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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해주세요, 마수님!-98화 (98/162)

〈 98화 〉 2부 27. 싸워라!

* * *

사실 처음 계획을 말했을 때만 해도, 성화연은 극구 반대했다.

그도 그럴게 명색이 히어로 협회 본부장이라는 놈이 이런 불법행위에 가담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겠는가.

하지만 내가 도서관에 대해 살며시 얘기를 꺼내면서 유혹하니, 본인도 혼란해 하는 듯 하더니 이내 서서히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어디선가 많이 본 방식인데 이거.'

대충 성화연이 나랑 처음 만났을때 갑자기 가정방문 약속 잡은거랑 비슷한건가.

이미 당해본 방식인지라 더 능숙하게 쓰는 걸 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방식은 뭐냐고 하길래 그냥 나 혼자 꺼내온다고 했다.

사실 성화연이 수락한 것도 들키지 않을 확률 100%와 후폭풍 없음이라는 전제조건이 갖춰지고 난 후였다.

성화연은 현재의 내 상태, 그러니까 본신과 인간의 인격으로 분리된 현재의 상태를 알지 못하니 딱히 더 설명할 건 없었다.

그러니 일도 이렇게 쉽게 풀린거고.

"왔다~ 뱀 잡아왔다~"

"으와앗!"

공간전이로 인적이 드문 곳의 공원에 확 나타나자 저 앞의 벤치에 앉아있는 성화연이 화들짝 놀라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반쯤은 놀래키려고 장난 친 것도 있으니 당연한 반응이다.

"...으으, 적응 안되네, 진짜..."

시치미를 툭 떼며 갸웃 하고선 성화연을 바라보자, 됐다는 듯 한숨을 푹 내쉬며 내 손에 목덜미가 붙들려 있는 남자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래서, 그 남자가 네가 찾던 사람이야?"

"성능 확실한 네비게이션이지."

"죽은 건 아니지?"

"그럴리가. 힘조절은 확실히 했어."

뭐, 아무튼.

고작 이렇게 끌려왔다고 입을 열거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애초에 독방에 갇혀서 외부의 손길조차 기대할 수 없는 시점에서조차 거절했던 놈인데, 쉽게쉽게 넘어와줄까.

이런 상황에선 정신교육(물리)이 답이었다.

"너 혹시 옥상 열려있는 고층빌딩 알고있는 곳 있냐."

"...?"

뇌리에 확 남을만한 기억을 선사해주면 되겠지.

"루시 너 표정이 소름끼쳐..."

옆에서 투덜대는 성화연은 덤이다.

***

바람소리가 들려온다.

사아아ㅡ하며 숲속에서 들릴법한 바람소리는 아니었다.

광포하게 휘몰아치는 바람소리. 마치 폭풍이 이는 듯한 소리.

방금 전까지 기절해 있었다는 걸 깨달은 것도 바람소리를 인지하고 난 후였다.

"...?"

눈을 떠보니 거대한 대도시가 보인다.

여기저기서 눈이 멀 정도로 화려하고 알록달록한 네온사인과 광고판들이 빛을 내며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었다.

지상을 가득 메운 엄청난 높이의 마천루들이...전부 보인다.

...왜 전부 보이는거지.

"ㅡ아아악?!"

초고층 빌딩 상공에 거꾸로 메달려 있었다는 걸 깨달은 시점에야 현재의 상황이 자각되기 시작했다.

"이 미친년이 진짜ㅡ!"

"말뽄새가 아직도 영 맛이 갔네."

위에서 들려오는 엣된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 보니, 새하얀 소녀가 우습다는 듯 내려다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뭐, 뭐냐! 안된다고 이미 말 했잖아!"

"말 하면 뭐 어쩔건데, 너한텐 선택권이 없는데. 넌 지금 조력자도 세력도 장치도 없어. 아무것도 없지. 반면에 난? 장치 사용을 벌써 며칠은 미뤘다구. 지금 난 신이고 무적이다, 멍청아."

"크윽...!"

빌어먹게도, 전부 팩트다.

지금 상황에서 위치를 보면, 거의 전능에 가까운 꼬맹이 하나와 무력한 인간 하나만이 이곳에 있을 뿐이었다.

"아니, 아니. 사람은 한명 더 있지."

"...?"

"성화연, 너 얘 한번 갈궈볼래?"

...성화연.

루시의 지인이자, 현재는 히어로 협회 한국 지부의 본부장.

'미치겠네, 지위가 너무 높잖아.'

당연히 저런 높으신 분에게 도서관의 정보를 죄다 까발렸다가는, 한번 뒤집어지는 건 일도 아니다.

"비밀로 해준대잖아. 비밀로. 나랑 이미 약속도 했어. 딱 우리끼리만 알고있자고."

"믿을 것 같냐, 빌어먹을 꼬맹이!"

"아니, 이 새끼가 말을 해도 말투를 고칠 생각을 안하네."

­덜컥!

"으가아아아아아악!"

­팍!

"크흑!"

마치 요요를 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다만 내 목숨이 걸린 요요라는게 문제라면 문제지.

"시간은 많으니까. 밤새 야경이나 구경하면서 천천히 얘기해보자? 난 설득할만한 수단은 다 가져왔어."

"...이, 이...이 미친년..."

애꿏게도, 도시 한가득 들려오는 온갖 팝송과 노랫소리는 신나기만 한데 정작 처한 상황이 신나질 않았다.

성화연은 그냥 눈만 피하며 외면하고 있을 뿐이었다.

***

"크흐, 하아..하아..."

"진작 이럴 것이지. 꼴에 고집 세기는."

온몸을 바들바들 떨며 건물의 옥상에 널부러져 있는 뱀대가리 아저씨의 머리를 껴안아줬다.

그새 지능이 유아까지 퇴화해버린 듯 하다.

아니 근데, 이 아저씨는 뱀 대가리도 아니라 그냥 뱀 꼬리 단건데 왜 계속 뱀 대가리라 부르는거지.

그냥 입에 착착 감겨서 그런것 같네.

아무튼.

"자, 가자!"

"크흐, 흐으, 허어..."

"..."

애 상태가 정상이 아니네.

뭐, 정상이 아닌 이유쯤은 도시의 지평선 저 너머에서 떠오르는 해를 보면 알 수 있었다.

성화연은 옥상 입구 벽에 기대서 담요덮고 자고있었으니, 얼마나 오랫동안 그 짓을 반복했는지 알 수 있으리.

"성화연, 일어나! 가자! 가자!"

"아, 으..."

눈을 비비적대며 일어나는 성화연.

"...끝났어? 말 해준거야?"

"말해준 건 아닌데, 자기가 데려다준데. 이 꼴 당해놓고 아직까지 구라를 입에 담을 수 있을리가 없지."

"잔인하네..."

잔인한게 아니라 확실한 방법이라는거다.

아무튼 그렇게 건방진 인간놈의 정신교육은 끝이났고, 결국 유아퇴행해버린 아저씨를 끌어안고선 공간전이를 발동시켰다.

.

.

.

도착한 곳은 거대한 도시 한가운데의 고층빌딩.

주변에 온갖 상가가 들어서있다.

폰을 열어 지도앱을 켜고선 현재의 위치를 캡쳐해 갤러리에 저장해뒀다.

이런 사진은 중요한 자료니까, 혹시라도 네트워크에 연결되서 새어나갈 일이 있게 해서는 안됐다.

어쩄든, 도착해서도 이 뱀대가리는 도저히 꺨 기미를 보이지 않아서 꺨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애가 참 사람 손 많이 가게 만든다.

가능하면 빨리 끝내고, 얘한테서 뻇은 그 장치 다시 가동시켜서 인간으로 돌아와야 하는데.

지금도 하늘에 떠있는 저 검은 지구를 보면 불안하기만 하다.

"끄으으..."

"아, 일어났냐."

신음소리를 내며 마침내 뱀대가리가 일어났다.

해가 점점 중천으로 뜰 무렵.

늦은 오전시간이었다.

그 시간동안 반 강제적으로 노숙을 하게 된 건 일단 무시하자.

"자, 이제 계약 이행 하셔야죠. 아저씨."

"...알겠ㄷ...습니다."

"말투 왜 그래요? 뭐 잘못 먹었어?"

"....."

두려움이 뒤섞인 눈빛이다.

요상한 놈일세. 이거.

예전처럼 그렇게 기분나쁘게 쳐다봤던 건 어디가고, 내 눈만 마주치면 반사적으로 눈을 깐다.

물론 얘 키가 훨씬 크기에 그래봤자 그냥 깔보는 것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지만 말이다.

살며시 묶어뒀떤 손목을 풀자, 건물의 지하로 내려가는 뱀대가리.

...뱀대가리는 좀 그러니까, 그냥 지가 밝힌대로 사서라고 정정하자.

아무튼 그 사서는, 지하에 있는 무수한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여긴 엘리베이터도 없는건가..."

"북쪽 지방이라 아직 치안이 불안정한 틈을 타, 불법으로 개조한 겁니다. 방마다 들어와있는 매점은 대부분 정보상이나 암시장 등, 불법적인 일들이 대부분이구요."

"존댓말 좀 안쓰면 안되냐? 나 너무 어색한데..."

'써도지랄 안써도 지랄'....따위의 투덜거림이 들려온 듯 했지만 나는 아량이 넓으니 그냥 넘어가 주기로 했다.

뒤이어 범죄자의 출신 대부분이 광대라는 말도 들려온다.

"...광대?"

"그래, 광대들. 10년쯤 전에 한반도 총공습 사태 이후로 해체됐던 그들 말이다. 그녀석들은 원체 머릿수도 많고 맛도 가있다보니, 흉악범들 출신 까보면 대부분 광대들이다."

알지못했던 tmi네.

오늘도 새로운 사실을 알아간다.

그렇게 몇분이 지났을까, 마침내 10층 가까이를 내려온 우리는 마침내 건물의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는 낡아 빠진 나무문을 발견하게 됐다.

"어지러울 수도 있다. 전이마법에 마력 안정화, 거기에 기타 잡다한 마법까지 죄다 짬뽕해놓은 곳이라...물론 메인은 차원변경쪽이긴 한데, 그 마법진은 현 인류 수준으로선 알 수 없으니 그다지 신경 쓸 필요는 없다."

"넹."

두근거린다.

대도시의 한가운데에 자리잡은, 불법 개조 건물의 지하 깊숙한곳에 자리잡은 곳.

다른 차원의 도서관으로 향하는 통로.

못참지.

"뭐 따로 주문 외울거라던가, 보안장치같은거 있어?"

"내 마력의 파장 그 자체가 열쇠다."

"...아."

보안도 확실했다.

자기 빼곤 들어갈 수도 없는 곳이라니.

'도서관, 도서관 하면서 집단처럼 행세해봤자 결국은 개인일 뿐이라는건가.'

그냥 휘하 세력이 많은 개인일 뿐인거다.

성화연은 뒤에서 신기하다는 눈빛으로, 열려있는 문 너머의 포탈을 바라본다.

"우와...방금 전까지만 해도 아무것도 없었는데..."

해방자들이나 연구자들도 그렇고, 죄다 오버테크놀로지스러운 것들만 갖고 있으니, 놀라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가자."

그리고 사서의 손짓에 이끌려 따라들어가자, 주변의 풍경은 순식간에 변화하기 시작했다.

***

"...한서우?"

­"네, 저에요."

전화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를 들은 중년의 남성이 중얼거렸다.

이게 몇개월만에 연락된건지.

심지어 이번엔 자기 스스로 연락했단다.

"입국한다고? 이렇게 갑자기?"

­"...솔직히 말해서 그냥 부르기 전에 알아서 가는거에요. 아저씨도 기억하시죠? 얼마 전에 나타난, 그 지구 말이에요."

"아, 맞아. 그렇군..."

한서우의 말을 들은 남성은 납득했다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엘로힘과 비교될 정도로 너무나도 거대한 사건이었으니 말이다. 연구자들의 자료가 세상에 공개됐으니, 다중우주라는 개념도 사람들이 사실로 받아들이지만 눈앞에서 보는 거랑은 천지차이니 말이야."

"듣자하니까, 그 엘로힘도 이미 확보된 것 같더라구요."

"그래. 수색 시작 며칠만에 바로 찾았지. 그렇게 호들갑떨면서 세계 각지에 있는 정예들 모아서 수색대를 꾸렸는데 말이야."

한서우는 웃으며 그 사람들이 정예라 빨리 찾은 것 뿐이라고 말을 받아 쳤다.

"...아무튼, 수색대가 확보한 그것과도 한번 대화 해봐야겠네요...어쩐지 이유를 알 것 같아요."

"허? 이유라니?"

뜬금없이 그 엘로힘과 대화를 하겠다는데, 그 이유가 따로 있다는건가.

"찾은 거 같거든요. 비어있는 곳."

"..."

"이미 들었어요. 세부사항까진 몰라도 히어로 협회가 추측한 것 까지는."

"...너무 기대하진 마라."

"종전 당시의, 잃어버린 3년의 기억에 관여한 엘로힘이라더군요..."

목소리가 어딘가 아련해졌다.

분위기가 이상해져서 남성은 함부로 말을 꺼낼 수조차 없었다.

"아무튼, 도착하면 연락 드릴게요. 무탈하세요."

"그래, 몇년만에 오는건데, 당연히 전 세계 사람들이 쌍수들고 환영해줄거다."

"아하하..."

뭐, 별 일은 없겠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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