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4화 〉 2부 43. 본질
* * *
사실 인간의 감각이란 게 그렇게 대단한 건 아니다.
누군가의 시선을 느낀다?
이런 판타지같은 세상이 아니면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위기를 감지하거나, 소울메이트를 알아채는 등의 것 또한 그저 판타지의 일환일 뿐이다.
그리고 난 인간이지.
비록 한때는 아니었다고 해도, 지금으로선 완벽한 인간이나 다름없다.
'...늙지도 죽지도 않는 게 인간이라면야...'
뭐, 암튼 이건 그냥 체질이라고 치자.
애초에 마력이 존재하는 세상인데 이런 게 딱히 이상할 이유는 없잖아?
어쨌든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만약 정말로 인간의 감각이 그런 곳까지 확장되면 과연 어떻게 느껴질까, 이다.
소울메이트를 찾았을 때의 감각 비슷한 것 말이다.
그리고 그 감각은 내가 상상한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냥 깊은 곳에서부터 서로 연결되어 있는 느낌이다.
눈앞에 있는 저 파편과.
저 괴물과 내가 소울메이트라고?
개소리다.
연결되어 있는 이유는 그냥 저것과 내 근원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학자 이새끼는 신격얻고 하고 다니는 일이 이런거라니...'
제 3자에게 신격을 주입하고 있었다.
과연 목적이 뭔진 모르겠지만 이렇게 막무가내로 신격이 존재하는 것들을 늘려나갔다간 뭔 일이 벌어질 지도 모르는데.
'...무슨일이 벌어질 지 알아내는 게 목적인가?'
어쩌면 그런걸 수도 있겠네.
"너는...나와 같다."
안타깝게도 저 괴물은 신격이라는 근원을 구분할 수가 없는 모양인지, 그냥 근원만 같다고 나와 자신을 동일시하고 있었다.
그 덕에 선공은 안한다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인건가.
'그러고보면, 방금 공격도 전부 마스에게로 향했지.'
피곤하게 말이야.
고개를 훌훌 털어 잡념을 정리하고선 손 안에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마스는 나올 필요 없어.
어차피 나와봤자 지금 마스의 상태로는 저 녀석이 흘려보내는 마법마저 감당하기 힘들거다.
마스도 그걸 아는지 그냥 빼꼼 고개만 내밀고 조용히 날 바라보고 있었다.
폰 켜는게 어째 살짝 불안하긴 한데...뭐, 괜찮겠지.
여차하면 성화연한테 또 뒤지게 혼날 수는 있겠지만, 잘만 해결하면 된다.
콰직ㅡ
그리고 기습적으로 발동된 내 마법에, 저 괴물은 반응조차 못하며 그대로 터져나간 벽의 파편에 깔렸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곧바로 파편더미에선 빛이 터져나오며 온갖 곳으로 터져나갔다.
"...죽이면 그냥 죽으려나."
다리를 굽히며 그리 뇌까렸다.
신격과 연결된 놈이니...오히려 역으로 관광당할지도 모르겠다.
조심해야겠네.
츠즈즛
좁기만 하던 복도에 무수한 마법진이 새겨진다.
상대도 처음엔 내 신격때문에 아군 혹은 동류라 착각하고 있었던 듯 하지만, 이내 상황파악을 마친 듯 고고히 신격으로 복도를 에워싸기 시작했다.
그 시각, 루그렘 조사단 캠프.
성화연은 수없이 걸려오는 전화에 일을 멈추고선 텐트 바깥으로 빠져나올 수밖에 없었다.
"루시 얘는 또 어디간거야..."
휴대폰을 꺼내며 캠프 바깥을 둘러봤지만 루시는 또 어딜갔는지 보이지조차 않는다.
꼭 이렇게 사라지면 뭔 일을 몰고오던데.
불안감을 누르며 성화연은 발신자의 이름을 확인했다.
"...마스?"
마스가 왜 전화를 거는거지?
마스가 취재중인 곳이 캠프 바깥이라고는 해도, 평화유지군들 드글드글 하니 위험한 일 같은 건 딱히 없을텐데?
"여보세요?"
콰아아앙ㅡ!
그리고 전화를 받은 그 순간 폰 너머에서 들려오는 거대한 폭음소리에 눈을 찌푸렸다.
"야, 너 어디야."
"아니, 성화연. 그게..."
"또 어디서 뭔 짓을 하고 다니는거야!"
성화연의 외침에, 마스는 자신의 잘못을 안다는 듯 어색하게 웃으며 모든것을 이실직고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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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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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루시 말만 믿고 태워줬는데."
"거기가 SOP 제 3기지라는 말이지."
"하아..."
Society of Phenomenon.
통칭 SOP.
현상의 사회라니...대체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래도 이것 하나만은 확실하다.
국제연합 산하의 기관중에서도 가장 극비리에 감춰져 절대 대중바깥으로 드러나지 않는 곳.
분명 국제연합 산하의 기관이나, 사실상 협력관계인 별개의 기관이라 봐도 되는 곳이다.
그 기원도 알 수 없고, 언제부터 생겨나있었는지도 알 수 없었지만 그 단체가 하는 일 하나만큼은 인류사에 있어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지금까지 맡아온 일만 해도, 어비스 연구며, 마수와 마력 관련 실험들. 블랙 드림 마약 관련 연구다.
하나같이 꽤나 묵직묵직한 일들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최근에 맡은 일은 바로 봉인된 엘로힘 '예술가'의 격리.
그것이 보관된 기지가 3Lab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루시가 아무런 단서도 없이 여길 찾아갔다고?
"당장 나와."
"못나가."
"아, 그래. 소리 들어보니 그건 알 것 같네."
마스의 말에는 항상 거대한 폭음이 섞여들려온다.
이따금씩 누가 소리치는지도 모를 고함소리도 들려오고.
틀림없이 루시가 그 예술가라는 놈과 한판 뜨고있는 거겠지.
마스의 말을 들어보면 3기지도 아예 군인들 다죽고 개판됐다고 하던데.
'딱봐도 예술가 격리 실패지.'
그냥 그렇게 개판이 난 것 같다.
엘로힘으로 실험한다느니 뭐니 설칠때부터 말렸어야 했는데 말이야.
한숨을 푹 쉬며 다시금 폰 너머의 소리에 집중했다.
"마스, 네가 보기엔 어때. 루시가 이길 것 같아?"
"그걸 지금 모르니까 이렇게 전화한건데요."
"후우..."
일단 마음좀 식히고 머리로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루시가 그곳을 발견한건지, 대체 어떻게 제 3기지가 초토화 됐다는 걸 알고 가버린건지.
'루시에게 엘로힘을 감지하는 능력이 있었나...?'
고개를 저었다.
애초에 루시는 공명계열 초상능력자도 아니라 마력조차 감지 못하는 앤데.
루시가 현재로서 감지할 수 있는 것은...
"신격..."
오로지, 신격뿐이다.
자신의 근원으로부터 범람하는 힘.
일전의 '학자'관련 사태 때 말해준 내용이었다.
'예술가에게서 신격이...?'
현재로서 신격을 가진 것은 단 둘일텐데.
루시와, 학자.
'그렇다면...'
루시는 현재로서 신격을 사용할 수 없다.
범인은 '학자'다.
모종의 이유로 예술가의 봉인을 풀었거나, 아니면 완전히 다른 무언가를 만들어냈을 수도 있지.
뭐가 됐든 마스와 루시가 있는 곳이 굉장히 위험한 곳이라는 것, 그것 하나만큼은 확실했다.
"진짜 어떻게 된 게 항상...!"
루시가 사라지고 나면 꼭 엘로힘이나 신같은 것을 뒤에 달고 돌아온다.
위험한 것도 위험한 거지만, 그 위험한 것 속에 있는 루시가 더 걱정됐다.
"바로 갈게!"
비록 조사단이긴 하지만, 이런 사태가 일어난 후엔 어쩔 수 없이 움직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어째서 아직까지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말이다.
성화연은 전화를 끊고선 곧바로 중앙지휘부가 자리잡은 텐트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신격이 없는 지금으로선 신격을 가진 대상을 상대하기 힘들다.
물론 넘쳐나는 마력으로 대응할 순 있지만 말이다.
어차피 신격은 마력통이 뒷받침 되어야 운용 가능한 힘이니 당연한 거기도 하다.
마력이 없으면 신격이 있어봤자 무용지물일 거라는 거지.
그리고, 상대방의 마력은 나보다 현저히 적었다.
당연한거다. 애초에 탐구자가 내 몸을 마수로 갈아끼웠던 이유가 다 마력통 키우게 하려고 그랬던건데.
현재의 난 엘로힘을 포함해서도 마력이 너무나도 많다는 것이다.
아마 전 우주에서 마력이 제일 많지 않을까?
뭐, 아무튼.
그 덕에 신격을 사용하는 눈앞의 상대와도 어찌저찌 비벼볼 수는 있었다.
신격 vs 마력인데, 서로 비등비등하다?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거다.
상대가 신격을 활용하는 방식은 아직 초보적인 수준이었다.
움직임을 보조하거나, 기존에 있던 마법진을 더욱 강화하는 정도.
그럼에도 시시각각 신격을 활용하는 방식이 더욱 다채로워지고 발전한다.
쿠과광!!
벽과 유리마저 다 부숴져 거의 광장에서나 싸우는거나 다름없던 그 때, 두개의 마법이 맞부딪치며 광대한 폭발을 만들어냈다.
순식간에 한 층계를 다 먹고 들어가는 화염.
천장이 부풀어오르는가 싶더니, 곧 미칠듯한 폭음과 함께 온갖 콘크리트와 세라믹들이 팽창하며 터져나갔다.
"아윽, 으..."
마스는 괜찮을지 모르겠다.
싸우면서 계속 천장이 박살나다보니 어느샌가 윗층으로 올라와 있긴 했었는데, 아랫층까지 전투의 여파가 가지 않았으리란 법은 없다.
파악!
뿌연 연기 사이로 거대한 광창 하나가 쇄도했다.
피하긴 했지만 그래도 광창이 지나간 자리에서 터져나오는 엄청난 폭발은 도저히 막을 도리가 없었다.
'개아프네, 진짜...'
치명상 정도의 상처는 없지만, 화상이나 찰과상이 너무나 많다.
저 녀석의 공격 대부분이 폭발과 열에 관련된 것이기 때문이다.
흑색의 먼지가 모두 가라앉자 보이는 것은, 폐허 위의 새파란 하늘.
기어코 지하를 뚫고 시설 전체를 파괴해버린 거다.
'하하...'
돌겠네.
아마 방금의 폭발을 밖에서 봤다면, 웬 거대한 광선이 땅을 뚫고 하늘로 치솟는 걸로 보이지 않았을까.
투둑거리며 잔해 떨어지는 소리만 들리던 그 광대한 폐허 너머에서 다시금 그 괴물의 인영이 드러났다.
타오르는 불길에 가려져 실루엣만 보이는 상황이었다.
'엘로힘은 내 공격으로는 끄떡조차 하지 않아.'
원래부터 그랬다.
코어와 결합해 신격과 연결된 것이 아닌 이상, 나로써 엘로힘에게 상처를 주는 것은 불가능하다.
저게 파편이다보니, 그래도 조금씩은 상처입는거지.
그래봤자 얼마 안지나서 전부 재생하지만 말이야.
'한서우...'
결국 엘로힘, 또는 그와 비슷한 것에 대항할 수 있는건 내가 알기로는 한서우가 유일했다.
나도 현재 인간이다보니, 이 세상에 신은 없다고 봐야겠지.
지금으로선 엘로힘이 생태계 최강자구나.
그 최강자를 죽일 수 있는게 한서우라는 거고.
"하아..."
해야지, 뭘 어쩌겠어.
마냥 한서우 도움만 바랄수도 없는 노릇이고.
다시금 자세를 다잡았다.
"...?"
문득 느껴진 시선에 주변을 황급히 둘러보기도 했지만, 아무도 보이질 않는다.
일단 저 쥐새끼는 나중에 알아보고.
지금은 저 괴물이 더 중요하니까.
콰아앙ㅡ!
광야를 물들이는 엄청난 수의 마법진과 함께 무수한 마력과 신격이 격돌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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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아앙ㅡ!
한창 온갖 폭음과 마법이 오가며 개판을 만들어내고있던 그 때, 저 아래에서 굉장한 폭발이 일어났다.
푸른색의 거대한 폭발.
놀라며 뒤를 돌아봤지만 그저 먼지 투둑거리는 소리만 일어날 뿐이었다.
"...마스?"
저 아래쪽에는 분명 마스가 있었을텐데, 대체 뭔 일이야.
쿠득!
"아, 쫌!"
미친듯이 휘몰아치는 공격에 제대로 생각할 틈은 없었다.
아까부터 느껴지던 시선도 꽤나 이상하고 말이야.
"...?"
착각인가?
문득 눈앞에 있는 괴물에게서 표정이 드러난 것 같다.
줄곧 시체마냥 멍한 표정만 짓고있던 녀석이.
혹시 저 폭발로 인해서 뭔가 심경의 변화라도 생긴걸까.
잘 모르겠네. 어지러워.
한번, 두번.
공방이 오간다.
순간순간마다 피가 흩날리고, 땅이 비산했다.
시야가 수축됐다가, 확장되고.
하늘은 파랬다.
다만...어딘가 모를 위화감이 느껴진다는 게, 착각만은 아니겠지.
그러고보면 이렇게 정식 기지 하나가 통째로 뭉개졌는데 내가 올 때까지 아무도 안 온 것도 이상하네.
'예술가'.
학자인가?
덮어 씌우는건가, 아니면 그냥 처음부터 없던 일로 만들어버리는건가.
혼란에 빠졌다.
콰득
그리고 그 순간, 온갖 곳에서 기이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콰직, 콰직.
쿠웅ㅡ
둔탁하게 무언가를 부숴대는 소리가.
저 괴물도 그 기이한 소리에 한순간 움직임을 멈췄다.
쿠구궁ㅡ!
그리고, 울리던 하늘은 마침내 산산히 깨져나갔다.
하늘...이라고 불러야 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 인식저해마법, 혹은 약소한 현실개변이 첨가된 결계와 비슷한 것일거다.
카각.
추락하는 한줄기 섬광.
충격파가 퍼져나간다.
"윽..."
그 충격에 눈을 질끈 감으며 팔로 얼굴을 가렸다.
"...어."
그리고, 마침내 눈을 뜬 내 눈앞에 보이던 것.
곤죽마냥 널부러져있던 하나의 덩어리와, 그 위의 사람.
"한서우?"
한서우가 날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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