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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해주세요, 마수님!-105화 (105/162)

〈 105화 〉 2부 34. 지우개

* * *

"...테러인가?"

"내가 알겠어?"

밖에서 울려퍼지는 소란스러운 소리를 뒤로하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멀리서 폭발음과 고함소리가 섞여들려오는게, 아무래도 그냥 일반적인 사고는 아닌 듯 했다.

"으...비 다 들어오네."

"태평하게 그런 소리나 할 때냐. 지금 근처에 체포권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은 우리밖에 없을텐데, 지금 저거 안나서면 공무유기라고."

멍하니 라비를 바라봤다.

라비는 뭘 보냐는 듯 어깨를 으쓱거리고선 외투를 의자 옆에 걸어두는 모습이었다.

"제가 왜 체포권이 있는데요?"

"당연히 히어로 협회 소속이니까, 멍청아."

"제가요??"

아니, 그것보다 내가 히어로 협회 소속이었어??

언제부터? 난 들어가겠다고 한 기억이 없는데?

"...그냥 우리쪽에서 관리 쉽게 하려고 한거니까 신경쓰지마. 어차피 어비스 사용허가 받으려고 소속시킨 거니까."

"그런가..."

"뭐, 여기 앉아서 구경하고 싶으면 하던가. 그래봤자 너한테는 불이익 없을거야."

아니, 뭐 누가 싫대?

난 그냥 왜 내가 그런 권리를 받게 된건지 궁금했을 뿐인걸.

내가 라비를 도와줄 의무는 없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난장판이 된 카페 안에서 멍하니 기다리는 것보단 그쪽이 더 재밌을거라 판단했다.

기지개를 켜며 자리에서 일어나, 의자 위에 걸려있던 어두운 색의 자켓을 위에 걸쳐입었다.

"가보자구요."

우산을 탁, 펴며 말하자 라비는 한숨을 푹 쉬면서도 고개를 숙이며 깨진 유리창쪽으로 나갈 뿐이었다.

계산대쪽을 돌아보자, 찬장에 쳐박힌 콘크리트 덩어리 바로 옆에 서있는 알바생이 보인다.

멍하니 우리쪽을 바라보는 모습이 살짝 웃겼다.

조심스럽게 고개를 꾸벅거리며 라비가 나간 유리창 너머로 다리를 옮겼다.

.

.

.

"...허??"

인파를 뚫고 현장으로 도착했을 때 보인 것은, 지나칠 정도로 익숙한 얼굴이었다.

한쪽 벽면이 완전히 터져나간 건물의 안에서 농성하고 있는건, 어딘가 살짝 망가진 듯한 사서였다.

온몸에 그을린 석탄가루같은 게 묻어있는 걸 보니 폭발에라도 휘말린 모양이었다.

"...쟤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지 않냐?"

사서는 바닥에 제압된 채, 초상능력자로 추정되는 누군가에게 팔이 뒤로 꺾인 모습이었다.

그 초상능력자도 만신창이인게 같이 폭발에 휘말린 모양이다.

'이게 뭔 상황이야.'

사서 그 뱀대가리는 아직도 정신을 못차리며 주변만 살피고 있었고, 매점 내부에 모여있는 사람들은 죄다 숯검댕이를 뒤집어 쓴 모습이었다.

위에 올라탄 사람이 사서를 향해 마구 고함을 지르며 찍어누르는데도, 주변 이들은 벙찐채 바라보기만 하는 걸 봐서는...

"방금 그 폭발...원인은 저 새끼인 것 같은데요."

"나도 같은 생각이다."

고의인지 우발적인 건진 모르겠지만, 그 폭발의 원인은 사서인 듯 했다.

그 덕에 사람들한테 빌런으로 오해받고 저렇게 다구리 당하는 걸 수도 있지.

라비가 앞으로 나서며 그들을 향해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히어로 협회 소속 히어로 라비라고 합니다. 혹시...무슨 일이 벌어진건지 여쭤봐도 될까요?"

"ㅡ아! 이, 이제야 왔군. 그래요, 히어로 양반, 여기 테러범 있습니다. 테러범. 이새끼 테러범이에요."

사서를 한번 퍽 치고선 말하는 남성.

"방금 폭발도 이새끼 때문에 일어난 일이란 말입니다. 얘 말하는 거 보면 제정신도 아닌 것 같은데, 광대나 정신병자, 뭐 그런애들 같아요."

"매점 안에서 자폭테러라도 시도한겁니까?"

"네에... 비슷한 것 같습니다. 아무것도 없던 자리에 갑자기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는데, 그 자리에 이녀석이 나타난거죠."

밑에 깔린 사서는 남성의 말을 듣고선 고개를 한번 휙휙 저었다.

이제야 정신을 차린 듯 확 표정이 돌아온 모습이었다.

"이런, 젠장..."

"이자식 드디어 일어났구만! 여, 이보세요 아저씨. 죽을거면 혼자 죽지 뭔 사람들을 휘말리게 합니까? 미쳤어요??!"

"저기 선생님, 폭행은 조금만 자제를...!"

다시금 사서의 멱살을 잡은 남성을 진땀 빼며 말리기 시작하는 라비.

밖에서 우산을 쓰고선 지켜보고 있던 나는 흐름에 따라가지 못해 멍하니 사서만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너, 너...!"

그리고, 마침내 라비를 알아챈 사서가 그리 외쳤다.

물론 라비는 무시했지만 말이다.

라비를 알아채고 난 직후, 사서는 미친듯이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리고선, 나와 눈을 마주친 사서.

"...?"

­"씨발, 미치겠군."

조용히 중얼거리는 사서.

주변 이들은 못 알아들은 듯 했다.

와중 사서가 갑작스레 몸을 뒤틀며 저항을 시작했다.

위에서 내려찍고있던 남성은 화들짝 놀라며 고함을 친다.

"가만히 있어라. 피보기 전에."

싸늘하게 내리까는 라비의 목소리.

사서는 그 말을 알아들은건지 이네 잠잠해져갔다.

왜 저렇게 사람 피곤하게 하는건지.

"...?"

그렇게 한숨 돌리려던 찰나, 사서의 품 속에서 바깥으로 굴러나오는 무언가가 눈에 들어왔다.

마치 검은색의 구슬과도 같은 형태의 물건이었다.

'저게 뭐야?'

구슬 속에 밤하늘이 들어있는 듯 하다.

개인적인 소장욕구를 자극하는 생김새.

하지만 사서는 그 구슬이 자신의 머리 쪽으로 굴러오자, 고개를 확 꺾고선 입에 콱 물었다.

그와 동시에 쩅그랑, 하며 깨지는 유리구슬.

그리고, 세상은 검은 페인트로 잠겼다.

"넌...진짜 무슨 도라*몽이냐? 별의별 게 다있네."

"오해하진 마라. 지금은 그냥...좀 쉬고싶어서 이렇게 쓴 것 뿐이니까. 어차피 일회용이라 이젠 더 쓰지도 못해."

한숨을 푹 쉬며 자리에서 주섬주섬 일어나는 사서.

주머니에서 담배 비슷한 걸 꺼내들고선 불을 탁, 하고 붙인다.

주변을 둘러보니 우리 둘을 제외하고선 전부 회색으로 물들어있는 세상이 보였다.

시간이 멈춘것마냥 비 떨어지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대로변에선 소름끼치는 분위기까지 풍겨온다.

"이것도 그, 선구자 뭐시기가 준 그런거냐?"

"그런 셈이지. 긴급상황을 대비해서 하나씩은 갖고다니는거다."

발동효과가 마치 대체현실을 만드는 그것과 비슷하다.

현실 위에 또하나의 현실을 덧씌우는, 간이 우주를 만드는 형식.

나도 무수히 써왔던 방식이고, 얘들이 '탐구자'라 부르는 그 엘로힘도 날 상대로 써왔던 방식이기에 낯설지는 않았다.

선구자 걔들은 이런것도 재현했단 말인가.

그런 상념과 함께 사서를 내려다보자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무슨 일이 일어난건진...말해줄 수 있어?"

"안 그래도 말할 생각이었어. 너라면...이 사태를 해결할 유일한 방법일테니 말이다."

사서는 머리를 기대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

한달 전, 내가 사서와 만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서는 곧바로 내 고향지구로 넘어갈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 당시에 난 인간이라 그 지구와 지금의 지구는 완전히 다른 우주에 존재하는 건데 대체 뭔 깡으로 그런 생각을 했는진 모르겠다.

하지만 그는 결국 무슨짓을 해서든 인류측의 조사단이 넘어가기 전, 미리 해방자들과 만나 대응방안을 마련해야 했기에 선택지는 없었다고 한다.

인류가 조사단을 보내기 겨우 하루 전, 그는 마침내 중앙아시아의 전이마법진을 통해 저 너머의 우주로 넘어갔고, 그렇게 해방자와 다시 만날 수 있게 된 것이다.

"..."

사서가 나한테 뭔가 숨기는 게 있는듯 싶었지만, 그게 딱히 중요한거라 생각되진 않으니 그냥 넘어가자.

이야기에 맹점이 존재하긴 하지만, 그렇게 심한 허점은 아니니 그냥 무시하기로 했다.

아무튼, 사서의 예상대로 전이마법진은 같은 장소로 연결되어 있는게 맞았고, 그는 해방자들에게 곧 조사단이 온다는 사실을 말해줬다.

그 덕에 해방자들도 조사단이 오기 전 미리 대비책을 마련할 수 있었다.

비록 정식으로 파견한 조사단이 온다고 하긴 하지만, 그들도 결국 많아봤자 수십명이 전부일 것이니 이렇게 압도적인 물량이 있는 한은 유혈없이 사태를 진압할 수 있었을 것이다.

"잘못된 건 거기서부터야. 조사단이 파견된다고 의심없이 믿고있었던 그 때."

이변이 생긴 건, 조사단의 예상 도착일자가 가까워졌을 때 였다고 한다.

"그 너머에서 나온 건, 인간들이 아니었다."

그들이 이곳으로 도착할 거라 예상했던 조사단은 분명히 히어로협회 측에서 파견한 정식 히어로들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너머에서 나온 건 그저 흰색의 빛무리 뿐.

비록 처음보는 것일지라도, 그 곳에 있는 모두는 그것의 정체를 본능적으로 파악했다.

"또 다른 엘로힘이었다, 그것은."

뭐, 명칭은 죄다 엘로힘으로 통일할 지라도 그것이 같은 종족인지는 알 수 없다.

생명체지만 인간의 영역을 아득히 초월한 우주적 존재를 엘로힘이라 불렀을 뿐이다.

결국 그것도 생명체이기에 직접 전이마법진을 그려 이곳으로 넘어올 생각은 못했지만, 오히려 그보다 더 영악한 술수를 썼다.

자신의 힘을 아득히 초월하는 무언가를 활용할 생각을 한 것이다.

그 빛무리와도 같은 엘로힘은 전이마법진을 통해 마법진의 정보를 습득하고, 본인 스스로 활용할 수 있을 정도로 학습했다.

하지만 엘로힘이 넘어오고 나서도 피가 튀기고 내장이 비산하는 끔찍한 전투따위는 없었다고 한다.

그곳에서 벌어진 건 학살이 아니라 소멸일 뿐이라고 말하는 사서.

"...이상한 일이었지. 내가 기억하는 바로는 어지간한 해방자는 전부 끌어모아 그 너머로 보냈을 텐데 말이야."

사서는 저 과거에 해방자가 일으킨 사건들을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

균열이 나타난 곳에 등장해 도시 하나를 통째로 소멸시켰던 사건, 약소정부로 침입해 엘로힘에 동화된 그들을 하룻밤만에 전부 쓸어버렸던 사건 등등 말이다.

"하지만 그건...그곳에 있던 해방자만으로선 도저히 일으킬 수가 없는 일이었어."

ㅡ그러니까, 뭐라고 말해야할까...

'사람이라는 존재 자체가 부정당하는 느낌.'

"엘로힘이 넘어온 그곳에 있던 해방자들은, 기껏해야 만 명 남짓이었다."

고작 만명가지고 일으킬 수 없었던 일을 과거에는 일으켰다.

하지만 그 과거에 그 일을 벌인 해방자들을 도무지 기억할 수가 없다고도 말했다.

"루시, 네가 겪은 일과 비슷한거다. 그곳에서 사라진 자들을 우리는 전혀 기억하지 못해."

원래부터 없었던 존재라고 여기고 있었다.

누군가 있었지만 그들을 기억조차 하지 못하고 있던거다.

뭐, 쉽게 말하자면 이런거다.

'얘들 기억대로라면, 그곳에 서있던 해방자들은 처음부터 만명이었던거야.'

이들의 기억대로라면, 지금껏 전 세계에서 활동해온 해방자들도 만명이 전부라는거다.

과거에 벌어진 사건으로 추측한 바로는, 족히 수십만명은 더 있어야 하는게 분명한데도!

"나도 정신병 걸리는 줄 알았어. 우린 분명 처음부터 딱 만명만 있었는데, 원래는 우리가 기억하지도 못하는 수십만명이 더 있었다니 말이야."

사서가 이 점을 눈치채기 시작한 건 광장 내부에 존재하던 시설들의 규모가 지나칠정도로 거대했다는 걸 알아챈 시점이라고 한다.

"그건 마치...지우개 같았다. 누군가의 존재 자체를 처음부터 없던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존재라니."

정신이 나가버린 듯 허탈하게 웃기 시작하는 사서.

적막하게 비어버린 도시에 울리는 웃음소리는 소름끼치면서도 구슬펐다.

"나는...사실을 알아채자 마자 곧바로 해방자들에게 전했다. 하지만 문제점이 하나 있었다면 우리가 도망칠 도리가 없었다는거다.

넘어오는 건 가능했지만, 되돌아가는 건 불가능했지."

하지만 그 불행중 다행이라고 해야하나? 그들은 결국 엘로힘이 마법진을 학습하며 찢어둔 차원과 차원간의 통로를 활용해 마침내 이곳으로 넘어왔다고 한다.

"내가 이곳으로 넘어온 건 방금 그 폭발이 일어났을 때다. 이 점을 보면 올때는 또 제각기 다른 곳으로 떨어진 모양이군."

방금 일어났던 그 폭발은 결국 그들이 저 너머에서 돌아오며 일어난 여파였던 것 뿐이구나.

고개를 끄덕이며 속으로 납득했다.

'...그나저나, 이제 겨우 만 명 남았다는 건가.'

사서의 말을 다시금 떠올린다.

'만명이면 연구자들에게조차 상대도 안 될 텐데.'

그들이 지금껏 대놓고 엘로힘을 소환하지 못했던 이유가 해방자들 때문이었다면 이제 그 억제력은 사라진 셈이나 마찬가지다.

물론 나때문에 지금도 마음대로 하진 못하겠지만, 도움되는 세력이 하나 나락으로 떨어져버렸다는 건 결코 좋은 소식이 아니었다.

뭔가 더 따로 유의할만한 점은 없는걸까.

잠시 턱을 쓸며 고민했다.

그리고 잠시후, 고민을 끝마친 나는 사서를 향해 묻는다.

"넌, 윤서아라는 해방자를 기억해?"

"...윤서아 말인가?"

사서는 잠시 고개를 숙여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미안하군. 내 기억에 남아있지는 않는 것 같다."

"..."

그리고 나온 사서의 말에, 나도 알지 못할 오묘할 감정을 느끼며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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