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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해주세요, 마수님!-102화 (102/162)

〈 102화 〉 2부 31. 학습능력 0

* * *

­"일단 현재로선 무슨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지 확실하지 않아. 지원 올때까지 기다렸다가, 나중에 합류한다."

­"알겠습니다."

마력파 발생 직후 어비스의 사용 허가가 나오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일단 사태파악의 일환으로 소대규모의 정찰대를 보내긴 했으나, 여전히 저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는 통신계열 초상능력자의 눈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가 없었다.

모니터에 떠오르는 저 광경은 분명 어딘가 비현실적인 모습이다.

기상현상은 갑작스럽게 변화했으며, 마력의 흐름조차 어딘가 기이하다.

저 거대한 돔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 현재로서 알 방법은 없다는 거다.

"생긴건 헤일로 공명현상이랑 비슷한 것 같은데..."

검은 돔 형태의 격리구역. 마력의 근원이 고리형태로 모였을 때 나타나는 헤일로 공명현상과 굉장히 유사한 현상이다.

주변에선 그 어떠한 마력의 근원지조차 탐색되질 않는 걸 봐서는 그냥 유사한 현상이겠지만.

나름 히어로협회 한국지부의 본부장으로서 중앙사령실에 참석해있긴 하지만, 도움이 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기에 답답해지기만 한다.

'하다못해 같이 갔다면, 저 주변에 모여있는 사람들 정도는 파악할 수 있었을텐데.'

꼴에 사무직이니 뭐 어쩌겠는가. 지위도 높다보니 정식으로 파견요청을 하려면 절차도 길고 복잡하니 이런 긴급사태에서는 아무 효용이 없다.

­"척후대 먼저 진입하겠다."

"ㅡ주변경계 철저히 하도록."

­"...!"

진입 명령을 받고 주변에서 주섬주섬 자리를 추스르는 소리가 들려오던 그 순간, 모니터로 송출되는 시야가 급격하게 흔들리기 시작한다.

줌 인 한 듯 확대된 시야 끝으로 보이는 것은 언덕을 서둘러 내려가는 하나의 무리였다.

­"누구지?"

"근처로 송출되는 전파같은 건 없나?"

­"감지되는 교류신호는 전혀 없습니다. 외부세력인 것 같습니다."

흐릿하게 흔들리는 화면은 서서히 안정되며 그들의 얼굴을 말끔하게 비추기 시작했다.

그리고 장막 너머로 드러난 그 남성의 얼굴에 사령실 곳곳에선 헉,하며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성주, 실종된 헤르메스 특전단 조사대원인가..."

깊게 내려까는 목소리. 그 목소리에는 미약하지만 적대의 감정이 섞여있었다.

아마 그도 지금 어렴풋이 상황을 짐작하고 있는 것일거다.

'이성주...?'

들어본 적 있는 이름이다.

과거 아시아 지역이 마수들에 의해 완전히 격리되어 있을때, 그 내부로 잠입한 요원들 중 하나라고 알고있다.

가족관계로 누나 이유리와 이유나가 있다고 한다.

남매 셋 모두 군소속이라 꽤나 유명했다고 하던데...

'이유리 요원은 지금 실종상태라고 했었나.'

결국 남은 건 이유나 혼자뿐이다.

'왜 이제서야 나타난거지?'

의도를 짐작할 수가 없었다. 연락이 끊긴 것도 한참 됐는데, 이런 뜬금없는 곳에서 튀어나올 줄이야.

일단은 갑작스러운 이변에 의해 진입명령이 취소되고 계속해서 지켜보자는 의견으로 기울었다.

저게 현재 상황으로선 뭐 어떻게 손대볼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도 있으니 현재로선 이게 상책이다.

"저거 연구자들인데."

그러다 다리 밑에서 들려오는 속삭이는 목소리에 고개를 내리니, 새하얀 소녀가 보였다.

...얘는 또 왜 여깄어.

"...루시?"

"왜, 문제있어?"

"어떻게 들어온거야? 여기 함부로 못들어오는 곳인데?"

그 말에 피식 코웃음을 치며 말하는 루시.

"지들이 막아볼래야 뭐 얼마나 막을 수 있겠어. 쟤들 입장에서 난 엄청나게 강한 초상능력자 취급일텐데. 마음만 먹으면 대륙 한번정도는 뒤집을 수 있는."

"그래도..."

"그리고, 딱히 막을 이유도 없잖아? 외부인 접촉도 거의 없다시피하고, 일거수일투족 전부 감시되고 있으니 말이야. 그냥 한숨 푹푹 내쉬면서 들여보내주던데?"

따지고보면 하나하나 맞는 말이긴 하다.

맞는 말이긴 한데...

"직장까지 따라온다는게 이런 의미였구나..."

"헿"

뭔가 세상물정 모르는 어린아이를 엄한 곳에 데려온 느낌이라 심정이 오묘하다.

아무튼, 이건 문제가 아니지...

"그나저나 방금 그게 무슨 말이야? 연구자라니...?"

"나도 묻고싶군. 그게 무슨말이지?"

"...!"

갑작스럽게 다가온 인물의 그림자에 놀라서 뒷걸음질 쳐버렸다.

루시는 놀라지도 않다는 듯 되려 고개를 빳빳이 들고 차관님을 바라보고있다.

192의 거구의 노인과, 150도 채 안되는 어린아이가 마주보고 서있다.

'...말려야하나?'

루시라면 또 반말 찍찍 쌀 것 같은데.

하지만 우려와는 다르게 더듬으면서도 나름대로 존댓말을 하는게 그나마 안심이었다.

"...에, 말 그대로...에요. 이성주 쟤, 지금 연구자들 소속...이라구요."

"그걸 네가 어떻게 아는건가?"

"직접 봤으니까요. 이미 전에 만났거든요."

"새로운...연구자들인가. 이유리 요원이 마지막으로 보내왔던..."

답하며 이어지는 루시기 한 말은 간단했다.

그저 그가 모종의 사유로 군과 히어로측을 배신하고 저 새로운 집단에 소속되었다는 것.

그리고 그 모종의 사유란 그 자신의 가족관계와 연관되어 있는 일 일것이라는 점.

"더 자세하게 설명해줄 순 없나?"

"그 이상은 몰라요. 제가 사람 마음을 그렇게 변태처럼 깊게 들여다보는 게 취미도 아니고."

"그런가.."

자신들을 연구자라 자칭하는 집단은 최근 해방자들과 같이 움직였다.

헌데 어째서 지금은 저들만 보이는걸까.

"주변에 해방자가 매복해있을 수도 있다...이 말인건가."

"아니, 아뇨. 그건 아닐거에요. 해방자들은 없어요, 확실하게."

"...?"

아니, 저걸 이렇게 막 밝혀도 되나?

우리도 사서한테 들은 정보잖아.

가뜩이나 증거 없어서 겨우겨우 넘어간 사건을 이렇게 다시 되새기면...

"그런가. 그럼 저곳에 있는건 연구자들 뿐이란 말이군."

...아무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래, 뭐...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니까...

애가 자꾸 사람 놀라게하네.

"(신)연구자들의 목적이 뭔지는 아시죠?"

"알 리가 있나, 우리도 그저 존재만 알고있는 집단인데. 그저 마력파 발생 지역에 주둔하는 부대들을 이따금씩 급습한다는 것 빼고는 전혀 모른다."

"저놈들 목적은, 신을 완전히 자신들 휘하의 개로 부리는거에요. 본래의 연구자들이 진행하고 있던 계획의 연장선이죠."

로­엘로아흐 프로젝트.

완전한 꼭두각시 신을 만들기 위한 계획.

자아조차 없는 신을 현세에 묶어두기 위한 계획이다.

본래의 연구자들이 원했던 목적이 과연 뭔지는 모르지만, 현재의 (신)연구자들이 원하는 목적 하나는 확실하다고 한다.

"쟤들은 태생부터가 극단적인 인간찬가에 물들어있는 애들이죠. 신이던 엘로힘이던 결국 자신들의 개로 부리는 것이 목적이니..."

"그럼, 지금 저곳에서 일어나는 이상현상들은 전부..."

ㅡ해방자들의 목적은, 신이나 엘로힘과 같은 초월적인 존재들을 우리로부터 완전히 격리시키는 것이다.

(신)연구자와 해방자의 목적, 그러니까, 인류의 존속과 번영을 빼면 그들은 완전히 상극이다.

"쓉게 말하자면, 그냥 해방자들 없는 틈 타서 반항좀 하는거지."

"....저게, 지금..."

신이던, 엘로힘이던 상관없다.

지금 모니터 너머에서 벌어지는 저것이 무언가 초월적인 존재를 불러오는 의식이라는 것만 알면 된다.

"두 번째 엘로힘일거에요. 인류가 접촉하는."

ㅡ루시가 이곳으로 다시 돌아옴에 따라서 벌어진 일련의 연쇄과정들.

다른 우주와의 융합, 우주와 우주를 잇는 거대한 산맥의 형성. 그리고, 저 너머의 우주를 탐색하러 간 해방자들의 부재를 틈 타 새로운 엘로힘을 불러들이는 저들의 움직임까지.

'그러고보니 그 산맥은 뭐지...?'

전이마법진의 역할을 하는 중앙아시아의 거대한 산맥은 자신이 인지하기도 전부터 솟아오르고 있던 거라 했는데.

'산맥이 솟아오르기 시작한 시기는, 첫번째 엘로힘이 크로체와 접촉했을때의 시기와 겹친다.'

이건 모르겠다. 정말, 아무런 단서도 없어.

­쿠구구구...

­"...?!"

그 순간 모니터 너머로 엄청난 빛이 발광하기 시작한다.

모두가 놀라며 화면 너머를 바라보니, 하늘로부터 엄청난 양의 마법진이 빽빽하게 수놓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큭...바람이...!"

"저게 뭔...!"

붉은색의 마법진은 돌아가며 서로 발광하고 있다.

굉음과 함께 주변의 먹구름도 세차게 움직이고 있었다.

­콰아아앙ㅡ!

­"마력 반응이 보이질 않습니다!"

그런 소음속에서 하나의 다급한 음성이 들려왔다.

말도 안되는 이야기였다.

"말이 되는거야, 저게?!"

지금껏 벌어진 상황에서 마력이 관측된 순간이 단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심지어 그 단 한번 관측된 마력조차 마력파가 발산한 마력 단 한번이었다.

"우리쪽 우주의 힘은...아닌것같네."

루시가 거대한 모니터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파지직ㅡ!

점점 격화되던 마법진의 움직임과 바람은 이내 한순간 전부 멈춘다.

오디오를 가득 메우며 터져나오는 엄청난 폭음과, 빛들.

푸른색이 모니터의 픽셀들을 가득 메우고, 굉음으로 인해 스피커마저 마비되어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가끔씩 지직거리며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올 뿐.

­티딕...

한참이 흐른 듯 하다.

아무것도 비추지 않던 화면이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드러난 화면의 너머로 보이는 것은 그저...

­휘이이이...

황량한 회색빛의 폐허 중앙에 고고하게 떠있는, 거대한 검은색의 구체 뿐이었다.

"뭐하는거야, 저새끼들."

루시의 엣된 음성이 적막 사이를 비집고 들어왔다.

***

"하아...하아..."

휘날리는 바람에 땀이 흩날린다.

뺨에 묻은 한줄기의 피는 곧 말라버렸다.

"...일단은, 첫번째 과정은 성공한 것 같네."

씨익, 하며 입가에 미소가 새겨졌다.

"그래, 기록됐던 대로..."

비록 봉인의 여파로 거대한 건물 하나가 싸그리 날아가긴 했지만, 이정도면 원하던 결과 이상이다.

저 앞에 고요히 부유하는 구체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이것이, 엘로힘의 봉인 과정인가..."

해방자들이 종전 당시 써먹기로 했던 것. 그러나 미리 눈치챈 '탐구자'에 의해 마법진의 모체가 되던 거대한 산이 통째로 부서지며 수포로 돌아갔던 시도.

"미리 준비해두고, 그 내부로 끌어들인다...굉장하군."

"이렇게 쉽게 생각대로 될 지는 몰랐는데 말이다."

그리고, 그것의 결과물이 우리의 손 안에 들어왔다.

ㅡ피익!

­콰직!

"..!"

가쁜 숨을 몰아쉬며 한숨 돌리고 있던 그 순간 들려오는 파공음.

베리어에 균열이 가는 소리도 함께 들렸다.

"크윽..."

황급히 소리의 근원지를 바라보니 주변에 서있던 인원중 한명의 베리어에 자그마한 물체가 박혀있는 것이 보였다.

"사격이다!"

­타다다다다!

언덕 너머로 나타나는 수십명의 인원들.

가벼운 무장을 갖춘 수십명의 군인들이었다.

"제기랄."

"당장 자리를 떠야한다. 움직여!"

­콰앙ㅡ!

­파각!

"커헉!"

옆의 남성 하나가 단말마와 함께 가슴이 꿰뚫린다.

"초상능력자 혼합 부대인 것 같네."

"승산 가능성은 있나?"

"없어. 정규군들이야, 저것들. 아마 저정도 인원이면 정찰대정도 일거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계속해서 지원이 도착할거야."

귓가로 총탄이 스쳐지나가며 날카로운 바람소리를 만들어낸다.

파각,파각 하며 콘크리트 바닥이 계속해서 파여나가는 모습을 보니 서둘러 빠져나가야 할 모양이다.

"판단 끝났으면 움직여야지, 지금 뭐해? 당장 '예술가'를 챙겨라. 곧바로 어비스로 향한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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