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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해주세요, 마수님!-134화 (134/162)

〈 134화 〉 3부 14. 하이브 마인드

* * *

사서의 말로는, 내가 예전에 만난 그 여자.

그러니까...이유리 말이다.

그 여자에 대한 연구가 완료됐다고 한다.

사실 텔레파시라는 능력 자체만 보면 특별할 것 없지만, 그 원리가 다른 초상능력들과는 유독 달라서 포섭한 거라고 하는데...

"그런 걸 대체 어떻게 아는거야..."

"간단하다. 마력 헤일로 현상이라는, 말 그대로 현실과 현실을 격리하는 기이한 현상이 있는데도 그 장벽을 뚫고 텔레파시가 가능하니까. 이유리 이유나 자매가 특이한거다."

그러고보니, 관계자한테 들은 바로는 이유리가 외부와의 통신을 위해 대륙 내부로 보내진 요원이라 그랬다.

왜 하필 이유리인가 했더니 그런 이유에서 였구만.

"그럼 현실과 현실을 가로막는 장벽을 넘어 텔레파시가 가능했다는건...?"

"그래, 현실보다 고차원적인 무언가를 매개로 통신했다는 것과 똑같다."

쉽게 말해서 그냥 상위차원에 간섭해서 텔레파시를 했다는거네.

일개 초상능력 치고는 지나칠정도로 원리가 거창한 능력이다.

텔레파시도 그 방법이 여러가지일텐데...그걸 상위차원을 통해서 하다니.

"인간 개개인이 상위차원에 간섭할 능력을 가지고 있는것도 이상하고, 아무리 생각해도 원리가 너무 기이해서 말이다. 그래서 연구자들에게 구속되어있던 이유리를 포섭하고 연구를 시작했지."

신격에 연관된 사람도 아니라, 그냥 쌩판 남.

그런 사람이 '우연히' 그런 초월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는거다.

뭐, 초상능력 자체야 수천년을 가까이 이어져온 유서깊은 기현상이니, 수천억명쯤 그런 능력 한, 둘 쯤은 태어나도 이상할 건 없겠지.

그래도 특이한 사례인건 마찬가지라 연구를 하고싶은 건 마찬가지고.

하지만 나에게 '인간을 대상으로 한 실험'이란...

유독 그런 쪽의 상상밖에는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미묘하게 뒤틀린 내 표정을 본건지 사서가 덧붙였다.

"물론 일방적으로 하거나 당하는건 아니니 걱정하지 마라. 어차피 정신관련쪽이라, 그냥 재우고 의식에 간섭하는 게 전부였고."

"내가 뭐래?"

"뭐, 아무튼."

어깨를 으쓱하며, 수첩을 꺼내드는 사서.

"지금부터 알아낸 사실들을 설명하겠다. '차원'과도 밀접하게 연관이 있는 내용이니 새겨듣도록."

마스는 여전히 못미덥다는 표정이었지만,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한서우는 나와 사서의 대화를 듣더니 이미 전적으로 신뢰하는 표정이었고.

사서는 우리를 잠시 둘러보고선 설명을 시작했다.

"먼저, 첫째...상위차원은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아득한 것이 아니다."

"그게 무슨 개소리냐."

"닥쳐봐, 좀."

남한테 설명하면서 무슨 뱅뱅 돌려말하고 있어.

그리 꼬집자 분위기좀 잡는거라며 일축하는 사서.

아, 그런거라면 참아줄 수 있지.

원래 그런 분위기에 죽고사는게 사서같은 흑막캐릭터의 특징 아니겠는가.

물론 사서가 흑막이라는 소리는 아니지만, 어쨌든.

그제야 입을 다물고선 사서의 말을 경청했다.

"뭐,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지. 애초에 상위차원이라는 것 자체가, 전 우주에 걸쳐 그 영향력을 행사하는, 우리에게 보면 일상과도 같은 힘인데. 그저 이렇게 '상위차원'으로서 인지를 하니 아득해보인다는거야. 사실은 일상처럼 그리 먼 것도 아닌데."

그렇댄다.

"그리고 둘, 상위차원은 누구나 간섭할 수 있다. 비록 티가 날 정도로 영향력을 행사하지는 못하지만...그래도, 그 일부나마 자신의 뜻대로 깎아내는게 가능하다는거지."

"...?"

일단 계속 들어보자. 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건지.

"생명이라는 것에는, 기본적으로 상위차원이라는 것이 내제되어 있다는 말이다."

"...이해를 못하겠는데."

마스가 중얼거렸다.

"당연한거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결과의 해석이다. 상위차원이 뭐고, 대체 그것에 간섭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말이다."

사서가 수첩에 그려진 괴이한 도표같은 것들을 보여왔으나, 여기 모인 세 사람 모두 그 뜻을 이해할 리는 없었다.

그게 뭔데 씹덕아.

"그동안 이유리가 초상능력을 발현할 동안의...모든 데이터들을 간략하게 축소해둔 표다. 텔레파시라는 간단한 능력 치고는 이상하게 현실에 간섭하는 영향력이 컸지."

"너도 그...지식의 저주, 뭐시기 그런거냐?"

자기가 안다고 남이 다 알거라고 생각하는 그런거?

"미안하군, 아직 잘 맞을만한 단어를 선택하지 못해서."

잠시간 턱을 매만지며 고민하던 사서는, 생각난게 있다는 듯 고개를 들었다.

"중요한 건 결과니까. 그것만 해석하면 되겠지?"

"그렇지. 우리가 원리같은 걸 그렇게 세세하게 알 필요는 없고."

"간단하게 말하자면, 상위차원이라는 것이 문자 그대로 우리의 위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소리다."

상위차원에서 '상위'란 '보다 위에 있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이유리를 조사하며 얻은 결과는 그것의 단어의 의미가 틀렸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모든 생명의 심층에 내재하고 있는것, 전 우주에 영향을 끼치지만, 결코 아득한 것은 아닌 것."

인간도, 짐승도 모두 존재하는 그것.

생명이 존재하며 심장이 뛰고 있는, 생각을 할 수 있는 개체라면 가지고 있는.

"'본능'에 가까운 영역, 무의식이 곧 상위차원이고, 그 끝이다."

"......역시 개소리인 것 같은데."

뭔가 진지하게 얘기는 하는 것 같은데...그냥 망상같아.

모든 생명의 무의식이 상위차원이라고?

그리고 그것에 간섭한다는 의미는...

"생명의 가장 깊숙한 곳까지 주물럭댄다는 의미나 마찬가지다. 상위차원은 하나고, 인간이라는 것 조차 상위차원에서는 하나지. 그런 의미에서.."

사서가 손가락으로 자신의 머리를 툭 툭 두드렸다.

"이유리, 이유나 자매의 텔레파시는, 무의식에서 연결된 인간 본질을 매개로 정신을 '공유'하는 것. 이유리의 정신간섭또한, 그것을 매개로 현실의 다른 인간에게 간섭하는 것이다."

"때려치워, 미친놈아."

사서가 내 말을 무시하고선 말을 이었다.

"결론적으로 이유리 이유나 자매의 텔레파시라는 능력 자체는 굉장히 간단해보이지만, 전 인류를 대상으로 한 현실조작에 가깝다는 말이다. 비록 그 규모가 극히 제한적일지라도."

"미치겠네."

받아들여야지, 어쩌겠어.

사서도 굉장히 열심히 해석하고, 연구한 것 같은데.

결국 저 말에 따르자면 이거다.

세 줄 요약. 아니, 두 줄 요약.

첫째, 우리가 본래 알던 상위차원이란 인간의 무의식이다.

둘째, 이유리 이유나 자매의 텔레파시, 그리고 이유리가 나를 폭주시킬 때 썼던 정신간섭 능력. 그게 사실은 간단해보이지만, 현실조작이란다.

"그럼...상위차원과 우리의 연결을 끊는다는 소리는..."

"그래. 본능이라는 영역을 싸그리 말소시켜버리는 것과 같다. 말 그대로...이성만이 남은 존재가 되는거지."

한서우의 우려에 사서가 답했다.

"그게...본능이란 걸 잃어버리면, 모든 욕구와, 감정은 어떻게 되는거지?"

"뭐, 별 수 있나. 그냥 깡통이 되는거지."

이성과 논리는 보통 가장 이상적인 가치다.

그에 반면, 감정과 본능이라는 것은 순간의 실수, 당황을 유발하는 부정적인 것으로 간주되고.

보통 그것을 절제하려 노력하는 것이 인간일텐데.

"...그게 없으면 인간이라고 볼 수 있나?"

마스의 말이 맞다.

정말로, 그 시점의 인간을 현재의 '인간'과 동일하다 볼 수 있을까.

어쩌면 감정을 지닌 지금의 관점으로 봐서, 그런 세상이 너무 삭막하다 느끼는 걸 수도 있다.

막상 그렇게 된다면 또 그렇게 변해버린 세상을 이상적이라 여길지도 모르지.

"...아무래도 이건 뭔가 잘못된 것 같은데."

"지금의 관점으로 봐서 그런거지, 나중에 바뀌면 막상 어떻게 될 진 모르지."

내 말에, 한서우가 다시금 고개를 푹 숙였다.

나는 어떻게 생각하냐고?

나는, 뭐...

"표정 피고, 그렇게 깊게 생각하지 마라. 어차피 상위차원을 날려버린다 해도 세상이 크게 변하는 일 따위는 없을테니까."

"...정말?"

정말이고 말고, 당연하지.

애초에 상위차원과의 격리를 한다는 아이디어 자체가 내 머리에서 나온 생각인데.

감정과 본능이 사라진다는 말을 들으면 무슨 반응을 보일진 이미 다 간파하고 있었다.

"여기서 다시 나오는게 인간의 본질이야."

사서의 설명이 끝나자, 내가 그를 이어받았다.

한서우와 마스, 사서가 날 바라본다.

"인간이라는 것은, 상위차원에서는 본래 하나다. 사서 너는 알지?"

고개를 끄덕이는 사서.

"여튼, 이때문에 '환생'이라는 것이 있을수는 있어. 어차피 본질은 하나라서, 고작 이런 우주에서 죽는다고 해봤자 다시 본질로 돌아가는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마치 진동하는 것처럼.

"누군가 죽으면, 인간의 본질에서 또 하나의 선이 뻗어나오는 거지. 그러니까...쉽게 표현하자면..."

인간의 본질이라는 것은, 성게와도 같은 모양이다.

중간의 본체를 담당하는 거대한 구체.

그리고, 우리 우주로 뻗어나온 수많은 가시들.

그 가시 하나하나가 이곳에서의 인간이다. 자신을 '자신'이라 믿으며 현실을 살아가는 인간들.

가시 하나가 소멸해도 그것은 그저 가시일 뿐이다. 여전히 살아있다.

본질은 여전히 인간으로서 살아있기에, 다른 가시로서 뻗어나와 후생을 살아간다.

"여기서 우리가 하는 일은, 그 성게로부터 가시들을 모조리 잘라내는 것."

사람들이 지금 인지하는 것처럼, 인간 개개인을 모두 각각의 객체로 만들어내는 것.

"'영혼'을 만들어낸다. 각자의."

모든 인간에게 고유의 영혼을, 생명을, 본능을 부여하는 것이다.

생명을 만들어내는 것도, 생명을 지우는 것도, 이제는 인간 '개개인' 스스로가 하게 되는 것이다.

본질이라는, 어떻게 보면 하이브 마인드와도 같은 그것으로부터 벗어나서 완전한 자신으로서.

상위차원과의 연결을 끊는다는 것은 그것이다.

생명에게 영혼을 만들어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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