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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해주세요, 마수님!-47화 (47/162)

〈 47화 〉 1부 43. 재회

* * *

"...아무튼, 그날 이후로 마수들이 갑자기 잠잠해졌으니 사람들도 여유가 생긴거지. 처음엔 반신반의 하던 사람들도 한달이 넘도록 아무 문제도 없으니까 다시 느슨해진거야. 그래서 초상능력자 인권운동이라던가, 부차적 직장으로 돈벌기 시작한 사람들까지..."

마스가 주절주절 말하고있긴 한데, 귀에 들어오질 않는다. 역시 정치관련 얘기는 내 분야가 아니라 그런걸 수도.

그래도 나에게 최대한 많이 설명해주겠다는 일념 아래 저렇게 노력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경탄스럽긴 했다.

­딸랑~

그렇게 꾸벅꾸벅 졸면서 머리를 책상에 박고있을 때, 식당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 하고 고개를 들어보니 성화연. 한손에 웬 남자아이의 손이 붙들려있다.

빛바랜 금발에, 키는 나보다 살짝 작을 것 같은, 대략 7~8살정도 되어보이는 남자애. 이런곳에서 어린애라니, 상당히 신선하다.

그 꼬마는 들어오며 날 바라보는 순간, 갑자기 몸을 움찔거리기 시작했다.

성화연이 찾으러 간다고 했던 꼬마가 쟤였나.

하지만 왜 여기까지 데려온거지? 고개를 들어 성화연을 쳐다보자 이해했다는 듯 입을 열었다.

"미안, 얘가 루시 널 그렇게 보고싶다고 하길래..."

"...나? 날?"

"응. 루시 너. 외형 알려주니까 딱 콕찝어서 만나고싶다고 말하던데?"

"...? 이름이 뭔데?"

"몰라. 까먹었대."

까먹었단다. 이름을.

"원래 말을 하도 안하길래 실어증이 있는건가, 했는데. 딱 마력관련 이야기 나오니까 입이 트이더라. 아마 그쪽 관련해서 뭔가..."

우물쭈물거리며 말을 줄이는 성화연.

중얼거리는 성화연을 둔 채, 같이 따라들어온 남자아이를 자세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날 만나보고싶다고 했으니, 혹시 언젠가 얼굴이라도 튼 기억이 있나 싶어서.

하지만 난 전혀 모르는 애다.

외형은 물론이거니와 이곳에 와서 나보다 어린 꼬마랑 연을 튼적이 전혀 없다는걸 깨달았다. 만난적도 없을 걸.

아니 근데, 살면서 만나본 적 조차 없고 전혀 접점도 없는 꼬맹이가 날 만나고싶어 했다고? 대체 왜?

그것보다 저런 꼬맹이가 왜 성화연 옆에 붙어있는거지? 진작에 아는 사이였나? 원작 등장인물인가?

물어보니 골목 구석에 숨어서 떨고있던 미아였다고 한다. 이런곳에서 미아라니. 우와, 존나 수상해.

하지만 성화연 얘는 순진한건지 멍청한건지 이런 애를 그냥 보호해주기로 했다고 한다. 착한 마음이야 좋지만, 이런곳에서 저러면 호구로 낙인찍혀서 뒤통수 맞기 딱좋은데...

아무튼, 그래.

날. 날 만나러 왔다고?

"아...안녕?"

의자에서 내려와 아이와 눈을 맞췄다.

...아니, 애초에 맞출 필요도 없었지만.

내 목소리를 들은 그 애는 눈을 땡그랗게 뜨며 내 팔과 눈을 번갈아 쳐다본다. 불편해져서 오른손으로 뒷목을 쓸었다.

그렇게 우물쭈물대고 있자니, 먼저 말을 꺼낸건 그 꼬마.

"...누나는, 이름이 뭐야?"

누나, 누나라... 음...

입속으로 말을 곱씹어본다.

"루시, 라고 하는데."

"나이는?"

"응?"

"몇살이야?"

"...?"

내 이름을 듣자 이상하다는 듯 표정을 구긴 그 꼬맹이는 또다시 내 나이를 물었다.

"19살..."

"19살? 정말?"

"아, 응..."

호기심이 굉장히 많은 꼬맹이였다. 내 키가 확실히 19살 치곤 극단적으로 작긴 하지. 애초에 7살정도밖에 안되는 꼬맹이랑 눈높이가 맞는 것 부터가 나가리였다.

"...그런건가."

"응?"

"반가워."

이상한 말을 중얼거린 눈앞의 꼬마는 손을 뻗어 악수를 청했다. 어린애답지 않은 그 모습에 느껴지는 위화감은 덤.

성화연은 저 멀리 마스 옆에 서서 우리 둘의 행동을 이상야릇한 표정으로 지켜보는 중이었다.

목소리를 서로 내려 깔고 말해 제대로 말소리조차 들리지 않았으련만, 대체 뭐가 좋다고 저렇게 구경하는건지.

고개를 돌려 다시 눈앞의 꼬마를 바라본다.

"...넌, 이름이 뭐야?"

"..."

"...아, 맞다..."

이름을 까먹었다고 했었지.

괜스레 무안해져 그냥 손을 붙잡고 흔들어준다.

악수 이후 다시한번 기이한 광채를 뿜내며 날 훑어보는 눈.

복장이 복장이기에 저런 시선은 살짝 부끄러워진다.

'...음.'

아닌가.

뭐, 이건 내 몸이 아니니까.

다시한번 현실감각을 상실해버리고 만 나였다.

"날, 왜 만나고 싶었던거야?"

목적을 묻는다. 적어도 쌩판 모르는 사람을 무작정 만나고 했을 것 같진 않았기에.

하지만 그 꼬마는 그저 그대로 몸을 돌려 마스의 옆으로 쪼르르 달려갈 뿐이었다.

"..."

...기분 나쁜 꼬맹이.

어쨌든 엄청나게 이상한 어린애였다.

.

.

.

"그래서, 지금부터 어떻게 할거야?"

테이블 주위에 둘러앉은 5명.

나를 포함해 준서와 제인까지 모두 모여있다.

내 질문에 라디오 하나를 꺼내드는 제인.

"마스한테 얘기는 들었지? 지금 유럽쪽에서 진행중인 작전."

"...응. 근데 그거, 성공가능성이 너무 희박해보이던데."

마스에게서 얘기는 들었다.

유럽쪽에서 '비버 오퍼레이션'이라는 작전이 진행중이란 것과, 그 작전에 한서우가 참가했다는 것까지.

하지만, 작전의 세부사항을 들어보니 말그대로 자살공격과 다를바가 없었다는 것이, 내 얼굴을 굳게 하기엔 충분했을 뿐이지.

말 그대로잖아. 끝도없이 재생하는 벽 너머로 어떻게든 군대를 투입시키는게 작전의 내용이라니.

들어온다 해도 나갈 방법따위 없고, 그 막대한 마수들을 뚫고 들어온다는 것 자체가 문제였다.

하지만, 한서우가 있다는 점이 마음속에 희망을 불어넣어주기엔 충분했던걸까. 마음 한구석에선 은근히 기대하고있었다.

뭐, 지금 상황에서야 원작 전개와는 밑도끝도없이 달라졌을게 뻔하니, 이것도 그저 하나의 소망사항일 뿐이었지만.

어차피 여차하면 그냥 내가 뚫어서 다 내보내면 된다.

...그냥 이렇게 하는게 더 편할 수도.연구자와 광대들만 따돌리며, 적당히 숨어나가면 탈출...

'은 지랄...지난번 총공습 사태가 다시한번 재현되겠지.'

...될 리가 없잖냐.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래도, 만약 들어온다면. 들어온다면 말이야, 아마도 특정 주파수를 통해서 신호가 올거야. 어떤 방식으로든."

제인은 이야기를 계속했다.

"만약 작전이 실패할 경우는 일단 미뤄두고, 가장 현실성있는 방식에만 집중하자. 군대와 합류해서 작전에 합류하는거 말이야."

"...응."

대충 제인이 설명하는 내용은 이러했다.

만약 군대가 작전에 성공해 내부로 들어왔을 경우, 주파수를 맞춰둔 라디오를 통해 신호를 잡은 다음 부대와 합류해 작전에 협조하자는 것이었다.나쁜생각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나도 고개를 끄덕거릴 수밖에 없었고.

하지만...

"...그럼, 일단은 기다려야겠네. 어떻게든 변화가 관측될 때까지."

그랬다. 결국은 그저 기다림이었다.

누군가에게 의지하면 편하기야 하겠지. 하지만 그 누군가가 잘 해내줄거라 믿고 기약없이 기다리기만 해야할 뿐이었다.

하지만 이런건 사양이었다.그 왜,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호의는 받는것이 아니라 쟁취하는 거라고.

이런 상황에서 쓸 말인진 모르겠는데, 어쨌든 내부에 있는 우리도 최대한 우리 힘만으로 빠져나가기 위해 노력해야했다는 것이었다.

...

...

하지만, 나까지 나가면 그저 문제해결은 하지않고 도망쳐버린 것밖에 안되는 거겠지.

...만약 얘들이 나간다 해도, 난 연구자들. 즉 최종보스를 후드려 패지 않으면 맘놓고 나갈 수가 없었다.

..

시발.

진짜, 좆같은새끼들.

마음대로 집가는 것 조차, 이젠 할 수가 없었다. 그저 계속해서 눈치보고 숨어지내야만 했다.

그래서, 결국은 최종보스를 잡아야한다.

이 안에서.

...아마, 이곳에서 나가는 건 훨씬 나중일이 될테겠지.

연구자들이 죽지 않았다는거? 파벨아저씨나 마스한테 이미 들어서 알고있었다.

출처를 알 수 없는 거대한 구조물, 그리고 그 주위에 흩어져있던 전이마법진의 잔해들. 그저 그들이 기만하고 있었을 뿐이란 사실을 듣고도 내가 그렇게 담담했던 이유는 이미 지쳐버렸기 때문이 아닐까.

..어쨌든.

일단은, 살아남는거에만 집중하자.

그 누구의 간섭도 없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나중에 다 끝나고 나면, 분명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겠지.

원래 내가 살던 곳이던, 아니면 그냥 평생 이곳에서 살던. 행복하게 살 수는 있을거야.

***

팔락팔락.

서류철이 쉴새없이 움직이고, 여기저기서 타자를 두드리는 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지금 그들이 서류에 옮기고 있는 글의 내용은 블랙드림 환각작용의 세부사항. 그 글을 본 모두의 눈은 휘둥그레진다.

그도 그럴게, 그 환각작용의 내용이란 다름아닌 '인생' 그 자체였으니.

출산부터 시작한 그 삶은, 어느 시점에선가 갑자기 끊긴다. 모든 블랙드림마다 환각작용의 내용은 다 같지만, 유일한 차이점이란 흘러나오는 '인생'의 차이 뿐.

끊기는 지점도, 성별도, 외형도 모두 제각각이었지만, 그것들은 모두 하나같이 인간의 일생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복용자들이 그렇게 중독되고 찾아 헤메던 환각의 내용이란 누군가의 '인생'.

흘러나오는 영상도, 내용도. 모두 복용자의 인생과는 전혀 달랐으니 그 영상의 주인이 다른 이라는 건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평소였다면 그저 신기한 현상이네, 하고 넘어갈 일이었지만, 모두에게 의구심을 갖게했던 점.

대체, 왜 이렇게 세밀한가.

그저 급조된 환상이라기엔 저 영상 너머의 세계가, 인생이, 체계가, 교육이.

너무나도 자세하다. 도저히 급조된 것이라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도 세밀하고 촘촘히 짜여있는 세계이기에, 도저히 가상이라고는 볼 수 없던 모습. 심지어 블랙드림의 환각에서 흘러나오는 세계가 모두 같다면 이건 그냥 넘길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다음 실험 준비 됐습니까?"

"네, 내일 오전 7시에 곧바로 7차 임상실험 계획되어있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당장..."

사무실 내 여기저기서 울려퍼지는 목소리. 모두가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창밖에 내리는 빗소리 때문인지 더 크게 울려퍼지는 발소리들.

털카펫을 밟는 구둣소리들이 유난히도 칙칙하게 느껴지는 날이었다.

마수의 시체를 가공해서 만든 마약이 보여주는 환각의 내용이, 누군가의 인생이라니...

이것 참, 너무나도 끔찍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었다.

심지어, 행복할것도 즐거울것도 없는 인생을 그렇게 극단적으로 탐하는게 복용자들이라니...

한번 끝까지 맛 본 인생이란, 우울하고 불행해도 중독적이라는건가.

"대체 무슨 꼴인지, 이게..."

마음이 착잡해진 난 발코니로 나가 연초를 꺼내들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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