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6화 〉 3부 16. 일단 시도는...
* * *
이 씨 남매의 복잡한 가정사는 알다시피 내가 신격을 받아들이기도 전인 '과거'의 이야기라 잘 안다.
뻔하고, 추잡하고, 더러운.
"니가 뭘 안다고 지껄이는거냐."
"잘 알지, 어쩌면 마음속으로 부정하는 너보다 더."
흙먼지가 잦아들 즈음 뒤에서 한서우도 걸어나왔다.
대검을 꺼내든 채 언제라도 휘두를 수 있게 양 손으로 쥐어잡은 자세였다.
덕분에 기습에 걱정할 필요는 없겠네.
이성주와 대화를 이어나간다.
"좋아...처음엔 몰랐는데 말이야."
저 심장을 보니 알겠더라.
"왜 지들을 연구자라고 부르는지 몰랐는데, 알고보니 그냥 똑같이 빼다박아서 그런거였구나."
"나는 그들과는 달라! 나는...!"
나머지 사냥개들도 같은 방식으로 꼬드겼겠지.
"모두를 위한거라고? 진심이냐?"
"..."
아마 너 자신이 제일 잘 알거다.
결국 저 '심장'을 통해서 초월자가 된다는 것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는.
물론 저 심장은 내 것보단 곱절로 불완전하다.
연구자들이 만들어낸 내 심장이 완전품이라면, 저건 그 불량품중에서도 불량품을 꼽아 만든 정도.
그럼에도 신격을 담아내기에는 충분한 품질이다.
엘로힘이 되기에도 한참 모자르지만, 신격을 받아들인다는 것 자체가 초월자가 된다는 것이나 마찬가지임을.
"이반과 너는 다르다고 하지만 결국 너도 꿈만 조금 소박할 뿐이지, 똑같잖아."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이반은 선민 흉내를, 이성주는 영웅 흉내를 낸다.
이반은 저 심장을 소수의 지배자들에게만 부여할 생각이었다면, 이성주는 전 인류에게 나눠주자는거지.
그래봤자 저 심장을 받은 인간들 중 셋에 둘은 하루도 못가서 몸이 기형적으로 녹아내리거나 마수가 될 것이다.
물론 마력이 아닌 신격으로 변질된 짐승이기에 그 본질은 다를지라도.
"꺼져라. 대화할 이유 따위는 없어."
"아니, 충분하지. 저 심장 만들려고 니들이 한 짓이 생각이 안 나는거냐?"
이미 사서에게서 충분히 듣고 왔다.
대체 이 연구자 새끼들이 무슨 터무니 없는 짓을 꾸미고 있었던 건지는.
아카식 레코드를 통해서 이미 질릴 정도로 곱씹고 왔단 소리다.
'그러고보면 예술가를 소환한 시점에서 이미 의심했어야 했는데...'
저 새끼들은 엘로힘을 소환할 수 있었잖아.
왜 그걸 잊어먹고 있었지?
지금까지 엘로힘을 인간의 힘으로 소환한 전례는 없었다.
엘로힘이 자신들의 의지로 지구로 도래한 경우는 있어도.
그러니까ㅡ
"니들 이런 짓 해본 게 한 두번이 아니구나?"
인간이 신격을 이용하려 한다.
그를 위해선 신격과 접촉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신격과 관련된 것의 신체를 만든다.
자신들의 신체를 그것으로 대체한다.
그를 위해 그들이 한 일은, 엘로힘을 도축하는 것.
당연히 그를 위한 희생도 만만찮다.
그래서 그들이 해방자와 손을 잡은거다.
마력파가 발생한 곳에서 만들어진 대량의 정신병자들, 미치광이들을 재물로서 쓰기 위해.
그 생명을 '복제'를 위한 용도로서 쓰기 위해서.
일반 복제라면 몰라도, 현실격리 역할을 하는 그 구슬이나 그 외 격이 높은 물건이라면 복제하는데 생명이 필요하니까.
그 구슬을 나만 복제할 수 있었던 것도 전부 내 생명이 무한했기 때문이다.
아니라면 아마...5명쯤 갈아넣어서 하나 만들었으려나.
하지만 얘들은 수백명의 생명을 '이것' 하나를 복제하기 위한 용도로 썼다.
무엇을 복제하느냐?
그야 신격이 풍만한 나의 심장이다.
내가 이 세계로 돌아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성주와 처음으로 조우했을 때 뽑혀나간 것.
"이래서는 그 포장을 위한 명분마저 희석되잖아..."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이라고..."
이성주도 말하면서 찔리는 게 있는 모양인지 목소리가 줄어들었다.
"자, 고백해라. 니가 뭔 짓을 했는지."
"나는 아무짓도 하지 않았다. 너 혼자 오해하고 나서는 것 뿐이지."
이성주 이새끼가.
다 찢어지고 너덜너덜해진 프라이드는 개나 줘버리고.
"첫째, 너는 사람 수천의 목숨을 너의 그 욕망을 위해 앗아갔다."
욕망이 아니다, 라고 소리치는 이성주.
저 욕망을 짚어주는 건 나중에 하자.
"둘째."
여기서부터 죄질이 커진다.
"'너희'는 학자를 소환하고, 그를 꼭두각시로 부렸다."
따지고보면 타이밍부터가 이상했어.
예술가가 나타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롭게 등장한 엘로힘.
사라진 하늘의 별들.
하늘의 별들이 사라졌다는 건, 엘로힘이 움직였다는 소리다.
그야 엘로힘의 물리적 본체 상태는 지구는 고사하고 태양조차 다 덮어버릴 만큼 크니까.
여튼, 그 엘로힘들이 움직인 이유는 명확했다.
연구자들이 복제한 내 심장, 그 안에 숨어있는 신격을 탐하기 위해 내려온 것이다.
연구자들은 엘로힘이 무엇을 위해 지구에 왔는지 알고 있었고, 그걸 이용해 엘로힘을 소환한 것이다.
처음의 예술가는 실패로 끝났으나, 학자부터는 그들의 뜻대로 돌아갔다.
뭐, 쉬웠겠지.
애초에 학자는 자아라는 게 거의 없는 놈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복잡할 것 없어.'
자아가 없는 엘로힘을 소환해 그들의 뜻대로 부렸다.
그들이 처음으로 한 일은...
해방자들 다수가 넘어가 있던 평행우주를 습격하는 것.
학자는 그 우주를 집어삼켰다.
아마 가장 큰 장애물이 해방자여서겠지.
인류를 위한다는 명목만은 같지만 그 방향성이 너무나 다르기에 언젠가는 충돌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이해한다.
"...무슨 수를 썼는진 모르겠지만, 9할은 맞군."
"거 봐."
하지만.
"루시, 네가 틀린 게 있다."
"...?"
이성주가 손 끝으로 하늘을 가르켰다.
"학자는 이미 우리의 통제를 벗어났다. 정확히 너의 그 신격을 빨아들인 시점을 기점으로."
"뭐?"
그럴리가 없는데.
"그렇다면 니들이 학자를 어떻게 기억해? 자신의 존재조차 모든 사람들의 기억에서 없애버렸는데."
"비단 암호화를 통한 정보 전달이 너희만 하는 짓일 줄 알았나?"
아, 그런 거였구나.
단순하지만, 정보 오염에 효과적인ㅡ
"아무튼!"
쾅, 하며 발을 내려찍었다.
금빛 충격파가 발 끝을 타고 퍼져나간다.
뒤에 있는 저 거대한 보석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자, 이성주. 이제 너에 대한 얘기를 해봐라."
"...그 주둥이를 찢어주지."
살벌하게 피어오르는 핏빛 귀기.
순식간에 날아오는 온갖 모양의 검들을 한서우와 내가 모조리 쳐냈다.
분명 저쪽으로 날아갔건만, 명색이 프로인 모양인지 저 사냥개들은 자연스럽게 그걸 모조리 피한다.
"이유리, 이유나."
"..."
"네가 가지고 있던 건, 그저 열등감이야. 아무도 별 말 안했는데 말이야."
이성주와 이유리, 이유나 남매는 관계가 묘하다.
애초에 이 셋은 모두 이복 남매니까.
"멋대로 소외감을 느끼고 가족이라는 틀 밖으로 자신을 밀어낸 건 너다, 이성주."
이유리와 이유나는 본래부터가 상위차원에 간섭할 수 있는 잠재력을 타고났다.
능력의 발현이야 어찌되든, 결국 초상능력이 발현되기 시작하는 8세 전후에는 그 능력이 나타날 것이었다.
그리고 그 절묘한 잠재력이, 가족이라는 틀 아래서 서로 공명해 나타난 게 두 자매의 '텔레파시' 능력이고.
그러나 이성주에게는 그런 게 없다.
그저 평범한 초상능력 뿐.
초상능력 하나만으로도 분명 대단한 것이지만, 머리를 통해 서로 하나의 세계를 공유하는 두 자매와는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게 당연한 것이다.
말은 안했지만 이미 멀어지고 있었다.
심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서로 말없이 소통하는 둘.
그 능력을 대강이나마 이해하고 있는 이성주.
그리고 그 능력이 어떻게 작동되는 지 원리를 알게됐을 때, 그 소외감은 열등감으로 변질됐다.
어째서 저 둘만 저렇게 특별한 것인가.
어째서 저렇게 타고난 것인가.
마음속에 우울, 열등감으로부터 피어오른 부정적인 감정을 지우기 위해, 이성주는 '포장'이라는 방법을 택했다.
이유리는 위선적이며, 이유나는 수동적이다.
자신은 대의를 가질 수 있는 사람이며, 결코 나 하나만을 위한 이기적인 존재가 아니다...등등의.
자기 자신을 영웅시하고, 남들을 깎아내리는 행태의 자위다.
결국 그 생각은 (신)연구자 내부로 잠입하며 폭증됐다.
배신을 끌어낸 것도 전부 이반의 새치혀에 놀아난 탓이다.
여튼.
시간은 흐르고, 흘러서.
지금 이성주가 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결국 너도 되고싶었던거야."
"닥쳐."
이유리, 이유나 자매와 같은 존재가.
전 인류를 진화시킨다는 명목으로 '포장'했으나, 결국은...
"너 자신을 위한거다. 이성주. 자신도 그들처럼 상위차원에 간섭할 능력을 손에 넣음으로서..."
캉!
"ㅡ그들과 같은 '사람'이 되기 위해. 짐승이 아니라."
자신도 가족에 속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실은 그 누구도 내친적 없는데.
"하, 하하."
바람이 불었다.
"그래, 그렇게 원한다면야."
고개를 숙인 채, 터덜터덜 뒤로 걸어가는 이성주.
검은 보석을 중심으로 둘러싼 사냥개들의 가장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ㅡㅡ!"
"ㅡ!"
그리고 잠시 후 들려오는 목소리들.
하나같이 당황, 혼란에 찬 목소리였다.
곧 분노로 변질되나 싶더니, 안에서 분열된다.
누군가 칼을 빼어들고, 멱살을 잡는다.
그러나ㅡ
파스슷...
잿가루가 흩날리는 듯한 맥빠지는 소리와 함께 목소리도 모두 사라졌다.
연구자들 내부의 갈등도 눈 씻은 듯 사라졌다.
그저 의문, 공포, 경외만이 남아있다.
콰직.
한 입 더.
이성주가 보석을 한웅큼 더 쪼개어 입 속으로 집어넣었다.
콰직, 콰직.
땅이 갈라진다.
공기가 요동친다.
달에 구름이 끼기 시작하는 것도 마냥 우연은 아니리라.
[좋아.]
마침내 사냥개들 사이로 나타난 이성주는, 여전히 새빨간 귀기를 맘껏 휘날리고 있었다.
[그렇게 끝을 내고 싶다면야, 여기서 끝을 내자.]
"미친새끼, 기회를 줬는데도..."
결국 선택을 그 따위로 한 건가.
아무래도 구제불능이다, 저새끼는.
[어차피 여기서 모조리 쓸어낼 생각이었겠지, 너는.]
"본인도 잘 아네."
니가 뭔 짓을 한 지 아니까, 그런 처분을 받는 게 당연한거라 생각하고.
[신격조차 빼앗긴 한낱 꼬맹이에게 무슨 자신감인지 모르겠다만.]
"그러는 너는 꼴에 그게 뭔 자신감이냐?"
[미래를 위하는 거다. 나는 결코 나를 위해, 지금만을 위해 살아가지 않아.]
한서우의 대검이 그 방향을 잡았다.
"...이거 예상한거 맞아, 루시?"
"뭐, 반쯤은."
하다하다 저정도까지 글러 쳐먹은 인간일줄은 몰랐지만.
[어차피 죽을 거, 여기서 끝을 내야지.]
"쯧."
저돌맹진인가.
생각없이 사네, 그냥.
미래를 위한다고, 계획이 있다고는 하지만...
결국은 본능을, 현재만을 위해 살아가는 놈이었다.
콰직, 콰직.
사냥개들이 나서서 심장을 섭취한다.
'학자'의 물리적 신체의 심장.
그를 인간들끼리 나눠 쳐먹고있다.
쿠구구...
먼지가 피어오르며, 부자연스러운 빛이 폐허를 덮었다.
"대화는 실패한 거 맞지?"
"그래, 끝이야."
쾅.
검은 시야가 급속도로 가속됐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