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4화 〉 3부 4. 영고라인
* * *
"줄 놓치지마."
"차라리 묶고 가는 게 더 편할텐데..."
"그러면 즉각적인 조정이 힘들잖아. 그냥 니가 좀 고생해라."
사서가 투덜대며 내 허리를 묶은 줄을 꼭 잡았다.
말은 저렇게 해도 끝까지 도와줄 거라는 건 알고 있었다.
쩔그렁!
"자, 그럼..."
발 아래에는 우주가 자리잡아 있었다.
물론 진짜 우주는 아니고, 단순히 도서관의 외부공간, 모종의 장치가 장비되어 있는 곳일 뿐이다.
그리고 난 저곳에서 차원과 차원을 끊는, 오버테크놀로지 장치를 가져와야 했다.
불가피한 하나의 첩보작전을 방불케하는 일.
'그렇게 거창한 건 아니지만 말이야.'
그냥 공구 몇개 가지고 내려가서, 뭐 이질적인거 발견했다 싶으면 뗴오면 되는거고, 이상한 거 발견했다 싶으면 부수면 되는거다.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다."
"그냥 간단하게 생각해, 이새끼야."
"하여간, 애새끼 대가리 하고는."
사서를 한 대 쥐어 패고싶었지만, 그 전에 사서가 날 발로 차버렸다.
"흐엑!"
"잘 갖다와라."
"아욱, 엑!"
여기저기 흩어져있던 파편에 몸이 찍히고 긁혔다.
엿같았다.
저 구멍 위로 사서가 멍하니 이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한번 사서를 뚫어져라 쳐다봤지만, 그냥 나에게 엿이나 날리는 사서.
"저, 저 싸가지 하고는, 씨발..."
나도 엿을 날려주고 싶었지만 지금 내 목숨줄을 쥐고있는 게 사서기에 그냥 땅이 꺼져라 한숨만 푹 쉬며 유영하듯 몸을 움직였다.
아, 맞다. 어차피 땅은 없었지.
'저게 다 도서관이라는건가...'
내가 내려왔던 바닥ㅡ현재의 입장에서 보면 천장은 이 공간의 한쪽 면을 통째로 차지하고 있었다.
끝도 보이지 않는 거대한 하나의 '면'이었다.
파도가 넘실대는 듯, 기이한 무늬가 계속해서 소용돌이치는 벽.
조심스럽게 그 근처의 떠다니는 파편을 향해 헤엄쳐갔다.
[경고.]
"?"
[비정상적 전자기흐름 관측. 배재합니다.]
그리고 그 순간, 공간 전체에 울려퍼지듯 나오는 기계음.
동시에 소름끼치는 느낌이 등 뒤로 엄습했다.
콰아아앙!
"끄학?!"
전력으로 뒤돌아 곧바로 돌려차며 날아오는 '무언가'를 받아쳤다.
그 찰나의 순간 마력 한방울조차 끝까지 끌어올려 대응했는데도 다리가 텅, 하며 진동했다.
"히익, 악..."
온몸이 종치듯 댕 울리는 느낌이었다.
일단 방금 첫방 맞받아 친것만으로도 성공이다.
'...맞받아 치다니.'
대체 어떻게 한건지 나조차 궁금할 지경이다.
분명 그거, 굉장히 거대한 송곳의 형태였는데.
옆으로 돌려차서 망정이지 자칫해서 주먹이라도 뻗었다간 주먹끝을 기점으로 몸이 갈라질 뻔했다.
팽ㅡ
내 움찔거림을 감지한건지, 허리쪽에 매여있는 마법으로 강화된 밧줄이 당겨졌다.
그래, 여기서 일단 빠져나가야한다.
선구자 이새끼들이 여기 뭔 장치를 해둔건진 모르겠지만, 일단 저딴 흉악한 것들이 여기에 장비되어 있다면...
"ㅡ아."
씨발.
생각을 하다 말고, 내 머리가 꽁꽁 얼어버렸다.
사방에서 날아오는, 방금과도 같은 그 거대한 송곳들 때문이었다.
내 키보다도 큰 무지막지한 크기의 송곳들이, 내 주변을 원형태로 둘러싼 채 매섭게 쇄도하고 있었다.
"이 미친 새끼ㄷㅡ"
콰지직!
선구자 이새끼들은 대체 아군 적군 구분하는 기능이라도 넣어둔건지.
아마 훗날은 생각 안하고 그냥 무지성으로 보안장치만 싸갈긴게 분명했다.
"학, 커헉...!"
눈이 까뒤집혔다.
"..."
미친듯이 느껴진 움찔거림에 밧줄을 당겨 루시를 꺼냈을땐 이미 상황이 끝난 뒤였다.
몸이 미처 다 담지도 못할만한 크기의 거대한 돌로된 가시 수십개가, 루시의 복부와 허리를 관통한 채 말 그대로 고슴도치를 만들어둔 상태였기 때문이다.
가시 하나를 빼자, 몸에 난 구멍에선 엄청난 양의 피가 뿜어져나오기 시작했다.
'틀렸다.'
이 정도 상처면 재생하는데 족히 수시간은 걸린다.
곧바로 다시 투입할 수는 없다.
물론 루시는 정신만 차리면 다시 들어간다고 날뛰겠지만 그래선 그냥 의미없는 자해밖에 되지 않아.
'선구자들은 대체 뭐 할 작정으로 저런 함정들을 만들어둔건지...'
이 작은 몸이라면 머리도 팔다리도 으깰 수 있었을 텐데 '굳이' 복부와 허리, 가슴을 비롯한 눈에 띄기 쉬운 곳만 분질러놨다.
머리와 사지가 멀쩡하게 남은 게 오히려 신기한 상황이라는거다.
이 정도 정밀성이라면 고의적으로 이렇게 만들었을 가능성이 크다.
딱 '복부'와 '허리'만 공략하는 함정을.
'하지만, 대체 왜?'
비합리적이다.
이렇게 함정을 만들어둘 거라면, 침입자라면 그냥 아예 사지를 가루로 만드는 게 더 편하고 기술도 덜 들텐데.
"하윽, 끄흑..!"
어느샌가 또 깨어난 루시가 자신의 복부에 박혀있는 무수한 가시들을 붙잡고선 신음했다.
옆에 주저앉은 이유리가 루시의 몸을 잡고 가시 하나를 뽑아내자 또다시 눈을 까뒤집고 기절해버린다.
"...고통이 목적인가."
하지만 일반인이라면 분명 저런 상처를 입었다 라는 사실 만으로 저세상으로 가버린다.
"당최 생각을 모르겠군...선구자들이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일단 나로서는 철수야. 경계 인력이 더 필요하진 않다나봐."
"그러냐."
"넌 계속 남아서 취재 할거야?"
성화연의 질문에 마스가 고개를 저었다.
한번 목에 걸린 카메라 안에 담긴 사진을 훑어본 마스는, 곧 해변가로 고개를 돌렸다.
"루시가 또 혼자서 어디 갔다며. 그럼 걔 수습하러 가야하지 않겠냐."
"하하, 그렇긴 하지..."
루시는 가는 곳 어디 하나 정상적으로 돌아온 곳이 없었으니까.
죄다 폭발, 폭발, 폭발뿐이었다.
그래도 최근엔 어느정도 얌전해진 것 같긴 했는데, 설마 또 문제라도 일으키겠어.
"일단 난 루시가 갔다는 그 '도서관'쪽으로 가 볼 예정인데...내가 들어가는 방법을 모르거든?"
"아, 그건 내가 문자로 보내줄게. 기밀같은거니까 절대로 유출시키지 마. 가능하면 한서우한테도."
"한서우한테도?"
성화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스는 성화연의 눈빛을 한번 보더니, 어깨를 으쓱거리며 자가용에 올라탔다.
"그래, 뭐. 너도 철수 하면 한서우나 좀 도와주러 가라. 걔도 해방자들인가 뭐시기때문에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닌 것 같더만."
"그래, 그래. 너도 잘 가고~"
마스가 장난스럽게 경례하며 저 멀리 사라졌다.
잠시간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본 성화연은, 곧 고개를 돌려 방금 전, 오후 늦게 떠오른 바다위의 도시를 바라봤다.
음산한 폭풍이 그 주위에서 휘몰아치는 중이었다.
'...왜 어디선가 본 도시같지.'
이유없는 익숙함이 느껴지는 폐허가 된 도시.
저런 이상현상이 이곳에서만 일어난 일인지, 아니면 다른 곳에서도 일어난 일인지 알 수가 없었다.
연락을 받아봐야 알지.
방금 전 저 도시의 확인을 위해 파견된 헬리콥터는 연락이 두절된 채 이미 30분 가까이 지난 상태였다.
"..."
루시의 말대로라면, 오늘을 기점으로 '학자'라는 엘로힘의 영향력이 급속도로 커졌다고 했다.
그 덕에 사람들이 남극이라는 것의 존재 자체도 잊고, 실시간으로 죽어가는 사람들마저, 실시간으로 망각한다.
세상이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다.
저 도시도 그것의 일환인지 궁금했다.
"..."
결국 성화연은 주먹을 굳히며 지휘본부의 천막으로 들어갔다.
자리에 앉아있는 현장지휘관이 전화를 마치며 놀란 표정으로 성화연을 돌아봤다.
"성화연...히어로 님. 어쩐 일이십니까?"
"절 저곳으로 파견해주세요."
"네?"
의아함이 번지는 현장지휘관을 마주보며 성화연이 팔을 들었다.
"저곳, 저 도시 말입니다. 절 파견시켜주세요."
시끌시끌.
현장지휘관이 탁자에 내려놓은 통신기에선 온갖 목소리가 섞인 채 터져나오고 있었다.
"우윽, 아..."
마지막 남은 하나의 가시를 폭, 하고 뽑았다.
"히끅!"
본능적으로 몸을 웅크리려 했지만, 사서의 제지에 가로막혔다.
뱃속으로 들어오는 핀셋과 집게에 그만 비명을 참지 못하고 몸을 뒤틀었다.
"아욱, 아으, 아아..."
"일단 수술이 끝날때까지 움직이면 안된다. 가만히 앉아있어."
"히끅, 히끅..."
쪽팔리게도 눈에선 닭똥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냥 단순히 원초적인 고통을 참지 못한 탓이었다.
그 빌어먹을 가시는 그 구조부터가 지랄맞았다.
빼내려하면, 반드시 몸에 파편이 남을 수밖에 없는 거칠거칠한 형태였다.
그 덕에 지금 사서가 내 몸속에 손을 집어넣은 채 파편들을 빼내는 작업을, 실시간으로 보고있는 중이었다.
푸훅!
"하긋...!"
내 신음에 잠시간 날 바라본 사서는 한숨을 푹 쉬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알 수 있겠나."
"그, 하윽, 그건...왜..."
"당연히 대응방안 때문이지."
"...그냥 보안장치였어. 아마도."
고통을 참으며 말을 이었다.
"공간 전체에 뭐 안내방송 비슷한 게 울려퍼지더라. 비정상적 전자기패턴 관측이라느니 뭐라느니, 끄흑...어, 어쨌든. 그 안내 뒤로 바로 그 가시들이 나한테 쳐박힌거야."
"...비정상적 전자기패턴?"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이자, 사서가 수술을 멈추고선 턱을 짚었다.
"선구자들은 보통 인간의 뇌, 사고의 흐름을 전기신호라고 표현했다."
"...그래?"
"그 말인 즉, 그 안으로 어떤 생명체가 들어가던 곧바로 온몸이 고슴도치가 될 게 뻔해."
"아니, 씨발 그러면 대체 무슨 수로...!"
푸슉!
"꺄학!"
사서의 강제 입막음(물리)에 귀여운 비명을 터뜨리며 몸을 웅크렸다.
"...어쩌면 선구자들은 처음부터 불사자가 이곳으로 들어올 걸 예상한 걸 수도..."
"읏...네?"
사서의 영문모를 중얼거림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사서를 바라보자, 곧 내 얼굴을 양 손으로 잡는 사서.
자신과 눈을 맞춘다.
얼굴에 주먹이라도 갈겨주고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사서의 얼굴은 더할나위없이 진지했다.
"루시, 네가 해내야한다."
"그게 무슨 말이, 냐구요. 알아듣게 설명을 해야 알아 쳐먹든지 뱉던지 할 거 아냐."
푸걱!
사서가 얼굴을 찌푸리며 뱃속에서 파편을 확 뒤틀었다.
"우윽..."
"자꾸 싸가지없게 말마다 태클걸지 말고, 제발 좀 논리적으로 받아들이란 말이다. 언제까지 어린애처럼 행동할거냐?"
"나는, 흐윽, 나는...애라구..."
울어봤지만 사서는 한심하게 날 바라볼 뿐이었다.
한숨을 푹 쉬며 다시 내 뱃속으로 손을 집어넣고 수술을 시작한 사서가 말을 이었다.
"루시, 넌 죽고 나서 의식을 유지할 수 있나?"
"그럴리가요. 그게 가능해요?"
"해내야한다. 네가."
"...미쳤어요??"
멍하니 사서를 바라봤다.
수술하는 동안 내 피가 가득 튄 사서는 미치기는 커녕 오히려 진지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아무래도 오늘 엄청 죽어야 할 것 같다, 루시."
"씨바알..."
말하자면, 불사자의 특훈 시작이었다.
과목명은...죽고 나서도 의식 유지하기.
"말이나 되냐구 개새끼야..."
"충분히 말이 되다 마다."
"죽어본적도 없는 새끼가 말은 잘해요..."
사서는 침묵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