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0화 〉 막간 하지축제
* * *
뚜렷하지가 않아.
모든 것은 흐릿했다.
그 시점의 기억은, 마치 누군가 고의적으로 지운 것처럼... 그저 불투명했다.
감정만은 기억하고 있었다.
난 그때, 기뻐하고 있었어.
마음 속 한구석에 남아있는 슬픔까지 기억하기에는, 기억이 너무나도 불분명했다.
*
전쟁은 끝났다.
이 한마디가,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알렸다.
모두가 거리에 나와 가지각색의 깃발과 봉을 들며 환영하고, 세계 전역에서는 폭죽이 터져나왔다.
밤새 파티를 열고, 슬픔을 잊기 위해 애썼다.
전쟁은 참혹했다.
이 전쟁으로 죽어나간 전사자의 수는 이미 수십억을 아득하게 넘어갔고, 그로 인해 남겨진 이들의 슬픔은 말할 것도 아니었다.
인류라는 종의 보존 자체에 위협을 겪었고, 그로 인해 사람들은 마구잡이로 갈려나갔다.
모두를 위해서.
사람들은 슬퍼하지 않고, 환호했다.
괴리감이 들었다. 단상 앞에 서서 대표로 훈장을 수여받는 그때까지도, 이게 과연 현실인건지 분간조차 안됐다.
머리는 멍했다.
그러다가, 문득 누군가의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
나와 눈을 마주친 화연이가 손을 흔들어줬다.
지켜야 할 사람의 얼굴이었다. 지켜야 할 이들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후회만 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라는 말을 누군가에게 들었어.어쩌면 여기 모인 사람들도 이걸 알기에, 최대한 밝게 웃으며 미래를 그리는 게 아닐까?
그리 생각했다.
하늘은 파랬다.
겨울 하늘은 구름 한점 없이 높아서, 마음을 쾌적하게 해준다.
숨을 한껏 들이 마쉬었다. 차갑고도 깨끗한 겨울공기가 몸 속을 시원하게 뒤섞는다.
[...Sir...]
저 멀리, 지평선 끝까지 쌓인 사람들의 머리 위에는, 먹구름이 아닌 빛나는 해가 있었다.
햇살이 눈부시게 비췄다.
그들을 향해 돌아서서, 밝게 인사했다.
최대한 밝게 웃었다.
인간은 행복을 위해 사는 존재라고 했잖아.
지금 이 순간은 행복하니, 최대한 오래 누리자.
그리 생각했다.
*
남은 것은 발전 뿐이었다.
그동안 바뀐 걸 말하자면 뭐... 끝도 없다.
중요한 것만 말하자.
우선, 세계 각지의 봉쇄구역은 마침내 무너지게 되었다.
구심점을 잃은 마수들이 차례로 토벌되기 시작하며, 드디어 저 멀리 고립되어 있던 세계와 다시 연결 될 수 있게 된 것이다.
아프리카와 남미쪽에서의 분쟁도 차츰 격화되기 시작했다. 아프리카쪽은 마수들로 인해 모호해진 영토 분쟁 뿐이라 덜했지만, 남미쪽은 정치문제도 상당부분 얽혀있었기에 쉬이 진정이 되진 않았다.
뭐, 솔직히 정치얘기는 알 바 아니긴 하다.
애초에 마수라는 공공의 적이 사라진 이후, 세계 각지의 분쟁도 심해졌으니 말이다.
초상능력자들을 새로운 종으로 분류하느냐 마느냐. 이런 문제와 더불어 초상능력자들의 인권문제나 범죄 관련 문제같은 것도 있었다.
이 부분은 애초에 전쟁을 끝낸 이들의 중심에 서있는 것 부터가 초상능력자들 이었으니 그다지 크게 떠오르진 않았지만 말이다.
세계는...
그러니까, 뭐라고 말해야 할까.
내가 느끼기에는, 꽤나 떠들썩해진 느낌이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사람들은 싸우기 시작했고, 무너진 문명을 하나하나 복구해나가기 시작했다.
어딘가에선 새롭게 전쟁이 터졌다는 얘기가 들려오고, 또 어딘가에선 새로운 국제단체가 설립되었다고 한다.
나쁜일도 좋은일도, 나에겐 그냥 전부 이야기일 뿐이었다.
좋았다.
사람들이, 이렇게 살아가고 있었구나.
이런 점들이 좋았다.
나는... 뭐.
"한서우! 너 다음달 동창회 올거냐?!"
"미안, 여기 아직 항공편이 불안정해서... 갈 수 있으면 미리 연락할게."
전화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마스의 목소리에 답했다.
주변을 둘러보자, 아직 복구가 한창 진행중인 폐허의 풍경이 보인다.
물론 나는 그냥 관광객 신분이라 굳이 도와주진 않아도 되기는 했지만... 나름 명색이 인류의 구원자인데 이런 것 따위 힘들까보냐.
마수들과의 마지막 싸움에서, 중심이 되었던 건 부끄럽게도 나였다.
영상에 찍힌 전장의 한가운데에서, 함성을 지르며 돌진했던 건 나였다.
빛의 파장을 만들며 전장을 휩쓸던 나는 당연하게도 인류의 구원자 신세가 됐다.
뉴스에 올라온 영상도, 인터뷰도.
전부 영화같았다. 마치 누군가가 극적으로 만들어낸 그런 장면의 일부인 것 같았다.
하지만 현실이었고, 내가 전쟁을 끝냈다.
사람들은 기뻐했고, 나는 고위층에게던 유명 인사에게던 상관없이 여기저기 파티에 불려나가고, 시상식에 불려나갔다.
정신 없었다.
그게 대략 3년 전 쯤 때까지 였을 거다.
지금은, 딱히 하는 일 따위 없다.
그저 세상을 여기저기 쏘다니며 방랑하고 있을 뿐이다. 목적지같은 것 없이, 혼자서.
자유로웠다.
여행에 목적이란 없는걸까?
문득 생각했다.
난 감정의 원인을 찾고 있었다.
전쟁이 끝나는 그 순간, 내가 느꼈던 기쁨과 슬픔.
난 그 슬픔의 원인을 몰랐다. 누구때문에 슬퍼했는지도, 왜 그렇게 서럽게 울었는지도 몰랐다.
나의 인생에 가장 중요한 분기점이 있었던 듯 하다.
근데, 그것조차 이제는 기억나지 않는다.
문득문득 꿈에 나오는 하얀색의 소녀조차 누군지 모른다.
초록색의 눈이 인상깊었다.
ㅡ나는, 슬픔을 찾기 위해 세상을 떠도는 중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