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2화 〉 1부 48. 평범하고 싶은 일상
* * *
우웅. 우웅.
알 수 없는 기계장치들이 돌아가는 소리들이 귓가를 울린다.
그 소리에 반응한 나는 조용히 눈을 떴다.바닥이 너무 푹신푹신해서 몸을 일으켜 아래를 바라보니, 티끌하나 없이 말끔한 하얀 침대가 보인다.
"...?"
잠시간 머리가 멍해졌다. 뇌가 작동하질 않는다.
내가 원래 이런곳에서 잠들었던가? 애초에 이런 푹신한곳에서 잤을리가 없는데.
그 장면을 보자, 천천히 머리가 굴러가기 시작했다.
지금 상황에 대한 정보, 여긴 어디인가. 의문만이 가득 피어나기 시작했다.
납치인가? 만약 납치라면, 왜? 나같은거 납치해봤자 이득볼게 아무것도 없을텐데?
불안한 심정을 뒤로하고 조심스레 몸을 일으켜 주변을 둘러봤다.
보이는 건 새하얀 공간.격자무늬의 타일들이 빼곡히 들어박힌, 무미건조하고 생명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거대한 방.
뭔가 기억이 중간부터 끊어진 느낌이다. 분명 이곳에 있다면 이곳에 올때까지의 기억이 남아있어야 하는데.
사람은 있나?
사람은 없다.
살금살금, 발을 침대 밑으로 내렸다. 바닥의 차가운 감촉이 발끝을 타고 머리까지 퍼진다.
그리고, 발을 내리는 그 순간 보인.
'나'의 것이 분명한 다리의 모습에, 다시금 정신이 번쩍 들었다.
왜 이렇게 하얀거지? 굳은살은 다 어디가고?손을 뻗어 쓰다듬어본다.
부드럽게, 일말의 끊어짐조차 없이 말랑말랑거리는 피부. 촉감이 이상하다. 마치 호텔의 이불을 만지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이건, 본래의 내 몸이 아니다.
...게다가, 가랑이 사이가 허전하잖아. 이건 절대로, 원래의 내 몸이 아니다.
"어, 어..."
목소리마저 영락없는 여자애의 그것이다. 뭔가 잘못됐어.
기잉...
그렇게 안절부절하고있던 내 귀에, 거대한 방 안을 가득 메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가 들린곳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보이는 건, 아까까지만 해도 없었던 통로에서 유유히 걸어나오는 하얀 연구복을 입은 여성 하나.
"...?"
나를 향해 다가온다. 무심코 침대에서 일어나 여성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나를 봤음에도 아무말도 하지 않고있다.
뚜벅뚜벅. 내 코앞까지 다가온 여성은 나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너의 이름은 무엇이지?"
이름. 나의 이름이라.
"...신, 신우주요..."
지금 이 상황에 대한 이상함따윈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그리 말했다.
눈앞에 있는 이 여성이 누군지, 이곳이 어디인지 의문점은 수두룩하지만, 지금 상황을 주도하고 있는 쪽은 내가 아니었으니.
정보가 없으니 정보를 아는 쪽에게 끌려다녀야한다, 이건가. 일단은 적당히 맞춰주면서 정보나 캐내보자.
하지만, 내 말을 들은 눈앞의 여성은 얼굴을 찌푸리더니 이내 한숨을 푹 쉬었다.
"...간만에 인간형으로 나왔길래 기대했건만...또 실패인가."
"네...?"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는 여성. 내 물음조차 무시한채 그대로 내가 실패작이라느니 뭐니 이상한 말만 한다.
자꾸 사람앞에서 저런 말 하면 기분나쁜데, 이 아줌마는 싸가지가 없는건지 교육을 못받은건지. 일단 화는 죽이자. 살살 입을 열었다.
하지만 목소리를 내기도 전에, 여자는 품 안에 손을 집어넣는다. 곧이어 그 품속에서 나온 물건을 보고선, 곧장 뒷걸음질을 치려 했다.
콰앙!
반응할 틈도 없이 터져나온 굉음.
시야가 암전됐다.
*
"우, 우윽..."
머리에서 느껴지는 끔찍한 통증에 눈을 뜬다.
'아파...'
겪어본 적 없는 고통이다. 나름 폭력에 익숙해졌다 생각했는데도, 이런 극심한 고통은 태어나서 처음이다. 내가 어째서 살아있냐는 의문보단, 두려움과 걱정만이 가장 먼저 들었다.
머리에 손을 얹어 상처를 확인해보려 했다. 하지만 만져지는건 그저 평소와 다름없는.
아니, 평소와 다름없는 건 아니려나. 몸이 다르니까.
어쨌든 구멍없이 매끈한 이마가 느껴졌다. 설마 다 꿈이었던건가?
그럼 이건 뭔데.
시선을 어디에 돌려봐도 온통 시뻘건 피만이 보인다. 다리에, 하얀 원피스에 튀어있는 피들.
게다가 눈앞에는 아까의 그 여성이 여전히 권총 하나를 든 채 서있다.얼굴을 올려다보니, 놀란듯한 표정으로 날 내려다보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호오..."
들리는 감탄사. 난 아파 죽을것같은데, 이런 상황에서 하는 말이 겨우 그런거라고?
화가 치밀어오른다. 일단 기본적으로 어느정도 맞춰주기는 했는데, 사람이 이렇게까지 말이 안통해서야. 심지어 곧바로 어린애 머리에 총을 갈기는 걸 보니 정상은 아닌 인간이었다.
하지만 난 지금, 무력으로도 압도적인 열세.
상대는 권총을 가지고있고, 내가 가진건 그저 부서지기 쉬운 작은 몸이다.
머리를 쥐어잡고, 끙끙 앓는 소리만 내던 나였다.
"...역시, 성능은 확실하지만 정신까진 우리의 영역이 아니라는건가...얼마나..."
자꾸자꾸 이상한 소리만이 들려온다.
고통이 잦아들기 시작했음에도 여전히 몸은 마구 떨린다.
방금 죽었던 거 맞지? 착각한게 아니라면 말이야.
내 원래 몸은, 내 원래 집은 모두 어디가고 이런곳에 있는건데. 이 사람은 누구고 여긴 어딘데. 계속해서 불안한 감정들만이 차오른다.
게다가 어찌된 일인진 몰라도, 난 총을 맞고도 살아있잖아. 어떻게?
조심스럽게 여성을 올려다봤다.
그 여자는 여전히 권위있게 서서 패드로 무언가를 이리저리 톡톡 두들기는 모습이다.
머리에서 흘러내리는 피에 자꾸만 눈이 따갑다.
***
알파
D192230에게 부여된 코드.
D계열 피험체중 현재까진 가장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을만한 개체이다.
그러나, 본래의 자아가 유지된 채 있기에 2페이즈로는 부적합한 개체. 그러나 유지된 자아마저 완벽한 인간의 그것이기에, 무너뜨리기는 쉬울것이라 판단.
자아를 먼저 무너뜨린 뒤 프로젝트의 중추를 시행하기로 결정했다.
***
며칠이 흘렀는지 모르겠다.
이전의 그 여자가 나간 이후로, 사람들은 더이상 찾아오지 않았다. 고립된 이 하얀 공간속에서 혼자 가만히 누워 몇시간 몇십시간을 떼울 뿐이었다.
아마 지금즈음 7번은 잔 것 같은데,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건지 알 수 조차 없네.
그동안 가만히 누워 생각해봤다. 여긴 어디고, 이 몸은 대체 무엇인지.
가끔씩 거울에 비친 모습은, 새하얀 은발을 허리까지 기른, 녹색의 눈동자를 가진 이국적인 외모의 땅딸막한 여자애였다.
새하얀 원피스만을 걸친 모습.
이 공간은, 그저 새하얀 방일 뿐이다. 그 외엔 아무것도 없다.
이전의 그 여자가 입고있던건 새하얀 연구복이었다.
이쯤되면 눈치챘겠지만, 아마 난 실험체 어쩌구 그런게 된 모양이었다. 일단 이것만은 알겠다.
하지만 그것 외엔 알 도리가 없다. 내가 어쩌다 이런 신세가 됐고, 여기서 하고있는 실험이란게 대체 무엇인지.
창작물의 정석이라 할 정도로 클리셰적인 이 모습에도 의문을 가져봤지만 알 수 있는거라곤 없다.
다시금 수없이 지루한 시간이 흘러갔다.
*
기이잉...
아무것도 없던 벽에 금이 그어지며 통로가 모습을 드러낸다. 그 너머로 나오는것은 새하얀 연구복을 걸친, 이전과는 다른 사람.
웬 남성 두명이 걸어왔다.
아무리 말을 걸어도 대답조차 하지 않는다. 그저 힐끔힐끔 쳐다보다가, 내가 너무 시끄러워진다 싶을때만 가끔씩 뺨을 후려쳐서 입을 다물게 할 뿐이었다.
결국, 나에겐 아무말도 하지 않은채 나를 끌고 어디론가 이동했다. 며칠, 아니 어쩌면 몇주만에 그 공간을 나온 것이지만, 해방감은 커녕 오히려 더욱 불안해지기만 했다.
이렇게 날 이동시키고 있다는 점만 보더라도, 분명 나한테 무슨 실험같은걸 할 예정이라는 뜻일테지.
까놓고 말해서, 창작물속에서 불사캐릭터가 안 구르는 장면을 본적이 한번도 없다. 내 몸이 지금 그런 비슷한건데, 이어질 실험이 어떻게 안전한거라고 생각하겠는가.
하지만 저항할 도리가 없기에 얌전히 끌려갈 뿐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이동했을까.
마침내 어느 한구석의 문 앞에서 멈춰선 그 사람들은, 문을 열고선 그 안에 날 집어 쳐넣었다.
콰당!
"으, 으윽..."
뼈가 아프다. 아마 그대로 부딪친 모양이었다.
일어나려 했지만, 그 전에 누군가 다가와 내 팔을 잡아 끌었다.
"...?"
고개를 들지 못하게 목을 붙들고있다. 바닥만을 보게하고선, 무슨 물건 옮기듯 대충대충 옮긴다.
그러고선 웬 침대같은곳에 올려 날 구속구로 묶어뒀다.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는다.
눈앞에 새하얀 광원이 직빵으로 비추고있기에 눈을 뜨기만 해도 따가운 느낌이다.
뭐라도 해야할텐데. 이렇게 침대 위에 눕혀져있다는건, 사지가 제 기능대로 움직이질 못한다는 것.
온갖 불안한 상상들만이 몰려온다.
푸화아악ㅡ!
그 상상이, 틀린 것만은 아니라는 듯. 뱃속에서 올라오는 엄청난 통증. 무언가가 주변을 가득 적신다.
고통은 홍수처럼 밀려왔다. 뇌를 표백제로 살균시키는 듯한 감각. 돌아가던 뇌는 정지하고, 입에선 끔찍한 비명만이 새어나온다.
머리가 까매졌다. 하얘진다. 아파?
입안에서 쇠맛이 나네.
ㅡ아파.
차가워. 뜨거운건가? 지금 이게 무슨 감각이지?
정신이 허공으로 붕 떠버린다.
아니, 아프잖아. 이런 고통을 어떻게 참으라는거야. 눈가에 적셔지는게 뿜어지는 피인지 눈물인지 알지도 못한채. 입에서 흘러나오는게 침인지 피인지조차 알지 못한채 계속해서 몸을 뒤틀며 몸부림치고 비명을 질러댄다.
몸이 이질적이야.
터져나간 복부는 나의 것이 아니었다. 근데 왜 내가 아픈거야?
자꾸 뱃가죽이 당겨지는가 싶더니, 무언가가 찢고나온다. 수도없이, 큼지막한 쇠창들이 마구 찢고나온다.
눈을 뜬다. 흐릿하다. 여전히 흐릿한데, 피만이 온통 가득 적시고있을 뿐이었다.
너무 갑작스러운데, 고통도. 아니, 아픈건가? 이건 무슨 감각이지? 마취된 것 같아. 피부가 굳는다.
옆을 바라보니 이전의 그 여자가 아무런 표정도 없이 무언가를 조작하는 모습이 보인다.
내 배에서 미친듯이 뿜어지는 피를 흠뻑 뒤집어 쓴 모습이 보인다.
ㅡ살려주세요.
기잉...
그날의 고통은 끝이었다.
방 안에서 시체가 끌려나온다.
차마,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한 형태의 소녀가 그대로 끌려나왔다.침대에 아무렇게나 던져지고, 첫날은 그렇게 끝났다.
뭐, 정신조작이 제대로 먹히질 않으니. 이렇게라도 부숴둬야하지 않겠는가.
제대로 먹혔다면, 한층 더 편했을텐데.
*
이건 고문이었다. 내가 죽지 않는다는 걸 알고, 날 괴롭히기 위해 만든 고문이 분명했다.
그래서, 효과는 어떻지?
뭐, 확실했다.
이따금씩은 기분좋은 환상에 빠져들게도 했다가 빠져나온 그 순간 비몽사몽해 있던 그때 갑자기 총탄을 박아 고통을 극대화시키기도 했다.
내가 너무 힘들다고 호소했음에도 꿈쩍도 안하던 그들은 어느샌가 웬 개새끼 한마리를 데려왔다.
일단 그들이 가져온거니 극단적으로 경계했지만, 끌려가고 돌아왔을 적 언제나 피투성이로 웅크려 누워있는 내 곁에 와 핥아주는 모습에 정이 들기 시작했다.
아무리 오래 지내봐도 이상한 점 하나 없이 그냥 평범한 강아지였기에 점점 경계를 늦춰갔다.
그러고선갑자기, 안된다고 울며불며 애원하는 내 품속에서 터뜨려죽였다.
비명조차 못지르고, 내 뺨에 흠뻑 피를 적시던 모습이었다.
그땐 아마도 울었던 것 같다. 나도 잘은 모르겠다.
나중에도 같은식의 정신공격은 반복됐다. 알고있는데 막상 마음가는 건 막을 수가 없나봐. 아무리 정을 안준다 해도.
고통이 익숙해져간다. 아니, 익숙해지면 안되는데.
고통이란건, 원래. 사람의 정신을 지배하면 안되는거잖아. 저항해본다.
하지만 잠식된다. 서서히.
육체적 고통만 주는 줄 알았더니, 정신적 고통도 함께 준다. 돌겠어. 정신나갈것같애.
기이한 괴물의 입속에도 쳐박혀보고, 목도 뜯겨봤다. 피냄새가 익숙해져간다.
소중한걸 만들어주고, 눈앞에서 찢어버린다. 내가 울고, 절규하는 걸 즐기는 듯 했다. 미쳐버릴 것 같았다.
하지만 미치지 않는다. 난 살고싶어. 살고싶어. 난 살고싶단말이야.
적어도, 이렇게 죽어버린다면 너무 억울할 것 같다. 아니, 죽기야 이미 수백번은 더 죽어봤지만...
아무튼 그런 방식으로 몇개월이 흘렀는지 모르겠다.
죽질 않는다. 온몸이 가루가 돼도, 서술조차 불가능할 정도로 처참하게 찢겨죽어도 죽질 않는다.
고개를 돌려 거울을 바라본다.
눈가에 붉은 다크서클이 내려온채, 사시나무 떨 듯 웅크려 온몸을 바들바들 떨고있는 여자애가 보인다.눈에선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아낼 것만 같다.
드러난 새하얀 다리와 팔에는 끔찍한 흉터들이 수두룩하게 새겨져있다.
그 미친 년놈들이 검은 칼로 몸을 쑤셔댔을때 생긴거였다. 그 칼이 뭔지는 몰랐지만, 그 칼에 생긴 상처는 어째서인지 낫질 않았다.
차라리 그 칼로 죽여줬으면 더 좋았을텐데, 애처롭게도 그 칼은 그저 더 끔찍한 고통만을 주게하는 용도로만 쓰여졌다.
맨발에 피웅덩이가 밟힌다.
예상치도 못한 타이밍에 고통을 줘 정신을 못차리게 한다.
쉬려고해도 편히 쉴 수 조차 없다.
서서히 무언가가 무너져내리는 것 같다. 덜덜 떨리는 걸음으로 침대에 가 잠시만이라도 쉬어보려고 했다.
그러나, 그 직후 들려오는 굉음.
다시금 복부가 으깨어진다.
힘없이, 피투성이의 새하얀 방 속에서 쓰러지는 몸.
꿈틀꿈틀거리며 고통을 호소해보지만, 역시 건네지는 손길이란 없다.
그럼에도 조금은 편하다. 이렇게 죽으면, 적어도 몇분간만이라도 쉴 수 있겠지.
그날밤은 그대로 조용히 눈을 감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