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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해주세요, 마수님!-106화 (106/162)

〈 106화 〉 2부 35. 밤하늘

* * *

단순히 이 사서가 서아를 기억하지 못해서 그러는걸까, 아니면 정말로 서아가 세번째 엘로힘에게 당해서 그러는걸까.

지금으로서 알 방도는 없다.

뭐, 난 어차피 서아가 사라졌다는 것에 희열이나 느끼고 있지만...

'음...'

그래도 마음 속 한구석에 남아있는 이 찝찝함은 도저히 어찌할 도리가 없네.

"일어나, 튀어야지."

"...뭐?"

내 말에 아스팔트 바닥에 주저앉아있는 사서가 의문을 표했다.

당연하겠지, 지금 바깥엔 라비가 있는데 대체 뭘 믿고 또 이런짓을 벌이냐고 생각할 게 분명하니까.

이유는 꽤나 간단하다.

나에게 필요한 도서관을 자신의 마음대로 조율할 수 있는 인물이, 현재로선 사서 하나뿐이니.

게다가 지금은 나도 그냥 평범한 인간일 뿐이니 사서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건 어쩔수없는 사실이다.

어차피 지금은 협력중인 관계이기도 하고.

"일어나, 일어나. 가만히 앉아있을 시간은 없다구."

"하아..."

결국 사서에게도 선택지는 없다.

아무리 내가 아니꼽더라도 지금 해결책은 튀는것 밖에 없으니.

사서도 지금 몸상태가 정상은 아닌지라 누군가의 부축을 받지 않으면 근처 건물로 몸을 숨기는 것 조차 불가능했다.

그리고 이 공간에는 나랑 사서 둘밖에 없으니 그런거기도 하고.

사서가 코트를 툭툭 털며 자리를 일어나려던 순간이었다.

­카득ㅡ

"...?"

한순간 기이한 낌새에 황급히 주변을 둘러봤다.

하지만 이상하네. 이 세상에는 둘 밖에 없는데.

다른 누군가가 있을리가 없다는 말이다.

"...너야?"

"또 뭔데."

사서에게 묻지만 사서는 멍청하게 몸이나 가누고 있다.

'착각인가.'

그럴리가.

지금까지 착각 치고 평범하게 넘어간 일이 없었는데.

원래 이런 상황에서는 끝까지 파고들어야 하는거다.

"뭐야, 이거..."

그러다가, 아무것도 없는 빈 공간에 떠있는 하나의 검은 점을 발견했다.

말 그대로, 먼지같다.

지나칠정도로 새까만 먼지.

"우읍..."

그 속에서 뭘 본건진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봤지만 떠올리기를 거부한 걸 수도 있어.

갑자기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하더니, 이내 위 속에 든 것이 전부 역류하기 시작했다.

"우웨에에엑ㅡ!"

근처 건물벽을 잡고 마구 게워두려니 방금 본 광경이 다시금 떠올랐다.

'대체 그게 뭔...'

무섭거나, 역겨워 할 만한 건 아무것도 없었어.

그건 분명 그저 숫자의 나열일 뿐이었다.

검은 배경에 흰색의 숫자들이 무수하게 변화하며 나열되던 모습.

어째서 그런 광경을 역겹다고 생각했는 지 모르겠다. 대체 그게 뭔 특별할 게 있다고.

그 속에 무슨 의미가 담겨있는거라면 모를까, 그렇게 찰나를 본 것 만으로는 아무것도 파악할 수가 없었다.

물론 그 찰나의 마주침만으로도, 어렴풋한 의미를 깨닫고 토한건 내 머리가 아니라 내 육체일 뿐이지만.

'그렇게 위험한건가..?'

다시금 검은색의 먼지를 확인하고자 결심했다.

­콰드득ㅡ!

하지만 채 돌아보기도 전에 들려오는 괴이한 소리.

뒤를 돌아보자.새하얀 빛무리, 어쩌면 검은색의 촉수와도 비슷한 무언가가 공간을 가르며 이곳으로 넘어오고 있었다.

"이건...!"

사서가 뒷걸음질치며 경악한다.

그와 함께 회색으로 물든 세상을 흰색의 빛무리가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루시! 당장 도망쳐라!"

눈앞에 보이는 광경과, 사서가 묘사한 본래 지구에서의 광경.

게다가 사서의 반응까지 보면 명확했다.

'이 미친새끼가...!'

세번째 엘로힘이라 그랬던가.

그 수정액과도 비슷한 놈은, 본인 스스로 중앙아시아의 전이마법진을 분석하고 스스로 균열을 찢었다고 했다.

우주의 막 사이를 찢는 방법을 스스로 알아낸 놈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해방자들이 다시 이 지구로 돌아올 때 썼던 방법.

그녀석이 엉성하게 찢어둔 우주의 막을 역으로 이용해 이곳으로 튀어나왔다는 말이다.

심지어 한 곳도 아닌 지구의 다방면에서.

"ㅡ그딴짓을 하면 당연히 역추적당하잖아!"

적이 만들어둔 통로를 통해 이동했다는 것이다.

유일한 방법이라 어쩔수 없었다고는 해도, 결국 그런 방법을 쓴 이상 엘로힘이 도착한 위치를 알아낸다는 건 일도 아닌 것이다.

­콰앙ㅡ!

거대한 폭발이 일었다.

적막하기만 했던 세상에 굉음이 휘몰아치기 시작한다.

그와 동시에 산산히 깨져나가는 대체현실.

흘러가기 시작하는 시간.

"...어라?"

주변으로 모인 인파들이 의문에 내뱉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그런 소음도 잠시, 이내 모두 폭음에 가려져버렸다.

눈앞은 새하얀 빛으로 물들고, 거리는 산산히 부서지기 시작했다.

.

.

.

"콜록, 콜록..."

먼지구름에 가려진 시야를 붙잡으며 비틀비틀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변에선 사이렌소리와 콘크리트 떨어지는 소리만이 들려온다.

비명같은 게 들리진 않는걸 보니, 아직 시간이 그렇게 오래 지난건 아닌 모양이었다.

'라비랑, 사서는 어딨지?'

주변을 마구 둘러봤다.

흐릿한 안개 사이로 보이는 익숙한 인영 둘.

­"커헉, 크윽...!"

사서는 멀쩡하고, 라비도 기절하기만 했을 뿐 아직 제대로 살아있다.

중상을 입은 사람들은 없어보였다.

'사망자는 없는건가...'

그렇게 심하게 다친 사람들은 없어.

애초에 방금의 폭발은 강제로 차원을 찢으며 일어난 후폭풍에 불과했다.

누군가를 죽일정도로 극심한 피해는 없다는 소리였다.

만약 피해를 준다고 해도, 콘크리트나 아스팔트같은 무생물을 파괴하는 게 전부.

사람의 생명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소리였다.

­파앗ㅡ

그 순간, 갑작스럽게 대로변에 거대한 빛이 일었다.

순식간에 걷히는 안개와 먼지들. 시야가 한순간에 확장됐다.

"...허."

공중에 흰색의 빛무리가 떠있다.

어느때는 고체처럼 보였다가, 또 어느때는 액체처럼 보인다.

마치 가루같다. 정말로.

­콰광, 쾅!

그런 급격한 변화에 정신을 못차리고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면 어느샌가 본래 있던 위치에서 한참이나 벗어난 후였다.

"..."

빛무리, 촉수와도 비슷한 것이 날 콕찝어서 노렸다.

차원을 뚫고 나와, 잠시간 주변을 둘러보던 그 빛무리가 찾고있던 것은 나였던 것이다.

콘크리트 더미에 쳐박힌 날 누르고 있는것은 그것이었다.

한순간 벌어진 일에 고통조차 못느끼고 있었는데, 이미 내 몸은 무수한 빛무리에 의해 꿰뚫린 후였다.

­[너구나.]

"뭔 개소리야..."

인간의 말을 하는 엘로힘따윈 이제 놀랍지조차 않네.

어차피 첫번째 엘로힘, 탐구자라는 엘로힘조차 인간을 이용하고 인간의 말을 했던건데.

당연한거다.

하지만 얘는 아예 나만 콕 찝어서 얘기를 한다.

혹시 탐구자한테 얘기라도 들은걸까.

­[특이점이, 너였구나.]

하지만 놀랍게도 이 녀석은 그 놈과는 접점이 없는 놈이었던 모양이다.

그냥 지 스스로 파악한 정보만으로 나의 정체를 알아냈다.

­[우주가 뒤틀리기 시작한 것은 전부 너의 근원 때문이었군.]

가슴속에 쳐박혀있는 촉수가 급격하게 확장됐다.

"아학, 컥..."

마치 무언가를 찾아내려 하는 모습이다.

내 몸속을 미친듯이 휘젓기 시작하는 빛무리.

뭐, 빛무리라 해봤자 지금은 고체나 마찬가지인 상태니 몸속이 곤죽이 되버리는 건 일도 아니었다.

아픈건 아픈건데, 뭐 어떡하냐.

'괘씸해.'

어째서 이딴 짓을 하고도 멀쩡할거라 생각하는건지.

오른팔에 박혀있는 빛무리를 무시한 채 그대로 뜯어냈다.

물론 뜯어진 건 내 팔이었지만, 일단은 그 엘로힘에게 접촉할 수단이 생겼다는 것 만으로도 충분하다.

일단 어떻게든 엘로힘에 접촉하고 나자, 다음 상황은 뻔했다.

­쿠드득ㅡ!

그녀석이 이어져있던 공간 자체에 미칠듯한 마력이 모이기 시작했다.

한번 , 두번. 마치 연속적으로 못을 박아넣는 것처럼.

무수한 충격파가 녀석과 연결되어있던 빛무리를 산산히 갈라 부수기 시작했다.

굉음이 천지를 뒤흔들고, 건물이 흔들리며 유리와 철가루들이 추락한다.

그리고 마침내, 내 몸속을 휘젓던 빛무리가 멈췄다.

"아윽..."

인간의 몸이라 그런지 내부가 곤죽이 되어버렸다고, 고통도 또 말이 아니다.

일단은 몸에 수두룩하게 쳐박혀있는 빛무리들을 하나하나 제거하고 나자, 제대로 서있을 틈조차 없었다.

물론 어찌저찌 서있긴 했지만, 움직이기 힘들다는거지.

"커헉, 웁..."

핏덩이가 된 내장을 토하려고 하길래 필사적으로 입을 막았다.

'ㅡ일단은, 여기서 벗어나야 해.'

저 엘로힘이 노리는 건 단순한 학살이 아니다.

무언가 알고싶은 정보를 노리고, 그 정보를 마구잡이로 찾아다니며 학습하고 있었다.

'저녀석은 습득할 정보가 없는 곳에선 활동하지조차 않아.'

아마 내가 이곳에서 사라지면 곧바로 자취를 감출 것이다.

­꿀럭...

"아, 진짜..."

하지만 내 몸상태도 정상이 아닌 걸.

고통이고 자시고 하기 전에 몸의 기관 자체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ㅡ야!"

결국 지금은 도움을 받아야한다.

이게 또 문제네.

하지면 소리쳐 부르기도 전에 사서는 이미 내쪽으로 뛰어오는 중이었다.

아직 저 하늘에서 꿈틀대는 것이 보이지만, 방금전의 거대한 충격으로 통째로 썰려나간 부위를 재생하지 못한건지, 행동을 취하진 않고 있었다.

"아훅, 우엑..."

"...윽, 끔찍하군."

온몸에서 피를 쏟는 나를 보고 사서가 처음 지껄인 말이다.

기분 더럽네.

"야, 케헥, 나...나좀 안아줘바..."

"...그래."

사서가 '이 코트가 얼마짜린데...'따위의 의미없는 불평을 중얼거렸지만 결국 한숨을 푹 쉬며 나를 안아준다.

이대로라면 원하는대로 움직일 수 있겠네. 내가 조종하고, 사서 얘가 움직이고.

"...근데 왜 이딴 자세로 안는거냐."

"어린 여자애는 보통 이렇게 안는 거 아니었나?"

공주님 안기 자세를 하도 많이 당해서 그런지, 이젠 별 감흥도 없다.

그냥 움직일 수 있으면 된거지...

"야, 갑자기 왜 이렇게 엘로힘이 수두룩하게 나타나는 건진 알고 있어?"

"...?"

내 물음에 사서가 멍청하게 고개를 갸웃거린다.

하긴, 지 스스로 생각조차 안한다는거지.

"이번으로 벌써 3번째라구, 3번째. 지구에만 나타난 엘로힘이 벌써 3번째란 말이야. 넌 아무 감흥 없어?"

"...그게 무슨 문제가 된다는건가?"

"에휴...아니, 나도 모르겠다. 이것도 그냥 가설이니까..."

...목적지는 어차피 확실해.

"최대한 먼 천문대로 가자, 천문대로. 너 아직 그 구슬 하나 더 있지?"

"...진짜 마지막이다, 이거. 확실하게 정해."

"응, 그냥 공기맑고 별 잘보이는 곳이면 돼."

그 말을 들은 사서는 마침내 코트 속에서 우주가 담긴 구슬 하나를 쏙 꺼냈다.

다시금 챙그랑, 깨지는 소리와 함께 주변의 풍경은 순식간에 변화하기 시작했다.

.

.

.

"아흑, 흐우..."

"그러게 좀 천천히 가자고 했잖나. 이렇게 격하게 움직이면 상처도 제대로 안나을 것 같으니..."

"낸들, 우웨에에엑...."

말 하기가 힘들다.

몸이 지쳐버려 편하게 풀밭에 몸을 뉘였다.

옷이 피때문에 끈적거려서 짜증난다.

"내...낸들 알바냐..."

"고집은 진짜..."

주변은 평원이다.

일단은, 어딘지 모를 초록 풀밭이 펼쳐진 평원.

뭐, 고원이나 그런 비슷한곳이라도 되는건가.

그 엘로힘녀석 따돌리느라고 진짜 미친듯이 뛰어온 모양이다.

중간에 공간전이도 몇번 사용하고, 사서 얘 초상능력인 거리 줄이고 늘리는것도 막 쓰고.

'일단은, 어떻게든 따돌린 모양이겠지...'

지평선 저 끝에는 분홍색의 노을이 져있다.

그 반대편은 남색의 밤하늘이 서서히 떠오르기 시작하고 있었고.

"저 봐라, 저 봐...내가 말 했잖아."

그리고 무언가를 발견한 나는 힘겹게 팔을 들어 손가락으로 가르켰다.

옆에 앉아 숨을 헐떡이고 있던 사서는 고개를 들어 내 손가락 끝을 향해 바라본다.

"...?"

"저기가, 그 가려졌던 곳이잖아. 가려졌던 곳..."

예전에, 차원과의 융합과정이 있을 때 지구로 인해 가려졌던 밤하늘.

"지금은 그거 없는데도 저꼬라지야..."

이번에는 그냥, 별 자체가 없었다.

그냥 가려진 게 아니라.

"그것들이 뭔 바람을 탔는진 몰라도...죄다 이쪽으로 오는 거 아니냐?"

"미친..."

사서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그나저나...

"아아ㅡ 성화연이랑 여행가기로 했는데에..."

"지금 이런 상황에서도 그런 얘기가 나오냐?"

"뭐 어때, 여행하면서 해결할 일이면 된거지."

정상적인 출국은 이미 글렀다는건가.

공간전이 때문에 여기가 어딘진 잘 모르겠지만, 이런 고원은 한국엔 없지 않나? 잘 모르겠어.

내가 대도시로 가는 건 너무 위험하니, 차라리 성화연을 납치하자.

처음엔 어떻게 성화연이랑 다시 합류해야할 지 막막했지만, 사서를 보니 마냥 불가능 할 것 같지는 않다.

협력관계라면 이정도는 해줘야하지 않겠나.

"수고해라~"

"닥쳐라, 꼬맹아."

말은 저렇게 해도 어차피 들어줄 거 알고 있는데.

마스도 추가주문하자 사서는 멍하니 날 내려다본다.

"...내가 대체 왜 여기서 이짓을 하는 지 모르겠다."

"다~ 니가 자초한 일이야. 건드릴 사람을 건드렸어야지."

"..."

뭐, 살짝 일이 이상해지긴 했어도.

여행이라는 목적 만큼은 달라질 거 없다.

한서우 찾아 삼만리라는건가.

'사서조차도 한서우의 위치를 모르니, 원...'

주인공 이자식...손 많이가는 놈일세.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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