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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해주세요, 마수님!-50화 (50/162)

〈 50화 〉 1부 46. 기억

* * *

징조도 있었고, 예측조차 있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할 정도로,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 대비조차 하지 못하고 지나가버린 일. 구멍이 생겼고, 모두가 사라졌다. 그뿐이다.

대체 어째서, 어떻게, 왜 라는 의문은 마음속 가득 피어나지만, 우리의 수준으로는 알 도리가 없다. 우주와 우주 사이에 구멍을 뚫어 통로를 내놨는데, 우리의 수준으로 뭘 파악할 수 있으랴.

해당 지구와 우리의 지구가 다른점은 단 두개 였다.

초상능력자의 개방성과 마력의 유무.

그로 인해, 융합은 이루어졌고, 강제적으로 마력이 주입된 사람들의 말로는 뻔했다. 계속해서 넘어올때마다, 하나씩 사라져갔고. 이내 모두가 검게 칠해졌다.

이성도 감정도 모두 없이, 그저 날뛰는 존재로.

두 지구 사이를 투영하는 것이 생겨났을때부터 진작에ㅡ 눈치챘어야했다.

만화라는 매체로, 두 지구 사이를 투영하던 그것. 그저 융합의 징조였던 것이다.

그 융합이 누구에 의해 일어났고, 누구에 의해 의도된건진 알 수 없지만 말이었다.

하지만 어째선지 세상은 20년전. 통로가 비췄던 풍경의 시점과는 아득히 떨어진 시간이었다.

본래 세계란 동시에 흘러가는 것. 과거로 돌아갈 일은 없고, 서로 다른 속도로 흘러갈 일도 없었다.

그러나 세계는 역행했고, 그 후에 남겨진 것들이 ㅡ

*

"...지금 장난해요?"

설명을 할거면 알아듣게 좀 설명하던가. 이번에도 지들끼리만 아는 단어를 써대며 설명하니 알아들을 수가 없다.

이 세상은 씹덕들이 너무 많아. 자기가 안다고 다른사람들도 다 알거라고 생각하는건가.

하지만, 방금 나온 이야기는 언뜻들어도 심상치 않다. 내가 당한 상황이 그저 웹소설에서 주구장창 나오는 회빙환같은게 아니라는 이야기를 언뜻 흘리듯 들었던 듯 하다.

일단 내가 이해한 것 까지만 정리해보자.

본래 내가 살던곳과, 이 지구 사이에 통로가 뚫려버렸다. 두 지구는 본래 서로 다른 우주의 소속. 그러나 그 두 우주 사이에 구멍이 뚫려버리며, 우리 지구쪽의 사람들이 모두 그곳으로 사라졌다.

ㅡ맞나?

"...맞다. 거기까진 잘 이해했군."

아무튼, 그렇게 넘어간 사람들 ­편의상 1지구인들 이라고 부르자­ 은, 이곳에 넘어오며 마력과 융합작용을 겪었고, 일반인이던 그들은 결국ㅡ

"...?"

"왜 그러지?"

"아니, 제가 이해한게 맞나 해서요..."

검게 칠해졌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당장 떠오르는게 하나 있지만, 현실감이 너무 없다.

현실감따윈 이전에 개나 줘버린 지 오래지만, 이런 말을 들었을 때 만큼 정신이 붕 떠버린 기억이 드는건 처음이다.

그러니까... 이 애늙은이의 말에 의하면, 마수들은 모두ㅡ

"지랄."

"감당하기 어려울거라고 말 했잖나."

"아니, 이게 뭔..."

마수들은 모두, 제 1지구인들. 그러니까, 본래 내가 살던곳의 80억 인류들.

...

...

...음, 역시 현실감이 없다. 다시한번 해보자. 마수들은 본래 내가 살던곳의 사람들 전부였고, 그 인간들이 모두 제 2지구의 마수들이라는 거다.

...그래, 이해는 했다.

마음으로 이해하지 말고, 머리로 이해하면 편하다. 일단, 마수들은 모두 본래 지구의 사람들. 그래, 알겠어.

...일단은, 일단은 이건 나중에 생각하자. 감당못한다거나의 이유가 아니라, 그냥 개연성의 문제니까.

다른 말을 기억해보자.

본래 두 사이의 우주가 연결될 조짐이 있었다고 했다. 그것이 바로 구원해주세요 검성님이라는, 내가 빙의됐다고 생각한 세계관의 웹툰. 그러나 이것또한 말에 따르면 그저 연결되기 전 두 세계 사이의 풍경을 비추는 하나의 통로였다는 셈이 된다.

ㅡ왜?

내가 빙의, 아니... 전이된 시점은 분명, 이야기의 시작부분이었는데 말이야.

이 인간의 말에 따르면 이곳과 연결됐을때 시간이 역행했단다. 20년이나.

...소설도 정도껏 써야지, 뻥이 너무 심하다.

현실성이 없다.

이건 스스로가 현실감각을 상실한게 아니라, 그냥 말 자체가 현실성이 없었다.

"왜 시간이 20년이나 역행한건데요...?"

"우리도 모른다."

"...네?"

그것도, 모든걸 다 알 것 같은 이 꼬맹이도 모른다고 했다. 어째서 두 우주가 연결됐는지도, 시간이 역행했는지도. 아는 건 나보다 많은 것 같은데 모든 걸 다 아는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가설이 하나있다. 열역학 제 2법칙에 근거한 이론에 불과한 가설이지만..."

"엔트로피요?"

"...그래, 알고 있군. 바로 그 엔트로피와 관련해서 가설이 세워진게 하나 있다."

갑자기 튀어나오는 용어도, 생소하다.

도대체 무슨말을 하고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일단 들어는 봐야지.

"엔트로피는 고립계에선 증가할 수 밖에 없다. 이건 일단 이론으로서 정립되어있는 사실이지."

"...네."

"본래의 우주는 고립계였다. 그 무엇과도 연결된 것 없이, 따로 동떨어져있는 존재 말이야. 통로도 없고, 교류도 없었어. 에너지의 출입도, 교환도."

"하지만 뭐... 간단한거지. 두개의 우주가 서로 연결되어버렸으니. 본래의 우주는 고립계라는 틀에서 벗어난거야."

꼬맹이가 그저 아무렇지도 않은 사실이라는 듯 말한다. 담백하게. 감정도 없이.

"...시간이 역행한 이유가, 그저 그런 가설 뿐이라구요?"

"...그럴리가. 시간이 역행한것도 우연이라고 칠 수 있다만, 본래 열린계가 된다고 해서 무조건적으로 엔트로피 역전이 일어나는 것도 아니거든. 게다가 상황의 앞뒤 맥락도 이상하고말이야."

"그럼 대체 뭐에요?"

"상황을 봐서, 우리는 여기에 또 하나 가상의 존재를 가정했다네. ...'맥스웰의 악마'라고, 알고있나?"

맥스웰의 악마. 열역학 제 2법칙과 관련된 역설중 가장 유명한 것. 자세한 사항은 위키피디아에 검색해보시길. 아무튼, 맥스웰의 악마라...

"그게 뭐하는 악마인데요?"

"우리는 이 모든것 위에서, 엔트로피를 따로 정리한 존재가 하나 있지 않을까 보고있네. 우연이라기엔 너무나도 정밀하고, 합리적이지 조차 않은 이 일을 설명하기 위해서 말이야."

초월자의 가정이었다.

이 꼬맹이의 조직은 이 모든것 위에 서있는 초월자가, 두 우주가 연결되었을때 무질서도를 감소시켜 시간을 역행시킨 존재가 있을것이라 보고있었다.

...아니, 이렇게 설명하면 너무 어려웠을 것이다. 다시 한번 이해하기 쉽게 정리해보자.

두 우주가 연결됐다.

그 덕에 고립계였던 우주는 열린계가 되었고, 에너지의 관측가능한 출입이 생겨났다.

엔트로피가 감소해 시간이 역행했고, 그건 우연이 아니다.

그리고 그 엔트로피를 감소사킨 초월자가, 모든 것 위에 있다.

"...판타지소설도 이렇게까지 막나가진 않을텐데요..."

"이건 현실이다."

"그래도, 뭔가... 너무 현실감이 안들어요."

한번듣고 납득하면, 그건 강철멘탈이거나 순진한거지.

어쨌든 머리로는 이해했다. 응.

구멍이 뚫렸고, 우리 지구의 사람들은 모두 마수가 됐다. 그리고 그 뚫린 구멍덕에 엔트로피가 역전되어 시간역행이 일어났다.

"편의상 시간역행이라고 말했지만, 사실 진짜로 시간이 역행한건 아닐세. 그저 시간이 역행한 것 처럼 보였을 뿐이지."

"...네."

"뭐, 어차피 시간역행이라고 이해해도 별반 차이는 없으니 말이야. 시간 그 자체를 감지할 수 있는 초상능력자에겐 이야기가 다르긴 하겠군. 물론 존재한다는 가정 하에 말이야."

다리를 조물락거린다. 불안해질때마다 나오는 습관이다.

꼬맹이를 바라보자 여전히 입가에 살짝 미소를 띈 채로 나를 바라보고있다.

일단, 인정하면 적어도 이 세계관에 대한 것은 거시적으로 대부분 파악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의문은 수두룩하다.

어째서 나만 이런 기억을 가지고 있는건지, 이 꼬맹이가 말하는 '우리'란 누군지. 게다가 그 모든것 위에 존재하는 초월자가 대체 무엇인지.

"...일단은, 당신들 대체 뭐에요?"

"...뭐, 말해주려고 했다. 어차피."

잠시 뜸을 들인다. 분위기를 잡는 꼬맹이.

창밖으로 들어오는 달빛이 구름에 가려 어느샌가 밖에서 은은히 비춰들어오는 노란 불빛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샛노란 조명에 역광이 드리워 꼬마의 얼굴이 음산하게 빛난다.

"지구에도, 초상능력자들이 있었다는 사실은 방금 말을 들어 알았겠지."

"...네."

"다만 그들은 이곳과 같이 개방적이진 않았고, 폐쇄적이었을 뿐이야. 본래 우리의 지구는 마력이 너무나도 옅어 일반인에게 지장도 안갈 정도였고, 그 덕에 우리의 힘은 초상능력자라 하지만 나락의 나락을 쳤으니 말이야."

"당연하겠지만, 그럼에도 그들에게 조직은 있었네. SOP라는, 초상능력자들만의 모임이지. 정부와 연계도 하고, 세계의 뒷구석에서 암약했던 상당히 거대한 조직이긴 했다만... 이젠 이런것도 별 일 아니게 됐군."

하하하. 꼬맹이가 늙은이처럼 웃는다.

"...넌...뭐에요?"

"...나 말인가?"

"네. 애초에 그쪽에서 넘어온 사람들은 전부 마수가 됐다면서요. 넌 왜... 아니, 그렇게 치면 나도 마찬가지지만..."

말이 횡설수설 나온다. 머릿속에서 휘몰아치는 생각이 너무 많다.

일단은 그냥 눈앞의 이 꼬맹이가 누군지에 먼저 집중하자.

물어보자, 어딘가 서글프게 웃는다. 상당히 자주본 표정이었다.

"본래 난 지난 20년간 활동을 마치고 정지기간에 든 사념체중 하나였네."

그리고 나온 대답은 너무나도 담담해서, 다시 한번 현실성이 붕 떠버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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