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4화 〉 2부 13. 잊혀진 것들
* * *
전능따위 없고, 전지따위 없다.
뭐든 다 상대적인 법이니까.
그러니까 광적으로 정보에 집착하는 이런 행태도, 다른 생물에 비교하면 딱히 문제될 점은 없다.
스스로가 이상하다는 점은 어차피 처음부터 질리도록 알고 있던 사실이니.
뭐, 사람이란 게 다 그런거잖아?
***
공터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오로지, 그저 눈뿐이다.
하늘에서 풀풀 내리는 그런 눈이 아니라, 말 그대로 생물의 눈.
물론 이건 일반적인 사람한테 보이는 그런게 아니다.
만약 보이는 거라면 진작에 뉴스타고 사람 모여들고 난리도 아니었겠지.
단순히, 저 틈 너머로 보이는 무수한 눈들이 나를 주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잔해라는 이름을 누가 붙였는진 몰라도, 작명 한번 잘했네."
저 괴이한 것들을 보고도, 이상할 정도로 아무 느낌도 들지 않는다.
마치 원래부터 나의 일부였던 것인 양, 익숙할 뿐이다.
나의 움직임이, 나의 인생이, 나의 기억이.
세계의 기억이, 전부 잔해인가.
거대한 덩어리 하나에서 떨어져 나온 것.
"...그 덩어리가 뭔진...까보면 알겠지."
손을 탁 탁 털었다.
장막의 앞으로 다가서자, 무수한 푸른색의 눈들이 일제히 돌아간다.
콰직!
손을 집어넣었다.
장막속에서 요동치는 온갖 움직임과 생각들과 사념들이 전해져왔다.
쿠드득!
그리고, 터져나오는 새하얀 빛과 함께 공간이 찢겨나가며, 마력파가 발산된다.
그와 동시에 주변의 풍경은 급속히 변화하기 시작했다.
***
"뭐, 무슨..?!"
애애애애애앵
그 시각, 중앙아시아 마력감지 센터는 시스템이 마비됐다.
마력파란 것이, 지금껏 죽 느껴지던 전조증상조차 싸그리 무시한 채 갑작스럽게 발산됐기 때문이다.
일정 주기로 발산하던 '작은' 마력파로, 미리 전조증상을 파악했으나... 오늘은 특히나 이상했다.
단순히 딱 한번 발생한 작은 마력파가, 급작스럽게 거대한 마력파로 변질됐기 때문이다.
당연히 사람들은 정신이 나가버렸고, 온갖 전화소리와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가 사무실 내부를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이런 씨발..."
그 탁자의 한가운데에 앉아있는 중년의 남성 한명이 중얼거렸다.
그도 그럴게, 마력파 보고를 제대로 못했으니, 위에서 갈굴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아니 어쩌면, 새로운 타입일 수도...!'
"..."
잠시 생각해보던 사내는 이내 고개를 푹 숙이곤 중얼거렸다.
"하아...그럼 더 귀찮아지겠네."
전조증상조차 파악 못하는 마력파라. 당연히 인력이 훨씬 더 많이 굴러갈 게 분명했고, 그로 인해 인명피해라도 발생하면 그날이야 말로 끝장이었다.
그는 통신기를 툭툭 두드리고선 소리쳤다.
"긴급 투입조 당장 가동시켜! 어비스 빨리 준비시키고!"
"네, 알겠습니다!"
이렇게 예상못한 상황이 벌어진다고 해도 결국 움직여야한다.
당장이라도 피해가 발생하기 전에, 긴급조라도 투입시켜서 막아야한다.
"그나저나 이러면, 해방자들 그자식들도 못알아차렸을텐데..."
어쩌면, 쌤쌤일수도 있겠다.
군인들이 도착하기 전까지 시간만 잘 끈다면, 어찌어찌 잘 넘어갈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런 희망적인 생각을 하며 마음속의 불안을 잠재우던 그였다.
해방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한건, 대략 대재앙 이후 10년쯤이었다.
그들이 나타나자, 그 대혼란의 시절 소리소문없이 마을같은 것이 사라지는 일이 줄기 시작했으니, 정부에서는 얼마나 반겼을까.
그러나 오히려 그것이 다른 재앙이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소리소문없이 사라지는 마을의 규모는 줄었다.
그러나 여전히 마을이 소리소문 없이 사라지는 일은 흔했다.
그리고 그곳엔, 언제나 해방자들과 마력파가 쓸고갔고, 남겨진 곳에 있던 건 그저 무수한 수의 민간인 사상자들 뿐이었다.
""
남겨진 생존자도 단연코 제정신이라 보기엔 힘들었다.
알아듣지도 못할 말을 중얼거리며 완전히 폐인이 된 사람이 부지기수에, 심지어 몇몇은 극도의 공격성을 띄기까지 했다.
사실상 범인은 명확한 상태였다.
하지만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또 그들이 왜 이런짓을 벌이는지 규명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사라지는 민간인의 수가 줄었는데, 어째서 그들이 '악'취급을 받아야 하냐고.
하지만 사람이란 게 그런거다.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 희생자보다, 눈 앞에 보이는 처참하게 망가진 희생자가 더 마음을 움직인다.
마력파가 발생하던 순간마다 사라지던 마을의 사건은 이제, 마력파가 발생하는 곳마다 나타나 사람들을 무차별 학살하고 다니는 집단의 이야기로 변모되었다.
진실은 알지 못한채, 그저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으로.
엘로힘과 잔해라는 존재가 모두에게 알려지는 것은, 조금 더 훗날의 이야기다.
***
눈부신 태양빛이 하늘을 가린다.
갑작스러운 광량변화에 눈이 적응을 못해, 하나뿐인 팔로 눈을 가렸다.
"으으..."
이내 빛이 안정화되고, 시야가 돌아오자, 드디어 눈앞의 광경을 볼 수 있게 되었다.
"허..."
고원이었다.
하늘 높이 솟아오른, 구름을 카펫마냥 깔아둔 고원.
굉장히 익숙한 곳이네.
당연히, 알다마다.
알테리지아가 내 뇌를 잠재웠을때, 내 무의식 가장 깊은 곳으로 떨어졌을때, 보았던 공간이다.
어쩌면 이것은 내가 이상향으로 그리는 공간, 내가 가장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공간.
딱 그런 곳이었다.
저 너머에는 자그마한 오두막집이 보이고, 밀밭이 한가득 펼쳐져있다.
하늘은 구름 한점 없이 푸른 것이, 딱 그때의 상황이다.
'...세계의, 기억인가...'
세계의 모든 정보.
미어터지고 넘쳐나는, 모든 정보들이었다.
그것들은 검게 뭉쳐 알아볼 수 없는 형태로 변하지만, 본질은 같다.
이 우주에 존재하던 모든 것들.
이제는 사라져 더는 볼 수 없는 것들.
그것들이 잔해였다.
사람들이 꿈에 그리던 풍경조차, 잔해였다.
한발짝 한발짝 옮길 때마다 풍경은 변해간다.
어느때는 스팀펑크풍의 북적이는 도시로, 어느때는 핵폭격을 맞은 싸늘한 도시로.
또 어느때는 인간의 흔적따윈 찾아볼 수 없는 푸르른 숲으로 변했다.
정신나갈것처럼 시시각각 변하는 모습이다.
그럼에도 그 광경들이 모두 익숙하다.
처음보는 광경들이 아니다.
'이런 것도 정보로 취급하는거냐...'
나의 기억이었다.
엘로힘의 대체현실, 쉽게 말하면 '이면세계'
여타 판타지물에서 수도없이 나오던 그런거다.
현실에 겹쳐있는 또 하나의 우주.
그런 곳에서도 나는 도피를 반복했다고 했잖아.
그런 곳에서 내가 만들어 도망친 세계가, 우주가, 현실이.
모두 변하는 현실이었다.
이 공간에서 내 눈앞에 나타나는 모든 풍경이, 내가 만들어냈던 세계였고, 인생이었다.
종국에 도착한 곳은 본래의 세계.
"...뭐야."
뭐지.
무슨 일이 일어난거지.
혹시, 균열에서 튕겨져 나온건가?
"그건 아닌데..."
하늘이 검다.
분명 들어올 적에는 해 쨍쨍한 오후였으나, 어째선지 지금은 밤이었다.
혹시 균열 속에서는 시간이 급속도로 흘러가는 걸까?
그런 의문을 품던 나는, 이내 위화감의 정체를 깨닫고 나선 허탈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하늘에 별이 없었다.
아무것도.
하얗게 빛나는 점들은 모두 숨은 듯 사라져 있었다.
마지막에 도착한 건 나의 세계. 현실.
"나보고 뭐 어쩌라고..."
아직도 균열 내부였지만, 잔해들이 튕겨져 나오진 않았다.
다만 하늘의 별들을 가린 저 검은 것들 모두가 잔해였다.
뭘 원하는 건지 그저 띠껍게 눈만 깜빡이는 잔해들.
쉽사리 다가오질 못하는 건지, 아니면 그냥 내가 더러워서 다가오기 싫은건지.
"빨리 나가야 할텐데 말이야."
마력파란 본래 사람들을 너무나도 많이 끌어들인다.
여기 엮여있는 세력만 한둘이 아니었다.
애초에 이게 다 해방자들 때문이야.
걔들이 정부며 히어로협회며 죄다 끌여들였잖아.
콰아앙!!
공간이 진동한다.
"...에이씨..."
물론 균열 속에서 울리는 충격은 아니었다.
저 바깥에서 누군가 싸우고있다.
그리고 그것은 필시, 작은 충돌이 아니었다.
세력 대 세력으로. 그리고 분명히 그 세력중 하나는 해방자들.
"나가야겠네."
어비스의 존재를 다시금 자각했다.
저 하늘을 올려다보니, 다시금 끔뻑이는 무수한 눈들이 보인다.
나의 정보였던 것들이, 세계의 정보였던 것들이 저 위에 있다.
잔해는 그냥 그런 것들이다.
더 이상 기억할 사람이 없거나, 기억할 필요가 없어 잊혀진 정보들.
먼 고대에 잊힌 영웅들과, 이야기들과, 무의식 속에 남은 꿈들.
그런 거다.
그런 것들은 이내 고이고 썩어 결국 부정형의 광기로 변한다.
잊혀진 생각의 종착점은 광기였다.
이것이, 인간이 꿈만 쫓으며 살 수 없는 이유였다.
"신이라는 작자가 진짜..."
만약에 이 세상을 설계한 신이 있다면, 죽빵이나 한대 갈겨주고 싶다.
인생도 그렇고, 진실도 그렇고, 쓰레기의 처리 방식도 너무 좆같이 만들어뒀다.
"에휴..."
뭐, 어차피 그 멍청한 신도 이젠 이미 사라졌으니 따질 놈은 없으려나.
애초에 세상이란 게 신의 설계대로 창조된 것도 아닌데...
잡생각은 그만뒀다.
지금은, 저 바깥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투가 우선이었다.
검은색과 붉은색이 만나며, 하늘을 가린다.
태양은 이내 밝게 떠오르며, 저 하늘을 가리고 있는 모든 것을 태워버렸다.
어째선지 소멸함에도 고통이나 절망따위가 아니라, 그저 지켜보고만 있는 잊혀진 정보들이었다.
잔해들이 고여 썩어있던 공간은 어느샌가 사라지고, 다시금 파란 하늘과 혈액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