는, 문득 천막 안에 나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다.
"다른 애들도 불러올까? 오늘은 성화연도 보초라서 지금 여기 없는데."
"흠..."
내 말을 들은 사서가 턱을 쓸었다.
"한서우까지만 불러오는게 나을 것 같군. 사전지식이 없으면 그 사전지식 이해시키고, 설명하는 것 만으로도 시선을 너무 많이 잡아먹으니 말이야."
"알고있는 놈들한테만 알려주겠다, 이거야?"
고개를 끄덕이는 사서를 보고 체념했다.
"하긴, 너도 여기 오래있으면 안되는 입장이니까. 금방 불러올게."
"최대한 빨리와라."
상황에 납득하며 천막 밖으로 나섰다.
천막 밖의 공기는 여전히 차갑고 건조한 공기, 그대로였다.
가끔씩 느껴지는 인간들의 따뜻한 온기를 제외하고선.
"...한서우랑 마스랑 같은 천막일텐데, 마스도 데려올까."
만에하나 들어갔다가 마스가 깰 경우도 있잖아?
그러니까, 깨면 데려오고 안 깨면 안 데려오는거지.
"성화연은..."
...보초가 개인으로 활동할 일이 어딨겠어.
적어도 2인 1조로는 움직이고 있겠지.
아무래도 성화연까지 데려가는 건 무리일 것 같다.
"뭐, 나중에 설명하면 되겠지."
어느샌가 한서우만 데려온다는 목적에서 한참을 벗어난 쪽으로 움직이는 나였다.
***
"분명 한서우만 데려오라 하지 않았나?"
"깨버렸는데? 그냥 두고 와, 그럼?"
"...루시 네가 깨웠..."
눈치없이 입을 놀리려는 마스의 뒷통수를 후려쳤다.
"듣기만 해, 듣기만. 어차피 지금 안들어도 나중에 다 붙잡고 설명할거야."
"졸려..."
새벽에 깨운건 미안하다만 두 번 설명하는 것 만큼 귀찮은 게 없다.
"하아..."
사서도 몇번 한숨을 푹푹 내쉬는 듯 하더니, 결국 굴복한 듯 자리에 편하게 앉았다.
"중간에 쓸데없이 말만 끊지 않는다면, 별 상관은 안하겠다."
"어차피 안할건데."
마스의 대꾸에 사서가 눈을 부라린다.
"그래, 그런거 말이다. 내 말에 토 다는 것도 금지."
"..."
사서한테는 또 눈치가 빠른 마스였다.
조용해진 텐트 안을 한번 둘러본 사서는, 품 안에서 익숙한 수첩을 다시 꺼내들었다.
"좋아, 마지막 조사 결과다. 잘 들어라."
방금 전 사서의 포고 탓인지,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사서는 우리 셋의 모습에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먼저, 이 우주에 대한 이야기다. 한서우 너는 오기 전 미리 들어서 알고 있겠지."
"...?"
고개를 갸웃하는 한서우.
대체 뭘 들었다는거지? 주어를 빠뜨리니 당사자조차 이해를 못한다.
"이 우주가, 완전히 다른 새로운 우주가 아니라 기존의 우주에 덮어씌워진 우주라는 사실 말이다."
"...뭐?"
사서의 입에서 나온 말은 나로서는 믿기 어려운 말이었다.
이 우주가, 학자가 마구잡이로 창조해낸 찰흙덩어리같은 우주가 아니라니.
하지만 우리가 기존에 알고있던 우주라 함은, 내 고향인 우주, 단 하나다.
그렇단 소리는...
"여기가 원래 내 고향이었던 곳이라는 소리야?"
사서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허."
기후도 뒤죽박죽에, 마력마저 균일하지 않아. 풍경이라고는 죄다 어디서 본 듯 한 풍경을 마구 섞어둔 듯한 모양새인데...
그게 자기가 아는 선에서 새로 창조한 게 아니라네.
나는 지금까지 이 우주가 학자가 알고있는 것들을 기반으로 창조한, 새로운 우주라고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기존에 있던 것들 중에는, 내 우주도 포함되어 있었다.
"...대단하네, 참."
"그래서, 기분이 어떻지?"
뭐?
누구 기분?
사서가 날 뚫어져라 쳐다보는 게 느껴진다.
이 엉망진창인 우주가 원래 내 고향이었다는 걸 알게된 심정이 어떻냐는 소리인가?
"갑자기 뭔 뜬금없는 질문이야, 그게."
"음?"
사서가 한쪽 눈을 찌푸리며 흥미롭다는 듯 날 바라본다.
'...뭐 저렇게 보는거야. 이상할 거 하나 없는데.'
"아니,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라."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자기 고향이 사라졌을 때 슬퍼하는 사람이 정상이지."
답답하네.
애초에 고향이 사라지면 왜 슬퍼해야 하느냐가 중요한건데.
"어차피 고향이라는 게 있어봤자, 돌아가서 만날 사람이 없다면 아무 소용 없는거잖냐."
"...장소는 아무 의미 없는건가?"
"...그래. 추억이란 걸 불러일으킬 수는 있어도, 막상 사람 하나 없으면 그냥 울적한 폐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야. 맞지?"
사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미 난 내 세상 사람들이 전부 마수가 됐다는 걸 알아. 근데 사람 하나 없는 고향이 사라졌다고 슬퍼할 이유가 뭐 있겠어?"
"...하긴, 그도 그렇군. 그래도..."
장소 따위는 아무 상관 없다니까 그러네.
"됐고, 그냥 계속 조사 결과나 말해줘. 정말로 아무 느낌 없으니까."
"루시..."
"...한서우 너도 그만 좀 해라. 걱정도 도가 지나치면 상대방한테는 짜증나."
"미안해..."
이야기가 점점 삼천포로 빠지는 느낌이다.
"...중간에 말 끊지 말라 했는데, 오히려 내가 이야기를 이상한 길로 빠뜨렸군."
"잘 아네. 자아성찰 시작한거야?"
"...아무튼, 계속하겠다."
잠이 살짝 깰만한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사서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그래, 이게 있었군."
슬쩍 보니 또 괴상한 숫자들로 그래프를 그려놓은 복잡한 그림이다.
정리 개판이네.
"이 우주에는, 신격이 균일하게 퍼져있다. 어느 곳이든 비슷비슷하게 말이야."
저건 또 무슨 말일까.
"사실 말이다, 신격이 자연적으로는 존재할 수가 없다. 우리 우주에서는."
신격이라 함은 상위차원에 직접적으로 연결된, 마력과 비슷하지만 그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다.
처음부터 상위차원과의 연결로서 생성되는 게 신격이기에, 그런 것과는 접점이 있을 수 없는 자연상태에선 신격 자체가 존재하질 않는거고.
"하지만, 이곳에선 신격이 언제, 어디서든 모두 같았다. 마치...처음부터 신격이 온 우주를 덮고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자면, '열'과도 같은 것이다.
신격의 발원지 근처에는 신격이 굉장히 밀도가 높을 수 있다.
하지만...
"거리가 멀어지며, 결국은 그 농도도 옅어지기 마련이지. 어딜 가나 똑같은게 아니라 신격의 근원으로부터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신격의 농도가 옅어져야 해."
그러나 이곳은 신격이 균일하다.
즉, 이 우주에서는 신격이 가장 기본적인 요소를 이루고있다.
"아무래도, 학자는 신격에 잡아먹힌 모양이다."
"...잡아먹혀?"
"...일단 자아를 지니고 있던 학자는 완전히 사라졌다 봐도 무방해."
사서의 문제점이 또다시 도졌다.
상대방이 이해할 수 있게 설명을 해야지.
"직관적인 설명을 원하나?"
"...설명하는 입장에서 그렇게 설명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니냐?"
사고방식 자체가 다르구나, 일반인과는.
어느 한 집단의 수장을 맡으려면 머리가 저 정도로는 돌아야 하나보다.
"...쉽게 말해서, 이 우주 자체가 학자라는거다."
속으로 학자의 험담을 마구 뱉어내던 내 귀에 들어온 말이 내 뇌를 정지시켰다.
"표정이 가관이군. 다시 말하지. 이 우주 자체가 학자다. 학자는 이미 상위차원의 존재로서 거듭났단 말이다."
"...개소리도 진지하게 하면 사실이 된다더니..."
"믿을 수 없겠지만 사실이다. 학자는 루시 너의 몸 안에서 신격을 모조리 뽑아갔다."
그렇다면, 신격을 모조리 받아들인 존재가 나보다 못한 존재라면.
신격에 잡아먹힐 수도 있다.
우리가 사는 우주에서의 자아, 본질을 잃고 '개념'으로서만 존재하는 상위차원의 존재로 변모한다.
"...학자가 내 몸뚱이보다 더 신격을 담지를 못한다고?"
내 질문을 들은 사서가 헛웃음을 치며 말한다.
"비교가 너무 말도 안되는 수준 아닌가? 개틀링건과 조총을 비교하는 수준인데."
"그, 그정도야?"
"...후우..."
이번엔 또 뭐가 그렇게 마음에 안드는게 그래.
"루시 너의 몸은 처음부터 타의에 의해 설계된 것이다. 신격을 담아낼 수 있도록."
"...그게 탐구자였고."
"엘로힘이 대체 왜 자신의 몸에 신격을 담지 않고, 굳이 너라는 제물을 만들어서 신격을 이 세계로 끌어왔는지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겠나?"
자신이 제물이 되기 싫어서, 타인을 제물로 만들었던 것 뿐이다.
자신이 신격을 담으면, 본래의 우주에서 살아가던 '자신'을 잃고 그저 개념으로서, 자아를 잃은 존재가 되버리니까.
그러니 신격을 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인형을 만들고자 한 것이다.
그게 바로 내 몸이었고.
"그래서, 그게 뭔 의민데?"
"무슨 의미 말이지?"
"학자가...이 우주 그 자체라며. 그럼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해야하는거야?"
이 우주를 소멸시키는건가?
애초에 그게 말이나 되는 스케일이야?
우주를 없앤다고?
아무리 내가 신격이 있다지만, 우주 하나를 없애는 건 또 다른 규모의 일이다.
장장 수천년동안 신격을 쏟아부어도 모자랄 판인데, 지금 난 신격조차 없다.
"...아니, 우리는 학자를 상대할 필요조차 없다."
"뭐?"
"학자는 이미 우리들 손을 벗어난 채, 저 너머의 존재가 되어버렸으니. 우리로서 할 수 있는 일은, 상위차원과 우리의 우주를 격리하는 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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