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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해주세요, 마수님!-121화 (121/162)

〈 121화 〉 3부 1. 거짓?

* * *

시간이 흘렀다.

어느샌가 사람들은 하늘의 균열마저도 일상적인 일처럼 당연하게 여기기 시작했다.

익숙해졌다는 거겠지.

시간이 너무나 많이 흐르면, 저런 기이한 일 일지라도 메사에 신경쓰며 살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도서관좀 가야하는데."

"그럼 가지 그러냐. 어차피 시간은 많은데."

"아니, 그 도서관 말고."

여튼, 난 아직까지도 사서 만나러 간다며 마음만 먹고 아직까지 만나지도 못한 상태고.

"아, 그러고보니 마스. 너 그때 뭘 어떻게 한거냐?"

"뭐, 무슨 일. 주어를 말해야지."

"그때, 우리 남미 갔을 때 있잖아. 그 연구소."

"아, 맞다."

그때 마스는 한창 지상에서 나와 파편이 대판 싸우고 있을 때, 아래에서 뭔가를 했다.

그 시점부터 파편의 행동패턴은 완전히 달라졌고, 곧이어 한서우가 오며 예술가의 사건도 막을 내렸고.

­"...이상한걸, 그거. 루시 네가 느낀 대로라면 그 파편의 힘은 신격이었던 거잖아?"

­"그렇지."

­"하지만 이전에도...난 널 죽일 수는 없었어. 뭐 죄책감같은 문제가 아니라, 탐구자에게 몸을 빼앗겼던 그 순간에도."

­"...그럼..."

­"나에겐 루시 네가 가진, 그 힐링팩터 비슷한 능력같은 걸 무력화시킬 방법은 없다는거지. 엘로힘은 잘...모르겠고."

그리고 모든것이 끝난 후 서우의 말을 들었을 땐 나도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한서우덕에 그 파편을 처리할 수 있었던 게 아니라면, 대체 무엇덕분에 그 파편을 처리할 수 있었던건가?

용의자는 마스가 아래에서 일으켰던 그 푸른폭발, 단 하나 뿐이었다.

"봉인된 엘로힘을 죽였지. 그게 다야."

"...뭐?"

그리고 나온 대답은 생각보다 너무 심플해서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그러니까, 봉인된 놈은 일반적인 공격에조차 저항력이 없다는건가?"

"...비슷할 걸?"

'음...'

아이스티를 쪽쪽 빨며 곰곰히 생각해본다.

'역시 상위차원에서의 본체라는 건가?'

결국 우리 우주에서 다른 개체로 갈라져 나왔다 해도, 본질은 결국 하나인거다.

꼭두각시 인간이라는 현상과 똑같다.

인간도 결국 상위차원에선 전부 하나일 뿐이지만, 우리가 사는 3차원에선 여러 개체니까.

"일등공신은 너네, 그럼."

"...?"

마스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줬다.

마스는 여전히 무슨 의미인지 알아채지 못한 것 같지만 말이다.

뭐, 말하고 싶은 건 이거다.

3차원에선 본래 여러개체인 것이, 실은 본질로서 하나일 수도 있다는 것.

'인간에게 영혼을 갖게 하려면....'

그 상위차원으로부터 모든 걸 끝내버려야 한다.

신격도 마력도 마수도 엘로힘도, 영혼 없는 인간도 전부 상위차원의 간섭으로부터 비롯된거니까.

만악의 근원은 상위차원의 간섭.

근원부터 거슬러 올라가보자.

*

"후..."

성화연에겐 말도 안하고 왔다.

감시인력도 다들 건물 밖에 있어서, 나올때만 다시 이쪽으로 나오면 될 거다.

허름한 노후상가의 지하에 떡하니 자리잡은 복고풍의 문짝 앞에 섰다.

물론 당연히 도서관으로 통하는 입구다.

손을 살며시 갖다대자 푸른색의 마법진이 붓으로 그려지는 것 처럼 서서히 문 위에 새겨졌다.

­지직ㅡ

"...?"

근데 상태가 조금 이상했다.

원래 마법진에 노이즈같은 것도 생기는 거였나?

­파앗ㅡ

살짝 꺼림칙한 감각을 느끼며 도서관의 내부로 전이되려던 그 순간이었다.

­파지직!

"아윽?!"

순간적으로 마력이 역류해서, 눈치채고 미리 마법진의 활성화를 멈추지 않았다면 심장이 파열해서 뒤질뻔했다.

"뭐, 뭐야..."

뭐, 저쪽에서 의도적으로 내 접근을 막기라도 한 건가?

'그럴리가 없는데.'

누구보다도 날 도서관에 격리시키고 싶어서 난리쳤던 놈들이 이제와소 갑자기 막아버린다고? 굉장히 뜬금없다.

그 뒤로 몇번 더 시도해봤지만, 역시 순간적으로 마력이 역류하며 위험한 상황만 만들어 낼 뿐이었다.

"끄응..."

결국 찝찝한 느낌과 함께 그날은 그대로 다시 호텔로 돌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성화연에게서 걸려온 한 통의 전화.

"그게 또 뭔소리야."

­"응, 갑작스러운 기후이상이래잖아. 기후이상. 하루아침만에 도시 두개가 사라져버렸다고."

뭔가...굉장히 뜬금없었다.

이번엔 또 갑자기 기후이상이라는건가.

"그래서, 그쪽에서 신격때문에 벌어진 일이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구요?"

­"응, 그렇지.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라서...보통 이렇게 대규모로 해류가 변하는 거면 전조라도 있어야 할텐데, 오늘 오후에 순식간에 변해버렸고 말이야."

"맹점이 하나 있는데, 난 이미 학자 그 새끼한테 신격이 이미 다 빨린 상태잖아. 어떻게 내가 그런 일을 할 수 있겠어?"

­"하긴..."

성화연은 납득하며 전화를 끊었다.

TV를 키자, 성화연이 말한 내용의 소식이 화면의 아래에 자그맣게 지나가는 걸 보면, 역시 속보라 칠만한 사건이었나 보다.

"...어지러워."

침대에 대자로 뻗었다.

애초에 방금, 성화연의 기후변화 어쩌구 하는 말을 들었을 때도 내가 별달리 해줄 수 있는 조온은 없었다. 그쪽 관련 지식은 전무했으니 말이다.

그래도 자료정도는 받아보고 아는대로 말해주는 게 더 나았으려나? 아마 그렇겠지.

적어도 아무런 정보도 없는 것보단 나을테니.

성화연은 아마 지금쯤 북부 개척지역쪽으로 파견나가 있을거다.

어쩌면 이번의 사태때문에, 순식간에 매몰됐다는 그 두시로 파견나갈 수도 있고.

만약 해외로 파견나가는거면 나까지 같이 가겠지만, 지금은 상대적으로 가까운 위치니 그냥 메일로 받기로 결정했다.

옆에 엎어뒀던 폰을 켜고선 성화연에게 문자를 보내기 시작했다.

­[기상청 홈페이지 가면 자료 뽑아볼 수 있을텐데?]

­[해류같은 것도 거기서 찾아볼 수 있는 거였냐.]

­[아마? 통합됐지 않나.]

뭐, 그렇댄다.

의자에 앉으며, 호텔 벽면에 놓인 컴퓨터의 전원을 켰다.

"...허."

그리고 내가 공식 정부 기관이라는 사이트에 들어가서 발견한 지도는, 남극이 있어야할 자리에 휑하니 푸른색만이 칠해진 모습이었다.

­­­­­­­

청계리 미개척 구역.

우선순위가 현저히 낮기에, 현재로선 그저 나무만 무성한 곳이나 다름없는 지역이다.

물론, 오늘만 아니라면 말이다.

수백명에 달하는 해방자들과, 천명 남짓의 연구자들이 달빛이 비쳐들어오는 숲 속에서, 양 갈래로 나뉘어진 채 서로 대립하고 있었다.

도서관의 입구가 이 근처에 위치한 탓이었다.

"그래서 말했지 않았나? 우리의 영역이 아닌 것이라고."

"시작조차 해보지 않고 포기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지."

사서가 말하고, 이반이 받는다.

둘은 서로를 매섭게 노려보고 있었다.

"결국 그 엘로힘이라는 것 조차 인간의 선에서 통제하지 못하기에, 이 지경까지 와버린 것이 아닌가?"

"..."

"하다못해 책임이라도 지면 몰라, 그럴 능력도 안되는 것들이 신을 조종하네 마네, 현실을 조작하네 마네 하며 설쳐대기나 하고 있지."

사서는 과장된 몸짓으로 이반을 질책했다.

"결국 그런 것들의 이용이니, 공존따위는 불가능해. 루시가 특이한 것일 뿐이고. 애초에 루시는 본질부터가 인간이잖나?"

"인간은...언제나 나아가는 존재였다."

"나아가는 존재였지만, 언제나 선은 있었지. 엘로힘이나 신같은것은 지식적으로도, 생물학적으로도 너무나 아득한 것이야, 인간 기준으로는. 그 탐구자도 결국 자신조차 감당못할 것을 건드렸다가, 종국엔 파멸했지."

타협의 여지따윈 없었다.

인간찬가라는 본질은 같을지라도, 결국 해방자와 연구자들의 방향성은 너무나 달랐다.

­스각!

그리고,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이 숲 전체에 매립된 거대한 마법진을 발동시키려던 이반의 머리가 한순간 붕 떠버린 것이다.

­파스슷...

그러나 시체가 되어 스러졌어야할 인영은 검은 잿가루가 되어 하늘로 사라졌다.

"...역시."

사서는 예상했다는 듯 코트에 묻은 피를 살짝 털었다.

그와 동시에, 거대한 폭발이 숲 곳곳에서 일기 시작했다.

.

.

.

­툭, 투둑...

잿가루만이 흩날리는 숲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저 멀리서 사이렌과 헬기 소리가 가까워지는 것이 들려온다.

"결국 전부 미끼라는건가."

그곳에 서있는 건 해방자들과, 수십명 남짓의 연구자였다.

처음 인원 그대로였다.

하지만 사서는 이런 일이 결코 정상이 아니라는 것 쯤은 알 수 있었다.

위화감과, 감각에 의존하며 과거를 찾는다.

"대체 무슨 꼬라지냐, 이게."

죽은 자들은 더 이상 기억조차 되지 않는다는건가.

세상의 법칙이 조금씩 뒤틀린다.

눈치챌 틈도 없이 썩어들어간다.

엄밀히 말해서, 죽으면 그 존재 자체가 잊혀지는데 과연 세상이 죽어간다는 사실을 눈치챌까?

"다들 얼마나 남아있지?"

"...3백명 남짓."

"애매하네."

현재의 상황을 파악하기는 쉽지가 않았다.

난이도는 극악.

시작할 때 상대방이 몇 명이 있었는지, 아군측은 몇명이 있었는지. 그리고 누가 있었는지도 짐작으로 맞춰야 한다.

전투의 규모로 서로의 전력을 파악한다.

하지만 그 전에...

"그 빌어먹을 이반놈이랑 사냥개들은 기억하는 걸 보니, 저들은 전력조차 아니었던 모양이군."

가장 중요한 인물들은 여전히 기억난다.

조직이 돌아가는데 필요한 최소 인물정도는 여전히 머릿속에 남아있었다.

이 말인 즉슨, 아직 저들이 죽지조차 않았다는거다.

'이반은...'

분명 목이 날아간 그 순간 재가 되어 사라졌다.

엘로힘과 거래를 맺어 힘을 얻은건지, 아니면 그저 아바타일 뿐이었는진 알 수 없었다.

­애애애앵ㅡ

더 이상 생각할 틈은 없었다.

사이렌이 산 주변을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가자."

사서는 연구자들을 내버려둔 채, 해방자들을 이끌고 잿더미가 흩날리는 전장을 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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