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화 〉 1부 57. 비명소리
* * *
"커헉..."
토하듯 숨을 내뱉는다.
일전의 충격에 아직 적응하지 못한 상태였다.
쓸려오는 마수들을 막느라, 갑작스레 덥쳐온 검은 물결로부터 주변을 보호하느라. 오른팔에서 타오르던 불길마저 꺼트리던 검은 물결이 떠오른다.
눈살을 찌푸리며 힘겹게 눈을 떴다.
"...뭐야 여기..."
주변을 둘러보자 보이는, 기이하리만치 깨끗한 병원의 풍경.
아니, 깨끗하다고는 볼 수 없었다. 분명히 벽과 바닥은 먼지하나없이 깨끗하지만, 그 외의 것들은 전부 부서지고 흩어져 음산한 분위기를 뿜어댔기 때문이다.
이곳이 방금전의 그 연구소라고는 손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정신을 잃기 전 분명 난 녹아내린 그 건물에 집어 삼켜졌으니.
한서우는? 루시는 어떻게 된거지? 혹시 모두 무작위적인 위치로 흩어진건가?
만약 그렇다면 최악의 상황이었다. 포위당해서 각개격파 당할지도 모르는 상황.
물론 그 한서우가 당하리라 생각하진 않지만, 그보다는 루시와 성화연이 더 걱정이었다.
루시라면 또 붙잡혀 무슨 험한 꼴을 볼 지 모르고, 성화연은 애초에 전투능력조차 없기 때문이었다.
'무전기는 어딨지?'
품 안을 뒤져봐도, 마력공학 무전기따윈 보이지 않는다.
"...아."
그렇게 정신없이 주변을 살펴보다 발견한, 완전히 박살나 부품을 모두 빼놓고 정지한 무전기.
그래, 좆됐네.
이제 주변 애들이랑 연락할 수단은 완전히 사라졌다고 봐도 된다.
"에이씨..."
이런곳에서 혼자 뭘 어떻게 하라는거야.
하다 못해 옆에 누군가 같이 있었다면 좋았을텐데, 안타깝게도 이 층엔 나밖에 보이지 않았다.
병실 문을 박차고 들어가도 보이는 거라곤 분명 끔찍한 실험이 자행됐을게 분명한, 피에 흠뻑 젖은 실험실들.
게다가, 이 시설은 분위기 또한 심상치가 않았다.
연구자들이 보이질 않는다. 심지어, 복도 주변에는 붉은색 고깃덩어리가 널려있다.
이렇게 우리가 안에 들어왔음에도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다. 아무도 날 잡으러 오질 않는다.
대체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는거지?
정신없이 30분정도 뛰어다니다가, 마침내 발견했다.
"...이게 뭔..."
붉은색의 마력 잔해가 떠도는 거대한 공동을.
휘이이...
바깥에서 세찬 바람이 불어들어온다.
추위가 심해 오른팔에 불을 지피자 그나마 가셨다.
정신을 추스르고, 다시 한번 마주하는 눈앞의 광경.
병원의 한가운데가 뻥 뚫려있다.
분명, 위에서 바라보면 도넛과도 같은 모양새일 것이다.
병원의 일부분이 전이 과정에서 날아간건가?
지하 저 깊은곳까지 파여있는 거대한 구덩이의 모습이란 무슨 공포영화에서나 나올법한 풍경이었다.
하늘을 바라보니, 완벽한 정 중앙에 붉은 달이 떠있는 모습이 보였다.
괜히 으스스해져서 다시 건물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고보니, 이 중앙쪽으로라면 층 이동할 수 있는거 아닌가?'
계단실은 분명 전부 막혀있었다. 창문들도 전부 검은색으로 칠해져 있었고.
그렇다면, 혹시 유일한 통로는 이곳 뿐인걸까?
다시 한번 고개를 빼어 살펴보니, 역시나 저 위의 층까지 모두 볼 수 있었다.
"...오케이. 일단 경로 하나 확보 됐네."
일단은 이 층 먼저 다 살펴보고 움직이기로 결정했다.
*
이 층은 일단 그렇게 특별한 건 없어보였다.
널려있는건 오직 실험도구들과 실험실 뿐.
가끔씩 마수들의 잔해같은 것들이 보여도 이미 움직임이 사라진 지 오래된 것들 뿐이었다.
그렇기에 이 윗층으로 움직이기로 결정했고, 너덜너덜해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몸을 이끌고 끙끙거리며 철근이 다 튀어나온 윗층의 바닥부분을 붙잡고 간신히 올라갔다.
"허억...허억..."
시발...
이게 뭔 고생이야 진짜.
몸이라도 멀쩡했으면 좋으련만, 가뜩이나 오른팔 의수때문에 제대로 움직이지조차 못하겠다.
저번 해변에서의 전투에서 갈려나간 부분은 아직까지도 수리되지 않았다.
"...에휴, 내 팔자야..."
지금 푸념해봤자 아무 소용 없다. 난 움직여야 한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 걷기 시작했다.
한참을 걸어다녔다.
지쳐 쓰러질 것 같았다. 그럼에도 계속 걷는다.
그러다가 발견한, 이질적인 생김새의 방.
다른 실험실과는 규모조차 다르고, 생김새도 판이하게 차이났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 앞 원통형의 관 안에 떠있는 검은색의 덩어리 하나.
"..."
침을 꿀꺽 삼키고, 불길을 일으키며 천천히 방 내부로 진입했다.
양 옆에 모니터가 한가득 달려있는 모습이 영락없는 관찰실.
아마 저 관 속에 든 물질을 실험하는 공간인 듯 했다.
푸른색의 액체가 가득 찬 관 속에선 검은색의 물질이 꿈틀거리며 살아있는 듯 움직이고 있었다.
생물체였던건가?
아니, 그럴리가. 저런게 생물일 리가 없잖아.
어쩌면 마수의 생산과 관련있는 시설인지도 몰랐다.
방 안을 충분히 둘러본 나는 여전히 깜빡거리며 작동하는 컴퓨터의 앞에 섰다.
마우스를 움직이며 살펴보는 기록들.
그 앞에는 질서정연하게 정돈된 파일들과 글자들이 한가득이다.
그리고, 파일을 하나하나 열어보다 발견한 단어. 그리고, 날 충격에 빠트리기에 충분한 단어.
"...루스리아?"
다시 한번 푸르른 관을 돌아봤다.
검은색의 물질이 요동치고 있었다.
이 파일에 따르면, 저 검은 물질이 바로 루스리아 자체였다.
*
루스리아는 다시 말해 '실패작'이었다.
엘로힘에 관한 정보가 확실치 않은 시점에서, 엘로힘이 되는 과정조차 모르고 인공적으로 시작부터 엘로힘으로서 만드려고 했던 계획.
그 당시엔 대륙 내부 점거가 완료된 시점이라 피실험체같은건 넘쳐났기에, 이곳저곳에서 공급되는 피실험체들로 마구 실험했다.
솔직히 말해 두서도 없던 실험이었다.
그도 그럴게, 만드려 하는 것의 정보만 알고 그 외에는 전혀 무지한 상태였으니.
훗날 루시를 통해 그 실마리가 잡히긴 했어도 이 당시엔 완전한 무지 상태였다는 말이었다.
본인들에게 기억을 전달한 엘로힘조차, 이전에 엘로힘을 만들어본 경험이 있어야 알지.
모두가 이번이 첫 경험이었다.
그리고, 이 초기의 계획에서 그나마 성공체라고 할만한 것이 루스리아.
능력은 간단하다.
생물체를, 본질적인 부분부터 마수로 변환시킨다.
본인 자신조차.
마력이 존재하지 않는 일반 야생동물이나 일반인에게 마력을 강제적으로 주입하면 마수가 된다.
저 너머의 세계에서 넘어온 사람들도 그와 같은 과정을 통해 마수가 됐다.
그리고, 루스리아는 마력을 강제적으로 주입하는 능력이 있다.
루스리아의 정신이 곧 마력이고, 조종하는 것 또한 마력이었다.
루스리아는 분명 본질 자체는 인간이었지만, 그 외의 모든것은 마력으로 치환되었기에 정신또한 패턴만 알면 마구잡이로 복제할 수 있었고, 마수 또한 마구잡이로 양성할 수 있었다.
주입하는 마력을 조금만 줄이면 마수가 되는 대신 그저 붉은 고깃덩어리가 된다. 마수가 되기 직전의 생물체와 마력뭉치 사이의 중간.
허나.
허나, 그게 전부였다.
루스리아는 불멸도 아니었고, 생각만큼 마수의 생산능력이 뛰어난 것도 아니었다.
무엇보다 마수를 자체적으로 생산하는게 아니라 베이스가 되는 생물이 준비되고 나서야 가능하니 이 또한 에러사항이었다.
그렇기에, 실패작이었다.
다만 이 실패작을 통해 더욱 발전된 성과를 거두기 시작했고, 이를 통해 나타난게 바로 루시. 그 경이로운 성공작.
여기까지 읽은 나는 곧장 컴퓨터를 박살냈다.
어째서 내가 지금 분노하고 있는거냐 묻는다면 할 말이 없다.
루스리아는 분명 나쁜년이었잖아. 맞지?
혼돈에 취해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죽이고, 자신의 욕망만을 위해 세상을 살아갔던 인물. 맞잖아?
하지만, 그럼에도 마음속에서 은근슬쩍 피어나는 이 죄책감은 아마 2년전 총공습 사태에서 그녀에게서 구해진 경험 때문일 것이다.
그래, 그저 사적인 감정이었다.
"...지랄하네 진짜."
어쨌든 이런 감정은 혐오스러웠다.
범죄자를 눈앞에 두고 죄책감따위를 느끼는 히어로가 어디있다고.
그렇기에 그냥 가슴에 묻어뒀다.
루스리아는 죄를 지었다.
비록 가해자가 된 피해자일지라고 해도, 루스리아가 저지른 죄는 용서라는 영역을 이미 넘어선 것이다.
그렇기에, 그녀는 죗값을 치렀다.
결국 저 앞에서 저렇게 생각조차 못하는 덩어리가 되어 간신히 숨만 붙어있을 뿐이지 않은가.
동정심이란 하등 쓸모없는 감정이었다.
발걸음을 돌려 방 밖으로 나갔다.
***
아이야.
정신이 쪼개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거부하지 말거라.
이것에 잠식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조차 모르고 있었다.
대검을 치켜들어 어디있는지도, 누구인지도 모를 상대에게 겨눴다.
눈앞이 온통 까맣게 물들어오고, 제대로된 사고를 마비시키기 시작했다.
함께 가자꾸나.
음성인지조차 모를 이 기이한 울림은 태연하게 거짓을 말하고 있었다.
온통 가식뿐인 불가해한 생김새의 소리였다.
"저리...꺼져...!"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대검을 휘두른다.
풍압에 벽이 짓눌리며 터져나갔다.
모두를 지키고 싶지 않느냐?
필사적으로 거부했다.
필사적으로 정신이 잠식되는걸 막았다.
하지만, 도저히 저항할 수가 없었다. 무엇때문에 내가 이렇게 힘들어 하는건지, 무엇 때문에 내가 이렇게 거부하려 하는건지...
알 수 없었다.
난 그저 저항하고있었다.
눈 앞의 상대가 누구인지,무엇을 말하려는지 조차알지 못한채 그저 저항하고만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신념조차 저 먼곳으로 날려먹게 되었고,내 의식은 점차 깊은곳으로 가라앉기 시작한다.
하지마.하지마.하지마.내손으로,그딴짓을할수있을것같아?그럼내손이아니면되잖아.내손이아니면뭐든지가능한거잖아?그렇기에 나는 손을 놓을수가 없었다.내가 이손을 놔버리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이미 알고 있었다.허나 내 정신은 너무 유약했다.더 이상 버틸수가 없어.미안해.미안해.미안해.미안해.미안해.악몽이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내가 가장 싫어하는 광경이 눈앞을 가득 메웠다.
그리고, 나는 마침내 정신이 붕 떠버렸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