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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해주세요, 마수님!-132화 (132/162)

〈 132화 〉 3부 12. 수렴

* * *

"그럼...저 괴물들의 정체는 사람들도 모른다는 소리야?"

"그렇지. 비록 그 괴물이 군번줄 같은 걸 지니고 있었다고는 해도...그걸 제외하면 단서가 전무하니까."

성화연이 우리를 이끌며 말했다.

근처는 죄다 평야라 움직이기 어렵지는 않았다.

"뜬금없이 공간이동 한 것도 이상하고, 여기가 어딘지 알 수도 없으니 함부로 행동을 시작할 수가 없어."

이곳까지 오게 된 과정은 너무나 뻔해서 굳이 이야기할 필요도 없었다.

당장 사건이 워낙에 순식간에 일어나기도 했고.

그저 바다 위에 솟아오른 도시로 정찰나갔다가, 그대로 휩쓸린 것이다.

그대로 이 우주로 집어삼켜졌던거지.

"그래서 아직은 캠프에만 머물러있는 중이야. 우리도 움직여야한다는 건 알았지만."

"아무렴 어때? 시간이 촉박한 것도 아니고, 지금부터라도 움직이면 되잖아."

"그렇지. 루시 너 하나 온 것만 해도 행동이 확실히 과감해질 수 있지."

"...그렇냐."

낯간지러운 이야기지만 사실이긴 하기에 딱히 부정하진 않는다.

당장 나 혼자만 돌아다녀도 충분할걸.

이제는 '재생'이라는 능력 자체도, 이전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빨라져서 머리가 터져봤자 바로 재생할 수 있는 수준이니까.

능력이 성장했다기 보다는, 그냥 능력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내 정신상태가 변화해서 일거다.

무언가의 생명이라는 게 그렇게 무겁지만은 않다는걸 깨달아서 그런걸까.

뭐, 남들은 하나뿐이니 무겁겠지만...

그걸 평생 지고가야 하니까.

여튼, 그래.

우리가 온 것 만으로도 이 미지의 우주에 관한 정보를 캐낼 수 있다.

"현재로서 생존자들의 목표는?"

우리 뿐만이 아니라 남아있는 사람들의 의견도 알아봐야 하니 물어보는거다.

"글쎼, 원래 우리가 있던 곳으로 돌아가자는 사람들도 있었지만...현재 주류는 이곳에 전초기지로서의 토대를 세우자는 의견이야. 이곳이 어딘지도 모르고, 대체 어떤 일이 일어났길래 이런 상황이 된 건지 조차 모르니까."

"그래?"

고개를 끄덕이는 성화연.

"첫 조우야, 우리가. 우리가 이 알 수 없는 공간에 떨어진 유일한 공신력있는 집단이라는거지. 그런 우리가 이곳을 버려두고 바로 돌아가려 한다면 어떻게 되겠어?"

직업정신 투철하네.

"게다가 루시 네가 여기는 완전히 다른 우주라고 했잖아, 맞지?"

"맞지."

"하지만 다른 우주로 떨어지는 것 치고는 그 이동방식도 너무나 쉬웠어. 전 세계 모든 바다에서 솟아오른 도시 근처에만 가도 된다니...당연히 우리만 여기 떨어지리라는 보장이 없잖아?"

앞으로도 밖으로 정보가 전달되지 않는 한은 계속해서 이곳으로 사람, 군인들이 떨어질 것이다.

물론 지휘부도 어느정도의 소요가 끝나면 가망이 없다 판단하고 완전히 놔버리겠지.

"그러니까, 현재로서 제 1순위는 전초기지의 건설. 두 번째가 이 우주의 정체를 파악하는 거고."

내 정리에 성화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1순위에 외부로의 정보 전달까지 같이 포함해야 할텐데. 그것도 엄청 중요하잖아?"

"그건...0순위지, 0순위. 다른 어떤 것보다 우선시되야 하는 것. 하지만 지금은 우리 우주로 돌아갈 단서도 없으니, 그냥 손가락이나 빨고 있는거야."

"흐음.."

그렇대.

대화가 끝나고 일행은 조용해졌다.

말없이 평원을 걸었다.

눈 덮인 평원과, 파란 하늘의 하얀 구름이 잘 구분되지 않는다.

'굉장히 세세한 세계네.'

결코 포켓차원같은, 자그마한 간이 우주가 아니다.

누더기같기는 하지만, 하나의 완전한 우주.

'이런 짓을 할 놈이라고는 하나밖에 없지.'

지금 신격을 가진 놈이 학자 그 한놈인데.

범인이 너무나도 뻔하다.

이건 범인을 아는 상태로 시작하는 추리에 가까웠다.

대체 그자식은 뭔 의도를 가지고 이런 우주를 자기 손으로 창조한건지.

뭐, AI의 발달이랑 비슷한건가?

요즘엔 인공지능도 창작을 한다던데, AI와 다름없던 학자도 신격을 받아먹고 나서는 이렇게 변한 걸 보면...

"아."

그러다 한 순간, 지금 상황에서 느껴진 묘한 감각의 정체를 깨닫고선 멍청한 소리를 냈다.

옆에서 마스가 흘끔 바라보는 게 느껴졌다.

'좆된건가.'

상황이 상황이다보니, 내 처음 목적을 까먹었다.

내가 뭐 하러 여기에 왔는지.

후드의 주머니 속으로 손을 집어넣자 맨들맨들한 구슬 여러개가 잡힌다.

'차원의 틈새는 대체 어디로 증발한거야?'

차원의 틈새.

두 우주 사이의 교집합.

본래라면 마력파가 발생했을 때 연결되야하는 공간.

어라?

근데 이번엔 차원의 틈새는 커녕 썡판 모르는 다른 우주로 전송됐네?

돌아갈 방법도 지금은 없고, 차원의 틈새도 말 그대로 증발해버린 것 같은데?

대체 얘 어디로 간거야?

상위차원과의 연결을 끊기 위해 시작했던 일이, 굉장히 이상한 방향으로 틀어졌다.

차원의 틈새에 구슬 넣으러 왔다가 졸지에 새로운 우주를 발견해버렸다.

'...사서한텐 미안하다고 해야겠는걸.'

나한테 구슬 맡겼다가 의도치않게 다른 우주로 보내버린 사서에게도 명복을.

내가 없으니 구슬 복제하기도 불가능할거고, 그래서는 상위차원과의 간섭을 끊는 일도 완수할 수가 없다.

"어째 되는 일이 없냐."

"인생이란게 원래 그런거지."

"제발좀 닥쳐."

마스가 피식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

"...꼴에 미안하다는 감정표현은 할 줄 알군."

"뭐?"

"아니다. 혼잣말이야."

사서가 아카식 레코드라 불리는 거대한 책을 덮었다.

자연스럽게 아공간으로 사라지는 아카식 레코드.

"자, 여기가 가장 가까운곳이다."

한서우와 사서의 앞에 우뚝 솟아있는 것은, 사막 한가운데에 솟아있는 폐허가 된 도시.

안개가 시작되는 곳인 것 마냥 도시의 주변은 온통 뿌연 먼지로 가득해서 명확한 윤곽을 알 수 없었다.

이 도시는 다른 우주로 통하는 관문, 통로나 마찬가지니 제대로 볼 수 없는 게 당연하겠지만.

"그럼 지금 바로..."

"아니, 가기전에 알아둬야 할 게 있다."

망설임 없이 도시 안으로 발을 들이려는 한서우를 사서가 막아세웠다.

"알아둬야 할 것?"

한서우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는 사서.

"잘 들어라."

사서는 아카식 레코드에 찬찬히 적혀나가던 온갖 내용들을 기억해냈다.

"먼저, 이 도시로 들어가 우리가 도착하게 될 곳은 다른 우주가 아니다. 저 너머의 우주는 원래부터 우리가 알던 곳이지."

"...그게 무슨 말이야?"

"예상했던 반응이니, 짧게 설명하겠다."

손으로 도시를 가르키는 사서.

"쉽게 말하면, 덮어쓰기와 같은 방식이다. 원래 있던 우주의 정보를 완전히 새로운 것으로 교체했다는거다."

"..."

"더욱 더 쉽게 말하자면, 저 너머의 우주는 루시의 고향이라는거다. 새로운 우주는 개뿔, 아공간이나 격리된 자그마한 차원같은 것도 아니지."

한서우는 그 말을 듣고선 살짝 놀랐다.

이곳은 일전에 마력파가 발생했던 곳.

한서우가 연구자와 관련된 정보를 모으며 알게 된 정보에 의하면...

원래 마력파가 발생한 곳에는 '문'이 열려 잔해들이 쏟아져 나오는것이 정상이지 않나?

문이 열리기 전 잔해들이 있는 곳은 자그마한 포켓차원, 포켓 우주라고 알고있는데.

"간이 차원같은 게 아니라고? 완전한 하나의 우주?"

"그래, 마력파는 이제 통로의 역할을 한다. 잔해들을 보관해두는 창고같은 게 아니야."

심지어 그 다른 하나의 우주는 루시가 원래 살고있던 고향 우주.

저 너머의 지구의 풍경이 이질적일 수는 있지만, 그래도 그게 원래는 루시의 고향이랜다.

그저 '누군가'에 의해 우주 자체의 정보가 덧씌워져서 이것저것 기워붙인 듯 이질적으로 변했을 뿐이라고한다.

"이 점에서 유추해보면 그 누군가는...우리가 잊고 말았던 그 '엘로힘'. 루시가 말하길, '학자'라는 엘로힘이 벌인 짓이 분명하다."

"학자...남극을 삭제시켰다던 그놈이야?"

"그래. 루시가 말한 정보니 확실하다."

사서가 발의 방향을 돌렸다.

도시를 향해서.

"뭐, 말은 복잡하지만 우리가 해야할 일은 단 하나다. 어떤 짓을 해서든, 루시의 신격을 모조리 앗아간 '학자'를 죽이는 것."

도시로 들어서기 전, 한서우가 대검을 뽑아들었다.

"한 번 했는데, 두 번이라고 못하겠어."

"그건 신이 아니라 엘로힘이었다."

"...안되면 되게 하면 되지."

사서가 한서우를 바라봤다.

신문에 나오던 것과 비교하면 확실히 믿음직한 표정이다.

신문에서 내보내던 사진들은 죄다 어색하게 웃고있던 사진들밖에 없었는데.

'그나저나 한서우 저 놈도 이질적이군.'

사서는 운명, 선택받은 자 따위의 유치한 이야기를 믿지 않는다.

그런 우연한 사건들또한 파고 올라가다보면 분명 무언가 계기가 있고, 하나의 자그마한 시작으로 수렴된다는 걸 알게된다.

그러나 한서우의 과거는 알 수 없다.

어째서 엘로힘을 죽일 수 있는지, 루시의 심장을 들 수 있었던건지, 코어가 한서우를 택했던건지.

그 무엇 하나 사서로서도 알 수가 없었다.

보다 고차원의 문제라는 듯, 아카식 레코드에서조차 그에 관한 이야기는 일절 없었고.

그저 처음부터 영웅으로 태어나기 위해 만들어진 '등장인물'마냥 모든 것이 작위적이었다.

'...뭐, 등장인물은 맞나.'

루시가 살던 세계, 사서가 스승으로 두고있는 사람들이 왔던 세계에선 이들의 이야기가 하나의 만화로서 존재했다고 하니...

'하지만 그건 만화가 아니라, 다른 현실을 보여주던 창문이나 마찬가지였다.'

또다른 현실이었다는 말이다.

그러니 그 만화같은 등장인물을 믿을 수 없다.

"뭐해, 가야지."

"...그래."

한서우가 도시를 향해 발을 내딛었다.

그런 한서우의 등을 보며 사서는 생각했다.

'뭔 상관인가, 어차피 영웅이라면 우리로선 좋기만 한데. 정체는 모든 일이 끝나고 나서 파악하기 시작해도 되겠지.'

파앗.

'잔해'들로 이루어진 거대한 검은 돔이 생겨났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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