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8화 〉 1부 마지막. 작은 전쟁
* * *
기억에 남은 첫번째 광경은 색 잃은 생명들의 풍경이었다.
대재앙 이후의 폐허속에서 부모의 얼굴조차 보지 못한 채 떠돌고있었다.
다른 고아들과 마찬가지로 군부대에게 구조되어 보육원으로 이송됐다.
그곳에서 만난 이들이.
나에겐 너무나도 소중했고, 인생 처음으로 가져본 제대로된 인간관계였다.
하지만 방어전선이 무너지고 보육원마저 뚫리게 되었을때.
그 보육원에서 살아남은 건 나밖에 없었다.
좋은 사람이던 나쁜 사람이던 가리지 않고 언제나 죽음은 공평하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그때 생각했다.
어째서 생명은 공평해선 안되는걸까. 악인이던 선인이던 어째서 생명은 공평하지 않은걸까?
그렇게, 살아남은 난 카운슬링을 받고 새로운 보육원에 입소했다.
그곳에서 난 세상을 보았다. 많은 사람들을 보았고, 구세대의 찬란한 문명들을 보았다.
미어터지던 이전의 세상이나 보육원이 아닌, 조금 더 여유있는 사람들의 세상들.
물론 그 여유조차 지금에 와서 보면 이전 세대의 여유와는 상당히 차이가 있는, 일분일초 전쟁의 두려움을 겪고있는 불완전한 여유이긴 했지만 말이다.
보육원에서 마스를, 학교에선 성화연을 만났다.
이전의 보육원 원장님이 떠오르는, 이미 파괴된 보육원의 정경이 떠오르는 따뜻한 기분이었다.
어린 내 마음과 기억속에 깊이 뿌리내렸던 상처들은 어느샌가 서서히 지워나가졌다.
행복을 맛보고, 세상을 맛보며 살아갔다. 언제나 빛나는 하늘을 바라보며 살아갔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런 행복마저 또 한순간에 사라져버리는건 아닐까.
이런 빛나는 나날들마저 또 한순간에 빼앗겨버리는 건 아닐까.
행복이 있다면 분명 어딘가엔 절망도 있었다.
행복을 느끼는 나날이었지만, 언제나 마음 한구석에 불안이란 남아있었다.
보육원 원장님의 마지막 말이 다시한번 떠올랐다.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을 구하라던 말. 손 닿는 곳까지 전부. 행복을 지키기 위해서, 나만의 행복이 아닌 남들의 행복또한 지켜주기 위해서.
나는 행복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내가 스스로 알아낸 것이 아니었다.
언제나, 주변은 밝은 사람들로 가득 차있었다. 내가 곁에 있어도 되는건지조차 의심스러울 정도로, 찬란했다.
그 사람들을, 지켜주고싶었다.
내가 느꼈던 절망따위가 아니라, 지금 내가 느끼는 이 행복들을 모두에게 전하고싶었다.
절망을 알기에, 그리고 행복을 알기에.생명의 공평함과 행복의 공평함이라는 것을 알려주고싶었다.
나는, 지켜주고싶었다.
이 행복을. 모두의 희망을.
그렇게, 나는 히어로가 되기로 결심했고, 아카데미에 입학했다.
*
'새하얗다'라고 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소녀를 만났다.
이름은 루시.
흔한 이름이었다.
하지만 특별한 이름이었다.
평화라는 환상에 빠져 현실성 없이, 그저 꿈만을 쫓기 위해 살던 나에게 현실이라는 감각을 불러일으켜준 이름이었다.
평범한 줄 알았던 소녀가, 사실은 절망이라는 구렁텅이 속에서 빠져나오려 발버둥 치는 어린양이라는 걸 알았을때.
죽어있던 내 감각은 다시금 불길이 치솟아 오르듯, 되살아났다.
부작용도 있었다.
머릿속 깊이 각인된 트라우마와, 끔찍한 비명소리. 그리고, 악몽들.
그럼에도 버텼다. 나보다 더 힘들어하는 이가 있었기에.
난 루시에게도 행복이라는 감각을 맛보게 해주고 싶었다.
짧게 스치듯 지나가는 쾌락과도 같은 감정이 아닌, 인생을 돌아보고,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삶을 주고 싶었다.
루시 뿐만 아니었다.
현실감각이 되살아나며, 그저 말로만 구해주겠다, 행복하게 해주겠다던 사람들.
인생이 있고, 가족이 있고, 자신의 꿈이 있는 각각의 사람들 모두에게, 행복을 전해주고 싶었다.
그렇기에.
콰아아아앙!
투쟁했다.
섬광이 빛난다.
밤하늘 마저 뒤덮을 정도로 밝은 빛이, 종이위의 현실을 칠해갔다.
미래를 보고 싶은 이들이, 살아서 행복을 맛볼 수 있는 이들이.
모두, 여기 있으니까.
쿠구구!
땅에 구덩이가 파인다.
일어나는 먼지구름은, 뒤이어 쇄도하는 공격들에 곧바로 걷혀버린다.
이미 인간의 싸움이라고 볼 수 없었다.
현란한 무술들의 향연이 아니라, 그저 압도적인 힘이었다.
화려한 움직임따위는 이런 거대한 에너지들의 흐름속에선 아무 쓸모도 없었고, 그저 맞부딪치는 파도다.
선과 악따위의 개념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살기 위한 싸움이었고, 살아서 미래를 보기 위한 싸움이었다.
산다는 건 곧, 미래를 볼 수 있다는 것.
미래를 볼 수 있다는 건, 언젠가 찾아올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것.
콰과광!
검격 한번 한번에,산이 날아가고, 건물이 붕괴하고, 하늘이 갈라진다.
햇빛이 쪼개지고, 구름이 비산한다.
저 너머의
말 그대로.
'신'이라고 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것.
그저 마주보기만 해도 눈에 피가 고이고, 내장이 뒤틀리고, 고막이 터져나간다.
뒤에는, 루시가 누워있다.
손에는, 루시의 심장이 들려있다.
힘들었다.
하지만, 지치지 않았다.
이것은 누군가를 지키기 위한 싸움이며, 누군가에게 행복을 전해주기 위한 싸움이다.
그래서...
콰직!
옆구리가 꿰뚫렸다.
아프지 않았다.
오히려, 더 굳세게 검을 쥐어잡았다.
고통은 곧 인생이요, 인생은 곧 고통이다.
그 고통 속에서 실낱같은 희망을 주는게, 바로 행복이었다.
희망이, 곧 싸움의 목적이었고.
행복이, 싸움의 본질이었다.
*
상대가 신 비슷한것 이라고 해봤자, 이것들은 그저 분신일 뿐이다.
하나를 부수면 하나가 나오고, 또 하나를 부수면 나머지 하나가 더 나왔다.
그럼에도 끝은 있었다.
눈앞을 가득 메우던 섬광도, 어둠도, 잔상들도 모두 잠잠해진다.
격렬한 움직임 이후의 숨소리만이 주변을 가득 메웠다.
하늘 위로 솟아오르는 태양빛이 새하얀 눈밭을 비췄다.
그리고, 모든것은 조용해진다.
"...?"
더이상, 분신들이 나오지 않은 탓이다.
그러다 한순간, 검은 파장이 밟고있는 분신들의 잔해들로부터 쏟아져 나왔다.
"으윽...!"
온몸에 소름이 돋는 기분이었다.
지속된 전투로 만신창이가 된 몸도, 더이상 반응하지 않았다.
그리고, 검은 파장이 잦아들었을 무렵. 서둘러 주변을 둘러봤다.
달라진 것은 없었다. 다만, 분신들의 잔해가 전부 사라졌다는 것 뿐.
이것도, 무슨 이변인걸까?
아무리 기다려도 변화란 없었다.
"...하아...하아..."
이내, 눈밭에는 내가 거칠게 내쉬는 숨소리만이 남았을 뿐이다.
똑,똑 하며 손가락 끝에서 핏방울이 떨어져내렸다.
주변을 둘러봤다.
그 빌어먹을 신이란 작자가 만든, 대체현실이라는 공간.
루시와 나밖에 보지 못하는 고립된 공간.
우주 전체를 레플리카로 만들어 본래의 우주 위에 덧씌우는 무식할 정도의 힘.
그 감옥은, 그 지옥은.
마침내, 무너지기 시작했다.
쩌적ㅡ
하늘에 금이가기 시작했다.
유리와도 같이, 서서히 금가며 조각나는 하늘.
쨍그랑ㅡ
사방으로 유리깨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시간은 흘러가기 시작했고, 떠오르는 태양조차 찬란하게 빛나며 먹구름 아래의 전장을 환하게 비추기 시작했다.
전장의 소음은 서서히 잦아들고, 이내 폭음도 사라지기 시작했다.
모두가 돌아봤다. 서로를. 전장을. 시체를.
실감이 나지 않았다.
이대로 끝인건지, 정말로 모든게 다 괜찮아 진건지.
고요했다.
고요했던 감정은, 점차 고조되며.
이내, 전장은 함성으로 가득찼다.
성공의 함성으로, 모두의 기쁨으로.
모두가 냉병기를 집어던지고, 총을 집어던진다.
주저앉아 우는 사람들도 있고, 서로 껴안은 사람들도 있었다.
귀가 먹먹해질정도로 거대한 울림이, 온 사방을 휩쓸었다.
마치, 모든 이들의 행복이 이 곳에 모인 듯 했다.
그 장면을 멍하니 바라보던 나는, 루시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멍하니 날 바라보던 루시가 보였다.
그러다가, 내 입가엔 미소가 살며시 떠올랐다.
눈에는 눈물이 맺히고, 미소는 곧 웃음이 되었다.
루시는 날 향해 엄지를 치켜세워줬다.
웃으며 흘리는 눈물이라는게, 이런 거였구나.
루시를 향해 다가갔다.
"고마워, 루시..."
"..."
"정말로..."
파스슷.
들고 있던 대검은, 서서히 증발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다 끝났으니, 이런 것 쯤 없어도 상관없겠지.
...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대검이 사라져도, 루시의 심장은 되돌아오지 않았다.
"미안해, 루시...고마워..."
루시를 껴안았다.
슬펐다. 그리고, 행복했다.
상충될 수 없는 두가지 감정이 한꺼번에 마음속에 휘몰아쳤다.
루시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말없이 내 등을 토닥여주며 같이 안고있을 뿐이었다.
"윽...으흑..."
흘러나오는 눈물이 차갑게 굳은 볼을 따뜻하게 적셔줬다.
손에 닿는 루시의 피부는, 루시의 수많은 흉터는 분명...
행복을 바라던 자의 흔적이었다.
"끅...으윽..."
승리했고, 잃었다.
가장 중요한 걸 지켰지만, 가장 중요한 걸 지키지 못했어.
언젠가, 수도없이 후회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약속했잖아.
더 이상은 후회만 하지 않기로. 더 이상은, 제자리걸음만 하지 않기로.
더 이상은, 과거에만 얽매여 있지 않기로.
따뜻한 온기로 가득 차있었다. 내 몸은 생명이 격하게 박동하고 있었다.
품에 안긴 소녀는 서서히 차가워지기 시작했다.
재생능력으로 한계치까지 버티던 몸이 마침내 한계를 맞이한 것이었다.
심장이 없는 채로 그저...
"...미안해..."
*
그리고, 나는 내 몸을 껴안고 우는 한서우를 한참동안 보고 있었다.
"...취향도 참 악질이네..."
뒤를 돌아봤다.
공간은 사라지고, 새하얀 무(無)형의 하얀색만이 남았다.
그저 하얀색 뿐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