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3화 〉 1부 59. 의지
* * *
비명소리가 들린 곳을 향해 정신없이 뛰어갔다.
도착하기 전에 당해 죽기라도 한다면 그것만큼 나쁜 일도 없었다.
성화연은 아직 죽어선 안된다.
아니, 아직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죽어서는 안됐다.
그리고 마침내 도착한 연구실의 앞.
연구실...이라기엔 탁자도 약품도 없어서 그냥 휑하니 비어버린 방밖엔 보이지 않았지만.
부서져나가 푸른 빛만을 은은히 내뿜고 있는 방 안으로 살며시 발을 내딛자 검은 연기가 온몸을 휘감으며 소름끼치는 느낌을 만들어냈다.
꾹 참고 저 앞을 바라보니, 거대한 마수의 등이 보인다.
등이라고 확신할 순 없지만, 적어도 짐승의 형태니 꼬리가 있는 부분이 등쪽인건 확실하다.
설마, 벌써 당한건 아니겠지?
그럴리가.
서둘러 눈앞의 마수를 도륙낸다.
마력을 모으고, 통째로 작살낸다.
굉음이 근처를 가득 메우고, 잠시간 뿌연 먼지가 일어 콜록거리며 앞을 노려보며 서있었다.
"...루시?"
그리고 마침내 연기가 가라앉았을 때. 마수의 시체 앞에 주저앉아 바라보는 성화연이 보이기 시작했다.
"...다행이네."
"응?"
"안죽어서 다행이라고."
"...루시...!"
서둘러 몸을 추스르며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는 모습이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확실히 휑한 방이라는게 느껴진다.
마수의 시체를 걷어차 저 한구석으로 날려버렸다.
전등은 이미 다 나가버린지 오래, 저 벽면 구석에 붙어 깜빡이는 푸른 모니터만이 빛을 내뿜고 있을 뿐이었다.
창문이 많긴 했지만, 다 검게 칠해져있는데 제 기능을 할 수 있을리가.
"아, 맞다 성화연. 너 혹시 한서우랑 연락 해봤어?"
주변을 둘러보다 문득 한서우에게 생각이 미친다.
지금 어디서 무슨 짓을 하고있는진 몰라도 이상할 정도로 소식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서우? 아니. 난 서우랑 연락해본 적은 없는데...루시 넌 서우 만났어?"
"응, 만났지. 근데 벌써 몇십분째 연락이 안되고있어. 무슨 일 생긴것 같은데..."
"어떡하지..."
성화연은 고민하는 모양새였다.
아마, 우리 둘을 찾고 바로 나갈 모양이었나 보다. 하지만, 지금은 한서우가 행방불명.
마스나 다른 학생들도 같이 합류해야할텐데...난 이 층을 나갈수가 없잖아?
한숨을 푹 쉬었다.
"그래도...루시 너도 다행이다."
성화연이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또 어디로 가버리는건 아닌가 싶었는데."
한서우도 이러더만, 성화연도 이러네. 지나친 걱정은 독이라는 걸 알려줘야겠다.
성화연이 기대어 앉은 벽으로 가 옆에 같이 주저 앉았다.
성화연은 날 바라보며 싱긋 웃었다.
솔직히 말해서, 난 사실 성화연이 이런 전장 한가운데까지 올 줄은 몰랐다.
그도 그럴게, 워낙에 세상걱정 없이 살아온 애니까. 주변에 어두운 일도 없어서 머릿속은 온통 꽃밭일거라 상상했는데.
사실, 불안하긴 하다.
그도 그럴게 지금까지 보여준 화연이의 모습이란, 딱 전쟁터 한가운데 떨어진 어린아이의 모습이지 않은가.
언제라도 금방 무너질 것 같은 느낌이었다. 누군가 옆에서 잡아줘야한다.
뭐, 한서우나 마스가 잘 하고 있긴 하지만.
간이식량을 나눠먹은 우리는, 잠시 쉬며 이것저것 잡담한다.
"...델리지아?"
그러다가 나온 델리지아라는 말에 놀라며 화연이를 바라본다.
태연하게, 델리지아라는 인물이 해방자에 속해있고, 그 사람이 자신을 도와줬다는 말이었다.
"루시 너도 알고있는 사람이야?"
"으, 으응...?"
괜스레 삐질삐질 식은땀이 새어나온다. 델리지아가 해방자라고? 대체 왜? 루스리아랑 알테리지아는 어떻게된거지?
성화연도 아는게 그렇게 많은 것 같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건물이 한번 크게 흔들렸다.
놀라서 몸을 움츠린 성화연은 내가 빤히 바라보고 있다는 걸 눈치채자 멋쩍다는 듯 머리를 긁적이는 모습이었다.
"아무튼, 이번 층이 5번째로 이동한 층이었는데 말이야... 다행이었지. 비록 오래 걸리긴 했지만, 찾았잖아!"
"확실히 인원이 많아질수록 좋긴 좋지."
대충 긍정하며 몸을 추스르기 시작했다.
지금부턴 어디로 움직여야 할까. 이 층의 조사는 일단 다 끝났으니, 우선은 연구소 중앙의 구멍에 대해서 더 조사를 해보자.
조건같은걸 밝혀내서, 밖으로 움직이거나.
그런 생각을 하며 몸을 일으켰다.
문 앞으로 다가서다가 뒤를 돌아보니, 오묘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는 성화연이 보인다.
"왜 그래? 움직여야지."
"응? 아, 아니..."
여전히 바닥에 앉은 채 실실 웃는 성화연.
왜 저러는거야 대체.
그러다가, 화연이의 웃음소리가 별안간 멈췄다.
표정을 바라보니 놀란 것 같아 보인다.
화연이가 웃음을 멈춘 이유는 나도 알 수 있었다.
열린 문 바깥에서 들어오는 빛.그 빛은, 벽면에 내 그림자를 만들어낸다.
그 그림자는 훨씬 큰 그림자로 인해 가려졌다.
분명, 실루엣은 한서우였다. 거대한 대검이 트레이드 마크처럼 자리잡은 그림자였기에.
하지만 느낌이 이상했다.
"...한서우?"
성화연이 앉은 채 조심스럽게 말한다.
한서우를 보고 묻는 말이라기에는 반응이 이상했다.
이상함을 느끼며, 곧바로 뒤돌아보려고 했다. 본능적으로, 온몸에 마력이 휘감기기 시작한다.
하지만, 반응할 틈도 없었다.
발이 허공으로 붕 떴다.
*
대검을 뽑아냈다.
흐뜨러지는 자그마한 신형과, 허공 가득히 뿜어져 나오는 피들.
끔찍한 신음소리를 내뱉으며 온몸을 바들바들 떨고있는 짐승이 보인다.
아직 살아있는건가. 대검을 다시 한번 높이 치켜들어 깊숙하게 찔러넣었다.
푸욱!
"케헥, 흐아..."
저 모습을 보아라. 죽어야할게 분명한 상처임에도, 끊임없이 재생하여 대검의 칼날마저 감싸고 도는 저 징그러운 모습을.
말캉거리는 복부와 결합되어 대검이 빠지질 않았다.
발로 몸을 고정시킨 뒤 조금 더 힘을 주어 완전히 뽑아버리니, 차마 설명조차 못할 정도로 참혹한 형태로 뜯겨져 나가는 몸.
동공이 수축되며, 신음조차 흘리지 못한 채 고통에 꺽꺽대고 있는 짐승이었다.
도저히, 이게 사람 몸에서 나오는게 가능한가 싶을정도로 끝도없이 뿜어져나오는 피들이 보인다.
그 혈액은, 머리칼을, 옷을, 피부를 흠뻑 적셔나간다.
그리고, 그 짐승의 앞에 주저앉아, 날 올려다보고 있는 성화연.
"...한, 서...우"
짐승의 장밋빛 혈액을 흠뻑 뒤집어 쓴채, 온몸을 벌벌 떨고있는 화연이가 보였다.
"응, 화연아. 괜찮아. 마수는 처리했어."
싱긋 웃어주며 다시 한번 대검을 발 아래 짓밟혀있는 마수의 몸속에 깊숙하게 박아넣었다.
땅까지 파고들어가는 대검의 감각.
미친듯이 움찔거리던 발 아래의 움직임은 어느샌가 잠잠해져, 고요만이 가득 메우고 있을 뿐이었다.
"왜...왜 이러는거야...대체...왜..."
갑작스럽게 성화연이 울기 시작했다.
대체 누구한테 하는 말이지? 나한테 하는말인가?
그렇다면 대체 왜 그런거냐며 질책할 이유가 없을텐데. 난 그저 마수를 척출한 것 뿐이잖아.
하지만, 화연이는 엉금엉금 기어와 발 아래 짖밟혀 쓰러져있는 마수의 머리를 끌어안았다.
"...으, 으윽...왜...왜애...."
"...화연아?"
화연이를 내려다보다가, 문득 마수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깨져나간 머리에서 흘러나온 피를 뒤집어쓴 모습. 살짝 벌어진 입에선 핏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새하얀 은발은, 붉은색의 혈액으로 염색되어있다.
"...어라."
루시잖아.
루시가 왜 여깄지?
분명 방금 마수를 없앨때만 해도 루시는 없었는데...
"...어..."
그러다가, 루시의 드러난 등 위로 박혀있는 거대한 대검을 바라본다.
"...어?"
손을 바라본다.
매끈한 혈액이 한가득 묻어있는 모습이 보인다.
천천히, 내가 무슨짓을 했는지 깨닫기 시작했다.
"아...아...?"
부정하고 싶었다. 하지만, 눈앞의 참혹한 광경은 있는 그대로의 사실만을 말해주고 있을 뿐이었다.
천천히 뒷걸음질을 치며 뒤로 물러난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하지만, 급작스럽게 머리가 쪼개지는 듯한 통증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이전에도 비슷한 느낌을 받아본 적이 있는것 같은데, 생각을 할 수가 없어.
머리를 부여잡고 비틀거리며 저항해봤다. 하지만, 도저히 들어오는걸 막을 수가 없다.
'버텨.'
버텨야해.
할 수 없어도, 버텨야해.
더 이상은 안돼. 한번만, 더 그랬다가는...
무슨일이 일어날지, 나도 알 수 없단 말이야.
제발, 누군진 몰라도 그만해.
머리를 벽에 마구 박는다. 깨진 이마에서 흘러나온 피가 눈가를 적신다.
그럼에도, 자꾸 무언가가 머릿속으로 비집고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끄으, 으으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통증인 듯, 쾌락과도 겹쳐있는 무언가의 감정.
서둘러 머릿속에서 내보내야한다. 발악하고, 저항했다.
비명소리가 멈추고, 다시금 방은 조용해진다.
루시의 작은 몸에서 뿜어져나오는 피분수의 소리만이 방 안을 채우고 있었다.
그리고 난, 결국 그러지 못했다. 버티질 못했다. 빌어먹을 정신력을 저주해봤자, 바꿀 수 있는게 없었다.
의식은 남아있지만, 내 몸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움직인다.
제발 그만 하라며 내 몸을 붙잡아도, 도저히 말을 듣질 않는다.
울고불며 난리쳐도 그저 조용히 웃고만 있을 뿐이었다.
조용히 성화연의 앞으로 걸어간 '나.'
한서우가 손을 뻗어 성화연을 멀리 쳐냈다.
비명과 함께 벽에 날아가 부딪힌 성화연은, 울먹거리는 눈길로 이곳을 바라봤다.
몸을 일으키려 하는 모습이 보이지만, 생각만큼 잘 되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잠시간 바라본 한서우는 대검을 붙잡고 거칠게 뽑아냈다.
"으학...!"
단말마가 울렸다.
대검을 뽑아낸 한서우는 피를 한번 쓱 털고선 발을 움직여 얼굴이 천장을 바라보게 루시를 돌렸다. 고통에 이를 악물면서도 계속해서 일어나려 하는 모습이었다.
몸을 숙여 루시의 바로 앞에 얼굴을 대는 한서우.
아이야. 바뀌는 미래란 없다고 말했지 않느냐.
섬뜩한 울림이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루시는 눈물을 머금으면서도 이를 갈며 한서우를 노려본다.
하지만, 그런 모습도 귀엽다는 듯 한서우는 피식, 하며 비웃듯이 웃었다.
아니, 비웃는건가? 잘 모르겠다.
적어도 그때, 내가 봤던 나의 얼굴은 분명 인간의 그것이 아니었다.
검게 칠해진 무언가? 아니, 색으로 정의할 수 있는 모습이었나?
그 안면의 움직임은 분명, 나에겐 비웃음과도 비슷한 무언가로 비추어졌을 뿐이었다.
결국, 모든건 정해진대로 흘러간단다.
한서우는 왼손을 뻗어 루시의 머리를 다시금 바닥에 누른다.
"이, 이익...!"
한서우의 양 팔을, 검은 구체가 삼켜간다.
루시의 마력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루시가 마지막으로 몸을 튕기며 발악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를 들은 한서우는 오른손으로 무언가를 움켜쥐려는 듯한 모양새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곧바로.
푸걱!
루시의 가슴속으로, 손이 비집고 들어간다.
말 그대로의 의미다. 한서우의 손은 두부를 으깨듯 손쉽게 루시의 피부를 헤집고 들어가, 두근거리는 심장에 맞닿았다.
다른 내부장기와 다르게 온전한 상태인 루시의 자그마한 심장은 대량의 피를 뿜어대며 공기중으로 뽑혀져 나온다.
배터리가 다 된 인형처럼, 눈에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빛은 완전히 사라져 죽음만을 비췄다. 발악하던 움직임조차 퓨즈 끊어지듯 축 늘어진다.
뽑혀나온 심장은 여전히 두근두근 뛰고있는 모양새였다.
저 멀리 주저앉아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있던 성화연은 결국 정신력이 고갈되고 만건지 기절하고 말았다.
방 안에 울려 퍼지는, 음울하고도 습기찬 목소리. 마치 뱀이 쉿쉿거리는 듯한 그 소리는 무언가를 외는 주문이었다.
마법진을 분명 소리의 형상으로 치환하면 저런거겠지.
대검은 검게 물들며 점점 줄어들기 시작하더니 심장의 형태로 변한다.
그 심장은 점점 더 묽게 변해 마침내 젤리같이 탱글거리는 검은 물질로 변했다.
그리고, 여전히 뛰고있는 붉은색의 심장을 코어와 결합시켰다.
푸른 연기가 뿜어져나오며 지상을, 창공을, 성계를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마침내.
모든 것이.
완성되었다.
나 또한 그 모든 광경을 눈에 담았다.
멋대로 움직이는 몸을 스스로가 제어하지 못하고, 끔찍하게 망가져가는 루시를 그저 바라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내 손으로, 내가 망가뜨리는 느낌을, 전부 다.
손에 남아있는 매끄러운 피부의 감각이 정신을 서서히 무너뜨린다.
이게 아닌데. 원래 이래선 안되는거잖아.
하염없이 울어도 달라지는 것이란 없다.
제발 이 모든것이 꿈이길 빌어도 바뀌는 것은 없었다.
결국엔, 나마저도 절망하고 말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