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화 〉 1부 47. 블랙조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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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념체란 무엇인가.
"마력을 통해 형상화된 단백질의 집합체. 좀 더 복잡하게 회로를 짜면 상세한 조직이나 구조까지 모두 흉내낼 수 있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흉내'일 뿐이지."
생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저 마력을 통해 조작되어 인공적으로 탄생한, 제한된 수명의 오토마타.
기억마저 주입받을 경우 수명에 대한 구애 없이 시작부터 지능을 가지고 시작할 수 있다만, 그건 저주이면서도 축복과 같다고 말했다.
분명 자신은 자신인데 그저 마력을 통해 만들어진 인공생명체. 그것도 마력을 지속적으로 공급받지 못하면 시한부인 인공생명체 라는 말을 들었을때 무슨 심정이 들겠는가.
평생을 자아도 없이 살아가는것과 지식을 가진 채 짧은 삶을 누리는것이 무슨 차이가 있는건지. 하지만 SOP의 멤버들은 본인이 사념체라는 말을 들었을때조차 동요하지 않고 받아들이도록 모두가 자연스레 생각하고있어, 본인도 딱히 별다른 감흥은 없었다고 했다.
"그게 무슨 집단이에요? 그냥 극단적인 전체주의 집단이지."
SOP는 생각보다 훨씬 공산주의적인 집단이었던 모양이다. 하긴, 소수였던 데다가 지구 전체에서 일어나는 초현실적인 사건들을 은밀하게 해치워야하는데 목숨마저 자기 자신을 위해 쓰면 일이 어떻게 돌아갈 지 알 수 없으니 그렇게 된 거겠지.
납득해본다.
"사념체...네. 그러니까, 너가 사념체라구요?"
"그렇다."
"...원본은 몇살인데요?"
"내가 만들어졌을 때의 기억은 50세에서 멈춰있으니, 지금 즈음은 70대일 거라 본다. 만약 살아있으면 말이지."
할아버지라고 봐야하나. 애매하네.
"물론, 원본인 내가 지금까지 살아남았을 리가 없지. 우주의 통로를 통과해 마력과 융합작용을 겪은 사람들은 모두 마수가 되어버렸으니 말이야. 난 그저, 본래의 지구에서 제작된 사념체라 인간의 구조를 벗어났기에 이렇게 본래의 형태를 유지할 수 있었던거지."
"...정말로, 그 초상능력자들조차 전부 마수로 변해버린건가요..."
"하나도 빠짐없이. 예외는 없다."
말에 감정은 담겨있지 않다.
"그런데 20년전에 이미 활동을 마치고 정지했다면서요. 어떻게 다시 이렇게 살아나있는거죠?"
"...설명하기가 애매한데...음, 일단은 마력파때문이라고 말해두면 될 것 같군."
"...마력파요?"
마력파. 거대한 마력이 움직였을때 특정한 형태로 방출되는 파장. 몇몇 분자의 구조를 미시적으로 변화시키는 것.
벌써 최근에 몇번이나 듣는 지 모르겠다. 그 마력파가, 대체 뭐길래?
"그래. 그 마력파의 형태와 우연히 공명하며 사념체가 하나 둘 깨어나기 시작한걸세. 어차피 임시적인 방편이라 길어봤자 1개월도 못가고 다시 정지해버리긴 하겠지만 말이야. "
"그 마력파의 출처가..."
"그래. 바로 너다, 루시."
그랬던건가.
어쩌면, 이전의 크로체와의 전투에서 일어났던 그... 거대한 규모의 마법때문에 특이사항이 발생된 걸 수도 있었다.
"...그런가요..."
잠시간 침대에 그대로 앉아 생각해본다. 지금까지 들은 이야기들을 모두 한군데에 정리하고 세계관에 대한 지식을 쌓기 위해서.
뭐, 세계관 이래봤자야 내가 사는 '현실'이지만. 대략 10분정도가 흘렀다. 창밖에서는 여전히 바람소리만이 들려오고 있었다.
시계를 보니 지금은 새벽 2시 반. 그리 늦은 시간은 아니었다.
"...제가 누군진 알고 계시나요..."
가장 중요한걸 물어봤다. 내가 누군지 알고 있냐는 것. 질문은 언뜻 이상했지만, 본래의 이 몸에게 주어진 정보가 극히 적어 나에 관한 것조차 남에게 물어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본래의 작품에서 너는 소위 말하는 '최종보스'포지션이었다. 이건 알고있겠지."
안읽어봐서 몰라요.
그럴리가. 어디 산속에서라도 틀어박혀있다 온건가.
그렇게까지 유명한 작품이었는진 몰랐는데 말이지. 아무튼, 꼬마는 이야기를 계속한다.
"넌 이 세계에서조차 '등장인물'. 즉, 세계에 영향력을 가장 많이 끼치는 인물중 하나였단 말이야. 보여진 그놈이 근원이 마수였으니, 우리도 전혀 다른 놈이 나오지 않을까 예측했었는데 말이야... 이것도 이제 확실해졌군."
"...아."
결국, 내가 그때 아카데미에 입학하기로 결정한 그 순간부터 전개가 아득히 틀어졌다는 소리였다.
애초에 작품 최종보스 포지션이 시작부터 본래 전개랑은 엇나가게 행동하는데, 뭔 본래 작품의 전개 어쩌고 탓할 수 있으리.
영향력도 너무 커서 바로 연구자들 튀어나오고 광대 튀어나오고 별 난리를 다 쳤던 것이다.
지금까지 내가 생각해왔던 정보들을 말해준다. 내가 이 세계관에 빙의됐을거라 착각했던 일부터, 이곳이 현실이 아니라 그저 가상일뿐이라 자위했던것까지.
그 말을 들은 꼬마는 잠시 이상한 표정을 짓더니 말한다.
"중간에 다른 이의 몸에 섞이는 일은 없을텐데...본인조차 스스로의 기억이 중간부터 끊겨있다는건가..."
"알파, 그러니까 '너'는. 태생부터가 마수다. 중간부터 기억이 발현될 일이 있을리가 없어."
태생부터가 마수.
"너는, 마수 하나를 통째로 인간의 수정체와 조합해 만들어낸, 말그대로 주먹구구식으로밖에 볼 수 없는. 전혀 이해할 수 조차 없는 방식으로 만들어진 생명체라고. 기억은 언제나 태초부터 이어져야해. 만약 네가 처음부터 잉태되어 태어난 거라면 말이야."
나는 마수를 근원으로 한 존재.
마수를 인간의 수정체에 때려박아 만들어진 생명체.
섞여들어간 마수 하나란 아마도... 이곳으로 넘어와, 마수가 되었던 '나'.
"..."
나는 본래, 마수였다.
이곳에서의 나는 그저 새로운 모습을 얻고 발현된... '나'.
시작부터 나였고, 내가 다른 인격으로 여기던 것 조차 '나'였다.
알고있던 과거의 주인은 모두 나의 것이었고, 나는 다른 사람이 되었던 적 조차 없던거야.
부정하고 덮어왔던 저 먼 기억들조차 모두 본래의 내가 다른 인격속에 묻어뒀던 '나'였다.
그러니까ㅡ 그 모든 것들이. 모두.
내가 살아가며 직접 겪었던 것들, 내가 직접 행동했던 것들.
본래의 주인이 아니었다.
본래의 주인이 나다.
내가.
"...!"
그 순간, 갑자기 꼬맹이가 손을 뻗어 내 이마에 갖다댔다.
"가만히 있어라. 뭐가 문제인지 알아볼테니."
우웅. 예전에 알테리지아의 손에서 나왔던 그 마법. 몽환속으로 빠져들게 한 그 하얀 빛이 다시금 눈앞에 나타났다.본능적으로 떨쳐내려 했지만, 손을 뻗어 내 뒷통수를 더욱 자기쪽으로 끌어당기는 꼬맹이였다.
"가만히 있으라고 했지."
말투가 상당히 강압적이었다. 그래도 뭐 이런 모습으로 말하니 그다지 무섭지는 않았지만.
잠시간 그런 상황이 지속된다. 밖에선 이따금 걸어가는 소리만 들려올 뿐이었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손을 때며 입을 여는 꼬맹이.
"그런가... 스스로 기억을 봉해둔건가. 또다른 인격이라 여기며..."
"...아, 그건 저번에 광대들이랑 만났을때 알테리지아가..."
"그건 알고있다. 이미 융합작용이 한창 진행중이더군. 얼마간은 정신이 오락가락 할거야. 알고 있었나?"
"...네."
알고 있었다. 알테리지아가 그렇게 말하는걸 꿈결에 언뜻 들었으니.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꼬맹이가 내 이마에 손을 갖다댔다.
"원한다면, 마력을 소모해 지금 당장이라도 과정을 급속진행 시킬 수 있다. 어떤가?"
"...마력을 소모한다구요?"
"그래. 수명이 보름정도는 줄어들겠지만, 그래도 나머지 보름정도는 활동할 수 있을거야."
사념체. 자신의 목숨을 저렇게 시간으로 치환해서 가치로 말하는 걸 보니, 역시 원본 또한 정상은 아닐거라고 생각했다.
"...네, 해주세요."
불러오기 과정의 완료. 그건 좋은 영향을 줄까, 나쁜 영향을 줄까. 적어도 난 지금의 내 상태가 마음에 들진 않았다. 자꾸 기억이 오락가락, 감정도 오락가락 하고. 마치 정신병에라도 걸린 것 마냥 제정신이 아니었으니.
하지만 이렇게 급속도로 완료된다면 당연히 나에겐 어떤 의미로는 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그 후 급속도로 몰려와 내 뇌에 안착할 기억들을 생각한다면... 적어도 이건 좋은 일은 아니었다.
내가 스스로 봉해둔 기억이라면, 그게 어딜 봐서 좋은 기억이겠는가.
하지만, 그것도.
기억을 봉해둔 것 또한, 나에겐 현실도피 였던 거잖아. 지금까지도 해왔고, 다짐했던. 그런 현실도피였다.
하지만 더는 안됐다. 이 상황은, 이 세계는 내가 행동하지 않으면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는 지옥 그 자체였으니. 아니, 빠져나갈 수 있을지조차 모르겠지만, 적어도 계속해서 사건의 중심인 내가 회피만 해나간다면... 무엇도 바꿀 수가 없었다.
꼬맹이의 수명이, 사념체가 걱정되기도 했던게 잠시간 내 의지를 앗아갔어도, 결국 다짐은 굳혀졌다. 나는 결정했다. 모든 걸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미치면 뭐 어떤가, 그것또한 열심히 하면 극복되지 않겠는가?
이 생각 또한 반즈음은 현실도피에 가까운 궤변이았지만.
미쳤다고 스스로 빠져나올 수 있으면 그건 미친게 아니잖아. 하지만 지금 나에겐 희망이 필요했다. 모든 걸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마주하자.
그 말을 들은 꼬맹이는, 이윽고 손에서 새하얀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체감상으로는 모든 기억을 온전히 겪어야 하기에 봉해둔 그 십수년간의 세월이 되겠지만, 현실은 길어봤자 2시간정도밖에 안될거다. 준비해둬라."
"...네."
그리고, 내 의식은 저 먼 심연으로 다시금 푹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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