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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해주세요, 마수님!-55화 (55/162)

〈 55화 〉 1부 51. 오랜만이야.

* * *

주변이 어수선하다. 사람들이 분주히 오가며 천막을 치고 있기 때문이었다.

일단 앞으로는 조사도 할 겸 해서 이곳에 머물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부대에서 유일한 공명계열 능력자인 난 조사 협조 목적으로 이렇게 따로 불려나와 있는거고.

"...이쪽에 특히 마력이 너무 많이 집중돼있습니다. 옆으로 퍼져나간 모양새가 있는걸 보니..."

난 그저 보이는 대로만 말하고 있을 뿐이다. 미량으로 남은 마력의 잔해는 워낙에 오차도 많고 믿을만한 증거가 못되서 그냥 버려지곤 하는데, 이런 것 마저 붙잡을 정도로 절박한 상황이라는거겠지.

그렇게, 조사를 도와주며 밤에는 천막에 들어가 잠깐씩 쉬는 것으로 일상은 반복되고 있었다.

하지만.... 무언가 이상한 느낌이야. 어딘가, 놓친 부분이 있는 것 같다.

이 일상 뒤에 숨어 똬리를 틀고있는 뱀의 존재를, 난 눈치채지 못했다.

*

­애애애애애애애앵ㅡ!

자정무렵이었다.

천막 뒤로 나와 홀로 대검을 휘두르며 연습하고있을 무렵.

온 광야를 다 메울 정도로 거대한 사이렌의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 소리에 놀라 여기저기 불빛이 켜진다. 모두가 무장을 갖추고 곧바로 밖으로 뛰쳐나오기 시작했다.

나 또한 거의 본능에 따라 그들을 따라 뛰어나갔다. 불길한 느낌은 언제나 빗나가지 않으리란 걸 알았으니까.

그러나 내가 마주한건 그저 검은 평원 뿐. 그 이상은...

'...'

"...?"

검은 평원...?

...이 아니었다.

마수들의 사체는 한곳으로 모아 처리하기 시작한지 오래. 그 덕에 이곳은 회색빛의 잔해더미와 핏줄기만이 남아있어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

그러다가 저 멀리 서있는 존재를 목격했다.

마치 사람과도 같은, 그러나 사람은 아닌 무언가.

생긴것은 분명 사람이었으나, 이 자리에 서있는 모두는 알고 있었다. 저것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현재의 상황이 파악된 순간 모두의 몸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대규모로 작전을 진행했는데 저들이 못알아차릴거라 생각했던게 오산이었다.

어떻게 연구자가 본래의 힘을 되찾고 저런곳에 태연하게 존재하고 있는가, 라는 의문은 하등 쓸모없는 의문이었다.

우리로선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훨씬 더 많으니.그저 미지와 대적하는 것 뿐이다.

­쿠과광­!

거대한 폭발음이 곳곳에서 울리기 시작했다.

마수들이 파도처럼 밀려오고, 그에 맞서 대검을 휘둘렀다.

­쿠우우ㅡ

평야를 따라 길게 그어지는 새하얀 검격이 뭉텅이로 마수들을 썰어버린다. 어둡기만 했던 밤하늘 아래에서 거대한 빛들이 번쩍이기 시작했다.

[기대 이상이야.]

이것들은 단순히 버림패 뿐 이라는걸.

저들은 알기나 했을까.

***

"마력파의 근원지는 확인 됐어요."

"서아?"

루시를 만나러 나갔다 들어오니, 안전거처 안의 사람들이 보인다.말 없이 나갔다 들어온거라 그런지 놀라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어디 갔다 온거야. 다치진 않았고?"

아리아가 내 옷에 튀어있는 피를 바라보며 묻는다.대답대신 싱긋 웃어주며 방 중앙의 테이블에 앉아 지친듯 털썩 주저앉았다.

"아니, 그보다. 마력파의 근원지를 확인하고 왔다는게... 무슨소리야?"

"루시에요."

"뭐?"

"루시 만나러 갔다왔어요."

"..."

믿지 않는듯한 눈치다.

"전에 선구자님도 만나고 왔잖아요. 그분도 여기 있더라구요."

"정말이야?"

끄덕끄덕.

딱히 증거라 할만한 건 없지만.

"루시가 정말..."

"..."

우리가 찾던 인물이라는걸어째서 지금에야 알게되었는지, 딱히 누굴 원망할 생각따윈 없다.

어차피 언젠간 밝혀질 일이었고, 그것이 아닐지라 해도 루시가 내것이 되어주리란 건 그저 내 마음속의 망상에 불과한 염원일 뿐이었으니까.

정말로 난 내가 정말로 염원하는건 영원히 손에 넣지 못하는건 아닐까. 평생을 끔찍한 고독속에 갇혀살아야하는게 내 운명인가?

우울하니 괜한 상념만 길어지네. 이런 것도 좀 어떻게 해봐야겠어.

아무튼, 지금은. 눈앞의 것보다 더 중요한 목표가 있으니까. 우리의 존재 의의와도 같은 목적이.

"모두들 지금부터라도 움직여야겠죠."

아무 가치도 없던 우리에게 부여된 의미를 완수할 때였다.

"루시랑은...어떻게, 얘기는 해봤어?"

"..."

떠나오기 전의 광경이 떠오른다.날 여전히 혐오스런 눈길로 바라보던 그 눈이 떠올랐다.선구자님이 잘 얘기해보신다곤 했지만, 잘 됐을련지는 의문이다.

아마도 잘 됐겠지.

"...미안해."

내 어두워진 표정을 본건지, 아리아가 조심스럽게 사과했다.

그녀의 푸른 머리칼이 어쩐지 더 칙칙한 색으로 보인다.실제로도 머리색이 은은하게 변화하고 있었으니 그저 기분탓이라 여길 건 아니었지만.

"괜찮아요."

언제나 주변엔 사과하는 이들이 많았다. 예전부터 그랬다.뭐, 그때와 지금과 비교하면 목적도 이유도 모두 정 반대였지만 말이야.

홧김에 저지르고 사과하는것과, 신중하게 건드렸다 잘못돼 사과하는 건 천지차이였다.

나 또한 전자에 섞여들어가 루시의 미움을 받아버린 걸지도 몰라.역시 주변의 조언대로 평생을 함께할 것은 생명체가 아니라 사물로 결정했어야 했나보다.

그럼에도 루시는...

"그럼 시작하죠."

테이블에서 벌떡 일어났다.

저 멀리서 어비스가 가동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

­"끄으으으으..."

­"아아악....!"

평원을 가득 메운 신음소리가 마치 꿈에라도 빠진 듯 머나먼 목소리로만 느껴진다. 그들에게 공감하려고 노력하고, 아픔을 어루만져주려고 노력해봤지만 생각대로 되질 않는다.

난 그저 끊임없이 마수들만을 베어넘기고 있을 뿐이다.

싫었다.

이런 자신이 너무나도 싫어서 미친듯이 검을 휘두른다.

검격 하나하나에 마수 수십이 썰려나가고, 사방으로 마수의 푸른색 마력 잔해가 가득 튀어오른다.

어느샌가 주변엔 마수 한마리조차 남지 않게되었다. 연구자를 찾아 주변을 둘러보지만, 보이는 거라곤 나와 같이 숨을 헐떡이며 평원 위에 서있는 수십명의 사람들 뿐.

나머지는 죄다 마수들의 시체와 뒤섞여 저 아래에 신음을 흘리며 쓰러져 있을 뿐이었다.

그들의 피를 보고도 아무 생각이 들질 않는다.

안된다. 이래선 안돼.

나에게 신념이란 기둥과도 같은것이고, 동기란 모터와도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그들을 무심한 심정으로 바라보기만 했다간, 난 그저 기계처럼 이유도 목적도 없이 싸우는 존재가 될 뿐.

루시도, 화연이도, 원장선생님도. 그들의 의지와 신념을 싸그리 부정하는 것밖엔 되지 않잖아.

"으으..."

전투는 끝났다.

끝났으나, 그 후에 남겨진 것은 결코 승리의 함성같은것이 아니었다.

그곳에 남겨진건 그저 더 많은 사람의 고통과 숨소리 뿐이었다.

풀썩. 그대로 대검을 쥔 채 자리에 주저앉았다.몸이 바들바들 떨리는 걸 보아 아마도 울고있는 듯 했다.

어째선지 나의 감정조차 제대로 된건지 확신할 수 조차 없었다. 그렇기에 가슴속에는 수없는 자기혐오만이 쌓여간다.

다짐따윈, 염원따위는 이런 세상에서 아무 쓸모도 없던걸까? 정말로 나 혼자만이 그렇게 생각해서는 아무의미도 없던걸까?

모를 일이다. 언젠가 루시를 만나, 다시 한번 이야기를 듣고 싶다.

*

여러 천막으로 부상자와 사망자가 이송된다.

부상자보다 사망자가 많았기에, 조촐한 무덤이 여기저기 많이 쌓여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 사이 진행되고 있는 조사.

방금의 그런 전투를 치른 이후에도 추모할 시간따윈 없었다. 우린 그저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

아무튼, 혈액샘플을 감지계열 초능력자에게 맡긴 뒤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시점이었다.

"..."

멍하니 탁자에 앉아 천막의 문만을 바라보며 기다린다.

일전에 느꼈던 깎여나가는 감각을 지워내기 위해 최대한 현실과 동떨어져보려 노력하는 중이었다.

"많이 힘든가보군."

옆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름조차 모르는 장교였으나,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여줄 뿐이었다.

"사실 전쟁이란게 그다지 유쾌한 일이 아니긴 하지."

"...네."

"언제나 겪다보면 무뎌지기 마련이야. 자극도 사라지고, 본래의 그 신념조차 사라지기 마련이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듯 한 모습이었다.

"그런 자신이 미운가?"

"..."

고개를 끄덕거렸다.

"...너같은 어린애도 벌써부터 그런 고뇌를 하게만드는 세상이 미친거다."

"..."

"그럴땐 그냥 차라리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게 어떤가? 무뎌지는게 뭐가 어때서, 그것또한 인간이 망각하는 과정의 일부인데."

그럴지라도 신념은 놓지마라.

"너를 너로 구성하는것들이 사라지게 두지 말라는거지. 무뎌지는 자신을 혐오하는거야말로 넌 아직 자아가 살아있다는 증거니까."

"...아."

엄밀하게 생각해보면 저건 자기합리화에도 사용될 수 있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런 고민을 하고 있는 인간들중엔 자기합리화를 할 만한 인간은 없을거라 말하며 그 소위는 웃어넘겼다.

자기합리화를 할 만한 인간중 그 누가 무뎌지는 자신을 보며 혐오한단 말인가. 그런 이들중 자신에게 이득조차 되지 않는 자기위안을 얻으려 할만한 자가 얼마나 된단 말인가.

나로서는 잘 모를 일이었다. 그럼에도 방금의 말이 조금은 위로가 된다는걸 난 부정하진 않았다.

*

얼마 후 천막의 문이 열리며 군인들이 들어왔다.

테이블에 둘러앉아있는 수십명의 사람들은 각자 결과를 분석하고 살펴보기 위해 모인것이었다.

"결과가 나왔습니다."

"혈액 대조 결과중에 일치하는 인물이 있던가?"

"...네. 있습니다. 꽤나 거물인 놈이더군요."

"그래서 결과가...?"

착.

테이블의 중앙 보드에 종이 한장이 붙는다.

그 위에 나열된, 보기만 해도 어지러워지는 정보들.

그럼에도 그 위에서 눈에띄게 굵은 글씨로 써져있는 검은 글자가 하나 있었다.

델리지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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