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8화 〉 막간 노는 게 제일 좋아(1)
* * *
위치가 상당히 애매하게 됐다.
이번에도 또 해외나가서 사고치고 온 것 때문에 자유행동권 박탈당해야 하는건지, 아니면 그래도 자칫하면 더 큰 일로 번질 수 있었던 일을 사전에 막아준 것에 포상을 받아야 하는건지.
물론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면 당연히 후자가 정상이다. 남들 다 못느끼던거, 나 혼자 신격을 감지해서 쳐들어갔던건데 당연히 포상받아야 마땅하지.
하지만 쟤들 입장에선 여간 위험한 일이 아닌걸로 생각하고 있는 듯 했다.
내가 가는 곳이란 곳마다 죄다 사고터지지, 멀쩡히 돌아오는 날이 단 한번도 없었다.
지난번 미국에서도 그렇고, 이번 남부쪽에서도.
결국 저들 입장에서는 그래도 내 곁에 적어도 감시역 한명은 붙여두는 게 훨씬 합리적이라는 소리였다.
물론 성화연이나 마스같은 애들 말고, 완전히 별개의 인물로.
나로선 상당히 거부감드는 일이지만, 그래도 어쩔수 없는 일이라 하니 뭐...
여튼.
"나보고 계속 이런식으로 싸돌아다닐거면 지부장 그만 두라는데?"
계속해서 이런저런 사건에 휘말린덕에, 성화연은 직장마저 잃게 생겼다.
물론 명색이 전쟁영웅 중 한명인데, 당연히 그런 직장 하나 잃는다고 별 문제될 것도 없긴 하지만.
어차피 가만히 앉아서 멍하니 누워있어도 나라에서 돈 나오는 마당에, 성화연 얘가 지금까지 직장을 붙들고 있었다는 게 더 대단한거다.
"차라리 지부장 말고 파견부로 들어가라는데..."
"그럼 차라리 그렇게 하는 게 어때? 어차피 그 지부장 자리라고 해봤자 감옥이나 족쇄밖에 더 돼?"
"아니, 밖에 싸돌아다닐 일 없었던 과거에야 이만큼 적합한 일이 없었지, 나한텐."
결국 최근에 내가 탐구자를 조지고선 다시금 이쪽 세계로 넘어온 덕에 일어난 변화때문이었다.
내 위치 자각은 충분히 했으니 더이상 이런 일들은 없었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세계에 중대한 변화가 일어났으니까 사람들의 삶에도 변화가 있는 거겠지. 막상 너무 단조로우면 너무 재미없잖아."
"그 말도 맞긴 맞지."
고개를 끄덕였다.
히어로 협회의 건물에서 나오며 도시를 한번 둘러봤다.
역시나, 이게 9년전의 그 세상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게 변해있다.
그때는 마냥 폐허 천지에 사람들도 다들 우울한 얼굴로 다녀서 몰랐었는데.
'좋은 방향인가?'
좋은 방향이겠지.
비록 위험이 있다고는 해도 당장 자신들이 아는 위험은 없는것이니, 사람들도 전보단 한층 더 여유롭게 살 수 있는거고.
"그래서, 지부장 그만두고 파견대로 들어갈거야?"
"그래야겠지. 그 편이 너 관리하는데도 수월하고 말이야."
"관리가 뭐냐, 관리가..."
"그럼 행동을 좀 더 어른같이 해보던가. 절차 다 밟고, 혼자서 안움직이고, 무모하게 행동하는 거 그만두고."
그건 너무 빡빡한걸, 하고 중얼거리자 성화연은 웃음을 터뜨리며 내 머리를 마구 헝클어뜨렸다.
"그래서 네가 어린애라는거야. 곁에서 누가 안지켜보면 또 저 멀리서 나뒹굴고 있을걸?"
"네, 네..."
걸어가는 길에 생각했다.
'막상 성화연이 파견대로 이직당하면, 거기 이미 있던 놈들이 더 뻘쭘해질텐데.'
쉽게 설명하자면, 하루아침에 사장님이 일개 부서 하나로 내려온거나 마찬가지다.
아무리 아랫사람처럼 대하려 해도, 성화연의 지위가 지위다보니 엄청 불편하지 않을까.
지부장이 아니라 해도, 결국 전쟁영웅인건 똑같으니...
"아."
그런 의미없는 생각을 중얼거리며 발을 옮기다보니, 어느샌가 횡단보도 저 건너편에 서있는 한서우가 보이기 시작했다.
손을 높이 흔들며 알리는 걸 보니 여간 신난 게 아닌 모양이었다.
"하여간..."
역시 어른이니 아이니 해도, 결국 한번도 못겪어본 일에는 죄다 어린애라니까.
그리 생각하며 나도 손을 마주 흔들어줬다.
.
.
.
"루시 너, 놀이공원이라는 게 뭔지 알아?"
"당연히 알지, 날 바보로 보는거냐."
개별행동에, 약속된 지역을 이탈한 것 때문에 약소한 징계를 받게 되어 아무 할일도 없어졌을 때, 성화연이 나에게 물어본 말이다.
그리고 내 대답에 성화연은 살짝 놀라며 날 바라봤다.
"난 역사책에서나 보던건데, 넌 어떻게 알아?"
"...어."
"우리 살던 때엔 놀이공원은 하나도 없었잖아. 죄다 역사의 잔유물이었지."
하긴, 생각해보면 그런 빡빡한 세상속에서 놀이공원같은 사치시설이 있었을 리가 없다.
그 때 놀이공원은 아이들의 로망이었지만, 전부 현실엔 존재하지 않았던 것들.
물론 나에게도 놀이공원에 대한 환상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이미 과거에 한 번 정도는 다녀왔다보니 어느정도 감은 잡혀있었다.
"그래서 이번에 시간난 김에 한번 가보려구."
"...어른 혼자서?"
"아니? 너 데려갈건데?"
그리고 이어 나온 성화연의 말은 역시나였다.
어릴때 경험해보지 못한 게 이번에 생겨났다고 하는데, 로망이 있는 이상 가볼 수밖에 없는거지.
나야 딱히 싫어할 이유는 없었다.
아니, 오히려 두손 두발 다 들고 좋아해야할 참이었다.
티는 안냈지만 그래도...성화연은 이미 다 알아차린 것 같았다.
차에 타는 내내 내 얼굴은 생글생글하며 웃음을 떠나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놀이공원에 추억같은 게 있나...?'
내가 왜이렇게 기분좋아 하는건지, 3명이 탄 승용차 속에서 곰곰히 생각해봤다.
"음..."
지금껏 인생에서 놀이공원에 가본 적은 딱 2번이다.
처음 가본게 엄청 어릴 때, 그러니까 기억도 안날 정도로 오래전에 간거라 딱히 기억 안해도 될 거고...
어차피 이건 나도 없는 경험인 셈 치고 살고있었다.
그리고, 사실상 놀이공원을 처음가봤다고 할 만한 때는 13살때, 친구들이랑 같이 떼거지로 몰려갔던 때다.
어쩌면 그때 그 달콤한 기억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기억으로 남아있어서 지금 이렇게 흥분하고 있는 걸 수도 있겠네.
성화연은 조수석에서 가끔씩 뒤를 돌아보며 생글생글 웃고있는 날 바라볼 뿐이었다.
고속도로의 덜컹거림도 다 부드럽게만 느껴졌다.
.
.
.
"와아!"
시끄러워.
사람이 엄청 많다.
"평일이라 이정도지, 주말에는 발조차 못디딘대."
"엄청나네."
이거 기다리는 데 시간 다 쓰는건 아닌가 몰라.
거대한 성문과도 비슷한 놀이공원의 입구가 저 앞에 떡하니 자리잡아 있다.
내가 기억하던 지구의 놀이공원과는 크기부터가 차원이 다른 느낌이다.
이게 마법이 존재하는 세상의 놀이공원이라는건가?
후웅!
저 성벽 너머로는 공중을 떠다니는 거대한 놀이기구까지 보인다.
말 그대로, 아무런 선도 지탱대도 없이 그냥 떠다니는거.
"...이게 언제부터 공사 시작했던거라고?"
"5년전 재부흥운동때 시작되서, 2년전에 완공된거지."
3년만에 이런 시설을...
역시, 초상능력이라는 게 좋긴 좋아.
"그러고보니 오늘 비온다 했었는데."
"하늘은 저렇게 맑은 걸."
"어쩌면 오늘 우리가 놀이공원 오는걸 알아서, 하늘도 먹구름을 걷어내준 걸 수도 있지."
이곳에 오지 못한 마스에게 묵념했다.
마스는 이런 곳에 과연 와봤을까?
아마 없을거다. 확실해.
"애 하나랑 어른 둘이요."
헤벌레 입을 벌리며 사람들이 빽빽히 들어찬 주차장과 놀이공원의 입구를 돌아보고 있다가, 성화연이 하는 말에 화들짝 놀랐다.
"야, 잠깐...읍!"
내 반론을 사전에 차단(물리)한 성화연은 눈을 찡긋거리며 능청스럽게 웃었다.
아는놈이 더 무섭다더니.
'아니, 어린애는 맞는건가...?'
막상 따지고본다면, 지금껏 신체적으로 어른이 된 적은 단 한번도 없었으니.
이전 지구에서도 딱 17살때 넘어왔고, 여기서는 아예 몸 전체가 갈아끼워지면서 오히려 더 어려졌다.
사실상 어른이 된 적은 없는거네.
나도 은근슬쩍 납득하며 헤실 웃었다.
꺄아아악ㅡ
놀이공원에 들어오자마자 들리는 소리가 비명소리라는 것에 1차로 놀랐고, 저 하늘에서 땅으로 추락하는 거대한 공에 2차로 놀랐다.
"히이익!"
성화연이 뱉는 비명에 3차로 놀랐고.
다행히 충격을 예상했던 그 거대한 공은, 웬 네모꼴의 플랫폼같은곳에 둥 떠서 그대로 멈췄다.
투명한 거대 고무공 내부에 사람 한명정도가 들어갈 정도로 작은 고무공이 수십개 들어간 모양새였는데, 각각 사람 한명씩 그 공 안에 들어가 있었다.
그리고 방금 제자리에서 텅 멈춘 순간, 거대 고무공 내부의 공들은 이리저리 튕기며 어지럽게 무늬를 만들었다.
"저런 걸 어떻게 타냐..."
"재밌을 것 같은데?"
한서우가 한 말이었다.
과연 저게 재밌을 진 둘째 치고 말이야.
오히려 오줌이나 안지리면 다행이다.
"...해봐야지."
성화연은 놀이공원에 온 건데, 무슨 시합이라도 나가는 것 마냥 마음가짐을 한다.
여러모로 놀이공원 초보들이라 할 만 했다.
'그러고보니, 나도 초보지...'
사실상 나도 처음이니.
"일단은 만만한 것 부터!"
그리 말하며 성화연은 날 품에 확 안고선 들어올렸다.
나머지 손으로는 한서우의 손을 맞잡고, 사람들의 틈을 비집으며 길을 마구 누비기 시작했다.
꺄아아아아ㅡ
귓가로 아득하게 들려오는 비명소리를 들으며 덩달아 내 가슴도 뛰기 시작했다.
일단 과연 놀이공원이라는 게 이런 식으로 도전하는 곳인지는 모르겠지만.
뭐 어때?
놀이공원은 놀라고 만들어진 곳이고, 우리는 놀기 위해 온거니까.
가끔...이라는 게 어째 요즘은 살짝 빈도가 늘어난 것 같긴 하지만, 노는 건 언제나 좋잖아.
"...허?"
물론 성화연이 처음 타자고 한 놀이기구가 회전목마일 줄은 상상도 못했지만 말이다.
"범퍼카 같은것도 있지 않아?"
"루시 너 키 안되잖아."
"아."
놀이기구의 음악소리가 명랑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