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구원해주세요, 마수님!-90화 (90/162)

〈 90화 〉 2부 19. 빛기둥

* * *

[...준비합시다.]

주변의 해방자들 모두가 모여들었다.

연구자들은, 아직 이곳에서 할 일이 남았다며 조금 더 남겠다고 한다.

'도서관'쪽 인물들과는 아직 연락이 되지 않고 있기에, 일단은 미리 명령받은 대로 대형을 잡았다.

전세계에서 활동하는 해방자들 중 거의 80%가까이가 모여있다보니, 확실히 규모는 어마어마했다.

어지간한 작은 국가의 군대 규모는 될 법한 사람 수였다. 이정도면 120만명 정도는 되려나.

이번 작전의 규모에 비하면 그다지 많은 인원도 아니었지만.

이곳에서의 작전을 모두 동결상태로 돌리고 올 정도로 해당 사안이 최우선이 됐으니 말이다.

[앞으로 5분뒤입니다. 준비 철저히 하세요.]

지금 있는 곳은 그라운드 제로.

이전부터 살아있는 산이 솟아오르고 있다는 흉흉한 소문이 무성한 곳이었다.

산이 솟아오르기 시작한 시기는 종전 직전 6개월 무렵.

그러니까...아마, 이곳 내부에서 두번째 엘로힘의 '종속'이 일어났을 때였다.

광대들의 우두머리였던 '크로체'라는 인물이 그 대상이었고.

크로체가 토벌된 후에도, 그 산들은 계속해서 솟아오르며 나선같은 모양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이미 위성으로 충분히 관측된 사실이기에, 관련된 사람이라면 모를 수가 없다. 민간인에겐 철저히 기밀이였으나, 어차피 우리 입장에서 정부쪽 또한 민간인이나 마찬가지다.

누가봐도 명백할 정도로 거대한 원을 그리며 솟아오르는 산들.

그리고 중심에 있는 엘로힘의 잔해.

­막대한 양의 마력이 그 산을 중심으로 소용돌이 치고 있다. 그리고 명백하게 원이 완성되는 순간 마력의 활동성은 절정에 달할 것이 분명하다.

도서관으로부터 내려온 그 문구는 꽤나 난해했다.

하지만 말만 어렵지 사실상 그 속에 숨은 뜻은 명확했다.

산맥이 완벽한 원을 완성시키는 순간, 어떤 일이든 일어난다.

반드시.

그리고 그 완성날짜는 오늘.

정밀하게 계산된 날짜였고, 그것이 엘로힘과 연관된 이상 우리도 이곳에서 기다릴 수밖에 없는거다.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절대로 상황에 지배당하지 않는다.]

그리고, 예정 시각은 다가왔다.

­쿠구구...

그리고, 아득한 평야 너머로 울리는 하나의 소리.

폭음은 아니었지만, 마음속 깊은곳에서 울리는 느낌이다.

초월적인 크기의 무언가가 저 머나먼 곳에서 움직이면 이런 소리가 날 것이다.

그 굉음은 시시각각 가까워지기 시작한다.

하늘이 일순간 하얗게 물들었다가, 다시금 검게 물든다.

언뜻 별이 보이는 듯 하지만, 다시금 태양이 비춘다.

모여있는 무수한 해방자들은 두려움따위는 느끼지 않았다.

­콰과광­!

땅이 태동하고, 소리는 천지를 뒤흔든다.

마침내 거대한 빛이 번쩍이고, 알지도 못할 거대한 마법이 작동했다.

"끄윽...!"

견디기 힘든 압력이었다.

몸은 공중에 붕 뜬 듯, 사지를 제대로 가늠할 수가 없었다.

여기저기 흔들리고, 부딪치고, 뒤흔들렸다.

눈을 떠도 보이는 건 그저 검은 장막만이 보였다.

­콰아앙...

소리는 바스라지듯 멀어지더니, 이내 완전히 잦아든다.

터질듯한 굉음과 진동도 어느샌가 서서히 잦아들었다.

아직 귀엔 이명이 남아있고, 눈은 강렬한 빛에 잠시간 멀어버려 땅을 짚고 그대로 기다렸다.

"...여긴."

그리고 마침내 모든 소음과 빛이 잦아들었을 때 보인 광경이란, 다 헤지고 무너져 폐허가 되어버린 거대한 도시의 풍경이었다.

"타임스퀘어?"

그리고 그곳은, 명백하게 아직 멀쩡히 남아있는 지구의 그곳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

­[속보입니다. 현지 시각 오후 3시 17분경, 중앙아시아 레카 강 근방에서 목격된 의문의...]

호텔에서 자다 말고 일어났다. 벽 한면에 자리한 거대한 창문 너머로 들어오는 햇살에 잠시간 눈을 찌푸리고 창밖을 바라보자, 저 아래로 고층빌딩들이 즐비해있는 모습이 보인다.

그러다 문득 들려오는 아나운서의 소리에 TV쪽을 바라보니, 성화연이 다 풀어헤쳐진 머리로 뉴스를 심각하게 보고있었다.

뉴스에서 자료영상이라고 나오는 비디오에선, 태양이 비추던 하늘을 어둡게 보이게 할 만큼 거대한 푸른색의 빛기둥이 창공을 향해 높이 솟아오르는 모습이 재생된다.

"...술 깼냐?"

자느라 흐뜨러진 잠옷을 탁탁 두들기며 펴줬다.

성화연 쟤는 아직도 숙취가 깨질 않은건지 머리를 정리할 생각도 못한다.

"아, 루시...응."

사람 힘 다 빠지게 하는 목소리다.

벌써부터 피곤한 기색이 역력하게 느껴지는게, 아마 저 뉴스에서 보도하는 일이 뭔가 문제가 있다는 거겠지.

그 순간, 성화연의 휴대전화가 우렁차게 울렸다.

"하아...미치겠다..."

마른세수를 한 성화연은 나에게 양해를 구하고선 휴대전화를 들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뭐야..."

펄럭거리는 왼팔의 소매를 붙들어매고선 방금전까지 성화연이 앉아있던 소파에 튕기듯 올라타, 보도되고 있는 뉴스를 자세히 보기 시작했다.

인터뷰를 하는 영상인 듯 웬 아저씨가 나와서 마이크를 향해 과장되게 말한다. 러시아어였다.

­"옆집이 무너졌다길래 구경갔죠, 근데 돌아오니 우리 집도 무너진거에요! 말도 못했죠..."

­[해당 빛기둥의 여파로 발생한 규모 9.2의 대지진으로 인해 순조롭게 진행되던 재건축 사업조차 다시 지지부진해진 상황입니다...]

무슨 일인지 알 것 같네.

레카 강 근방이라 했을 때부터 알아챘어야 했는데.

중앙아시아쪽의 유의할만한 사항중에는 그 산밖에 없다.

솟아오르던 그 산.

내가 이전에 확인했을 때만 해도 아직 미완성된 상태였지만, 이미 형태가 어느정도 잡힌 상황이었기에 빠른 시일 내로 뭔가 일이 터질거란 건 알고 있었다.

"윤서아는 갔으려나..."

엘로힘과 관련된 곳이라면 어디든 가는 놈들이니까, 아마 쟤들도 저기 있었겠지?

부디 그냥 저게 그냥 멋지고 요란할 뿐인 레이저쇼라 다 증발해버렸으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물론 엘로힘같은게 연관된 이상 그럴 가능성은 지극히 낮았지만.

­[사상자의 규모는 현재 집계되지 않았으며, 후속보도가 들어오는대로...]

­띡,띡

어느 채널을 돌려봐도 모두 긴급속보 뿐이다.

재미없네.

통화를 마친 성화연이 화장실에서 나왔다.

"...뭐래?"

"바로 돌아오래. 지금 당장... 미안해 루시, 오늘 오후에 가기로 한 곳은 같이 못갈 것 같네."

"아니, 미안할 것 까지야..."

어차피 피곤한 건 넌데요.

오늘 오후에 가기로 한 곳은 하늘에 떠있는 저 거대한 물체를 탐사하기 위한 탐사선을 발사하는 우주선의 발사장이다.

북미쪽에 있어 미리 어비스 예약까지 다 잡아놨는데, 아깝네.

의외로 저 거대한 물체는 따로 은폐하지도 않았다고 한다.

그도 그럴게, 어차피 저정도 수준의 크기면 아마추어 천문학자들에게도 손쉽게 발견되기 때문이다.

비록 오늘 발생한 저 거대한 빛기둥 사건은 민간인중엔 아무도 모르겠지만.

"발사장은 나 혼자서라도 가야하나?"

굳이 갈 필요는 없지만, 그냥 단순히 관광목적이다.

지난 30년가까이 대재앙 사태 이후로 퇴보해왔던 우주산업의 발전 역사를 보기 위해...서는 아니고.

그냥 단순히, 내가 지금껏 우주선이 발사되는 장면을 TV나 신문으로밖에 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냥 어린애다운 호기심일 뿐이었다.

'...어린애도 아닌데 뭔....'

...그러고보니 이것도 꽤 심각한 문제였네.

지금껏 난 생물학적으로 성인이란 걸 경험한 적이 없구나.

평생을 어린애로 살아가야한다.

허, 참.

좋은건진 나쁜건진 잘 모르겠네.

.

.

.

"아무튼, 라비가 데려다준댔으니까 혼자 호텔에 있을 필요는 없어. 둘이 하루 잘 보내봐!"

"아니, 야!"

­부웅ㅡ

성화연이 승용차를 타고 저 멀리 떠나간다.

내 옆에 얼빠진 듯 서있는 이 남자도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멍하니 승용차의 뒷꽁무니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 그래서...그렇댄다. 잘부탁한다."

"아, 돌겠네."

뜬금없이 라비를 부르길레 뭔가 싶었는데, 그냥 위탁이었구나.

얘는 너무 어색해서 도무지 잘 지낼 수가 없는데, 괜찮으려나?

뻘쭘하게 손만 뻗고 가만히 서있는 라비가 안쓰러워서 손을 맞잡아줬다.

"어비스 예약 시간이 언제라고 그랬...죠?"

"오후 1시쯤이니까, 아직 3시간 정도는 여유 남아있네. 지금 바로 공항 출발하면 될 것 같아."

"...네."

존댓말이 어색했다. 편하게 대해야 할지 존대를 해야할지 제대로 감이 잡히질 않았다.

분명 아는 사이였기는 한데, 너무 어색한 사이여서 그런가보네. 그냥 그러려니 넘기기로 했다.

아무튼, 그렇게 라비의 SUV를 타고 공항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

.

.

"밥이라도 먹을래?"

"왜 저 보는 사람들은 다 그런얘기에요?"

"아니, 어...미안..."

"미안할 것 까지는 없고..."

원래 할 거 없을땐 애 밥이라도 먹여주라고 성화연이 시킨걸테니.

호의야 고맙지만 너무 많이 쳐먹어서야 그건 또 질린다.

"몇번 출구?"

"아, RM­1출구야. 따라와."

내가 죽어도 손만큼은 맞잡기 싫다고 쌩때를 부렸기에 그냥 잠자코 걸어갈 뿐이다.

왼쪽 눈을 가린 안대가 괜히 신경쓰여서 만지작 거렸다.

그리고, 마침내 승강장에 도착했다.

"오..."

사람이 많았다.

엄청나게 많았다.

주변으로 정체모를 거대한 박스들까지 차례대로 나열되어 있었다.

새하얀 크롬으로 도색된 장치의 모습은, 내가 이전에 봤던 어비스의 모습과는 달리 상당히 세련된 모습이었다.

아마 인간 나름대로의 부차적인 디자인이 가미된 모양이었다. 이젠 이런것도 사업의 일환이구나.

"한번에 옮길 때 최대한 많이 옮기려고 하는거야. 텔레포트에 질량제한 같은 게 없으니까."

"신기하네요."

민간인보다는 확실히 군사관계자가 많이 보였다.

가끔이나마 보인 민간인들도, 전부 대부호같은 분위기를 풀풀 풍겨대는 정장차림에 드레스차림이었고.

이런곳에 나처럼 초라한 행색이 껴들어가도 되나 싶었지만, 놀랍게도 라비의 허가증 한번에 그냥 통과됐다.

대단하네.

[모두 적정거리를 지켜 안전라인에 서주시길 바랍니다. 가동 시작까지 앞으로 10분 남았읍니다. 화물 정리...]

거대한 홀 내부에 울리는 하나의 음성.

무슨 군용 차고지같은 느낌이다.

"조금 어지러울거야. 참아."

"아, 네."

시간이 되자 붉은 마법진이 발동되고, 이내 다음순간 우리는 필라델피아의 공항의 RM­1출구에 서있었다.

"...으..."

안색이 파랗게 질린 라비가 보였다.

손으로 입을 막고있는 게, 아마 방금 전 텔레포트의 여파겠지.

"본인이 더 못참는구만, 뭘."

"윽."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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