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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해주세요, 마수님!-45화 (45/162)

〈 45화 〉 1부 41. 검은 꿈

* * *

지금 상황이 불편했다. 아니, 불편하기는 커녕 좋아해야 할 상황인데 어째선지 가장 먼저 불편함이 몰려들어왔다. 대체 나도 왜 이런 감정을 느끼는 진 모르겠지만, 지금 이런 모습을 화연이랑 마스에게 보여줘서는 안된다는 직감이 있었기 때문일까.

"...루시. 맞아...?"

...아마, 그럴걸요. 잘 모르겠지만.지금 나 조차 내가 누군지 모르는데.

일단 보이는대로만 말하면 내가 한서우 일행을 처음 만났을 때와 지금과 비교하면 너무나도 큰 차이가 있긴 했다. 키는 거의 20cm가량 줄었지, 팔이랑 눈 한짝은 다 엿바꿔먹어서 존재하지조차 않는다.

게다가 내장기관은 싸그리 마수의 그것으로 교체되어 사람이라고 조차 부를 수 없는 상태. 적어도 정상적인 상태라고는 볼 수 없었다.

화연이는 계속해서 상처를 바라보다가, 내 머리를 쓸어주더니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아마 내 왼쪽 눈구멍을 보고나서 그렇게 울기 시작한 것 같은데, 솔직히 꽤나 떨떠름했다.

만난 지 기껏해야 3개월 정도밖에 안됐을 시점에 헤어졌는데, 그게 이렇게 울 정도로 깊은 이었나?

하지만 화연이의 가정사를 떠올려보니 어째선지 이해가 갔다.

성화연은 이런 세상에선 보기 드물게 부모 전부 살아있고 주변 이들 중 아무도 잃어 본 적 없는, 상당히 순수한 애였다. 당연히 죽음같은건 주변에서 이야기로 들려오는 것으로만 접해봤고, 직접 겪어본 적은 없었겠지.

막상 한서우랑 마스 과거사 보면 알겠지만 얘들은 진짜 끝장나게 암울하다. 그 중에서 그나마 밝은 놈이 성화연이었건만, 그것조차 원작에서는 광대한테 습격당해 평생 불구가 되며 끝나버렸지.

하지만 이젠 전개가 달라져 성화연이 눈앞에서 잃어본 게 하나 생겼다. 바로 나. 자의식 과잉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적어도 눈앞에서 누군가의 생명이 사라지는 광경을 보는것은...

트라우마로 남기엔 충분히 끔찍한 기억이었다.

막상 나한테 물어보면 제대로 답할 순 없겠지만, 그래도 아카데미에 다닐 적엔 나름 친한 사이였다고 생각했다. (자칭) 친구를 눈앞에서 잃었으니, 이런 반응이 나오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거겠지.평생을 잃어본 적 없이 살았던 착한 아이가 현시창을 맛보게 되었으니.

현실은 시궁창이었다. 죽음과 멀리하면 제정신으로 살아갈 수 없을 정도로.

난 미친 게 아니었다. 지금은 그저 뒤섞여버린 기억과 감정들에 혼란스러워 하고 있는 것 뿐이지, 절대 미친 게 아니란 말이었다. 아마도 이건 내가 이곳에 왔을적부터 언제나 죽음을 곁에 끼고다녀서 그런거라고 생각한다.

들으면 중2병 스러운 말이라 생각할 수도 있는데, 나도 인정한다. 방금 존나 중2병 같았어. 하지만 뭘 어쩌겠어, 결국 옆에 항상 죽음을 끼고 살았다는게 마냥 구라는 아닌데. 이제는 그냥 사지가 찢어져서 죽는 것 따윈 무난하게 넘길 수 있을 정도로 죽음이란 것에 무감각해졌다.

내 죽음에 무감각해졌으니, 남의 죽음에 무감각해지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사실 내 인생에서 살인이란 지난 번 크로체 전에서 숨어 지켜보던 그 관음증변태환자들을 죽여본 게 처음이었다. 그 이전엔 사람을 죽일 이유도 없고, 사람을 죽이기 싫어서 죽이지 않았을 뿐이지.

루스리아와 있을때 무의식속에서 일어난 일련의 파장으로 무언가가 근본부터 뒤틀린 느낌이었다.

햄버거 패티에서 소를 재구성 할 수 있는가? 지금은 그것과 비슷한 상황이라고 보면 된다.

내 원래의 의식이 소, 지금의 상태가 햄버그 스테이크.

암튼, 난 미친게 아니란 말이야.

아마도.

소란도 어느정도 진정된다.

"루시, 안배고파?"

조용히 생각하고있자니, 성화연이 조심스레 말을 걸어온다.품속에서 상당히 엉성한, 저 길건너 루씨야 제과점쪽에서 파는 초콜릿들을 한가득 꺼냈다. 모두 흐릿한 갈색의 싸구려 초콜릿들. 하지만 이런곳에서 저런거라도 맛볼 수 있다는 게 어디야.

근데 저거 다 나 주려고 산거야...?

냄새를 맡아보니 달콤한 향기가 한가득 올라온다. 방금전까지만 해도 배고픈 기분따윈 없었는데 갑자기 막 배가 고파지는 느낌이다.

"배고파."

고개를 세차게 끄덕거린다.

그러자 사람좋게 웃으며 봉지를 품속에 안겨주는 성화연.

하지만 초콜릿 몇개를 까고 입에 탈탈 털어넣는 그 순간, 다시 뱃속부터 끔찍한 감각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아.

시발.

잊고있었다.

얘들을 만나니 뭔가 머리가 점점 둔해지는 느낌이었다.

입을 최대한 막아보며 구석의 골목으로 뛰쳐들어간다.

"우웨에에엑ㅡ!"

몸속부터 올라오는 좆같은 감각에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입에서 나도 통제 불가능한 소리가 마구 새어나왔다.

뒤따라 달려오는 성화연.

"루시? 왜 그래?!"

잠깐 놀라는 듯 싶더니, 이내 내 모습을 보고선 다시 어두운 표정이 됐다.

음식 한번 먹고 죄다 게워내는 모습이라, 음. 솔직히 이정도면 때려도 무죄 아닐까. 기껏해서 준비했는데 한입 먹자마자 바로 다 토해낸다니. 내 멍청한 머리 잘못이었어.

맞기 전에 변명이라도 하려고 했지만, 성화연은 그저 말없이 내 등을 두드려줄 뿐이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가끔씩 내가 흘리는 신음소리에 흘끔흘끔 쳐다보기만 할 뿐, 아무런 관심조차 주지않아 지금 주변에 있는 사람이라곤 성화연과 나 둘 뿐이었다.

골목 구석에 죄다 게워내고 나자, 그제서야 겨우 고개를 들어 성화연을 마주봤다.

"...미안해, 루시...미안해..."

성화연은 자꾸 미안하다는 말만 중얼거린다.

마치 부모라도 잃은 새끼 개마냥 울어대는 그 모습이 굉장히 처량했다. 보고만 있어도 마음 한구석을 후벼파는 느낌이다.

내가 착한놈이냐, 하고 물어본다면 사실 어떻게 대답해야할 진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쁜쪽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스스로 착한놈이라 말하기엔 너무나도 뻔뻔하니, 그냥 적당히 착한거라 해두자.

아무튼 그랬기에 나때문에 우는 애를 이렇게 눈앞에 그냥 둘 순 없었다.

­폭

그래서 그냥 안아줬다. 한 팔밖에 남지 않았지만, 그래도.

안아주자 어째선지 더 서럽게 울어대기 시작했다.

아무튼, 우는 걸 말릴 생각은 없으니.

지금은 실컷 울어두게 놔두자. 어차피 우는거 참아봤자 하등 쓸모 없어. 골목 밖으로 시선을 돌리자 빌어먹을정도로 밝은 불빛이 거리를 화사하게 비추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으아아아앙..."

그렇게 골목속에 울려퍼지는 성화연의 서러운 울음소리와 함께 밤은 저물어만 갔다.

역시 난 마스처럼 쿨하게 넘어가는쪽이 좋아. 화연이처럼 이렇게 너무 걱정하는건 역시 익숙하지가 않았다.

...뭐, 그래도.

따뜻하게 젖어드는 기분이 좋긴 하지만 말이야.

*

"루시...? 혹시 왜 이런 모습이 된 건진... 역시 민감한 부분이려나."

마스가 조심스럽게 내 왼팔을 바라보며 물어왔다. 지금 있는 곳은 파벨 아저씨 어머님의 식당. 새벽시간이라 그런지 사람은 적어 우리의 소리만이 메아리처럼 울려퍼지고 있었다.

마스가 물은 그 말에, 도리도리 고개를 젓는다.

딱히 현실감도 없어서 내 몸이 잘린 것조차 제대로 못느끼는 나인데, 겨우 그런 일로 안좋은 기억 어쩌구 하는게 크나큰 오해였다. 몸에게 있어서 안좋은 기억은 맞지만.

"그럼, 미안하지만... 혹시 얘기해줄 수 있을까. 연구자들이랑 연관된 정보다보니 역시..."

끄덕끄덕. 어차피 만나면 다 얘기해 줄 생각이었으니.

파벨 아저씨 어머님의 식당에서, 탁자에 앉아 천천히 풀어나가는 이야기들. 어쨌든 듣기만 하면 끝장나게 암울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연구자들에게 끌려들어가 내장기관 전부 교체당하고 가드로 들어가게 된 상황, 의뢰자에게 외통수를 맞고 루스리아에게 끌려가 팔과 눈 하나가 뽑혀나가야 했던 상황까지.

그냥 모두 이야기했다. 숨길 것도 없으니. 내 몸속이 마수의 그것이라는 사실이 뭐 어때서. 딱히 루시가 루시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데.

너무나도 이상적으로 착한 이 친구들은 내가 마수라는 사실을 말해도 묵묵히 듣기만 했을 뿐, 별달리 말은 하지 않았다.

이야기를 하다보니, 창 밖으로 떠오르는 햇빛에 물들어가는 도시의 모습이 보인다. 점차 붉게 물들어가는 도시의 모습. 각자 등에 소총 하나씩 맨 남녀들이 거리를 분주히 움직이는게 보였다.

"...여기까지."

어느새 이야기는 끝났고, 침울한 분위기만이 주위를 삼쌌다.여전히 적막으로 휩싸인 테이블. 모두가 아무런 말도 없이 그저 나온 음식만을 내려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이런 자리가 굉장히 불편했다. 아무튼 이런 배려라고는 상당히 생소한 느낌의 그것이었으니.이전 지구에서도 친구들한테 받아본 것 빼면 딱히 느껴본적이 없는 감각이었다.

아무래도 술이 땡긴다. 갑자기 맥주가 마시고 싶어졌다.손은 갈곳을 잃어 비어버린 왼팔만을 만지작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눈을 내리깔고 그저 분위기만 보고있던 그때.

"...고생했어."

누군가의 입에서 튀어나온 한마디.

"..."

마스가 다가와 등을 툭툭 두드려준다.

솔직히 말하면, 이젠 이런 말 들어도 별 생각 없다. 막 울음이라도 터뜨려야할 것 같은데, 이젠 눈물조차 나오지 않는다.

그래도, 기분은 좋았다. 그저 지금까지 내가 해온 고생이 나 혼자 지고 갈 문제는 아니었단 것에.

그래서 그냥 활짝 웃었다. 아마도, 이건 진심으로 나온 감정이겠지.

지금은 그저 머리와 몸이 생각하는 감정이 같기를 바랄 뿐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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