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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해주세요, 마수님!-99화 (99/162)

〈 99화 〉 2부 28. 셔틀

* * *

열린 문을 통해 우리가 들어온 곳은 수백평은 될법한 엄청난 크기의 도서관이었다.

고대 그리스 양식의 고전적인 도서관.

끝이 보이지도 않는 천장의 끝까지 솟아있는 복고풍의 책장에는 알지도 못하는 언어로 쓰여있는 책들이 수두룩하게 꽃혀있었다.

책장에 드문드문 사다리까지 달려있는 걸 봐서는, 그저 장식용이 아니라 실제로 꺼내볼 수 있는, 내용까지 제대로 적힌 책들인 듯 했다.

"지금껏 이 우주에 존재했던 모든 책들이지. 수천년 전의 어린아이가 그저 장난식으로 만든 책일지라도 모두 이곳에 보관되어있다."

"와 미친..."

"대단하네..."

성화연도 나도 그 압도적인 광경에는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근데 자세히 살펴보니 분류번호조차 없었다.

책장에 정리해 둔 방식은 그냥 책이 가장 처음 만들어진 날짜를 기준으로 삼은 듯 했다.

책장 하나당 카테고리 하나. 아래에서 위로 올라갈수록 더 오래된 책들.

저 꼭대기에 놓여진 책엔 과연 무슨 내용이 담겨있을까 궁금해진다.

"...그나저나 책장이 왜 이렇게 많아. 위인전이나 철학서적같은 카테고리만 있는 거 아니었어?"

"세상에는 정의하지 못하는 카테고리도 수두룩 하지. 우리도 모르게 어느샌가 추가된 것들이야."

기묘한 이야기지만 꽤나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정의할 수 없다는 게 따로 존재한다는게.

그럼에도 그 정의할 수 없다는 것과 비슷한 게 또 저렇게 많이 존재한다니.

"사람 생각하는 건 다 비슷비슷 하다는건가..."

"그럴지도 모르지."

거대한 도서관의 중앙에 깔린 털카펫을 밟으며 사서를 따라가다보니, 어느샌가 중앙에 도착한 듯 사거리 비슷하게 네방향으로 길이 나있는 홀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저 중앙에 설치된 거대한 유리돔안에 보이는 건...

"책이 왜저렇게 큰거냐."

"......"

사서는 아무말도 하지 못한다.

그저 삐질삐질 땀만 흘리며 이걸 말해야 하나 말하면 안되나 고민하고 있을 뿐이었다.

"책은 닫혀있는데? 이거 어떻게 봐?"

"이것도 혹시 당신이 발동시키는건가요?"

성화연이 사서를 바라보며 물었다.

유리돔 안으로 출입할 수 있는 장치도 없는 것 같고.

책 주변에서 하늘하늘 물결치며 날아다니는 검은색 잉크와도 비슷한 것이 더욱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이 책의 정체가 뭔진 모르지만, 그래도 이렇게까지 힌트를 주고있는데도 모를까.

얼추 정답은 알아냈다.

"이게 도서관의 본질이구나? 맞지?"

말을 들은 성화연이 갸웃하며 날 바라본다.

막상 말만 들으면 의아해 할 법도 했지만, 난 확신하고 있었다.

도서관이 확실히 대단하긴 하다. 세상에 존재했던 모든 책들을 보관하는 장소라니.

책이 나타나는 원리도, 기록되는 원리도 나로서는 모른다.

하지만 그 대단한 것들도 전부 이 거대한 책 하나의 들러리일 뿐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도서관은 본래 이 책 하나만을 위해 존재했던 장소였으며, 주변의 책장에 꽃힌 저 수천억의 책들은 모두 자연스럽게 이끌려 온 것이다.

"...후우, 뭐...숨겨봤자 어차피 뭔 짓을 써서든 알아내겠지."

"그렇게 중요한거면 딱히 말 안해도 되는데."

애초에 저건 나한텐 그다지 쓸모 없을 것 같고.

사서처럼 이런 도서관에 짱박혀서 한평생을 보내는 놈이라면 모르겠지만 말이다.

"아카식 레코드라는 단어는 알고 있나?"

"아, 유명하지 그거. 세상의 모든 정보를 기록하는 장치 아니야? 판타지 영화같은 데서 엄청 나오는거."

"맞아. 짐작했다시피 저 책이 바로, 그 아카식 레코드라는거다. 지금까지 이 우주에서 일어났던 모든 일들이 기록되어있고, 기록되어 가고 있지."

"..."

이름만 갖다붙인다고 다 아카식 레코드가 되는게 아닌데.

속으로 투덜거렸다.

애초에 아카식 레코드라는 건 초월적인 정보체다. 인간으로서는 절대 접촉할 수 없는 것.

위치해있는 공간도 그렇고, 3차원에 속하질 않는거다.

쉽게 말하자면, 아예 '전체'로부터 떨어져 나와있다.

모든 것들로부터 따로 떨어져 나와 홀로 존재한다.

그러니까...본신으로서의 '나'정도는 되야 아무 거리낌없이 접촉할 수 있는 것이다.

애초에 그건 미래에 일어날 일까지 전부 기록되어있으니까, 저건 본래의 아카식 레코드에 비하면 극단적인 열화판이라는거지.

딱히 그 점을 지적하진 않았다.

그냥 이 도서관을 준 선구자라는 작자가 붙인 이름이겠지.

"나 한번만 봐도 돼?"

"......제발, 그것만은 안돼. 다른 건 어느정도 선에선 다 들어줬지만, 이건 내 목숨이 사라진다 해도 절대로 너한테 보여줄 수가 없다."

"쳇."

안된다는 건 어차피 알고 있었으니 패스.

다시금 발걸음을 움직이기 시작한 사서를 따라 털카펫을 밟으며 걸어갔다.

.

.

.

"...이거 도서관 크기가 대체 얼마나 되는거야?"

"묻지마라. 나도 몰라."

"허..."

다 둘러보기조차 힘들다는건가.

주머니에 들어있는 현실격리장치...어쩌구를 만지작 거렸다.

시간이 이렇게 길어지면 제어조차 힘들어질 게 분명한데. 그냥 지금 써버려야하나?

자칫하다간 이 도서관 자체가 날아가버릴 수 있다.

'위험한데, 그건.'

도서관 내부에서 이렇게 활개치고 다닐 수 있는 이유가 내게 티끌이나마 남아있는 신격때문인데, 그걸 날려버려?

그냥 호랑이굴에 제발로 들어온거나 마찬가지지.

'그냥 최대한 빨리 둘러보고 나가자.'

"후우...다 왔네."

내리깔던 사서의 목소리가 갑작스럽게 처음에 만났던 그때의 목소리로 돌아왔다.

아마 긴장이 다 풀려버린 탓이 아닐까 싶었다.

그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 앞을 바라보니 거대한 원형의 창문이 눈에 들어온다.

저 너머로 보이는 대도시의 화려한 야경.

커다란 책상에 앉은 사서는 지쳤다는 듯 옆에 놓여진 물을 마시며 말한다.

"여기가 끝이다. 뭐, 더 볼 것도 없지."

"이건 뭐야?"

책상의 앞에 놓여진 유난히도 거대한 카펫을 가르키며 말했다.

주변에 날아다니는 금빛의 무수한 마력파편을 봐서는 평범한 카펫은 아닐거다.

"그냥 평범한 공간전이...어쩌구지. 분명 카펫에 마법진이 그려져있긴 한 것 같은데, 발견을 못했네."

"발견을 못해?"

"왜?"

마법진이라면 그려져있는게 당연히 보여야하는 거 아닌가?

마력이 아닌 것­ 그러니까, 신격이라는 게 관여하는 마법만 빼면 마법진이 그려지는 건 상식이다.

...초능력자유형 초상능력자들도 빼고.

걔들은 애초에 몸 전체가 마법진 역할을 하는 놈들이니.

아무튼, 마법진이 없음에도 발동하는 마법이라는 게 얼마나 기이한 일인지는 알 수 있겠지.

내 의문에 답하듯 사서가 뒤이어 말했다.

"마법진이 너무 거대해. 도서관의 끝까지 아무리 가봐도, 마법진의 티끌조차 보이지 않는다. 그냥...이렇게 막대하게 떠다니는 금빛의 마력파편이 마법진이 존재한다는 것의 증거일 뿐이지."

"오..."

"세계 어디든 연결되어있는 포탈로 전이할 수 있는 마법진이니 당연할거다. 딱히 장치같은 게 없는 걸 봐서는 그냥 마법진 하나만 달랑 존재하는 것 같고."

선구자라는 작자들...대단하네.

아니, 그 이전에 마력이 희박한 고향지구에서조차 독자적으로 초상능력자 사회를 이루고 살아갔다는 사실이 더 대단한건가.

"현실판 초과학문명..."

"응?"

"아니야."

잠시간 데스크 주변도 둘러보던 난 사서에게 물었다.

"그러니까, 앞으로 위험해질 때 여기 오면 된다는거지?"

"기왕이면 계속해서 여기서 지내는 게 안전하긴 하겠지만..."

"아, 아무튼. 그냥 다시 융합될때쯤에 와서 시간떼우면 된다는거잖아."

"그렇긴 하지."

그냥 격리장소로 쓸만한 곳이라는 거구나.

상당히 편리한 공간이긴 했다.

세계 곳곳에 위치해있는 포탈만 안다면, 언제 어디서든 여기로 올 수 있다는 거잖아.

'...아니, 잠깐.'

이 말을 반대로하면, 여기서 세계 각지의 원하는 곳으로 딜레이없이 한번에 갈 수 있다.

"포탈셔틀이네."

"?"

완벽한 이용법을 찾아냈다.

.

.

.

포탈 무료이용권을 달라는 말을 들은 사서아저씨의 표정은 상당히 이상해졌다.

내가 수시로 여기 들린다는 건 좋은 일이었지만, 뭔가 목적이 불순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렇게 찍 하며 잠시간만 머물렀다 가는거라면 사실상 격리효과도 없을 게 분명하고.

그래도 쟤가 거절할 명분 따위는 없었다.

내가 탈옥까지 시켜줬는데 뭘 거절해.

정 안되면 그냥 아예 도서관을 통째로 뺏을 생각까지 했다.

얘는 그냥 도서 정리하는 봉사자로 전락시키고.

뭐, 결국은 허가나긴 했다.

이게 마지막이라며 매달리고 나서야.

굳이 충돌해서 피 볼일 없잖아?

아무튼, 그렇게 서로간의 협의는 겨우겨우 끝이났다.

"그나저나 저 창문 배경은 변하질 않네...컴퓨터 배경화면 같은건가."

"나도 모르지, 그냥 예쁘기만 한데."

내 말에 성화연이 답했다.

"그럼 간다~"

"....그래, 빨리 가라."

전보다 비교해 훨씬 수척해진 얼굴의 사서가 귀찮다는 듯 손을 탈탈 흔들며 배웅했다.

서있는 카펫이 금빛으로 물들기 시작하더니, 곧이어 살짝 어지로운 느낌과 함께 주변이 소용돌이 치듯 변화한다.

ㅡ삐이이이이...

이명이 울리던 것도 잠시, 도시의 소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돌아온건가."

"신기한 경험이네."

성화연이 중얼거렸다.

도착한 곳은 이전에 들어왔던 곳이랑은 완전히 다른 장소.

대도시의 낡은 건물 한복판이다.

서울이랑 가까우니까 편리하게 이동한거지.

­띠리리리리링!

"?!"

그러다가 갑자기 미친듯이 들려오는 알람소리에 화들짝 놀라며 성화연을 바라보니 서둘러 폰을 꺼내 화면을 휘적대는 모습이었다.

"...아."

곧이어 내뱉어지는 성화연의 탄식소리.

슬쩍 화면을 바라보니...

"...들킨거야?"

"들킨건 아니고... 루시 너 어디 갔냐고, 감시하던 넌 대체 어디로 증발했냐고 문자 엄청 와있네..."

"아..."

...CCTV만 무력화시켰다.

주변에서 감시하던 인원들 대다수의 기억까지 지웠다.

다만...내가 멍청했다.

계단 위에서 들려오는 발걸음 소리에 고개를 들어 위를 바라보니, 경찰차의 붉은빛과 파란빛이 일렁이는 배경을 두고 내려오는 한명의 인영이 보였다.

"...넌 체계가 좆으로 보이냐, 미친년아?"

마스였다.

"빨리 나와. 튀어야지."

적은 아니라 다행이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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