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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해주세요, 마수님!-74화 (74/162)

〈 74화 〉 2부 3. 생각

* * *

마력파가 무엇인가, 라고 물어본다면 여러가지로 답할 수 있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그저 대량의 마력이 요동치며 세계 전체로 퍼져나가는 파동을 만드는 현상.

또 다르게 말하자면, 공간 자체가 찢어질 정도로 막대한 규모의 마력이 움직였다는 말이다.

마력파라는 현상은 중력파라는 현상과 비슷한 것이다.

미미한 영향이라도, 세계 전체로 퍼져나가는 것이란 보통의 일로는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마력파는 최소한 일대의 영역을 뒤흔들 마력이 움직여야 일어난다는 것이다.

초대형 블랙홀 두개가 충돌하며 만들어지는 중력파와 비슷한 점은 상당히 많았다.

공간 자체를 요동시켜서, 변질시킨다.

이토록 거대한 현상이기에 관측 자체는 쉬웠다.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본다면, 마력파가 발생되었다 라는 것의 의미는 결코 간단하지 않다.

공간이 찢어졌다는 말 자체가 문제였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되는 소리다. 공간이 종이도 아니고 어떻게 그렇게 찢어진단 말인가?

그리고, 공간이 찢어지면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이 역시 우리가 아는 내용들은 별로 없다.

다만, 9년전 연구자들과의 결전이 끝나며 넘어온 막대한 양의 자료들은 이 현상의 본질에 대해 어느정도 암시를 주고 있었다.

물론, 해방자들은 이미 이전부터 마력파가 무엇인지 알고, 대처해왔기에 그런 데이터 쪼가리들은 아무 의미 없었지만 말이다.

*

생각을 해보자.

나에게서 변화가 느껴진 것. 기분의 변화일 수도 있지만, 그보단 무언가 본질적으로 변한 느낌이었다.

마음속의 힌트로만 남아있던 무언가가 진실과 근접하게 되며 일어난 변화.

평생 닿을 수 없을것으로만 생각했던 힌트는, 무언가를 계기로 깨어나 나에게 생명을 불어넣어 줬다.

그리고 그 시점은 정확히 마력파의 발생 시점과 겹쳤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그저 내 머리가 이상해졌다고 할 수도 있겠지. 너무 무기력증에만 빠져있다보니 어느샌가 돌아버렸다고 상상해도 편할 것이다.

하지만, 어차피 세상 돌아가는게 그렇게 간단하게 돌아가는 것 쯤은 아니라는 건 모두가 알고 있었다.

내 인생에는 비어버린 지점이 존재했다. 마치 거시공동과도 같이, 무언가가 고의로 지워낸 것 처럼 텅 비어있는 부분.

책으로 따지자면, 시작과 결말의 중간지점이 빠진 느낌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9년전 그때의 전투 당시, 너무나도 어색했던 부분들을 도저히 설명할 수가 없었다.

누군가 한사람 더 존재해야 할 것만 같은 부분에는 언제나 아무도 없었고, 누군가 대화하고 있어야 할 부분에는 어떠한 대화문도 없었다.

무언가가, 세계에서 지워졌다.

.

.

.

사고비약일 수도 있다.

나 혼자 미쳐버려서 이러는 걸 수도 있다.

저 멀리 걸어가는 저 소녀는 나와 아무런 관계도 없는 쌩판 모르는 사람일 뿐이고, 내가 지금껏 머리에서 해왔던 온갖 가정은 전부 망상이고, 사실은 아무런 일도 없이 눈앞에 보이는 것 그대로의 결과일 수도 있다.

근데 그딴게 다 무슨 상관인가.

어쩌면,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도록 하는 유일한 계기가, 저기 있을지도 모르는데.

생각은 단순화 되고, 사고는 멀리 비약한다.

논리의 중간과정은 사라지고 어느샌가 결론만을 비추고 있었다.

­자박,자박.

저 멀리 팝송과 빗소리가 배경음처럼 들려오는 적막한 골목 아래, 조용한 발걸음이 울려퍼진다.

머리는 돌아간다.

지금부터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목적은 단순하다. 저 소녀를 붙잡아, 확인하는 것. 진실이 무엇인지 알아내는 것.

모든 것은 세계에서 저 소녀가 지워졌다는 가정과, 일주일 전 마력파가 발생되었을 시점에 이 세계로 넘어온 것이 저 소녀라는 가정에 기반한 판단이었다.

저 너머에서 넘어오는 것들의 본질은 모두 같다. 9년전 흔적도 없이 사라진 엘로힘과 비슷한 것들.

그것들의 잔해가 본래의 것의 부패를 견디지 못해 공간을 찢고 튕겨져 나오는 것이다.

그것은 정신을 침식하고, 유린한다. 소중한 것이 있는 이라면 제정신으로 버틸 리가 만무하다.

그 소중한 것이 정신의 디딤대가 되는 것이라면 더욱 더.

아마 그대로 정신이 붕괴할 것이다.

그렇기에, 선구자가 조직한 해방자라는 집단에 소중한 것이 존재하는 사람이란 없다. 평범하게 울고 웃으며, 일상을 바라는 사람들 따위는 없다.

모두가 무언가를 잃었다. 그러나 그에 대한 보상심리 따위는 없는 사람들이다. 자신들이 이런 나락에 있는걸 당연하다고 여기며, 그저 소속감만을 느끼며 생물 흉내를 내며 살아가는 인간들 뿐이다.

아무튼, 저 소녀가 그런 잔해들과 같은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다만 그렇다고 평범한 사람들처럼 보인다는 것도 아니었다.

마치 혼자만 배경에서 붕 뜬 듯, 이질적인 빛깔이다.

종이위에 덧대붙인 느낌이다.

한쪽 팔이 없는 모습. 저런 눈에띄는 특징에도 불구하고 그 소녀에게 가는 시선이란 아무것도 없다.

모두가 자연스럽게 지나친다.

소녀 본인 또한 그 점에 대해 딱히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어쩌면, 저 소녀가 의도한 일이거나, 아니면 저런 현상이 그저 태어날 때부터 당연한 일이라 그러는 걸 수도 있다.

의도한 일이라면, 초상능력인가?

하지만 주변에서 마력이 느껴지진 않았다. 다만 그보다는 미묘하게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자세하게 관찰하지 않으면 놓칠 정도다. 아니 애초에, 관측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주변은 이미 그것과 똑같은 무언가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쉽게 설명하자면, 세계 자체가 변질됐다. 심각한 수준의 변화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위화감을 느끼기에는 충분했다.

자신이 왜 저 소녀에게 아무런 관심이 가지 않는가...라는 의심을 품고 자세히 관찰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못알아차릴 법한 수준이다.

마음속에서 저 소녀가 가지는 위상은 변경됐다.

그저 내가 되찾아야 할 무언가에서, 보다 고차원적의 존재인 무언가로.

세계의 본질 자체를 뒤틀었다.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세계에 소속되지 않는다. 보다 상위차원에서 이 세계 자체를 주물럭거릴 수 있는 존재다.

본래라면 맞닥뜨릴 일도 없고, 접점도 없어야 한다.

하지만 나는 어째서 저 소녀를 소중한 존재라고 여기고 있던 걸까?

어째서 저 소녀를 모르는데 공허함을 느끼고, 삶의 의지를 잃었을까?

이미 알고있던 거다. 이전부터.

저 소녀는 본래 저런 것이 아니었다. 원래는, 나와 같은 인간이었던것이다.

"..."

그 순간 머릿속에서 스쳐지나간 한가지 생각에, 본능적으로 몸을 움직였다.

생각할 틈도 없이 그저 스쳐간 그 생각 하나만 의지하며 순식간에 튀어나갔다.

혈액이 튀어오르고, 끔찍한 소리가 들려왔다.

방금 스쳐간 생각은 깨달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저 소녀가 상위차원의 존재라면 어째서 지금 저렇게 무방비한 상태로 노출되어 있는가. 왜 저렇게 주변에서 상위차원의 존재가 발산할만한 어떠한 위압감도 느껴지지 않는건가.

중간과정을 건너뛰고 한가지 가설에 도달했다.

어쩌면, 본인 스스로가 힘을 봉해둔 것 아닐까, 라는 가설이었다.

공간을 찢고 스스로 이곳으로 넘어왔다.

본래 인간이었던 존재이다.

어느샌가 연구자들의 제 1기지에서 발견됐던 자료들 중 하나. 당시에는 그 어떠한 진상도 밝힐 수 없었던 로­ 엘로아흐 프로젝트라는 것이 떠올랐다.

거짓된 신을 위한 계획.

그 자료가 떠오르자마자 그림없는 퍼즐이 맞춰진다.

저 소녀는, 결코 그냥 그렇게 볼 상대가 아님을 알았다.

저 소녀는 이미 내가 뒤쫓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마력파로 인해 해방자들이 올 것임을, 그리고 내가 자신에게 올 것임을 이미 모두 알고 있던거다.

지금 당장만 봐도, 상황은 명확했다.

내가 움직이기로 결심한 그 순간 소녀는 이미 나를 향해 돌아서 있었다.

내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나밖에 남지 않은 눈으로 도약할 준비를 끝마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땅바닥에 쓰러진 채 가슴이 뚫리는 순간까지, 여전히 나를 바라보고있었다.

이 소녀를 볼 때 떠오르는 감각이란, 충족감만이 전부였다. 충족감과 그리움, 그리고 삶의 의지.

그 사이에 다른 감정이 살짝 섞여들었다. 두려움인지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잘 생각해본다면, 이 소녀가 애초부터 나한테 적대감이 없었다는 걸 알았어야했는데.

내가 뒤쫓는다는 걸 알면서도 죽이지 않았고, 잠자코 내가 언제 오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심장이 적출되는 순간까지도 어떠한 저항도 하지 않았다.

애초에, 나를 적대할 생각 따위는 없었던거다.

그것도 모르고 그저 소녀의 의식을 끊어야겠다는 생각만을 했다.

목을 꺾고, 척추를 으스러뜨렸다.

그럼에도 죽지 않았다.

당황해서 말도 나오지 않았다.

내 오른손에 들려있는 것은 피묻은 보석이었다.

새하얀 보석.

피가 묻어 붉게 빛나고 있었다.

소녀는 여전히 내 아래에 누운 채 날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헐떡이던 숨이 진정되고, 이내 소녀의 가슴에서 뿜어지는 피만이 내 볼을 가볍게 적셨다.

무기질적으로 웃는 소녀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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