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4화 〉 2부 23. 빠져나올 수 없는 감옥
* * *
"하아..하아...그만...그만좀 하면 안되겠나?"
"닥, 닥쳐봐 이새끼야... 한대만 더 맞자. 딱 한대만..."
"그랬다간 죽는다고!"
주변의 건물에 온통 흠집이 나있다.
분명 골목 자체가 부숴질 정도로 날뛰었건만 왜 아직도 이렇게 멀쩡하냐 묻는다면, 저 빌어먹을 놈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콰아아아아아앙!!
땅바닥이 크레이터 마냥 깊게 패이는가 싶더니, 공간 자체가 확장되는 듯 주변의 시야가 확 수축된다.
이게 매 턴마다 반복된다.
콰앙! 콰앙!
폭음이 골목을 가득 메우고, 먼지구름이 한번 휘몰아친다.
바닥에 깔린 콘크리트와 아스팔트가 뒤섞여 공중으로 튀어올랐다.
달려들려고 할 때마다, 코앞에서 뭉개버리려고 할 때마다 언제나 공간이 늘어나는 듯한 느낌이 난다.
단순한 느낌이 아니라 시각적으로도 확연하게 보이는 변화라서, 이게 초상능력과도 비슷한 무언가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앞의 저 남자가 입은 롱코트는 이미 군데군데 찢어져있고, 얼굴도 눈 한쪽이 푸르딩딩하게 물들어있다.
꼴에 헤어스타일까지 망가지진 않는게 굉장히 재수없었다.
"이정도면 충분하지 않나?"
"지랄하네 진짜..."
"그냥 좀 따라와! 이렇게 고집만 부리지 말고! 어차피 이렇게 상위차원과의 연결을 끊는 것도 일시적이라, 막을 수가 없단 말이야!"
제자리에 풀썩 주저 앉으며 남자를 올려다봤다.
"그래서, 데려가면 뭐 어쩔건데? 뭔 대단한 방법이 있길래 무작정 따라오라는거야?"
"...방법은 없다. 하지만, 도서관 전체에는 방금과 비슷한 장치가 수두룩하게 장비되어 있으니, 그저 그곳에 머무르는 것 만으로도 상위차원의 간섭을 피할 수 있을거야."
"하아..."
결국 방법도 없으면서, 무작정 따라오라고 하는건가?
"뒷말을 기억하라고, 뒷말을! 그냥 도서관에 머무르기만 하면 되는거다!"
"언제 끝날지 기약도 없이? 쭉?"
"...만약 무료함을 걱정하는 거라면 그건 걱정..."
"아니, 그게 아니라. 또 다시 나 혼자 떨어져 있으라는 거잖아. 여기서."
쓸데없는 떼쓰기인거 알고 있긴 한데, 그냥 가기 전에 한번은 짚고가고 싶다.
어차피 내가 이곳에 머무르는 한 세계 자체가 멸망할 게 확정되어있다면, 그곳에 머무르는 게 훨씬 안전하겠지.
근데...
"왜 만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또 떨어뜨리려고 하는거냐고..."
"..."
당연하게도 저 남자는 아무말도 못한다. 이건 그냥 투정일 뿐이니까.
애초에 논리적으로 상대하면 지는거다.
생각할 수록 이게 좆같긴 한데, 뭐 어쩌냐.
재수없게 연구자들한테 걸려서, 인생이 이따위로 꼬인거지.
"아아ㅡ"
그냥 발을 쭉 뻗고 앉아선 의미없는 괴성이나 질러댔다.
울 수도 없고 웃을 수도 없으니, 그냥 어정쩡한 기분이네.
골목 저 뒷편을 바라보지만, 환풍구 돌아가는 소리밖엔 들리지 않는다.
라비 이새끼는 언제 오는건지.
한참이 지나도록 남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단순히 내 눈치를 보고 있는 것 뿐이라는 건 말 안해도 알고있다.
한참이 지나고, 결국 한숨을 푹 쉬고선 남자를 올려다본다.
"조건이 있어."
"...뭐지?"
"...나랑 아는 사람들한테, 그...도서관이라는 거 맘대로 개방해줄 수 있어?"
"안된다."
"..."
즉답이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거절이다.
"넌 어떻게 된 애가 낭만같은 것도 없냐. 이런 상황에선 보통 고민하는 체라도 해줘야 하는거 아니냐? 어차피 내가 갑이고, 니가 을일텐데."
"말도 안되는 요구다. 들어줄 수가 없어."
"...하아, 진짜 씹..."
"끝까지 그런 태도로 나오면, 그냥 무력으로 제압하고 데려갈 수도 있다. 알아서 따라올래? 아니면 결국 피를 봐야겠나?"
최대한 무서운 눈빛으로 노려보지만, 꿈쩍도 하지 않는 모습이다.
"...!"
그러다 문득 든 생각에, 남성의 코트를 흘깃 바라봤다.
방금 전 쓴 장치가 코트의 틈 사이로 삐죽 튀어나온 모습이 보였다.
"그 장치를 여러번 쓰면 안되는거야?"
"아, 이거 말인가? 뭐, 널 아예 이 현실 자체에서 격리시키고 싶은 게 아니라면 좋은 생각은 아닐거다. 필요 이상으로 사용했을 때 도착하는 곳은 현실도 이계도 아닌, 중간의 어정쩡한 곳이니."
"...도서관도 거기에 있어?"
"맞다."
현실로부터의 완전한 격리...
그건 그것대로 낭패다.
물어볼게 한가지 더 남아있지만, 이것까지 물었다간 상대가 내 의도를 알아챌 수 있기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에휴, 하며 자리에서 털고 일어났다.
"그래, 그래...가자."
"잘 생각했군."
"그 전에..."
콰아아앙!!
순간, 거대한 빛이 나와 남자의 사이를 가리며 멀리 밀어냈다.
"크윽?!"
저 멀리서 그 남자가 당혹감에 내뱉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되려 웃으며 서둘러 폭심지 근처로 달려갔다.
빠각!
"아악!"
"왜 늦었어! 왜 이렇게 늦었어!"
뒤통수를 후드려 맞은 라비가 눈물을 찔끔 흘리며 날 돌아다보는게 보였다.
"미안, 위치가 하도 변해서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저새끼! 저새끼 죽여버려! 그냥 조져!"
라비의 소매를 붙들고선 뱀꼬리를 단 남자를 향해 삿대질했다.
손가락끝에서 멍청한 표정을 짓고있는 그 남자가 보였다.
"...그건 무리고, 일단은 현행범으로 체포해야 할 것 같다."
"뭐?!"
남자가 당혹감에 외치는 소리.
라비가 뻗은 양손에서 톱니바퀴마냥 돌아가는, 현란한 무늬가 새겨진 붉은색의 거대한 원이 생성됐다.
키리리릭, 하며 응집된 마법에서 튕겨져 나오는 마력이 모두 눈으로 선명하게 보일 지경이었다.
"이런 젠장...!"
곧바로 남자가 자리를 박차며 거리를 벌리지만, 이미 마법은 완성된 뒤였다.
콰아아아아아앙!!!
족히 건물 하나를 증발시킬만한 마법이, 그러나 센스에 의해 위력이 적당히 조절된 마력이 골목을 휩쓸었다.
골목 전체를 집어삼킬 만큼 강대한 마법이었으나, 건물하나 건드리지 않고 휩쓰는 모습이 상당히 인상깊었다.
"외부인은...! 모르면... 빠져있어라!"
물론 한 집단의 수장이라는 남자가 이렇게 쉽게 무력화 될 리는 없었다.
순간 공중에서 쇄도하는 바람의 흐름에 라비가 서둘러 위를 올려다보니, 저 하늘 위에서 추락하는 인영이 보였다.
후욱!
"...뭐..."
대응마법을 준비하던 라비가 놀라며 중얼거렸다.
순간 '높이'가 확장된 것이다.
나야 이미 아까전부터 수없이 겪었기에 놀라울 건 없었지만, 놀랄법도 한 일이었다.
그 덕에 저 위에서 추락하던 남성의 거리는 훨씬 벌어졌고, 자연스레 추락시 발생하는 파괴력도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하게 된다.
고무줄같은거다.
한 순간 공간을 늘렸다가, 충돌 직전 다시금 거리를 좁히며 응집된 파괴력을 한번에 몰아넣는 것.
처음보는 이라면 대응조차 못하고 바로 쓸려나간다.
콰직!!!
"커헉!"
물론 처음본 놈에 한해서.
라비의 머리 위까지 튀어오르며 옆으로 돌려찬 발이, 떨어지는 순간 제대로 들어맞았다.
내 발에 직격으로 맞은 남자의 옆구리에서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난다. 어우.
제대로 쳐맞은 지라, 추락하던 자세 그대로 수직으로 꺾여버린다.
곧바로 벽에 엄청난 소리를 내며 쳐박히는 모습이 꽤나 웃기다.
투둑, 툭...
"...이런 미친..."
라비가 말했다.
소음이 잦아들고, 이내 골목에는 잔잔하게 콘크리트 가루가 떨어지는 소리만이 남았다.
"컥, 커헉..."
탁, 탁. 손을 턴다.
마치 변비가 나은 듯 시원한 기분이었다.
"협...협조 한다고 하지 않았나."
"알바냐. 난 니 그 장치만 있으면 되는데."
"아니, 잠깐...!"
땅바닥에 엎어진 채 헐떡이는 남자에게 다가가선, 장치를 쏙 빼왔다.
"그게 뭐냐?"
"있어. 중요한거."
라비가 묻는 말에 대답해줬다.
장치를 살펴보니, 굉장히 직관적이다. 그냥 딱 버튼 하나와 디스플레이 하나만 있다.
"내놔라! 단 하나밖에 없는 물건이란 말이야!"
"내 알바 아니라니까?"
나중에 다시 상위차원과 연결될 무렵에 작동시키면 된다. 어떻게 사용하는 진 이미 알고 있어.
"대충 넘겨짚지 말라고ㅡ!"
저 말은 무시하자.
마구 발버둥치는 남자의 양 팔을 허리 뒤로 옮기며 라비가 등을 무릎으로 찍어눌렀다.
"예, 예 아저씨. 일단은 가만히 계세요. 수갑 채우기 힘들잖습니까."
"아아아아악ㅡ!!"
등 뒤에서 처절하게 울부짖는 외침이 들려왔다.
꼴 좋다. 뱀대가리.
***
"윤서아! 서아야! 이리로 와봐!"
"예?"
여기저기서 시끄러운 소리가 울려퍼지는 광장.
가끔가다 사람들이 뭘 잘못 건드린건지, 유난히 낡은 건물 하나가 통째로 무너진 사건도 있었지만 그 사건 이후 다들 건물을 건드릴땐 조심스럽게 움직이고 있다.
골목 사이사이마다 간이천막을 세우며 전초기지를 세우고 있는 팀도 있다.
각 팀들이 모두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가운데, 광장의 한가운데에 거대한 마법진을 그리는 이들이 있다.
그들에게로 다가가자, 아직 덜 완성된 마법진 하나가 보였다.
"좌표만 알면 돼! 너 어비스나, 미개척지 좌표 외운거 있지?"
"아, 네. 물론이죠."
마법진은 굉장히 거대했다.
하늘에서 내려다봐도 아마 확연히 보일 것이다.
그도 그럴게, 이건 행성간의 텔레포트 마법진이다.
어비스도 없이 이딴짓을 해놓고 성공할 수 있을까?
물론 성공이야 하겠지만, 정확도가 개판이라 자칫하다간 어디 대도시 한복판에 나타날 수도 있다.
"괜찮아, 중간차원쪽이야. 도서관 있는 쪽."
"아, 거기면..."
저쪽 한구석에 자리잡은, 마법진 전체로 봤을때도 굉장히 복잡한 부분이 뭔가 싶었는데 차원 변경쪽이었나보다.
속으로 납득하며, 품속에 넣어둔 수첩을 눈앞의 남성에게 건냈다.
그 수첩을 건네받은 팀은 이내 자기들끼리 굉장히 복잡해보이는 연산을 시작하더니, 이내 마법진의 빈곳을 새겨넣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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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된건가?"
"그래, 완성이야. 확실히 활성화도 되어있고. 실패할 일은 없어."
"...그럼 일단 2팀에서 23팀까지만 이동하도록 하지. 아직 조사할 것도 남았고, 상주할 인원도 필요하다."
"옙!"
많은 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광장의 한군데에서 거대한 마법진이 가동된다.
뱅글뱅글 돌아가며 온갖 마력들을 흩뿌리는 모습이, 확실히 규격외로 거대한 마법진이긴 했다.
마력의 잔해들이 수도없이 나온다.
파직!
그러나, 그렇게 잘 진행되던 것도 잠시 뿐.
얼마 지나지 않아 실없는 소리를 내며 마법진이 푸슉, 하며 꺼졌다.
"...어?"
파아앗!
동시에 하늘에서 발생되는 거대한 빛.
모두가 눈을 가리며 하늘을 올려다본다.
"...어라?"
그리고 드러난 하늘에는, 아무것도 없다.
지구가 사라져있었다.
"...저기요?"
멍하니 중얼거리는 누군가의 목소리만이 적막한 광장을 가득 메웠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