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7화 〉 2부 6. 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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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오면서 뭔가 놓친게 있었던가.
밤하늘에 뚫린 기이한 구멍을 바라보며 내가 느끼던 심정이다.
엘로힘을 집어삼키며, 알 수 있는 정보란 정보대로, 내 나름의 해석과정을 거쳐 머릿속에 주입시켜뒀다.
그 중에 이런 괴이한 정보따위는 없었다.
밤하늘에 구멍이 뚫린 것과, 나의 지구로의 복귀 사이에 무언가 연관점같은게 있는걸까?
충분히 가능성 있는 말이었다.
애초에 나도 나라는 것의 위상을 제대로 모르니 내것이 아닌 힘들은 죄다 버렸으니까. 흔적도 없이 태워버렸다.
아마, 본래의 상태 그대로 이곳으로 넘어왔다가는 발 한번 내딛는 것 만으로도 마력파가 터져나갈 것이다.
그저 숨쉬는 것만으로도 공간이 수도없이 찢겨나갈 것이고, 그랬다가는 이 소중한 세계가 흔적도 없이 갈려나갈 수도 있었다.
하나의 '세상'이었다.
비록 다른 세계가 수없이 있다고는 해도 내 근원과 관련된, 단 둘뿐인 세계중 멀쩡하게 남은 하나의 세계였기에 '만약'을 용납할 수 없었다.
몸속에 티끌만큼이라도 신격이 남아있는 것을 거부했고, 그랬기에 힘의 잔해들까지 남김없이 전부 태워버린 참이었다.
나에게 남은 것은 그저, 본래의 '루시'로서 가지고 있던 재생능력, 또는 지식들만이 전부 였을 텐데.
심지어 이마저도 불안정해서 일분일초 신경쓰지 않으면 존재 자체가 이곳에서 소멸될 지경이었다.
그러니까, 이런 괴이한 현상이 나때문에 일어난 일 일거라는 가정은 충분히 그럴 듯 했다.
달은 저 하늘에 멀쩡하게 떠있다. 별들이 사라진 창공의 한가운데에, 보름달로 아주 환하게 보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하늘에 무언가 떠있어서 저렇게 된 건 아닐거라는 뜻이었다.
나중에 별의 위치도 기록해둬야겠다. 만약 관측만 제대로 한다면, 저 공간에 있는 별들이 사라진건지, 아니면 그 별들과 지구 사이에 무언가 거대한 물체가 자리잡아 저렇게 보이는건지 알 수 있을테니까.
일단 이곳은 폐허라, 알 수 있는건 아무것도 없었다.
정보따위를 물어보기 위해서는 적어도 사람들이 있는 지역 쪽으로 가야했다.
"'미지'라..."
내가 두려워해 마지 않는 것이었다.
정보의 부족을 감당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최대한 빨리 정보의 공백을 메우고자 결심했다.
'대한민국쪽은 감시수단이 너무 많아.'
신분도, 증명서도 없는 지금 남쪽으로 내려갔다간 더 귀찮은 일만 생길 것이다.
해방자들도 내가 일으킨 마력파에 의해 전부 대한민국에 몰려있는 상태였다.
"또 다시 가드네."
오랜만에 가는 곳이었다.
어떻게 변했는지는 모른다. 다만, 치안이 안좋은 지역들이 대부분이라 했다.
그곳에 세워진 안전구역들을 중심으로 도시의 규모를 넓혀가기 시작했다는데, 치안 관리 인력 부족 문제로 갱단 소굴만 끝도없이 양산하는 추세가 되었다는게 문제지.
질문에 과연 제대로 답해줄 사람이 얼마나 될 지는 모르겠으나, 일단은 부딪혀보자.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입고있는 후드티의 후드가 바람을 따라 펄럭였다.
***
"이로 인해 우리는 이 소녀를 통칭 '엘로힘'이라는 것과 연관짓고..."
히어로 협회 A구역 회의실이 간만에 꽉꽉 들어찼다.
이전에 만난 소녀에 대해 안건을 올리니, 조사대가 몇번 파견되고 나서는 곧바로 회의가 열린 것이다.
그나저나 조사 결과가 예상과는 상당히 달랐다.
단순한 어린 초상능력자의 보호처분으로 끝날거라 예상했던게, 급작스럽게 '엘로힘'이라는 미지의 존재와 연관되었기 떄문이다.
근거는 명확했다.
그 소녀가 나타나기 직전 전국적으로 감지됐던 마력파와, 해방자들의 움직임.
현장에 남아있던, 마력이 아니지만 마력과도 비슷한 무언가의 흔적때문에.
반박할 여지가 없었다. 조사는 확실했고, 자료도 이미 모두 수중에 들어와있었다.
"성화연 본부장, 지난 31일에 그 소녀와 만났다고 했습니까?"
흐름은 어느샌가 나에게로 돌아와 있었다.
이제는 내가 질문에 답할 차례였다.
"아, 네. 그렇습니다. 저녁 8시 무렵에..."
몇 번의 문답이 오고갔다.
모두가 그 소녀를 엘로힘과 관련된 '위험한 것'이라 가정하고 오는 질문들이었다.
꽤나 기분이 나빴다. 대체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소녀를 적으로 간주하고 행동하는 이들의 모습이 싫었다.
때문에 문답 도중 꽤나 감정적으로 말한 것도 같다.
"그럼...알겠습니다. 일단은 이 안건은 위로 올리도록 하죠."
그 소녀가 인간을 적대하지 않는다는 점, 말이 통한다는 점, 아무것도 모르는 듯 보였다는 점을 토대로 일단 발견즉시 사살이 결정되지는 않았다.
엘로힘에 대해 모르는 것 투성이였으나, 말이 통하는 '엘로힘'과 비슷한 존재라는 특이사항이 적용되어 일단은 교섭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교섭 이후의 처분은 보다 높으신 분들의 회의로 넘어갔다.
역시 인간은 '무지'가 가장 두렵다고 했던가.
내가 그 소녀를 만났을 때 느낀건, 미지의 공포보다는 익숙함이었는데 말이야.
"..."
회의의 내용이 귀에 들어오질 않았다.
원탁에 모인 수십명의 사람들이 회의 종료 이후 하나씩 서류더미를 정리하는 모습을 보고도, 한참이나 가만히 자리에 앉아 생각할 뿐이었다.
***
내가 계속 존재할 수 있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내가 사라졌다가, 다른 공간에서 다시 나타나는 현상을 없애려면 어떻게 하는 것이냐 묻는 것이었다.
간단하다. 의식을 잃지 않기만 하면 됐다.
멍때리는 것도 안되고, 자는 것도 안되고, 죽는 것도 안된다.
여기서 사라졌다가, 후에 겨우겨우 제정신을 붙잡아 다시 돌아온다 해도, 다시 나타날 장소를 알 수가 없었다.
운만 좋으면 목적지 근처에서 깨어날 수도 있었지만, 그럴 확률은 지극히 낮았다.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대참사가 없게 하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깨어있을 필요가 있었다.
애초에, '점멸'현상이 일어난다는 것 자체가 거의 반쯤 죽음에 가까워졌다는 말이었으니 더욱 이런 수단은 생각해서도 안됐다.
자칫하다간 정말로 나만의 '의식'을 잊고 승천해버릴 수도 있었다.
아무튼, 그래서.
지금 2주일가까이 휴식도 취하지 않은 채 이동중이었다.
배고픔도 피곤함도 느끼질 않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겠지.
깨어날 때부터 해왔던 생각의 연장선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아직 이 부근은 정리 안된건가.'
가끔씩 조사대의 야영 흔적이 보이긴 했지만, 아직은 지형조사 단계에 머무른 듯 하다.
여기저기 표지판이 세워져 건물 건설 계획을 대강 나타내고 있었으나, 건설이 시작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애초에 근처에 사람이 없었으니까.
걸어가는 동안 밤하늘 관찰도 틈틈히 했다.
별들의 위치를 기록했다.
그렇게 얻은 기록은 꽤나 충격적이었다.
바로, 저 너머의 별들과 지구 사이에 무언가 거대한 물체가 자리잡고 있었다는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지구를 중심으로 공전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지구와 아주 비슷한 형태의 궤도를 그리고 있었다.
해당 물체와 지구 사이의 거리는 상당히 가깝다는 결론이 도출됐다.
지구 바로 앞에서, 지구보다 한발 앞서서 지구의 궤도를 공전하고 있었다.
'미지의 거대한 검은 물체'가 있다는 얘기였다.
별들은 주기적으로 사라졌다 나타났으니, 적어도 별 자체가 붕괴한 것은 아니었다.
일단 이건 나중에 생각해보기로 하자.
걷다가 생각을 멈췄다.
눈앞에 전초기지 비스무리 한 것이 나타난 탓이다.
군용인 듯 했다.
그 너머로는, 높다란 산이 존재했다.
아니, 그냥 존재만 하는게 아니라 아예 방벽처럼 저 앞을 완전히 메우고 서있었다.
동네 야산정도가 아니라, 족히 3km는 될법한 꽤나 거대한 크기였다.
후드 주머니에 꼬깃꼬깃 접어둔 세계전도를 꺼내 살펴보았지만, 특별히 이런곳에 산이 존재했다는 기록은 없었다.
"아무도 없나요?"
무슨 일이 있었길래, 철조망까지 세워둔건지 모르겠다.
아무도 없었기에 당당히 정문으로 들어갔다.
눈더미 하나 없이 잘 정돈된 공터 여러군데에 군청색의 천막이 세워져있었다.
상당한 규모의 병력이 주둔했던 듯 하다.
그러나 천막은 아무것도 없었다는 듯 모두 텅텅 비어있어, 상당히 소름끼치는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음..."
왜 이런건지, 얼핏 알 것 같았다.
기지 한가운데에, 마치 나중에 파냈다 다시 덮은 듯 엉성하게 굳어있는 흙들이 보였다.
땅 깊은 곳에 파묻은 듯 했다.
그리고, 저 안에 든게 무엇인지는 이미 알고 있었다.
"잔해들이었네."
아마, 마력파가 이곳에서 발생된 모양이었다.
예고도 없이 순식간에 튀어나온 '잔해'들은, 이곳에 주둔하던 병사들의 정신을 붕괴시키고, 학살극을 만들어냈을 것이다.
해방자들이 왔다간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았다.
기껏해야 몇 개월 정도.
"기분나빠."
발밑에 병사들의 시체가 가득 묻혀있을걸 생각하니 기분이 나빴다.
따지고보면, 지금 무덤 밟고 서있는 거잖아.
비록 죽기 직전에는 짐승들이나 마찬가지였다고 해도, 본질은 인간이었을 것이다.
도의적으로나마 추모는 해줬다.
버려진 군용트럭 운전석에 놓여있던 조화를 가볍게 땅에 심어주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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