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0화 〉 2부 39. 괴담
* * *
"...이 보고가 사실입니까?"
히어로 협회의 협회장은, 직속으로 올라온 보고서를 받고선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네, 그렇다는군요. 지난번 제 3광장 폭발사건이 별개의 엘로힘과 연관된 사건이라고 합니다."
"이건...도저히..."
그리고, 그건 상상 이상으로 충격적인 정보였다.
3번째 엘로힘이라니.
엘로힘이 무엇인가?
단 한개체의 존재만으로도, 인류의 존망을 위협하는 대재앙이라는 사태를 일으킨 존재이다.
평범한 인간은 보는 것만으로도 제정신을 잃어버리고, 그 어떤 강자가 와도 저지조차 못한다.
한서우라는 규격 외의 영웅이 없었더라면, 인류는 이미 진작에 멸종되고도 남았을거란 소리다.
근데 그런 엘로힘이 고작 1년 내에 두 개체, 심지어 한 개체는 소환된 것도 아니라 자의로 이곳에 도착했다니!
통제조차 벗어난 채 지구를 활보하는 엘로힘이 있다는 건, 결코 좋은 소식이 아니었다.
"현재 위치는 파악됐습니까?"
"아뇨. 전무합니다. 이 보고도 성화연 지부장의 보고로 올라온 것이라..."
끄응, 하며 협회장 로건은 한숨을 푹 쉬었다.
지금까지 문제란 그 폭발사건밖에 없었기에 다행이긴 하지만, 앞으로가 관건이다.
"해당 엘로힘에게서 관측된 파장을 해석한 바에 따르면, 개체 상징 명칭은 '학자'라고 합니다."
이로써 현재까지 관측된 엘로힘은 '탐구자', '예술가', '학자'다.
아직 나머지 두 개체가 무슨 짓을 벌였는진 확실시 되지 않았지만, 적어도 엘로힘의 증가가 나타내는 변화 하나는 확실했다.
'마력파가 늘어났어.'
마력파가, 예술가가 지구에 도달한 기점으로부터 한번 크게 늘어났고, 학자가 얼마전에 도달하고 난 후 다시한번 크게 늘어났다.
무슨 연관인진 몰라도 그 둘은 모종의 연관관계가 있는것이 분명했다.
"그것 말고도 다른 보고는 없는건가?"
"있습니다. 더 중요한 정보는 훨씬 뒤에 있더군요. '학자'가, 루시의 신격을 모조리 흡수해버린 모양입니다."
"...!"
쾅, 하며 자리를 일어났다.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놀랐다.
신격이 흡수가 되는 것이었다니, 심지어 그것이 인류에게 적대적인지 우호적인지도 모를 것에게 넘어갔다니?
도저히 제정신을 붙잡고 있을 수가 없다.
어디서부터 이 문제에 손을 대야할지, 또 루시를 어떻게 처리해야할 지 아무런 감도 잡히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해당 엘로힘의 특성이 특성인지라 그 신격을 통해 당장은 무엇을 할 것 같지는 않아 보입니다만..."
"특성이라니?"
"아, 성화연 지부장이 올려보낸 보고서에 나타나있습니다. 자아는 없는것마냥 지속적으로 학습만 거듭하는 존재라고..."
그 말을 듣고선, 한참을 그렇게 멍하니 서있던 협회장은 머리를 부여잡으며 다시금 자리에 푹 앉았다.
"그래도...골치아픈 일인건 매한가지군. 결국 어떻게 대처할 방법은 없는건가..."
의자를 돌리며 창밖을 바라보는 그.
여전히, 아무런 변화없이 찬란하기만 한 대도시의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톡,톡 하며 의자의 팔걸이를 두드리던 협회장은 이내 결정을 내렸다는 듯 말한다.
"...루시는 현재로선 아무 힘도 없는 어린아이나 마찬가지라는 말이지?"
"네, 그렇습니다."
"루시에게 붙은 감시인력을 대폭 감소하고, 새로 '학자'의 수색팀을 마련한다."
"알겠습니다."
방 밖으로 서둘러 나가는 비서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협회장은 고개를 푹 떨궜다.
"내가 정말로 할 수 있는것이 있으면 좋으련만..."
결국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거라곤 거의 없구나.
'한서우도, 루시도...'
왕년엔 최고의 히어로로서 이름을 떨치고 다니던 그였으나, 이제는 '인간'이라는 종 자체가 대응할 수 있는 범위 자체를 벗어난 일 자체가 수두룩했다.
문헌을 읽고서도 그러려니 하며 넘겼던, 엘로힘이 존재하지 않던 먼 과거의 자신의 모습이 떠오른다.
'결국 모든 것은 이세계의 그 문헌으로부터다.'
이제는 썩혀두고만 있을 여유가 없다.
비록 대응방법은 나와있지 않은 문서였지만, 유심히 읽다보면 반드시 어떤 정보라도 나올 것이다.
그리 생각하며 협회장실의 문을 나섰다.
"추워..."
공항이었다.
나름대로 채비를 다 갖춘 채 나와있는거라 이제 남은일은 출국 뿐이었다.
근데, 왜 가방이 이렇게 가벼운건지.
원래 이런 겨울이면 두꺼운 패딩같은 것도 엄청 싸들고 가야하지 않나?
"루시, 너..."
"?"
"설마 한국이 겨울이라고 도착지도 겨울일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성화연이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갸웃거리며 생각해보려니, 순식간에 머리가 화끈 달아올랐다.
그러고보니, 우리나라 북반구구나.
도착지는 남반구고.
확실히 계절이 서로 정 반대다.
그 왜, 호주에서는 크리스마스가 여름이라고 하잖아.
이런 간단한 지식조차 못떠올리고 지금 춥다고 덜덜 떨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뭐 그런 것 가지고...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그냥 넘어가면 되는거지."
"내 쪽팔림은 누가 치워주나요..."
성화연은 이런 내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는 듯 했다.
역시, 지나치게 긍정적인 놈이다. 수치심같은 건 없는건가.
공항 근처의 카페에 앉아 저 거대한 유리 너머로 날아오르는 비행기들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니, 새삼 주변의 광경이 눈에 들어온다.
내가 예전에 아카데미 다녔을 적엔 상상도 못했던 시설이 바로 공항이다.
그때는 이륙장소라고는 군용 활주로밖에 없었고, 여행조차 국토 내에서만 허용됐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게, 하늘길이나 뱃길은 마수들이 전부 꽉꽉 틀어막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그런지, 내 원래 고향지구에서라면 익숙할 이런 광경도 이렇게 보니 굉장히 특별한 느낌이었다.
세상이 확실히 잔잔해진 느낌이다.
시시각각 목숨에 위협을 받는 일도 없고.
옆에서 들려오는 성화연과 마스의 대화를 들으며 커피나 쪽쪽 빠는 것.
이게 야스지.
정말로, 원했던 광경이네.
"루카스항공에서 4라인을 걸쳐 제일로 가는 730편의 출발을 알립니다..."
그렇게 느긋하게 오후의 햇살을 받으며 즐기고 있던 도중 들려온 공항의 안내방송.
우리 항공편이었다.
"왔다, 짐 챙겨."
"넹."
자그마한 가방을 툭툭 치며 등에 팍 맸다.
캐리어를 끌고다니는 공항의 인파를 바라보며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톡톡.
어깨를 두드리는 감각에 담요를 슬며시 내리며 일어났다.
졸린눈을 비비적거리며 정신을 추스르니, 어느샌가 주변 사람들은 전부 부산하게 짐을 내리는 중이었다.
조용한 비행기 속에서 사람들 움직이는 소리만 들려오려니, 뭔가 깼던 잠마저 다시금 몰려오는 느낌이었다.
"루시, 일어나. 도착이야."
"아으으..."
비행기의 창밖으로 보인 하늘은 밤하늘이었다.
남반구라 그런지, 북반구에서 보이던 뻥 뚫린 밤하늘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새하얀 빛들이 공항의 이곳저곳을 밝히는 모습이었다.
"졸려..."
"하긴..."
내 투정에 성화연은 그럴수도 있다는 듯 납득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남들 다 잘 때까지 의자에 달린 화면으로 영화나 줄곧 쳐 봤는데 지금 졸리지 않다는게 말이 안되기 때문이다.
내가 잠에 든 것도 도착 3시간 전이었고.
"정식적으로 절차 몇 개 있긴 한데, 오늘은 날도 늦었으니까 좀 쉴까?"
"그렇다면야, 나야 좋지."
나한테 한 말일텐데 마스가 대답한다.
쟤도 어지간히 피곤했나보다.
옆에서 물건을 내리기 시작하는 성화연과 마스를 보며 나도 고개를 훌훌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끄으윽...!"
"고생했다."
짐 옮기느라 고생한 마스의 등을 툭툭 쳐주며 말했다.
렌트카에 전부 옮겨싣고 난 뒤, 지금은 모두 차에 올라탔다.
"어디 갈거야? 바로 히어로 협회로, 아니면 호텔로?"
"뭐, 절차상은 히어로 협회가 맞긴 한데, 지금은 너무 늦어서 차라리 내일 오후에 가는게 훨씬 나을 걸. 그냥 호텔로 가자, 호텔로."
"네~엡."
부웅, 하며 자동차가 활기찬 배기음을 내뱉었다.
성화연이 뒷자리에 누워있는 날 보더니 조심스럽게 담요 하나를 꺼내서 덮어준다.
뭐, 막상 깨어있다고는 해도 반쯤 잠든거나 마찬가지네.
덜컹거리는 차 안에서 멍하니 아무 생각 없이 앞에서 들려오는 라디오와, 둘의 이야기를 자장가삼아 잠에 들기 시작했다.
"아, 그러고보니 최근에 이 근처에서 대규모 테러사건이 있었다네."
"테러사건이라니, 불안하게 그게 뭔 말이냐."
잠결에 들려오는 성화연과 마스의 대화.
"루그렘 공화국이라고, 갓 태어난 약소국가가 하나 있거든? 근데 그 국가가 하루아침에 연락이 전부 두절된 모양인가봐."
"...그게 가능해?"
"당연히 불가능하지. 아무리 혼란한 시기에 태어난 약소국가라고는 해도, 나름대로 명색이 정식 '국가'인데 말이야. 그래서 조사단을 파견했는데..."
마침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진행자들의 담소.
대충 들어보니, 최근 길에 부쩍 군인들과 히어로들이 늘었다는 모양이다.
원래부터가 분쟁구역이라 많았다고는 하지만, 그를 감안해도 비정상적일 정도로 늘었다고.
심지어 이번엔 어지간한 일로는 나서지조차 않는 '히어로'까지 동원된것이니.
무슨 일인지 꽤나 궁금해진다.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말에 잠깐 얘기를 멈춘 성화연은 계속해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도시 전체가 쑥대밭이 되어있었던 모양이야. 게다가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온갖 정원과 화단에 무덤이 생긴 후였고."
"...무덤?"
"응, 무덤. 심지어 그 수도 엄청났대. 게다가 그것들이 하나하나 장식이 아니라, 진짜로 시신이 묻혀있는..."
오싹하다.
담요를 한층 더 높이 끌어올렸다.
가로등 불빛이 스쳐지나가는 성화연의 얼굴이 기묘하게 빛나는 것이, 뭔가 분위기를 한층 더 음산하게 만들어줬다.
"...국가 하나가 하룻밤만에 사라지다니, 말도 안되는 일이네."
"그렇지. 그래도 완전한 미스테리는 아니야. 암시적인 정보들이긴 하지만, 어느정도 확보한 정황이 있기는 하거든."
그리 말하며 성화연은 백팩에서 태블릿 하나를 꺼내며 자료 하나를 운전하는 마스에게 들이댔다.
"봐 봐, 마력파 발생 위치와 시간. 그리고 연락이 두절된 타이밍. 누가봐도 너무 절묘하잖아."
"마력파가...국가 하나가 하룻밤만에 사라진 일의 원흉이라고?"
"그래. 아직까진 인간의 주거영역안에서 마력파가 터진 일이 얼마 없었기에 몰랐지만, 아마 이걸로 조사가 더 진행될거야."
...인간들도 이제 마력파와 잔해에 대해 다가가는건가.
확실히 소규모의 마을이 휩쓸려 사라지는 것보단, 분쟁지역이긴 해도 이런 곳에서 국가 하나가 사라지는 일이 주목을 끌기 확실했다.
휩쓸려 사라진 수십만명의 사람들에겐 미안한 일이긴 하지만, 결국 그들이 인류에게 마력파의 진실을 알려줄 첫 단추가 되는거지.
'한서우도 거기 있으려나.'
마력파의 발생 타이밍과, 한서우의 어비스 이용 기록.
너무 절묘한 걸.
게다가 한서우의 도착 위치와, 마력파의 발생 위치도 비슷하네?
'...이건 그냥 빼박아닌가?'
한서우가 여기 있을 거란 건 확실하다.
저 정보가 얼마나 오래된 정보일 지는 모르겠으나, 아마 성화연의 입에서 나오는 걸로 봐선 그리 오래된 정보는 아닐거다.
뭔가 생각을 좀 더 해보고 싶었지만, 가뜩이나 인간으로 변해버린 몸이 졸음을 더는 거부할 수가 없었다.
본판도 어린애라 그런지 잠도 무지막지하게 쏟아져내려오고.
'내일 생각하자, 내일...'
좀 더 정신이 맑을 때 생각하자 다짐하며, 담요를 끌어안고 다시금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
그리고, 다시금 나는 '무의식'에 당도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