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9화 〉 3부 19. 프로 세탁러(셀프)
* * *
"그나저나 그 치마 아직도 입고있네?"
갑작스레 이유리의 입에서 뜬금없는 소리가 튀어나왔다.
지금 이성주 앞에두고 뭐하는거야.
"성격상 바로 버릴거라고 생각했는데, 마음에 들었나봐?"
"그럴리가 있겠어요..."
옷이 하도 찢어지다보니 이젠 갈아입을 옷도 없었을 뿐이다.
계속 사기에는 돈낭비도 그만큼 심한 게 없으니까.
그래서 아직까지도 이유리가 그 때 입혀준 짧은 군청색 치마를 입고있는 중이었다.
"아무튼!"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잖아.
"이성주, 어떻게 할 거에요? 일단 본질적으로는 가족싸움이긴 하지만...얘가 벌여둔 일이 정상적인 수준이 아니라서요."
"...루시, 하나만 물어볼게."
이유리가 아직 정신을 못차린 이성주의 머리통을 잡은 채, 나에게 시선을 돌렸다.
올려다본 이유리의 표정은 오로지 분노라고 말하기에는 애매했고, 연민이라고 보기에는 분노에 너무나도 가까웠다.
사람이 저런 표정도 지을 수 있구나.
그런 이유리의 눈을 마주치니, 나에게 질문을 한다.
"이성주, 지금 이거...상태 정상은 아니지?"
"정신적 상태요, 물리적 상태요?"
"...물리적."
슬쩍 이성주의 하반신 부분을 바라본다.
이미 검은 재가 되어 흩날리고 있는 부분이 종아리까지 덮어가기 시작했다.
"가망없어요. 길어야 한 두 시간 뒤면 사라질거에요."
'아직 상위차원과의 연결도 끊지 않았으니, 어차피 인간의 본질로 돌아가는 것 뿐이지만.'
그래도 이 세계를 살아가는 '인간' 입장에서 죽는다는 건 자기 자신의 소멸이나 다름없다.
이유리도 사서와 어느정도 부대꼈으니 알만큼 다 아는 사람이겠지만, 안다고 해도 죽음에 대한 감상이 달라지지는 않으리라.
"...그래?"
"둘이 따로 대화할 거라도 남아있어요?"
이유리가 한숨을 푹 쉬었다.
"깊이 알 필요는 없어. 꼬이고 꼬여서 어디서부터 잘못된건지, 누가 먼저 잘못한건지 알 수도 없으니까."
"...딱히 알고싶은 생각은 없는데요."
자의식이 너무 강한건가.
그런 생각에 이유리를 바라보자, 이유리도 우리에겐 신경을 그다지 기울이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반쯤 몽상에 빠진 표정이었다.
"...너무 과거에 빠지면 그것도 그것대로 안좋을 텐데요."
"......차라리 내가 잘못한 게 없었으면 미련없이 이성주를 보내줬겠지. 그래도...이성주가 이렇게 된 건 무작정 이성주 혼자만의 잘못만 있는 게 아니니까..."
쓸데없이 궁상맞은 생각만 하면 주변사람들이 피곤해진다.
그 분위기에 어울려줄 생각도, 마음도 없다.
어차피 상대는 그 과거가 뭐라 하던 자신의 목표를 위해 사람 수십의 시간을 앗아간 범죄자.
'과거따윈 알지 말고 그 죄만 보라는 말이 있었지.'
그러니 쟤들은 쟤들끼리만 이야기하게 두자.
"저 담벽 건너편에 한적한 터 하나 있어요."
"...그래, 고마워."
"...뭐? 정말 둘이서만 얘기하게 둔다는건가?"
그 사이를 눈치파악 못하는 델리지아가 껴들어왔다.
그러나 나서려는 델리지아를 한서우가 저지하며 딱히 별 제지 없이 둘은 사라졌다.
"...저래도 되는건가, 정녕."
"어차피 다 개인사정이잖냐. 우리가 알 이유도 없고."
흠, 하며 델리지아가 턱을 쓸었다.
근데, 그나저나.
"넌 대체 왜 온거냐?"
"...누구 말하는거지?"
"당연히 너지, 멍청아."
그 말에 델리지아가 멍청하게 눈만 끔뻑였다.
"뭐...나는 오면 안된다는 소린가?"
"아니, 그게 아니라. 대체 어쩌다가 이유리 저 아줌마랑 붙어서 같이 전이한거냐고. 다른 해방자들도 많을텐데 이유리가 굳이 널 선택해서 올 것 같진 않았거든?"
비단 내 착각만이 아니다.
한서우도 지금 표정이 미묘하니까.
"뭐가 하필 나란 소리지? 이유리가 연락할 수 있는 해방자들 중 공명 계열 초상능력자는 나 뿐인걸로 기억하고 있는데."
하지만 이유를 듣고나니 어쩐지 납득할만한 이유인 것 같기도 하다.
"아..."
델리지아의 평균 이하의 지능이나 성격을 고려하더라도, 마력을 감지할 수 있다는 것 자체의 메리트가 비교도 안되니까.
한서우도 공명 계열이니... 뭐라 태클 걸 곳이 없기는 하네.
"그래서 이젠 뭐 할거야? 연구자 관련 일도 이제 얼추 처리된 것 같은데."
"별 일 있겠나. 사서를 도와야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나 싶지만 말이다."
"그러냐."
한서우와 내가 의논해본 결과,델리지아는 아무래도 얼굴이 알려진 놈이다 보니, 캠프에 합류하기는 불가능 할거라는 게 정론이었다.
사실 당연한거지.
아무리 델리지아가 죽인 사람들이 한 자릿 수라고는 해도, 그 하나하나가 죄다 걸출한 인물이었으니 인류의 적이었던 건 확실한거였고.
전투광 새끼답게 민간인은 죽이지 않아서 다행이다만, 그래도 웬만한 장교 하나하나가 이 놈 손에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첫 만남때는...
'지금 생각하면 죽이고 싶긴 하네.'
근데 이젠 내 '체감 시간'상으로는 인간의 시간으로 이루 말못할 아득한 오래전의 이야기다.
게다가 내 목숨도 이젠 가치가 없게 된 시점에서, 그깟 허리 비틀어서 뽑아버린 것 가지고 이제와서 화풀이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더 한 놈들이 있었으면 있었지.
그나마 얘가 정신만 헤까닥 한 미친놈이라 얼마나 다행이야.
지능마저 높았으면 쓸데없이 다루기 어려울 뻔했다.
어쩌면 아직까지도 적으로 남아있었을 수도 있고.
"왜 그렇게 쳐다보지?"
"...너, 나 학생때 기억은 하냐?"
"그게 뭔 소리인가. 아카데미에 다녔었나?"
말을 말자.
애초에 얘는 나랑 특별한 연같은게 있는 것도 아닌데.
"...루시."
"조용."
한서우의 입을 사전에 틀어막았다.
굳이 델리지아한테 쓸데없는 사실만 흘려서 분위기를 더 어색하게 만들긴 싫었으니까.
"이게 사회생활이다. 바보야."
"세탁기같네, 꼭."
"뭐?"
"아무것도 아니야."
뭔 소리야, 저건 또.
이해못할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나를 불쌍하게 바라보는 한서우였다.
"그보다 루시 넌 사회생활 해 본 적이 없잖아."
"쓰읍."
이새끼가 할 말 못할 말이 있지.
한서우는 델리지아처럼 멍청한 놈이 아니지만, 유독 눈치만은 없다.
눈치없는 놈한테 사회생활 운운하는 소리 들으니 가오가 안사네.
괜히 얼굴만 새빨개졌다.
"뭐...아무튼. 이유리랑 이성주 대화 끝나면 네가 알아서 잘 챙겨주고."
"그러지."
"...흐음."
근데, 잘 생각해보면 이유리는 캠프에 합류해도 되는 거 아닌가?
원래 신분부터가 공식 요원이었는데, 편입해도 문제 없을 것 같기도 하고...
"판단은 내 마음대로 하라, 이 소리인가?"
"아니, 야. 그게 아니라...사서한테 물어봐라, 만나면."
델리지아가 지 멋대로 판단했다가 어떤 꼴이 날지 도무지 상상도 안된다.
설마 이유리랑 같이 캠프로 나타나려 한 건 아니겠지.
"그럼...나중에 만나도록 하지. 때가 되면 찾아가겠다."
"아니, 올 거면 얼굴이라도 가리고 와라, 너는."
그렇게, 친한 사이라고 하기엔 뭣 하지만 적어도 적의 적이라고 부를만한 수준은 되는.
그런 어정쩡한 관계의 인간들과의 인사를 끝마치고 캠프로 향하기 시작했다.
아직 밤이 다 가지 않았다.
달은 여전히 하늘 위에 떠있고, 시간도 기껏해야 한 두 시간쯤 지난 것 같다.
이정도면 보초 인력을 제외하고선 다들 자고있을 시간이니, 성화연한테 안들키겠네.
"그나저나...저쪽은 알아서 해결하겠지?"
문득 한서우가 캠프로 향하는 길에 꺼낸 말이다.
무슨 의미인지는 명확하다.
만에하나 이유리가 그 '가족의 연'이라는 것에 연연해서 또 쓸데없는 짓을 벌이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
"쓸데없는 걱정이네, 또."
설마 이유리가 그 많은 일들을 겪고도 아직까지 제자리걸음이면, 그건 그냥 폐급이라고 봐야하고.
하지만 나름 히어로 협회의 공식 요원이라고 딱지까지 달고 있으니, 그 수준은 증명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어차피 그 아줌마 보이는 건 그래도 대재앙 때도 스스로 움직일 수 있던 사람이야."
"...나이를 그렇게 많이 먹었어?"
"...너 당사자 앞에서 그렇게 얘기하진 마."
대재앙 때 스스로 걸어서 움직일 수 있을 정도였다.
부모들은 다 죽었는지, 아니면 애들 놔두고 튀었는지, 어딨는진 모르겠지만...
그래도 그 세 남매는 대재앙 속에서 살아남았으니.
결말은 비록 이 꼬라지일지라도, 일단 지금까지 살기는 했잖아?
"죄를 지었을때 가장 해서는 안 될 짓이 뭔지 알아?"
"...응?"
한서우가 내 뜬금없는 질문에 당황한 듯 하다.
"후회하는거야. 자기가 저지른 죄에 후회하고, 속으로만 끙끙 앓는거."
"그런...가?"
뭐, 후회하는거야 딱히 상관없긴 하다.
다만, 그 후회의 영향에 따른 결과가 옳은 속죄냐, 아니냐를 단정지을 뿐이지.
"내가 아는 대부분은 후회만 하고, 정작 그걸 고칠 노력은 시도조차 안했지."
"..."
"다들 자기 속으로만 멋대로 속죄하고, 당사자한테는 아무 말도 없이 지 속만 들들 볶는다, 이 말이야."
한서우는 그제야 이해하기 시작한 듯, 조금씩 고개를 끄덕인다.
"아무짝에도 쓸모없지. 그런건."
"하긴...그렇겠구나."
죄는 그대로.
돌이킬 방도는 없다.
"잘못을 저지른 놈이 개심할 수는 있는데, 개심하니까 문제가 생기는거야."
"응?"
차라리 변명의 여지없이 악독한 놈이면 몰라.
"자신이 저지른 게 죄라는 걸 아는 놈들은, 과거의 자신을 무서워하고, 부끄러워하지. 그러면서 정작 피해입은 당사자한테는 부끄러우니까 얼굴 마주칠 생각도 안한다고."
"너무 깊게 생각하는 것 같은데, 그건."
한서우 말이 그렇다면야 그런거고.
"여튼, 내 입장에서 제일 악독한 놈은 절대악이 아니라 어정쩡하게 나쁜 놈이야."
"그래..."
아무래도 대화가 글러먹은 것 같다.
"아무튼, 아무튼."
서둘러 대화를 끝마쳤다.
더 쓸데없이 가다간 머리만 복잡해질 것 같고.
"끄응..."
기지개를 켜며 하늘을 바라봤다.
내가 원래의 지구에 있을때, 그러니까, 내가 이 빌어먹을 온갖 판타지같은 일에 휘말리기 전.
이제는 너무나 아득해서 도저히 현실이라고는 믿을 수 조차 없는 기억의 세상속에서.
그때 바라보았던 밤하늘이 떠오른다.
눈 한쪽이 탱탱 부은 채 쓸데없는 궁상에 빠져서 분위기나 잡던 그때.
"...별이 이쁘네."
"루시, 너 어디 아파?"
폐허가 된 도시 위, 소복하게 쌓인 눈 위로 새겨지는 가느다란 선들.
머지않아 지워질 발자국들.
"...빨리 끝내고, 이 지루한 우주에서 나가자."
일이야 어떻게 됐던.
일단 연구자들의 관련 사태는 일단락됐다.
근본적인 문제는 하나도 고쳐지지 않았지만...
적어도 사람과 사람의 문제는 고쳤다.
손 댈 수 없는 것보다, 그래도 고칠 수 있는 걸 고쳤으면 된 거지.
응.
"조사가 끝났다."
"허??"
사서가 찾아온 건, 그로부터 일주일 가량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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