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8화 〉 1부 54. 뒤틀림
* * *
바퀴가 굴러간다.
사람들이 움직이고, 시설은 계속해서 기동된다.
그렇게, 그들이 이변을 눈치챌 무렵은 새벽.
모두가 자동차를 멈추고 저 앞을 바라봤다.
"저게 뭔..."
하늘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에 비치는 똑같은 풍경.
변화조차 너무 미미해서, 과연 알아차릴 수 있을까 싶었지만, 그 변화는 어느새 온 사방을 집어삼킬 정도로 커져 모두의 뇌리에 박혀들어갔다.
"...미치겠네."
주변에서 탄식과도 비슷한 음성이 들려왔다.
나 또한 저들과 비슷한 심정이지 않을까.
지금 우리들의 눈앞에 비추는것은,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붉게 물든 보름달의 모습이었으니 말이다.
*
제 4안전구역과 통신이 두절된걸 알아차릴 시점엔 너무 늦었다.
이미 사방에서 마수들이 몰려오고 있었고, 마치 포위라도 하는 것 마냥 서서히 통신을 두절시켜 갔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우리는 이 모든게 그저 연구자들의 활동이 시작된거라는 의미로밖엔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말이야.
애초에 연구자들의 시설이 전이하기 8시간 전부터 전조증상은 이미 나타나 한서우에게서 전달받았다.
그 덕에 제 4안전구역도 그 사이 가드의 통제로 모두 대피했고 말이야.
어떻게 가드까지 움직이는건진 몰랐지만, 그 점은 신경 끄기로 했다.
나도 알비나도 레프 아저시도, 파벨도 소피야도 모두... 가드였으니.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내 주변에 연관되어 작전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가드가 도와준다고 뭐 딱히 불만이라고 할만한게 없긴 하지.
알비나가 그 기간 사이에 갑자기 기하급수적으로 일이 늘어난건, 그냥 우연일거다.
"루시, 무리하지마. 너만 성공적으로 데리고 나가도 우리의 승리니까. 괜히 남들 구하겠다고 또 2년 전처럼 그렇게..."
"안 해, 안해. 걱정하지마. 이번엔 그때와는 준비도 자체가 다르니까."
성화연도 참, 걱정이 너무 심했다. 이해는 갔다.
그래서 좋았다.나도 누군가에겐 소중한 사람으로 여겨질 수 있다는게.
'...'
너무 궁상맞기는.
성화연이 그냥 착해서 그런거야.
정말 이런 세상에선 보기 드물정도로 순한 애라서.
"너도 다치지 마."
"난 어차피 후방지원이라 다칠 리가 없잖아. 너야말로 조심해."
"하하..."
그래, 뭐. 아무튼.
시간은 찾아왔다.
영원히 오지 않았으면 좋았지만, 역시나 어김없이 찾아왔다.
이번 한번만 끝내면, 다 끝나는거야.
이동하기 위해 트럭에 올랐다.
***
우리가 집결지에 도착할 때, 사람들은 속속 들어오고 있었다.
이미 바깥부터 전쟁터라, 겨우겨우 방어선이 급조되고 간이 캠프가 만들어진, 상당히 엉성한 곳이었지만 그럼에도 안심됐다.
우리를 제외한 나머지는 대부분 도보로 걸어온 듯 했다. 텐트는 많았지만 트럭이 정말 손에 꼽을 정도로 없었기 때문이다.
다들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음에도 꽤나 지쳐보였다.
부상병들은 없는 걸 보아, 아마 저 바깥에 따로 안전구역을 마련해두고 관리 인원까지 떼어두고 온 게 현재 여기 있는 사람들인 듯 했다.
"마스 넌 이런거 많이 겪어봤어?"
아카데미의 현장 파견 임무를 물어보는 것이었다.
"...아니, 그럴리가. 한서우라면 많이 겪어봤을 지도 모르겠네. 걘 워낙에 최전선 쪽 많이 불려다녔으니까."
그렇군. 고개를 끄덕여본다.
세부 작전사항은 어른들의 사정이라 잘 모르겠다만, 캠프 중앙에 세워진 저 거대한 텐트 안쪽에서 논의가 벌어지고 있는게 분명했다.
그나저나, 가드 제복도 언뜻언뜻 보이네. 가드까지 협조하기로 한건가?
도대체 어떻게 접선한건진 모르겠는데, 일단 좋은일이긴 했다.
가드까지 합세하면 확실히 전력은 말도 안 될 정도로 강해지니까.
바깥에서 산전수전 다 겪고 들어온 사람들과 내부에서 힘을 길러 탑을 먹은 사람들의 무력이 어떨지 비교해본다면 역시나 답은 정해져있었다.
연구자들은 인류의 적.
저들이 부서진다면, 이 내부의 사람들도 바깥으로 나갈 수 있다.
비록 공공의 적이 사라져 세계의 분쟁이 더 격화될 지라도, 하루하루 생존에 위협을 받으며 살아가야 하는 지금의 세태보다는 낫겠지.
하늘을 바라보니 구름 한점 없이 맑은 날씨였다.
괜스레 기분이 좋아진다.
모든 사람들이 하나의 적을 격퇴하기 위해 이렇게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날 밤이었다.
천막안에서 작전의 개요를 외우며 준비하고 있던 때, 문이 열린 건.
침대에 앉아 목에 달린 로켓을 열어 가족사진을 바라보던 성화연도 놀란 채 그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한서우?"
한서우가, 숨을 헐떡이는 채 그곳에 서있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뭔가 굉장히 가슴이 벅찬듯한 표정이다.
눈시울이 붉어지더니, 이내 눈에서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져내리기 시작했다.
"...루, 시."
"..."
"어쩌다가, 그렇게 된거야..."
아마 내 안대와 잘려나간 왼팔을 보고, 줄어든 내 몸을 보고 저리 말하는 듯 했다.
분명 말해줬을텐데, 라고 생각했지만... 듣기만 하는것과 실제로 보는건 또 다르니까.
와락.
의자에 앉아있던 날, 한서우가 바짝 끌어안았다.
"읍...아니, 야... 한서우..."
"...미안. 그냥 지금은... 이렇게 있자."
목소리가 너무 슬프게 느껴져 가만 놔둔다.
배에 따뜻한 감촉이 닿는게 느껴진다.
한서우의 눈물이었다.
다들 감정적이다.
딱히 그것가지고 뭐라 할 생각은 없었다.
***
"이제 저 사람들도... 다 모였네요."
언덕 위에서 아래의 캠프를 바라보며 묻는다.
마수들이 아직까지 이곳을 쓸어버리지 않았다는건, 이것조차 연구자들의 의도대로 흘러가고 있다는거니까.
이대로 간다면 분명 제대로 파토날게 분명했다.
"...선구자님은 왜 여기 와있는거죠?"
옆에 앉아있는 꼬마를 바라보며 묻는다.
선구자님이 온 건 지난 일주일 전. 루시를 제외한 모두의 기억에 손을 댔다고 한다.
자신을 잊어라, 라는 식의 단순한 제거 마법을.
그렇게 하고 찾아온것이 바로 해방자들의 집결지였던 것이다.
본래 해방자들은 선구자들과 같은 '사념체'들의 의지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조직.
연구자들이 말하는, 소위 '엘로힘'이라고 하는 생물들을 이곳에서 몰아내기 위해 고의적으로 만들어진 집단.
그리고 이 조직의 근원이 바로 이 중요한 시점에 나타난 것이다.
조직을 설립한 사념체가 이분은 아닐테지만, 적어도 그와 비슷한 분.
모두 같은 조직에 속해있었다고 했으니 선구자님들 또한 모두 우리에겐 은인과도 같은 것이다.
애초에 고아같은 불우한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을, 이렇게 가치를 부여해주신 분들인데.
아무튼, 내 물음에 선구자님은 별 말씀 없이 멍하니 저 아래의 캠프만을 바라봤다.
조용하게, 이따금씩 마수의 괴성이 울릴 뿐 바람소리만이 들려오는 언덕 위.
선구자님은 조용히 입을 여셨다.
"...그저, 이 변수들이 어떻게 흘러갈지 알고싶은 것 뿐이다."
"변수요?"
"미래를 알고있는 자가 바꿔가는 미래가, 과연 파국일까 아닐까. 그 점을 걱정하는거지."
"..우리도, 루시를 도와줄거잖아요. 이건 혼자만의 싸움이 아니에요."
루시는 혼자가 아니다.
본인이 알던 모르던, 앞으로는 언제나 내가 곁에 있을테니.
다른 이들이 버린다 해도 나만큼은 곁에 있을테니.
"...윤서아. 너는 엘로힘이 어떤 존재들인지 알고 있나?"
"아뇨...전, 무지하니까요."
루시처럼 만나본 적도 없고, 그저 전해들어오기만 했던 얘기.
그저 인간이 범접할 수 없는 존재. 형태가 정해지지 않은 존재.
목적도 존재의 의미도 불분명한 존재라고만 알고 있을 뿐이었다.
"인간이 범접할 수 없는 존재라는게 중요하지."
"..."
"...사실말이다, 애초에 엘로힘같은게 직접 인간의 몸을 빌려 강림할 일이 없긴 하다. 살펴본 바로는 직접 강림한 것도 아니었고 말이야."
내가 이해할거라고 생각은 안하고, 그저 혼잣말을 하듯이 중얼거린다.
"그저 기억만을 이어받은 레플리카가, 저 연구자들이야. 저 연구자들조차 모조품에 불과하다는 얘기라고...처음부터, 자각따윈 없는 채로... 자신의 욕망만을 위해 사용할 뿐인 수단 말이야."
"...그런, 가요."
"미래는 어떤 발버둥을 쳐도 바뀌지 않아. 그저 그가 그렇게 정했다 하면 그렇게 흘러가는거지, 결코 우리같은 미물이... 바꿀 수 있는게 아니란거다."
체념한듯한 말투다.
그럼에도, 인간의 불복성을 찬양한다.
정해진 미래에 저항하는 인간을 찬양하지만, 결국엔 그들이 미래를 바꿀 수 없음을 알고 절망하는 말이었다.
'부딪혀 봐야 아는거 아닐까요. 루시가 그렇게 말하던데.'
'...처음부터 뒤틀린 신념이었다. 그건. 말은 좋게 들리지만 근본부터 틀어진 생각이었어.'
오고갈수록, 그저 결정론적인 말만 내뱉는다.
자신들이 미래를 바꾸기 위해 창조한 해방자 앞에서도, 그저 결정론적인 말만을 한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아. 언젠간, 언젠간 바뀔거야.
바뀌지 않더라도, 그 절망속에서 반드시 행복을 찾아내고 말테니까.
얘기가 끝났다.
준비를 하기 시작한다. 모두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알게 모르게 누군가는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해방자들은 작전 도중의 난입을 위해, 연합군은 침공을 위해.
철저하게.
그리고 다음날 저녁 8시.
마침내 모두가 모였다.
멋들어진 연설따위란 없었다.
그럼에도, 격려의 한마디.
각자에게서 조용조용 격려하는 말이 오고간다.
붉어진 달을 바라보는 사람들.
그리고, 작전이 시작됐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