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7화 〉 2부 에필로그 의수
* * *
아득하게 올라있는 별하늘 아래 남색빛의 풀밭 위에 선선한 바람이 흩날린다.
주변은 나무와 산도 없이 그저 탁 트인 광경 뿐이었다.
바람결에 따라 흩날리는 풀들은 광활한 들 위에 온통 기하학적인 모양을 새겨둔다.
사라락
그리고 그런 하나의 풍경 속에서 스쳐지나가는 하나의 소리가 있었다.
마치 정돈되지 않은 듯 엉망진창인 발걸음소리를 내며 황급하게 뛰어가는 소리.
가벼워 밟히는 풀조차 제대로 짓이기지 못하며 뛰어가는 하나의 인영이 있었다.
찌르르...
어디서 울어대는지도 모를 귀뚜라미의 소리가 밤하늘을 가득 메웠다.
거친 숨소리를 내며 쓰러질 듯 뛰어가는 새하얀 소녀가 있었다.
신발도 속옷도 없이 그저 하나의 커다란 흰색 티셔츠만을 걸친 위태로운 모습이었다.
문득 다수의 발걸음 소리가 지천을 메운다.
발걸음 소리는 가벼운 것이 5개, 무거운 것이 1개였다.
하나는 소녀 자신의 것, 다른 것들은 무엇인지조차 모른 채 그저 도망쳐야만 하는 것이었다.
어스름에 잠긴 듯, 그러나 잔잔히 빛나는 달과 별들은 그런 들판에 무심히 색을 입히고 있을 뿐이었다.
한 걸음, 두 걸음.
소녀의 걸음거리는 계속해서 흐뜨러진다.
숨소리는 더욱 더 거칠어지고, 공포에 질린 두 눈동자는 극심하게 요동쳐 초점조차 제대로 잡질 못한다.
앞으로 쏠려 넘어질 뻔한 상황이 점차 늘어나고, 그럴때마다 들판을 뜀박질하는 발소리는 점차 무거워졌다.
피잇ㅡ
그러다, 들판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갈라지는 대기.
하늘을 찢는 날카로운 형상이 달을 갈랐다.
퍼걱!
후두부를 부수며 왼쪽 안구를 찢고 나오는 거대한 창ㅡ과도 비슷한 화살ㅡ 에 소녀는 앞으로 고꾸라졌다.
여러갈래의 핏줄기가 소녀의 머리를 기준으로 들판위로 터져나왔다.
뒤이어 덮치는 4마리의 것ㅡ들개ㅡ들은, 작은 짐승을 다루듯 스러진 인영을 무자비하게 찢어발기기 시작했다.
묵직한 발걸음 소리가 피가 솟구치는 사냥개들의 주변으로 다가오고, 소녀는 그 소리의 주인을 올려봤다.
ㅡ.
그 얼굴을 봄과 동시에, 들개들에 의해 온몸의 내용물들이 모조리 끄집어내어진 소녀는 그대로 요절했다.
찌르르...
대칭적으로 뜯겨나간 소녀의 시체만이 남겨진 군청색의 풀밭에 귀뚜라미의 울음소리가 가득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소녀의 주위로 터져나간 대량의 피와 내장들은 마치 초현실주의적 작품처럼 보이기도 했다.
탁해진 눈빛으로 마지막 달빛을 눈에 담았다.
노을은 여명이 아니라 황혼이었고, 달은 저 높이 떠오르고 있었다.
그녀는ㅡ나는.
그럼에도 울지 않았다.
경련이 사라져가는 소녀의 모습을 잠시간 바라보던 묵직한 발걸음은, 소녀의 왼쪽 안구를 관통해 뚫고나와있던 거대한 창을 뽑고선 품에 넣은 채 그 자리를 떴다.
한동안 그 자리에는 뿜어지는 핏줄기의 소리와 울어대는 귀뚜라미의 소리만이 메우고 있었다.
"루시."
"...왜."
"표정이 왜그래?"
성화연이 병원식을 오물대는 내 얼굴을 걱정스레 바라보며 말했다.
그 모습을 바라본 나는 졸린눈을 비비적대며 중얼거렸다.
"그냥... 잠자리가 좀 사나워서 말이지."
"왜? 악몽이라도 꿔?"
"몰라, 기억이 안 나..."
어쨌든 자고 일어난 뒤엔 항상 기분이 더러워졌던 건 사실이니까.
마치 시체와 동침한 듯한 더러운 기분만 들었다.
"뭐, 신경 쓰지 마. 그냥 다 꿈인데 뭘."
그리 말하며 주변을 둘러보자, 성화연과 나 단 둘뿐인 병실이 눈에 들어온다.
마스는 또 사진찍는다며 여기저기 싸돌아다니고 있을게 뻔했고, 한서우 얘는...어디 갔는지 모르겠네 또.
나도 모르는 바쁜일이 있다고 하면 어쩔 수 없겠지만.
병원식을 오물거리던 날 턱을 궤고 바라보던 성화연은 곧 두손으로 책상을 탁 치며 벌떡 일어난다.
"?!"
놀라며 바라보자 성화연은 내 양 어깨를 꽉 잡았다.
"루시, 의수 맞추러 가자."
"네?"
개뜬금없네. 갑자기 웬 의수?
그런 거 없어도 지금까지 편하게 잘 살고 있었는데 말이야.
"루시 네가 편하다고 다른 사람들도 편할거라 생각하면 안되는거야."
"아니, 내가 팔 없는 게 다른사람들도 불편한 일이야?"
"물리적으로는 몰라도 심적으론 엄청 그래. 역지사지로 생각해봐."
성화연의 말에 오물거리던 걸 멈추고선 잠시간 천장을 바라보며 골똘히 생각했다.
"...역시 딱히 남들이 불편하게 여길 일은 없는 것 같은데?"
"넌 예전부터 눈치가 없었어."
그리 말하며 성화연은 내 밥그릇을 확 빼앗아갔다.
"야!"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야지, 루시! 까놓고 말해서, 기껏해야 초중딩 될법한 꼬맹이가 팔도 없이 다니는 꼴을 보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겠어?"
"신경 안써도 되잖아!"
"어린애가 팔 하나 없는거랑 어른이 팔 하나 없는거랑은 마음이 콕콕 찔리는 강도가 다르다고, 강도가."
강도는 개뿔. 정작 강도는 자기면서.
성화연의 손에 들린 그릇을 뺴앗으려 몸을 일으키려다 그만 머리부터 병상 아래로 쾅 쳐박혀버렸다.
"헤극..."
"루시! 괜찮....아, 아니. 아니지. 그, 어차피 다 나으니까..."
성화연은 살짝 죄책감에 절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걸로도 고집을 안 꺾는다는 건가.
쿠당탕!
그러다, 병상 위에 걸쳐진 나머지 하반신마저 거꾸로 뒤집히며 완전히 땅으로 고꾸라졌다.
"...아."
"미안..."
시야 위로 보이는 성화연이 쪼그라들며 중얼댔다.
한대 쳐주고 싶은데 몸이 움직이질 않네.
"올려줘."
"네."
성화연은 순순히 팔을 뻗어 날 병상 위로 올려줬다.
.
.
.
"의수 맞추기 싫은 이유를 말해봐봐. 그냥이나 아무 이유 없음 빼고."
"윽."
저 이유 빼면 막상 다른 이유를 댈 수가 없는데.
잠시 손가락을 꼼지락대며 고민하던 나는 입을 열었다.
"...의수 맞춰도 금방 부서질 수 있잖아."
"그게 무슨 말이야?"
"그러니까, 내가 워낙 그렇고 그런 상황에 많이 빠지잖아? 그러니까 자칫하면 비싸게 사서 맞춘 의수도 완전히 박살나서 다시 또 비싼 돈 주고 사야할 수도 있다는 거지. 예를 들면, 상대방이 내 사지를 절단시킨다거나, 아니면 온몸을 모조리 분해해버린다거나..."
"그만."
성화연은 내 말을 듣다말곤 손을 뻗어 내 입을 가로막았다.
한 손으론 마른세수를 하는게 여간 불편한 게 아닌 모양이다.
"...왜 그렇게 끔찍한 말만 하는거야."
"아니, 이건 그런 게 아니라 팩트..."
"그런 상황이 일어나지 않게 하면 되잖아!"
소리치는 소리가 커서 눈을 질끈 감았다.
결국 반론은 불가능했다.
"자신이 죽는 걸 당연하게 여기지 마, 루시. 남들 입장도 좀 생각하라고."
"넹..."
여튼, 종국에는 강력한 요구를 버티지 못하고 마침내 의수를 맞추기로 결정해버렸다.
다만 이 근처에는 제대로된 병원도, 뭣도 없으니 그냥 오늘만 쉬자고 성화연을 설득하던 참이었다.
"제대로 된 설비가 없기는 왜 없어? 아마추어나, 그냥 고철덩이 수준이긴 해도 의수 맞춰줄 수 있는 곳이 얼마나 많은데."
"아...그래요?"
"게다가 루시 너도 그렇게 말했잖아. 언제 박살날 지 모르는 거 왜맞추냐고. 네 논리대로면 비싼돈 주고 마스 같은 안드로이드 수준의 의수는 맞출 필요 없는거 아냐?"
하긴, 그건 또 그렇네.
마스가 지금 쓰고있는 의수는 실제 인간팔이랑 구분도 안 될 정도로 정교한 수준이니, 그정도는 너무 비쌀지도 모른다.
그렇담 굳이 그정도 수준으로 맞출 필요는 없다는건데, 그 이하 수준의 의수야 이런 곳에서도 충분히 맞출 수 있고.
어느새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이던 나였다.
*
딸랑~
음침한 도시를 가로질러 걸어오니 낡아빠진 공방 하나가 보였다.
공방이라기엔 옆에 병원도 딸려있어서 믿을만 했지만.
공방 내부로 들어오니 대로변을 향해 나있는 통유리창이 내부를 환히 밝혀주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성화연이 앞에서 주인할아버지와 얘기하고있는 동안 공방 내부를 오고가는 몇명의 직원들을 유심히 바라봤다.
'다들 여기 원래 살던 사람들같네.'
인종도 전부 그쪽 계열이고.
통유리 너머로 보이는 도시의 모습은 굉장히 우중충하다.
높이 솟아있는 아파트들은 색없이 회색으로만 물들어있고, 차도를 지나다니는 자동차들은 태반이 군용차량들 뿐이었다.
횡단보도를 감독하는 건 군인에, 순찰중인 경찰들은 히어로였다.
'여기서 살 수 있는거였어?'
막상 나처럼 히어로 협회나 높으신 분들과 접점이 없는 사람들이라면 먹고살기도 굉장히 빡셀 것 같은데.
다시금 고개를 돌려 꽤나 좁은 공방 내부를 바라본다.
딸랑거리며 병원으로 통하는 문으로 계속해서 직원들이 오간다.
'저 사람들도 그나마 재능이 있으니까 이런 곳에서 일하는 거겠지.'
만약 재능마저 없었으면?
어우, 상상도 하기 싫다.
의지할 곳 없이 혼자 떠돌아다니는 신세라니.
'뭔가 익숙하긴 한데...'
뭐, 어차피 전부 과거의 일이니 무시하자.
"루시!"
멍하니 상념을 이어가고 있으려니 저 앞에서 성화연이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머리를 털며 생각을 정리하고선 의자에서 내려 카운터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
.
.
"이...이게 의수요."
"그렇지. 어떤가? 딱 맞지 않은가?"
할아버지가 생글생글 웃으며 하는 말에 나도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으...뭔가 굉장히 얇은 것 같긴 한데..."
"에이, 그게 다 평균이야. 평균. 그것보다 더 두꺼우면 오히려 무거워서 균형조차 제대로 안맞고, 적응하기조차 힘들어."
뭐, 말을 들어보니 마냥 틀린말은 아니었다.
그래도 델리지아한테 달려있던 그 괴물같던 의수와 비교하면 초라해보이는 건 사실이다.
물론 내 체구를 보면 이정도 의수가 맞는 걸 수도 있겠지만.
"얼마에요?"
"아, 그래. 계산..."
성화연은 벌써부터 계산이나 하고 앉았다.
난 조심스럽게 왼팔에 달린, 감각조차 느껴지지 않는 의수를 쥐락펴락 해봤다.
기잉, 기잉.
분명 움직이는 건 원래 내 손인 듯 재빠르게 움직이긴 하는데, 소리가 살짝 소란스럽네.
생긴것도 기계식이라 완전히 눈에 띄기도 하고.
'불평만 해봤자 뭔 소용이겠어.'
외팔이일 때보단 훨씬 좋은 건 사실인걸.
한참동안 팔을 휘둘러보던 난 이내 살짝 웃으며 내 나름대로 만족했다.
"감사합니다!"
"그래, 나중에 또 오지 말고!"
저건 또 뭔소리야.
할아버지를 돌아봤지만 여전히 아까와 같은 표정이었다.
'더 다치지 말라는건가.'
뭐, 그런 말이겠지.
딸랑거리며 바깥의 퀴퀴한 공기가 목을 향해 들어왔다.
난 손을 흔들며 뒷편의 공방을 향해 인사할 뿐이었다.
부웅거리며 자동차 지나다니는 소리가 귓가를 메우고, 공방의 조용한 세상 밖으로 나왔다.
"끄응...!"
힘들었다.
왼팔에 자꾸 뭘 주렁주렁 연결해대는데, 마취를 했다곤 해도 소리때문에 눈이 마구 떨렸다.
여차하면 재생능력 때문에 팔에 박힌 쪽을 끊임없이 자극해서 오작동을 일으킬 수도 있었고, 재생했다 사라지며 고통을 유발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다행히 그러진 않는 것 같네.
팔을 붕붕 돌리며 다시금 왼팔에 달린 구리색의 의수에 적응했다.
"루시, 어디 가고싶은 곳 있어?"
"...그런 곳은 딱히 없는 것 같네."
성화연이 옆에서 걸어오는 말에 그리 말했다.
"근데 굳이 들러야할 곳은 있지."
"거기가 어딘데?"
"어차피 여기선 못 가는 곳이니까 일단은 집이나 가자구. 그곳으로 향하는 통로가 여기 있다고 해도, 어차피 우리는 모르니까."
대체 뭔 짓을 했다고 몸이 이렇게 피곤한건지 모르겠다.
분명 명목상으로는 조사였는데, 어느새 전쟁이 되버렸네.
늘어지게 하품하며 한산한 길거리를 조용히 누볐다.
그로부터 우리가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된 건, 이틀 정도 지난 후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