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화 〉 1부 42. 해몽
* * *
딸깍.
눈앞에 있는 시험관의 병을 살짝 열어본다. 훅 하며 뿜어져나오는 강력한 악취. 절로 코를 부여잡게 만드는 냄새다.
시험관 속에 들어있는 건 검은색의 칙칙한 액체. 푸른색의 마력이 이따금씩 흘러나오며 불길한 느낌을 만들어낸다.
'미친놈들...이런걸... 제조하고 있었단 말이지.'
헤일로 공명현상때문에 위성관측도, 마력작용도 불가능해 안쪽과 통신할 수 있는 수단이라곤 이유리 요원이 전부라 이런 짓이 벌어지는지 조차 알지 못했다.어찌나 꽁꽁 숨겨왔던지 바깥에서 이렇게 대놓고 활동을 시작했는데도 추적까지 1년이 넘게 걸렸을 정도였고.
설마설마 하니 저 안에서 이런 짓을 하고있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블랙드림.
마수의 사체를 가공해 제조한 마약.
마수의 사체야 원래 쓸모도 없고 매립지의 크기만 확산시키던 세계의 암덩어리였다. 그런 암덩어리를 어떻게든 활용할 방법을 찾은 것 까지야 좋다만, 그 결과물이 이런 흉악한 마약이라면 이야기는 훨씬 나빠진다.
복용자들의 말에 따르면 복용 당시 무언가 엄청난 정보와 감정들이 휘몰아쳐 들어왔다고는 하는데, 그 내용을 복용자 자신조차 기억하지 못한다고 한다. 하지만 복용시의 강렬했던 감정과 이상야릇한 기분때문에 도저히 끊을 수가 없단다.
심지어 복용자들 중 대다수는 복용이 지속되면 지속될수록 뇌가 망가졌다고 하고.
내용조차 기억못하는데 의존성은 최상위급이고, 금단증상조차 극심하니 가히 사회 악이라 부를만 하다.
'...뭐, 지금부터는 알 바 아니지만.'
그래. 의존성 최상, 금단증세 최상.
허나 그 원인조차 모르고, 체내에 들어가 반응하는 원리조차 알지 못한다.
지금까진 복용시 일어나는 현상조차 미스터리라 해결법도 찾지 못했는데, 이제부턴 미스터리가 아니게 될 지도 모른다.
저 앞, 유리창 너머에 서있는 죄수복을 입은 남성 한명. 극형을 받고 감옥에 2년간 수감되어있던 사형수다. 그리고 그 사형수 앞에 놓여있는 유리병 안에 들어있는 것은 블랙드림.
...임상실험이다. 실험 내용이 내용이기에 대놓고 하지 못하는, 말 그대로 뒷세계의 임상실험. 정부가 주도하는 블랙드림 퇴출을 위한 계획의 첫걸음.
복용은 다른사람이 하는데 복용시 일어나는 증상을 어떻게 알아내냐, 한다면 그것도 다 방법이 있었다.
지직.
툭툭, 눈앞의 장치를 건드리자 일어나는 잡음. 잠시 목을 풀고 마이크를 향해 말하기 시작했다.
"이유나 요원, 준비 됐습니까?"
"...네. 문제 없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5분 뒤에 시작하도록 하죠."
모니터 너머의 여성이 조용히 대답한다.
이유나 소령.
헤르메스 특전단 소속 서포터계열 초상능력자.
정신간섭 부류의 희소성을 생각한다면, 현재로서 가장 적합한 인물중 하나였다. 현재 이유리 요원과의 연결 두절로 몇주간 혼자 틀어박혀 있었던걸 간신히 빼내와 실험에 투입시킨 상태이다.
시간은 흐른다.
[on time]
마침내, 5분이 지났음을 알리는 알람이 울리고, 곧바로 방 안의 연구진들은 일제히 준비된 타자를 두드리며 실험을 시작했다.
"1청크, 2청크 카메라 전부 정상작동 합니다. 바로 녹화 시작하겠습니다."
딸깍, 타닥.
띠링
눈앞에 나열된 모니터들에선 신호로 변환된 빛들이 흘러나와 유리창 너머 방안의 정경을 모두 환하게 비췄다.
눈앞의 서류첩을 펄럭이며 정보를 뒤적인다.
"현재시각 2036년 11월 7일 19시 25분 03초. 피실험자 식별번호 020817 박강수. 블랙드림 복용시 일어나는 환각작용의 내용과 마력작용 실험을 시작한다."
말을 마친 후 턱짓하자, 고개를 돌려 아래의 마이크를 통해 지시를 전달하는 연구원. 그 말을 들은 카메라 너머의 사내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내 눈앞의 유리병을 집어들었다.
[...?!]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소리치며 카메라를 향해 검은 병을 들이대는 사내. 그 모습을 본 연구원은 다시 마이크를 통해 지시를 전달한다.
이내 병의 뚜껑을 열자 스멀스멀 올라오는 푸른색 연기는, 카메라를 통해 환하게 보일 정도로 선명했다.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보던 방 안의 남녀들이 무언가를 조작하기 시작한다.
"3번 디스플레이, 마력 코드 연동작업 완료. 화면 띄우겠습니다."
띠링, 하며 켜지는 벽면의 거대한 화면. 이유나 요원이 발산하는 마력코드가 연결되어 시야를 그대로 전달하는 중이었다.
잠시 지직거리던 화면은 이내 유리창 너머 사내의 시야를 비추기 시작한다.
"지금 바로 복용하면 된다."
마이크를 통해 직접 지시를 전달하고, 곧이어 움직이는 사내의 손. 잠시 유리병 안의 검은 무언가를 바라보던 사내의 시야는 이내 천장을 비추고, 곧이어 꿀꺽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기록 시작."
기다린다. 변화가 일어날 때까지.
[어, 어...]
디스플레이 너머로 들려오던 의문의 소리. 곧이어 시야가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풀썩
시야가 가라앉으며, 화면은 암전됐다.
"...?"
설마, 죽은건가?...마약의 부작용중에, 이런게 있었던건가?
"심장박동, 뇌 활동 모두 정상입니다. 단순한 램수면 상태인 듯 합니다."
다행히 사망한 건 아닌 듯 했다.
만약 사망했다면 새로운 케이스가 될 수도 있었을 터인데.
"..."
하지만 사망한 게 아니라면, 대체 왜 화면은 암전되어있단 말인가? 아무 소리도 흘러나오는 것 없이, 그저 적막만을 노래하는 전기신호.
"...일단, 대기한다."
환각작용의 실체를 밝혀내기 위해서는 적어도 기다림이란 필요한 거겠지.
내 한마디에 방 안의 타자소리는 일제히 멈추고, 곧이어 적막으로 휘감겼다.어두운 방안에서 나오는 빛이란 그저 벽면의 거대한 화면이 뿜어내는 푸르스름한 미광뿐.
그렇게 모니터실 안의 적막은 계속되고, 모두의 기다림만이 식은땀을 타고 흘러내릴 뿐이다.
*
"...어?"
대략 10여분 정도 지났을까. 화면 안에서 이상이 관측되기 시작했다.
저 검은 배경화면. 그리고, 저 너머의...
새하얗게 빛나는, 광원 하나.
그 광원이, 점점 커지기 시작한다.
꿈틀꿈틀, 계속해서 주위의 붉은 무언가를 비추며 커지기 시작하는 광원.
"이게 무슨..."
광원은 확장하고, 이내 디스플레이를 한가득 채워 마치 조명이라도 켜둔 것 마냥 모니터실 내부를 밝게 비췄다.
그리고, 곧이어 들려오는 하나의 소리.
비어버린 오디오를 가득 채우는 하나의 소리.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마치, 물속에 잠긴듯 흐릿하게, 묵직하게 들려오는 소리.
서서히 소리는 명확해지며, 물에 잠긴 소리는 걷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어서 흘러나온 소리에, 모니터실에 있는 모두의 몸이 경직됐다.
"...ㅡ응애, ...응애ㅡ!"
저 너머로 들려오는건, 아기의 울음소리. 하얀 빛을 배경으로 들려오는 어린아이의 울음소리.
시야는 밝아지며 선명해지기 시작하고, 빛은 사그라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내 드러난 시야에 비추는 풍경이란, 그저ㅡ
"하하, 아하하..."
디스플레이를 가득채우는, 누군가의 얼굴.
팔을 뻗어, 시야의 주인을 품에 안는다.
"ㅡㅡㅡㅡ...."
소리는 귀에 전혀 들어오질 않는다. 그저 상황에 압도되어 이 순간만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 누구도, 아무도 입밖으로 말을 꺼내지 않고. 소리조차 귀에 들어오지 않지만.
본능적으로, 이 안의 모두는 저 너머의 인물이 누구인지 알고있었다.
저 인물은. 그저.
어머니.
화면은, 이제 막 자궁에서 나온 아기의 시점을, 비추고 있었다.
***
"소피야는?"
"아... 같이 온 그 언니 말하는거지? 수속절차 밟으러 가서 좀 늦을 것 같대."
"...아..."
그렇구나, 하며 다시 눈앞의 이야기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여기 오고나서부터 안보였길래 어디간건가 했는데, 그런 일 때문이었구만.
아무튼 지금은 내가 이곳에 있던동안, 바깥에서 있었던 사건들의 대략적인 정보를 듣는 시간.
화연이는 웬 꼬맹이를 찾으러 간다고 나갔기에, 현재 식당에는 나와 마스밖에 없는 상태였다. 눈높이가 맞질 않으니 내가 올려다봐야 하는게 살짝 엿같았지만, 뭔 상관이야. 음.
"아무튼, 여기로 들어왔다고?"
오른손으로 눈앞에 있는 지도의 모퉁이 부분을 가르킨다. 서아시아 끝자락의 북부 부분.
"응, 들어보니까 그쪽이 최근에 바깥으로 드나드는 배가 왔던 곳이래."
"아."
"응?"
"혹시 그쪽에 배리어 마법같은거 있었어? 대략... 3일쯤 버틸 것 같은걸로."
"들어오는동안 바깥은 못봐서 잘 모르겠는데, 왜?"
"아, 아니... 그냥..."
이전의 그 일이 떠오른다. 하늘에서 쏟아져내리던 거대한 붉은 광선. 아마 그런거려나.
설마하니 그렇게 만들어진 통로를 몇주간 유지시켜두고 외부랑 출입하는 통로로 쓰고 있었을 줄이야. 심지어는 마약 해외유통 때문이라니. 세상에는 미친놈이 많아도 정말 너무 많다고 생각했다. 이전에는 사람 갈아넣어서 통로 뚫었다는거 아니야.
진짜 미친놈들.
"아무튼, 다른 내용은 또?"
"아, 응..."
잠시 생각하던 듯한 마스는, 곧이어 뭔가 떠올랐다는 듯 말을 꺼낸다.
"아, 대규모 마력파 관측 사건도 있었네."
"마력파?"
"응, 마력이 뭔진 알지?"
"...아니."
수업시간마다 졸았는데 알 리가 있겠냐. 말을 삼킨다.
"'국소적인 글루온 조작을 가능하게 하는 출처불명의 에너지'잖아. 안배웠어?"
"...졸았어."
"음, 큼. 아무튼, 글루온이 뭔진 알지?"
더 어려운걸 물어보면 어떡하냐!
도리도리, 고개를 젓는다.
"강력 매개입자. 그냥 이것만 알아둬."
"아, 넵..."
"아무튼, 마력파 관측 이후에 그 근처에선 항상 큰 사건이 일어나서 세계 각지에 관측소를 두고 감시중이었는데... 이 내부에서만 1년 내에 벌써 3번 이상 마력파가 관측된거지."
"아..."
그런건가.
그게 그렇게 큰 일이었던건가.
잘 모르겠어.
"그리고 또..."
지금은 뭐, 상관 없겠지.
앞에서 이야기하는 마스의 말을 들으며,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