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0화 〉 2부 9. 맥거핀
* * *
윤서아가 테이블 깨부수는 듯한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오는 듯 했다.
조금 불쌍하긴 했지만, 그래도 기분은 좋았다.
눈앞에서 놓쳤는데, 이보다 더 허망한 일이 있을까?
날 통상의 '잔해', 혹은 엘로힘과 동일할거라 판단했던게 오산이다.
뭐, 사실 본래라면 이런 우주에 존재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되니까, 당연한거다.
처음부터 정보가 없던 놈에게 대응을 할 수 있을리가 없다.
이래서 정보가 중요한거지.
아.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구나~"
모두가 신을 이용하기 위해 암전하고 있다.
신이라는 것을 이 세상에서 몰아내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본래라면, 존재조차 모르는게 당연한건데.
이제는 아예 그냥 대놓고 돌아다니네.
"쯧."
전부 다, 그 검은 녀석 탓이다.
인류에게 처음 존재를 드러낸 엘로힘이자, 대재앙 사태를 일으킨 장본.
대체 뭔 수를 썼는지는 몰라도, 상위차원에서 개념으로서만 존재하며 3차원 우주에 영향을 끼쳤던 존재를, 3차원의 형상을 갖게 했다.
신 비스무리 한것이 물질계에 존재하게 된다는것이, 무슨 여파를 초래할 지 몰랐던 것도 아닐텐데.
내 심장의 주인. 그러니까, 본래 의미로서의 '신'에 가장 가까웠던 존재. 부정형의, 초인과적인 무언가.
정의하려는 것 자체가 헛된 것.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고, 인지할 수도 없는 세상의 '진리'를 구성하던 것.
그저 개념이었던 것.
허세같은거 다 빼고 말하자면, 그것은 '무지'였다.
생명체가 아니기에 생각조차 없고, 오로지 그 광대한 종이차원에는 혼자만이 존재했다.
'무한'이었고, '한정'이라는 개념 따위 없었다.
그런 그녀에게, 만약 '생'이라 부를 만한 것이 있다면. 그 '일생'에서 가장 처음 인지한것은, 모종의 수를 써 그녀 자신과 접촉한 것은 '첫번째 엘로힘'이었다.
무한에 새로운 무언가가 '생겨났다'.
오류를 일으키던 듯한 '무한'이라는 개념은, '유한'한 것을 만나게 되어 인지 자체가 변화한다.
자신이 알고있는 유일한 것의 형상, 유일한 지식의 형태로 변한거다.
무지에서, 오직 한가지의 지식이 추가되었다.
개념으로서만 존재하던 그녀가, 처음으로 알게 된 것이자 유일하게 알고 있던 것.
그것은 '생명'과 '유한'이었다.
자신이 아는 유일한 지식의 굴레에 갇혀, 생명의 형상으로서만 존재할 수 밖에 없게 된 것이다.
'첫번째 엘로힘',. 즉, 대재앙 사태를 일으킨 장본.
...얘는 뭐 귀찮으니까 지렁이로 부를까.
고유명사가 너무 길어져서 짜증난다.
검은색의 꿈틀거리는 무언가.
지렁이가 딱 적당하다.
아무튼, 이 지렁이는 그녀의 심장을 취했다.
말이 심장이지, 사실상 본체를 이루는 핵심이자, 동력이다.
심장은 그녀 그 자체이며, 사실상 존재의 근간이었다.
이렇게 상위차원의 개념과 존재라는 것이 3차원 물질계에 존재하게 된 것이다.
존재해서는 안될 것이, 보다 아래에 있는 그대로 존재하게 된거야.
"이해 못하겠지."
아마 들어봤자 이해할 만한 사람은 이론물리학에 꽤나 조예가 깊은 학자들 뿐일거다.
하위차원에서 상위차원에 간섭한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말도 안되는 일인지 그들은 알고 있을테니.
생각을 계속하다보니, 어느샌가 버려진 공장이다.
목적지를 바꿔서 그런건지, 대기하고 있는 해방자나 연구자는 느껴지지 않았다.
"엣취!"
춥네.
주변을 둘러봤다.
창문너머로 도시의 화사한 불빛이 비쳐들어오고 있었다.
"그럼..."
끄응, 하며 몸을 풀었다.
'움직여볼까.'
쿠우우우...
5m는 될법한 거대한 철문이, 육중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
***
"지금 뭐라고..."
"...미안하다. 놓쳤어."
한 시간 전의 대화가 떠오른다.
미안하다는 듯, 고개를 숙이고 있던 해방자 동료 한명이 떠오른다.
"직접 갈 거야."
"...서아야?"
"내가 직접, 하겠어."
그리고 지금, 내가 가겠다며 선언했다.
"흐으...으..."
어쩐지 일이 너무 쉽게 풀려간다 했다. 알고 있었다.
내심, 일이 너무 쉽게 풀려서 마음속으로 불안해하고 있었다.
놓칠 경우를 가정해 미리 마음의 준비까지 해뒀다.
하지만 막상, 인생의 전부인 그 소녀를 눈앞에서 놓쳤다는 소식이 들려왔을때는 감당할 수 없었다.
감정이란게 너무나 오락가락 했다.
준비했음에도 상실감은 컸다.
아쉬움인가, 무엇인가.
아직 '소중한 것'이 존재하지 않는 해방자들보다, 내 처지가 더 비참한 것 같았다.
자신의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있는데도 닿지를 못한다.
아련하게 애만 태운다.
그렇게, 시간을 똥통에 버리는 지독한 후회는 계속됐다.
후회만, 후회만 계속하다가.
"변화는 없네. 이래봤자."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을 깨달은 것 마냥 중얼거렸다.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그녀도 날 돌아봐준다.
'슬퍼하는 것도 좋고, 화내는 것도 좋아.'
누군가에게서 들었던 말이다.
'근데, 그 감정에 사로잡히면 안되지. 본인한테만 빠져서, 상황을 보지도 못하고 제자리에만 머무는게 제일 추한 일이야.'
나에게 했던 말은 아니었다.
다른 누군가에게 했던 말을, 내가 엿들은것이다.
엿들은 것이라도, 멋진 말이었다.
"움직여."
가만히 있지 말고.
감정을 느끼는 건 좋다. 사로잡히지 마.
언제나, 감정은 기억하되 행동해라.
사로잡혀있지 말고, 최대한 빨리. 서둘러서. 지금 당장 할 수 있다면.
"난 사지 멀쩡해."
"하지만..."
"더, 지체하고 있을 이유도 뭣도 없단 말이야."
당장 움직일 수 있다.
어디 있는지는 몰라.
하지만, 내가 움직일 수 있다는 것과 그 소녀가 나와 같은 세계에 존재한다는 사실만은 알았다.
그렇다면, 움직일 수 있다.
움직여야만 한다.
나의 의지였다.
***
대재앙 이전 인구 수가 150억이었다고 하니, 사람이 꽤나 줄어든 지금도 충분히 남았다.
오히려, 넘치고도 남았다.
150억이라는 숫자에 비해 95억이 적어보일지는 몰라도, 적어도 내 원래 고향에서의 80억 인구보다는 훨씬 많았다.
그러니까, 내 눈앞에 펼쳐진 이 거대한 도시가 마냥 허황된 이야기는 아닐 거란 말이지.
'...마수들 사라진지 고작 9년밖에 안지났을텐데.'
이미 세워진 안전구역들을 중심으로 도시건설을 시작했다고는 해도, 이정도 도시의 규모라면 충분히 기대를 뛰어 넘는 발전속도였다.
여타 도시들이 늘 그렇듯, 네온사인 간판에 번쩍거리는 광고판까지 벽면 전체에 장착하고 있는 거대한 마천루가 보였다.
빌딩숲이라는 표현이 딱 어울린다.
사이버펑크풍의 도시였다. 로봇들이 돌아다니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주위를 둘러보니, 유독 홀로그램 광고판들이 많았다.
나오는 내용이 무엇인가, 하고 가만 들여다보니 전부 엇비슷한 내용이다.
도박이며 유흥이며, 마약에, 나이트클럽...
딱, 라스베이거스 같은 느낌이다.
놀기 위한 장소임에는 가장 적절한 곳인 듯 했으나, 너무 깊이 들어가면 그건 또 그것대로 곤란해지는 도시다.
"상상했던대로네."
물론 나한테는 해당사항 없다.
얼마나 깊이 들어가든, 별 상관 없다는 소리였다.
'뭐부터 해야하나...'
일단, 내 목적은 두 가지다.
행복하게 사는 것과, 그러기 위해 가능한 한 모든 위협을 제거하는 것.
물론, 이렇게 물을 수도 있다.
이미 대재앙이라는 위협은 9년 전에 사라졌는데, 과연 또 무엇이 존재할까.
"..."
말하기 좀 그렇긴 하지만, 현재 나에게 가장 큰 위협은, '나'였다.
내가 이 세상에서 완전히 떨어져 나와 다른 존재가 되었다고는 해도, 나는 '나'였다.
'복잡하네...'
그냥, 다 놔버리면 편할 수도 있겠지.
처음부터 내가 인간이었다는 사실을 잊고, 그냥 현재의 나로서 존재하면 다 해결될 일이었다.
다만, 그러지 않았다.
변덕인건지, 아니면 그냥 개인적인 소망인건지 모르겠다.
나는, 아무런 삶도 없는 '개념'으로서의 존재보다, 아무리 끔찍하고 더러워도, 인간의 삶을 택했다.
전지전능한 무언가가 될 수도 있겠으나, 애초에 그건 생명이 아니다. 그냥, 무생물이나 마찬가지다.
미래를 모르고, 현재를 살아간다는 것은 고통스럽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역동적이다.
'그래봤자 궁극적인 목표는 행복이지만...'
생물로서만 가질 수 있는 감정을 맛보기 위해서였다. 어차피.
비록 자연선택 과정에서 발현된, DNA에 새겨진 생존본능의 일부일 뿐이라고는 해도 말이다.
애초에 난, 인간이잖아?
그냥 난 나로서 존재한다. 뭐가 됐든.
둘 다.
"어으..."
온몸에 소름이 돋는 기분이었다.
내가 생각해놓고도 너무 오글거리는 말이었다.
그냥 사는대로 살자.
귀찮게 이런걸 더 깊이 생각해서 뭐해.
아무튼, 몸에는 피 한점 없고 구멍뚫린 후드티도 제대로 재생성됐다.
시야를 끌 일도 없어.
지금 향하는 곳은, 도로였다.
지평선 끝까지 도로가 펼쳐져있었다.
"예전엔 다 흙밭이었는데..."
아스팔트 깔린 엉성한 도로이긴 하다.
주변으로 세워진 마천루는, 저 머나먼 앞 어느 부분에선가 잦아들기 시작한다.
아마 도시 외곽쪽으로 빠져나가는 지역일거다.
"택시라도 구해야하나..."
목적지는 폐허가 된 연구자들의 연구소.
자료가 남아있을 리는 없다.
오히려 그 주변에 정부나 다른 국가의 연구원들이 상주해있을 가능성도 있었다.
지금 원하고자 하는 것은, 과거의 기록을 불러오기 위함.
그들이 그곳에서 하던 것은 무엇이었는지, 그들의 목적은 무엇인지.
그리고, 왜 결국 그들은 버림받았는지.
'겸사겸사 저 거시공동도 알아볼 겸 말이지.'
지구보다 앞서 지구의 공전궤도를 그리고 있는 것.
저 정도로 크면, 중력때문에 진작에 충돌할 법도 한데.
어째선지 아무일도 없다.
사람들이 저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모르지만, 비현실적인 일임에는 확실했다.
빛도 다 흡수하는 모양인지, 이렇게 가까운데 그 어떠한 색도 보이지 않았다.
뭐, ...그냥, 맥거핀들을 풀어가는 과정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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