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3화 〉 2부 42. 임상실험
* * *
지직, 직.
노이즈가 울리는 감시화면의 너머로 하나의 인물이 보인다.
과연 저걸 인간이라 정의할 수 있을 진 미지수지만.
끄르륵...
누구에게서 나오는지도 모를 소리가 새하얀 방 안을 가득 메웠다.
저 방 안에 있는 것의 몸에서 울리는 소리는 아니었다.
그냥, 공간 전체에 울려퍼지는 하나의 음파일 뿐이었다.
공기 자체가 진동하고 있었다.
기묘한 일이지만 여기 있는 누구도 저 현상에 대해 의문을 품진 않았다.
그도 그럴게, 상대는 봉인된 상태의 엘로힘에서 떼어낸 일부분이니.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탓이었다.
"참...이런 짓을 한 게 용감하다고 봐야할 지, 무모하다고 봐야할 지..."
모니터링실에 있는 군인 하나가 커피를 홀짝이며 그리 중얼거렸다.
마침 화면 너머로는 누군가 방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딸깍, 딸깍.
여느때와 같이 중무장한 모습으로 수십명이 들어가 철저하게 대비하는 모습.
그래봤자 저 중앙에 멍하니 앉아있는 인간 비스무리한 것은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기괴하군.'
그나저나, 저것의 모습은 보면 볼수록 불쾌하다.
한순간은 어린 소녀의 모습이었다가, 그 다음순간은 폭삭 늙어버린 노인. 그리고 그 다음순간엔 건장한 성인 남성으로 변모한다.
시시각각 전혀 다른 인물들의 모습으로 변화한다.
아무리 봐도 정주긴 힘든 모양새였다.
뭐, 그래봤자 어차피 인간도 아닌 것. 그저 인간이라는 종의 껍데기를 뒤집어 쓴 엘로힘, '예술가'에 불과하다.
애초에 정 줄 리가 없다는 뜻이었다.
그는 눈을 감으며 의자뒤로 허리를 쭉 폈다.
위험한 것도 없고, 긴급사태도 일어날 리 없으니 이만큼 꿀보직이 어딨겠어?
안타깝게도 해당 시설에는 신격을 감지할 수 있는 장치가 없다는 것이 문제점이었다면 문제점이었겠지만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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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륵...
얼마나 흘렀는지도 모를 시간의, 연구소 내부마저 적막한 새벽이었다.
새벽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눈이 멀 만큼 환한 빛이 비추고 있는 방 안으로 무색무취의 가스와도 비슷한 것이 스며들어왔다.
엄밀히 말해선, 가스가 아니라 그저 공간이 거품마냥 변모하고 있는 것.
우리 우주의 생물로선 죽었다 깨어나도 감지못하는 그런 부류의 것이다.
학자는 조용히 '손'을 뻗었다.
저 앞에 앉아 인형마냥 아무런 자아도 없이 꿈틀대는 것을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신격과 접촉한 그 파편은 변질되기 시작한다.
'영혼'이 생겨났다.
자아가 생겨났다.
보다 상위차원의 것과 일순 스친 것 만으로도 본질부터가 뒤틀리기 시작했다.
봉인되어 있던 엘로힘의 파편에서, 완전히 다른 개체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파슷.
벽면의 타일 하나가 깨지며 튀어올랐다.
어느샌가 사라진 학자를 뒤로 시설의 조명이 태동하듯 깜빡거리기 시작했다.
티하나 없는 복도를 밟으며 뽀득거리는 소리가 복도 전체로 울려퍼진다.
전력은 돌아왔음에도 이따금씩 깜빡거리는 복도 위의 새하얀 LED등은 안그래도 무서운 분위기를 더 음산하게 만들어버렸다.
'방금 그런 걸 보고 왔는데 안 무서울 리가...'
루시는 안 무서운 것 같다.
막무가내로 복도 근처의 문이란 문은 죄다 열어보고, 그때마다 코만 움켜잡으며 다시 문을 쾅 닫는다.
썩어가는 시체를 보고서도 고작 저런 반응이다. 기껏해야 초중딩은 될법한 꼬맹이가.
"계속 지하로 내려가는거야?"
"길이 그렇게 인도하고 있는데 뭘 어떡해. 보통 이런 시설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가장 낮은 곳, 가장 깊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법이야."
사실 어떤게 중요한 정보인지도 모르니 그냥 무작정 길만 따라가는 것에 불과하지만 말 하나는 번드르르 하다.
표정만 구기며 가방을 다시금 들춰맸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야, 야. 이제 좀 돌아가면 안되냐? 나 이제 초상능력도 제대로 못 써!"
"여차 하면 아예 의수 태워버려서라도 날뛰면 되는거지, 뭐가 그리 걱정이야."
이젠 아예 그냥 숨길 기색도 안하는 것 같다.
복도 전체에 피가 튀어있다.
닦아낸 흔적도 없는 걸 봐선 여기선 그냥 대놓고 죽이고 다닌 것 같다.
그 말의 뜻은, 이 시설에 주둔하던 수백, 수천의 병력을 혼자서 상대 가능할 정도로 엄청난 강자라는 뜻이겠지.
루시는 과연 그 사실을 알까 모르겠다.
끼긱.
그러다 루시의 부츠가 땅에 끌리며 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갑자기 또 뭐..."
"마스, 숙여!"
순식간에 자리를 박차 내 앞으로 이동한 루시가 뒤통수를 콱, 하며 찍어눌렀다.
'???!'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뭐라 반응조차 못했다.
"게흑!"
푸컥!
정신도 차리기 전에 뒷통수 위에서 들려오는 얇은 단말마.
그와 동시에 고깃덩어리 터져나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씹.'
몸 전체에 따뜻한 물 비슷한 것이 확 쏟아진다.
코를 찌르는 피비린내에 조심스럽게 옆을 돌아봤다.
"콜록, 콜록..."
분명 머리가 터져나갔을 루시가 멀쩡히 눈물만 찔끔거리며 토하고 있었다.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날 발견한 루시가 등짝을 뻑 때리며 소리쳤다.
"상황 파악했으면 움직여, 멍청아! 멀뚱히 서있지만 말고!"
"아니...너 괜찮냐?"
"그럴리가. 엄청 아파."
루시가 눈물을 닦으며 내 손목을 확 낚아챘다.
핏
순간 아슬아슬하게 빗겨지나가는 하나의 광선.
쿠구구궁ㅡ!
몇 초 뒤, 광선이 지나간 자리에서 시퍼런 화염과 함께 엄청난 규모의 폭발이 터져나왔다.
곧바로 우리는 자리를 박차며 복도 끝으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미치겠네, 진짜!"
콰앙ㅡ!
루시의 손에서 생성된 마법진에 복도 전체가 화염에 휩싸인다.
시설 전체가 굉음을 내며 흔들리기 시작했다.
"윽..."
옆과 뒤에서 느껴지는 엄청난 울림에 눈을 찌푸리며 허리를 숙였다.
그럼에도 느껴지는 열기와 진동은 어쩔 수 없는거지만.
빠져나갈 출구 없이, 계속해서 쫓기듯 시설의 지하를 향해 뛰어갔다.
.
.
.
"하아...하아..."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루시가 헐떡이며 벽에 기대어 쓰러지듯 앉았다.
나도 몸이 정상이 아니었기에 잠시간 찾아온 이 휴식이라도 맛보고자 맞은편에 걸터앉았다.
"...저게 대체 뭐냐."
일단 소음도 어느정도 잦아들고, 마음도 차츰 가라앉자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내가 이따금씩 뒤를 돌아봤을 떄 보이던 건 타오르는 불길을 배경으로 서있던 하나의 인영.
그림자때문에 실루엣만 보여서 정확한 생김새는 알 수 없었지만, 이것 하나만은 확실했다.
시시각각 형태가 변한다. 적어도 정상적인 인간은 절대로 아닐거라는 소리다.
꿈이라도 꾸는건가.
"딱봐도 엘로힘이겠지."
"그러냐."
찢겨나간 상처를 붙들며 잠시간 고민하던 루시는 곧 입을 열었다.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있는 엘로힘은 모두 3개체야. 맞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 중 탐구자는 이미 소멸했고, 학자는 우리의 통제조차 벗어난 채 마음대로 돌아다니고 있어. 심지어 이젠 신격까지 얻어서 원하는 대로 어떻게 하지조차 못하는 상태고. 그럼 남은 엘로힘은 딱 하나잖아. 예술가."
"아, 성화연이 말했던 그..."
루시가 맞다고 말하며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밖에선 그 어떤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 중. 적막한 바람소리만이 음산하게 불고있을 뿐이었다.
"여기 있던 놈들이 그걸로 뭘 하려 했는진 모르겠는데, 적어도 관리 하나 잘못해서 좆된건 확실하네"
"대체 엘로힘으로 지들끼리 뭘 하려고 했길래...아니 그보다 이놈들은 대재앙 사태로 배운 게 없는건가?"
"한서우가 한번 확실하게 처리했다 보니까 지들도 근자감 생겼나보지. 원래 인간이 자기가 한 일이 아니더라도 쓸데없이 소속감 느끼면서 지들이 한 일 마냥 느끼잖아."
어이없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본인의 힘조차 압도적으로 벗어난 것을 다룰 땐 한순간의 방심과 실수가 파멸로 이끈다는 것을 저들도 알고 있었을텐데.
"...근데, 내가 보기에 얘들이 관리를 이상하게 한 것 같진 않아."
"응?"
루시가 뱉은 뜬금없는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루시는 여전히 문 바깥으로 고개만 조금 빼밀어놓고선 두리번거리고 있는 중이다.
"물론 엘로힘 그거, 바로 처리 안하고 실험이니 뭐니 설쳤던 게 문제긴 하지. 그래도 흩어져있는 장비나 인원들 보면 얘들이 절대 소흘하게 경계를 했을 것 같지는 않거든?"
"하고싶은 말은?"
"누군가 개입했어. 내부자던, 아니면 막강한 외부자던."
고작 저런 증거들가지고 저렇게까지 가다니.
너무 논리비약 아닌가 싶었지만 루시의 표정을 보고선그냥 논쟁 자체를 포기했다.
뭐, 이쪽 분야에서라면 루시만큼 전문가는 없을테니...그냥 받아들이자.
뚜벅,뚜벅.
대략 10분정도 지났을까.
적막하기만 하던 복도에서 조용하게 구둣발 울리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숨을 삼키며 조심스럽게 의수쪽을 땅바닥으로 콩콩 두드렸다.
화륵
푸른색의 불꽃이 미세하게나마 뿜어져나오는 모습.
그래도 마냥 짐만 될 것 같지는 않네.
끼익...
"...루시?"
그렇게 일어나려던 그 때, 루시가 갑작스럽게 독단적으로 문을 열며 복도 바깥으로 나갔다.
저게 갑자기 뭔 짓인지 혼란스러워 하고있던 그 때, 놀랍게도 복도쪽에서 생전 처음 들어보는 이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너는...나와 같다."
깊은 곳에서 울리는 듯 지직거리는 목소리였다.
문틈 너머로 보이는 루시의 표정은 더할나위없이 어이없어하는 표정이었다.
"...이새끼가 본능만 믿다보니 분간조차 못하는 모양이네."
그리 말하며 루시는 벽 하나를 통째로 깨부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