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3화 〉 2부 12. 거짓된 신
* * *
방 안은 퍽 평범했다.
물론 상대적으로 말이야.
강박적일 정도로 흰색과 검은색으로만 치장해 둔 연구소 내부에 이런 사람맛 나는 공간이 있다는 게 쉽사리 납득이 되질 않았다.
'연구자들도 역시 사람이었던 건가...'
뭐, 생리활동은 어쩔 수 없는 거니까.
길게 나 있는 복도 양옆으로 각각 숙소가 있었다.
숙소 내부에는 간단한 침대에, 개인용 탁자 같은 것들이 마련되어 있다.
무늬따위는 없이 밋밋한 장식들 뿐이지만, 뭐 어때.
연구자들의 사적인 공간을 이렇게 보는 것도 나름 신선한 경험이다.
그리고 확실히, 이런 개인적인 공간이라면 연구자들이라는 집단의, 그러니까... 엘로힘과 완전히 동화된 하나의 '군체'가 아니라 개개인과 관련된 자료들을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지만.
그래도, 불행 중의 다행이었다.
*
수첩 하나를 발견했다.
마치, 누가 봐달라는 듯이 대놓고 'DIARY'라고, 표지에 적혀 있는 책이었다.
내가 이곳을 둘러본 바에 따르면, 연구자들은 개인적인 기록같은 건 거의 남기질 않았다.
이따금, 엘로힘이라는 것에 종속되어 연구자가 되기 이전 인간이었을 적의 기록같은 게 튀어나오긴 했으나, 그것도 본인이 의도적으로 남긴 기록이라 보기에는 어려웠다.
그러니까 이런 일기같은 것이 특별한 거다.
이런 숙소같은 게 있다고 쳐도, 결국 연구자들이란 엘로힘이라는 하이브마인드 아래에 종속된 군체였을 뿐이니까.
이 숙소는 그저, 본질이 인간이라는 특성의 한계 때문에 지어진 걸 수도 있다.
아무튼.
수첩은 일지였다. 누군가, 남들이 보기를 원하며 쓰인 일지.
그리고 그 수첩을 다 읽어 본 나는, 그냥 흘려 넘길 수가 없게 되어 버렸다.
"...기묘하네."
필체는 정갈했지만, 내용은 그렇지 못했다.
일단 내용 자체는 오늘의 연구는 어떠했니, 앞으로의 목적은 어쩌니 하는, 지극하게 '연구자'스러운 재미없는 내용들밖에 없었다.
하지만 내가 위화감을 느낀 건 단순히 기분 탓이 아니었다.
아무리 다시 읽어봐도, 일지는 뭔가 이상했다.
마치 자신을 속이기 위해 쓴 글 같았다.
'어째서?'
어차피 생각같은 건, 엘로힘과 연결돼 있어서 마음대로 허튼 생각 먹었다간 목 날아가는 건 순식간일 텐데.
애초에 '군체'잖아. 다른 생각을 먹는다는 전제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하지만 페이지의 다른 부분들을 읽어 본 나는 이내 납득해 버렸다.
"미친 새끼들 이거..."
아마, 연구자들 전체가 그랬던 듯하다.
연구자들 전체가, 자기최면으로 교묘하게 생각을 바꾼다.
엘로힘이 눈치채지 못하게, 그러나 조금씩 비틀려가게끔.
...그들이 원한 건, 강대한 힘이었다.
그저 끌려가는 자로서만 사는 게 아닌, 우주 자체를 개변할 힘을 지님으로서 주인으로 거듭나는 것.
'누구의?'
자기 자신의.
그들은 인간이었고, 결국 욕망조차 인간의 것을 따라간다.
아무리 엘로힘의 정신이 그들의 머리와 동화되었다 해도, 종 자체를 바꿀 순 없는 탓이었나보다.
개미에게 인간의 지식을 주입한다 한들, 그것들은 결국 개미다.
그들이 인간처럼 행동하고, 생각해도.
결국 그들은 본인의 본질을 잊지 못한다.
"..."
이러니 망한 거지.
종국에는 결국, 엘로힘이 그들을 버리는 것으로 끝이난다.
아무리 교묘하게 자기 자신을 최면시킨다 해도, 결국 본질적인 생각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 법이다.
'자업자득이지, 뭐.'
어차피 힘을 탐하다 엘로힘에게 홀려 넘어간 것도 그들이고, 배신칠 궁리만 하다가 되려 버림받은 것도 그들이다.
애초부터, 당해도 싼 놈들이었던 거다.
"...끝났나."
이 이상의 정보는, 아무래도 더 얻을 수는 없을 듯하다.
그 어떤 곳에도, 상위차원에 관한 지식은 없다.
오로지 '나'에 대한 정보만이 전부였다.
하긴, 엘로힘 조차 그냥 좀 쎌 뿐인 생명체에 불과한걸.
이 우주 너머의 지식을 여기서 알 수 있을 리가 없었던 걸까.
그래도 나름 얘들은 그쪽 분야 연구를 활발하게 했을 줄 알았는데.
나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숙소를 한번 돌아봤다.
여러모로, 복잡한 생각이 들게 하는 쓰레기들이었다.
*
전지전능.
보통, 신이라는 작자에게 붇는 수식어다.
하지만 나에겐 전지라는 건 없지. 모르는 게 언제나 수두룩하다.
사실 말하자면, 신이라는 것 자체도 전지전능따위는 엿바꿔먹고 그냥 갓난아기나 다름없는 상태지만.
생명체도 아닌 것에게 지성같은걸 기대하면 오산이다.
뭐, 그래도 내가 지성을 가지고 있으니 엘로힘에게 먹히지 않을 수 있었던거지.
아무런 저항도 못하고 심장이나 뽑혀버린 그것이 불쌍하기만 할 따름이다.
하여튼.
고의적으로, 균열을 열어보기로 했다.
저 너머의 공간을 바라보기 위해서.
그러기 위해선, 적어도 자그마한 틈이라도 필요한데...
이건 내가 어찌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니 패스.
일단은 뭐, 자연적인 현상이 일어나길 기다려야한다.
그래도 실제로 공간이 갈라질 수준의 마력파가 아닌, 일반적으로 요동치는 수준의 마력파라면 하루에도 수십번은 발생하니 딱히 오래 기다릴 필요는 없겠네.
그래서 지금은 그냥 쉬는 중이었다.
느긋한 오후에, 한가로운 도시에서.
"크하ㅡ"
이 맛이지.
콜라캔을 입에서 때며 입가를 쓱 닦았다.
외곽지역에서 파는 거라 싸구려이긴 했지만, 그래도 탄산이다!
얼마 만인지, 기억도 못할 것 같다.
기억하는 게 오히려 이상했다.
벤치에 앉아 발을 흔들거리며 주변을 둘러봤다.
여긴 재개발 구역이 아니라 그런지, 그냥 딱 평소같은 분위기다.
평소의 도시, 평소의 마을.
낮은 건물들이 대다수이긴 하지만 딱히 못산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그냥 일반 주택이다 보니, 오히려 그냥 잘 사는 듯한 느낌이다.
얼마 만에 느껴보는 평화인지 모르겠다.
하늘은 푸르고, 겨울바람은 선선하고.
저 너머 놀이터에서 깔깔거리며 놀아대는 애들이 보인다.
"...재밌게 노네."
겪어본 적 없는 시절이긴 하지만... 공감은 된다.
.
.
.
파각
"..."
오후 2시무렵 거리를 거닐고 있던 도중,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이 근처는 아니다. 오히려 먼 곳이니, 딱히 사람들의 안위를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캔에 남아 있던 액체를 홀짝이던 그 자세 그대로 굳어 잠시간 가만히 있었다.
"...이런 건가?"
상당히 신기한 느낌이네.
뭔가가 등골을 싹 훑고 지나가는 느낌이야.
공명계열 초상능력자가 마력을 감지하는 느낌이 대충 어떤건지 알 것 같다.
방금 마력파가 발생한 곳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아직은 아무런 전조증상도 보이지 않았다.
'상당히 작았는데...'
방금 일어난 마력파의 위력은 미미했다.
아마, 잔해 들이 튀어나오기 전의, 공간이라는 장막이 팽팽해지는 그런 느낌일 것이다.
대충 이런게 하루에도 수십번은 발생하니, 얼마나 장막이 느슨해졌는지 대충 짐작이 갔다.
"늦진 않으려나..."
거리로 보니, 여기서 그닥 먼 곳 같지는 않다.
해방자들이 오기 전에, 미리 가야 했다.
마력파 발생 위치로 봐서, 딱히 인명피해같은 게 발생할 것 같지는 않다.
애초에 저쪽은 무인지대고.
서둘러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
"CCTV 자료가 왜 이렇게 제각각이야?"
"내 말이 그거야. 아직 발견된 지 한 달도 채 안 됐잖아."
마스가 묻기에, 대답해 줬다.
커피를 한번 홀짝이고선 다시금 노트북을 만지작거렸다.
"...이상하네."
이상한 일이었다.
조사를 거듭하면 거듭할 수록 기이한 점만 늘어난다.
"순간 이동이라도 하는 건가?"
위치에 일관성이 없다.
이동하는 도로를 살펴봐도 흔적조차 없는데, 막상 저 먼 곳에서 따로 나타난다.
마치 전자와도 같은 움직임이었다.
자연스럽게 아날로그 처럼 움직이는 게 아니라 디지털마냥 뚝 뚝 끊어져서 움직인다.
"아, 저번에 경찰들 증언들 확보한 거 보면, 그때도 갑자기 사라졌다고 했잖아. 그냥 흔적도 없이."
"...어쩌면 그것도 특이성일 수도 있겠네. 일단 이것도 기록해 두자."
"근데, 그게 정말로 사실이면 걔 어떻게 잡게? 제한도 없이 마구잡이로 순간 이동 하는 데다가, 대놓고 대로변 돌아다녀도 사람들이 발견조차 못하잖아."
골치 아프다.
"끄응..."
일단, 조사는 순조롭게 진행 중이라고 봐야 한다.
적어도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일 내에서는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싸그리 긁어모으는 중이니.
"오늘 정황 보고 올려야 하는데...미치겠네."
각국 수색대 전부 기동시켜서 얻은 정보가, 고작 이것밖에 안 된다고?
'진정하자. 상대는 엘로힘이야.'
대재앙을 일으킨, 생물이라는 영역 바깥에 서 있는 초월체.
"...걔가 왜 도망다니는 지 부터 알아내야 하지 않을까?"
마스가 말했다.
"저번에는 너 바로 앞에까지 왔었다며. 혹시, 무슨 말 한 건 없어?"
"..."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났던 사무실에서, 그 아이는 분명히 이렇게 말했다.
'자신을 아냐'라고.
"갑자기 그렇게 물어 봤자..."
문득, 어떤 영상이 하나 떠오른다.
연구자들의 본 거지에서 발견했던 무수한 자료들 중 하나.
아무것도 없는 침대 주변으로 연구자들이 들락날락 하는 영상이었다.
굉장히 기이한 영상이었기에,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그 영상 속에서 연구자들은,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팔을 휘젓기도하고, 힘들다는 듯이 침대를 꾹 누르고 있기도 했다.
'...'
"잃어 버린 시간."
"뭐?"
무심코 내뱉은 중얼거림에, 마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뭔가 알 것 같으면서도 모르겠다.
내가 방금 떠올려 낸 사실을 사실이라 단언하기에는 증거가 너무 부족하다. 애초에 증거를 찾을 방법도 없다.
'자신을 아느냐'고 물었던 여자아이. 어째선지, 아득한 과거가 떠오르는 아련함과, 여전히 떠오르지 않는 종전 당시의 기억들.
아카데미에 다니던 그 시절의 3년이, 마치 안개 낀 듯 뿌연 감각.
'잃어 버린 시간'이란, 종전에 기여한 무수한 인원들 중 소수의 인원들만이 겪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위화감을 느낄 정도로, 그 시절 3년간의 기억이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다고 한다.
물론 나도 그들 중 하나였다.
게다가 한서우는, 그 '잃어 버린 시간'이라는 현상 때문에 사람 자체가 변했다.
물론 미묘한 변화이긴 하지만 분명 알아챌 수 있었다.
한서우는 지금 어딘가 심하게 결핍된 상태였다.
그 결핍을 찾기 위해 세상을 떠돈다고 얘기했던 게 벌써 7년이 넘었다.
"확실한 건 아니지만, 일단은 어느 정도 실마리를 잡은 것 같네."
"..."
마스가 날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바라본다.
"로엘로아흐 관련 프로젝트 자료들, 전부 열람해야겠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