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2화 〉 3부 2. 도서관은 깨끗하게
* * *
일단 지도에서 남극이 사라지고 난 후, 내가 한 일은 곧장 인터넷에 남극을 검색해보는 일이었다.
"...뭐야, 이게."
물론 당연히 인터넷에 남극에 관한 정보가 올라오지는 않았다.
의도적으로 지워낸 것 마냥 남극 관련 용어나 생물은 전부 인터넷에서 사라져 있었고, 사람들은 남극의 존재조차 모른다.
혹시나 사람들이 날 대상으로 거대한 몰래카메라를 하는건가 싶어 세계지도마저 찾아다니려고 무지하게 애썼다.
"상황이 미쳐 돌아가네, 아주."
전혀 없다.
그런게.
존재해야할 것은 전부 사라져있고, 사람들은 연기가 아니라 정말로 그것에 관한 것들을 모두 잊어먹은 듯 했다.
굉장히 익숙한 양상이었다.
'학자, 그 새끼인건가?'
존재 자체가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니. 당연히 말도 안되는 이야기였다.
다만 학자는 그 특성이 특성이기에 이번 사건의 용의자는 학자 그 한놈밖에 없다.
"근데 왜 갑자기 뜬금없이 남극이 증발해버리는건데..?"
어쩌면 학자가 신격을 얻고난 후, 변질되어가는 세상에 대한 하나의 증거일 수도 있었다.
문득 오싹 소름이 끼친 나는 곧바로 세계인구를 실시간으로 합산해주는 페이지로 들어갔다.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세계의 인구는 실시간으로 줄어들고 있었다.
마수와 전쟁중이었던 지난 날조차 아닌데 말이다.
그런데도 그 어느 언론 하나 이런 사실에 관한 기사를 내보내지 않았다. 이런게 당연한 것 마냥 말이다.
"하아..."
머리가 복잡하다.
일단 일이 심각한건 둘째 치더라도, 지금 일어나는 이 현상을 막을 방법이 도무지 떠오르질 않기 때문이다.
일단 알아낸 사실이라도 알려주고자, 폰을 켜 성화연에게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
.
.
"...그러니까, 지금 남쪽에 있던 대륙 하나가 통째로 증발했다는 말이야?"
"믿긴 어렵겠지만 사실이지. 학자가 그런놈인데 뭘 어떻게 대응해."
"루시, 일단 이것만 말할게."
내 얘기를 듣고 난 성화연의 반응은 어딘가 이상했다.
보통 이렇게까지 용의자가 명확하고, 그것의 특성도 안다면 바로 납득해야 정상인데 말이야.
하지만 어째선지 성화연은 끝까지 반신반의하는 눈치였다.
잠시 뜸을 들인 뒤 나온 성화연의 말은,내 어이를 저 멀리 날려보내기엔 충분한 말이었다.
"미안하지만, 학자라는 엘로힘은 현재 우리의 데이터베이스엔 존재하지조차 않아. 아예."
자신의 기척조차 이 세상에서 지워보낸다는 말이었다.
이쯤되면 그냥 나혼자 정신병자가 아닌지 의심부터 해야 정상일 것 같은데.
"얘들은 진짜 사람 정신 혼란스럽게 하는덴 도가 텄다니까."
"물론 난 믿기는 하겠지만...다른 사람들을 납득시키기엔 어려울거야. 게다가 네 말대로라면 신격도 연관되어있다는건데, 그래서는 한서우조차 감지할 수 없는 엘로힘이 분명하고."
상황 골치아프게 만드는 능력에 혀를 내둘렀다.
"뭐, 루시 네 말에 따르면 남극쪽에 거대한 대륙 하나가 있었다는건데, 그렇다면 지금의 급작스러운 기후 이상현상도 설명되니 어느정도 먹힐거야. 게다가 넌...기원부터가 그쪽 관련이기도 하니 신뢰성도 상당히 높고."
"그건 고맙네."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는 마. 일단은 현재 사태는 인지는 했으니."
"수고해라!"
"......자칫하면 루시 너도 같이 파견나가야할 판국인데."
이번 사태가 확실히 나 아니면 해결할 수 없는 일이기는 하다.
신격이 연관되어있으니.
전화를 마치고선 한동안 침대 위에 멍하니 누워있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도 누군가는 실시간으로 잊혀지고 있는 중이었다.
죽었을때, 시체는 어떻게 되려나?
'아마 증발하겠지.'
완전 말소다.
가능한 한, 임시적인 방침일 지라도 지금의 상황을 어떻게 타파해야한다는 것 만큼은 분명했다.
"으으윽...!"
머리 아파.
일단은, 내가 아는 선에서 신격이 우리 차원에 간섭하는 걸 막을 것이 뭔지 한번 떠올려봤다.
누가 같은 방 안에 있었다면 정신사납다며 그만 하라고 할 정도로 방 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아!"
그리고 그러던 와중, 갑작스럽게 내 머리에 떠오른 하나의 장치.
황급히 컴퓨터가 장비된 책상의 서랍쪽으로 달려가 두번째 서랍을 확 열어젖혔다.
그 안에 들어있던 건, 검은색의 리모컨과도 비슷한 장치.
하지만 좀 더 이질적으로 생긴 장치였다.
사서가 말하길, '현실격리장치'였지.
최근에는 신격도 모조리 빨려 인간과 다름없게 된 상태라 사실상 쓴 적은 없다.
일단 서랍속에만 하루종일 쳐박혀있었다.
"이거면...되려나?"
현실격리장치를 손 위에 두고 고민했다.
과연 이걸로 현실이 상위차원으로부터 격리가 될까?
잠깐의 고민을 마친 나는, 곧 고개를 저으며 불가능하다고 단언했다.
사서조차 이 장치가 임시적인 방편일 뿐이라고 말했다.
효과는 영구적이지 않으며, 발동 범위조차 한정적이었다.
효과가 영구적이지 않다는 게 제일 치명적이었는데, 이 장치 하나로는 기껏해야 일주일 정도밖에 지속되지가 않는다.
"돌겠네 진짜...!"
머리를 콩콩 두드렸다.
"사서좀 만나야겠네."
지금 얘는 상황이 이꼬라지로 돌아가는 데도 나한테 코빼기도 비추질 않는다.
나보고 직접 찾아오라는 소리였다.
옷걸이에 걸린 후드집업 하나를 대충 걸치고선 현관 바깥을 향해 발을 내딛었다.
'사서 말에 따르면, 도서관에도 이것과 비슷한 장치가 다수 장비돼 있다는거지.'
도서관으로 가야할 이유도 충분했고.
지금은 어떻게 됐을란진 모르겠지만, 일단은 들어갈때까지 한도끝도없이 시도해볼 작정이었다.
아무리 심장이 파열된다 해도 그정도야 순식간에 재생...될테니 밑져야 본전인 시도이기도 하고.
만약 사서가 나오질 않는다면, 그건 이미 사서가 죽었거나 나와 협력을 그만뒀다는 것으로밖엔 해석되지 않는다.
대로변을 향해 나온 후, 곧바로 근처의 도서관 입구를 향해 발을 옮기기 시작했다.
지직, 직.
엄청난 양의 마법진이 폐허가 된 공터 위를 에워쌌다.
각자 톱니바퀴마냥 돌아가며 이상현상을 조정하고 있는 중이었다.
사서는 수첩을 한번 훑어보고선 다시 눈앞의 복구작업에 집중했다.
'트롤새끼 하나때문에 이게 다 뭔 고생인지.'
이게 다 연구자들 때문이었다.
되도않는 엘로힘 인류사에 끌어들인다고 그리 발광했다가, 모든 게 잊혀지고 모든 게 사라지는 이 지경까지 도달하고 만것이다.
어쩌면 연구자들의 진짜 목적은 이쪽이었나?
알고보니 연구자들은 인간찬가의 복잡한 마스크를 뒤집어 쓴것이 아니라, 만화에 나오는 악의 세력처럼 그냥 순수악 그 자체일 수도 있었다.
아무 이유없이 인류를 멸망시키려는 수준낮은 단체.
'그건 아니겠지.'
일단 적어도 이반이라는 놈은 어떤 사연이 있는 것처럼 보였으니 말이다.
키잉ㅡ
마침내 복구작업이 끝난 도서관의 입구에선 화사한 푸른 빛과 함께 마법진의 조각이 산산히 부서져나왔다.
그 정체불명의 엘로힘이 도서관을 개판내놨던게 드디어 복구된 것이다.
"후우..."
해방자들은 일단 각자 흩어져 자리에서 임무를 시작했으니 현재로서 도서관의 첫 모습을 보는 건 사서밖에 없었다.
과연 복구작업은 제대로 완료된건지 확인도 해야하기에 위협을 무릅쓰고 엘로힘이 한번 다녀간 도서관 내부로 들어가야했다.
파앗
"으윽..."
전이과정도 평소보다 더 어지러웠다.
일반인이 겪으면 토할 수준의 멀미가 머리를 적셨다.
잠시간 어지러움에 머리를 붙잡고 비틀거리며 눈을 떠보니 엉망이 된 도서관의 전경이 눈에 들어왔다.
"...씨발."
책은 모두 책장 아래로 떨어진 채 널브러져 있었고, 몇몇 책장들은 아예 파괴되기까지 했다.
다급한 마음에 서둘러 자리를 박차 아카식 레코드가 자리한 중앙을 향해 질주하기 시작했다.
사삭, 삭.
다행히 펜이 책에 기록하는 소리는 제대로 들려왔다.
아카식 레코드도 유리돔 안에 보관된 채 찢어진 곳 하나 없이 멀쩡한 모습이었다.
"아니...멀쩡한 건 아니군."
잠시 아카식 레코드의 주변을 둘러보던 사서는 그리 중얼거렸다.
한숨을 푹 쉬자, 도서관 내부로 그 소리가 가득 울려퍼졌다.
'페이지를 아예 뭉텅이로 뜯어갔구만.'
유리돔 한구석에 자그마한 구멍이 나있었다.
심지어 책의 저 한쪽 모서리는 페이지가 텅 비어 휑하니 펄럭거렸다.
특정 페이지만 노려서 그쪽만 뜯어간거다.
"일 났군."
대체 엘로힘이라는 놈이 얻어야했던 정보가 무엇인가.
고민해봐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애초에 그 엘로힘은 인간을 망각시키는게 주요 특성중 하나인데, 기억해봤자 아무 쓸모 없을거다.
'이걸 언제 다 정리하나...'
일단 현재 도서관 내부의 상황을 파악하고 난 사서는 아까보다 더 크게 한숨을 푹 쉬며 투덜거렸다.
책은 더럽게 많은데, 도서관 내부는 엘로힘 그 빌어 쳐먹을 새끼때문에 아예 난장판이 된 상태고, 자동으로 책을 정리하는 마법진조차 지금은 거의 완파된 채 저 천장 위에서 너덜대고 있었다.
"일단은 좀...쉬고싶군."
코트를 펄럭이며 사서는 데스크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어쩐지 얼굴이 훨씬 수척해진 것이 마냥 착각만은 아니리라.
삐삐삐삣.
발걸음을 옮기고 있던 도중 들려온 알림음.
누군가 도서관 내부로 들어왔다.
"...!"
타이밍이 이렇다면 진작부터 기다리고 있었던 놈일 확률이 제일 컸다.
지금까진 누군지 모를 엘로힘에 의해 도서관이 망가진 상태라 아무도 들어올 수 없었으니 말이다.
터덜터덜 걷던 발걸음의 속도를 높여 황급히 데스크의 앞으로 뛰어가는 사서였다.
"아흑, 끕..."
"..."
괜히 뛰어왔다.
사서가 그리 중얼거렸다.
전이마법진이 새겨진 카펫의 위에 쓰러져 있던 건 그 빌어먹을 새하얀 소녀였다.
온몸이 피투성이인게 아마 이전까지 계속 이 내부로 진입하려고 시도했던 것 같다.
당연히 그딴짓을 했다간 마력이 역류해 심장을 파열시킬 것이 뻔했고, 이 멍청한 놈은 그 짓을 될때까지 반복한 것이다.
그 덕에 지금 저 꼬맹이의 몸은 제정상이 아니어서 카펫은 이미 피로 흥건히 젖어있었다.
"하아..."
귀찮은 어린애라도 떠맏게 된 심정이었다.
사서는 자신을 원망스럽다는 듯 바라보는 루시를 조심스럽게 집어들고선 근처의 소파로 내던졌다.
"으학!"
"아픈가?"
"끄윽...아, 개아파. 진통제 있냐?"
"...미친년."
어쩜 저렇게 뻔뻔한건지.
한때 신이었다는 작자가 저런 년이라는 사실은 사서 자신조차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었다.
고개를 가로저으며 사서는 데스크의 의자에 푹 눌러앉을 뿐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