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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해주세요, 마수님!-44화 (44/162)

〈 44화 〉 1부 40. 위로

* * *

"쿨럭."

트럭을 타고 밤의 적막한 폐허를 달리고 있던 도중, 작살나버린 내장기관에서 나오는 피를 토해버렸다. 최대한 손으로 막아보았지만, 그래도 비집고 나와 앞 의자에 살짝 튀어버렸다. 손에 피가 한가득 묻어서 찝찝하다.

"루시? 갑자기 무슨 일..."

앞자리에 앉아있던 알비나는 결국 그 소리를 들었는지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다가, 나와 시선이 마주쳐버린다. 알비나의 시선이 향한곳은 피로 흠뻑 젖은 내 손. 얼굴이 하얗게 질리는게 여기까지 보일 정도다.

아니, 그래. 가죽에 피묻으면 닦기도 어렵고 피비린내도 진하게 난다는 건 알고 있다. 근데 이건 불가항력이잖아. 앞에서 알비나가 뻗는 손에 습관적으로 눈을 질끈 감아버린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아무런 제재도 없자, 살며시 떠보는 눈. 알비나는 어느샌가 고개를 돌려 앞을 바라보며 앉아있다. 몸을 안쓰러울 정도로 바들바들 떠는 모습에 괜히 내가 다 미안해진다. 앞으로 트럭에 올라탈때마다 피비린내를 맡아야하는 이들에겐 굉장히 미안한 심정이다. 거짓말이 아니라, 진짜로.

피비린내를 질릴 틈도 없이 양껏 맡아본 내 경험을 토대로 말해보건데, 절대로 이게 좋은 냄새는 아니다. 익숙해지긴 하지만, 그래도 맡을때마다 속이 메스꺼워지며 토할 것 같은 역겨운 냄새인 건 언제나 똑같아.

소피야는 날 따라다니는 내내 이런 모습을 봐서 그런건지 딱히 별달리 놀라거나 하진 않았다. 움찔거리며 눈을 동그랗게 뜨긴 했지만.

앞자리에서 아저씨가 한숨을 푹 내쉬며 건네주는 휴지를 떨떠름하게 받아들고 손과 가죽의자를 최대한 박박 닦아내기 시작했다.

"루시..."

하지만 그것마저도 진동이 앞자리에까지 전해졌는지, 알비나가 다시 뒤돌아봤다. 괜스레 빨라지는 손. 그 모습을 본 알비나는 손을 뻗어 내 오른팔을 쥐었다. 알비나의 얼굴을 바라보자, 눈가에 다시 눈물을 글썽이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감수성이 풍부한걸 뭐라 하진 않겠지만, 울어도 너무 많이 우는 것 같은데.

"루시...쉬어, 지금은. 그렇게까지 할 필요 없어."

"...이거 그대로 놔두면 피비린내 엄청 심하게 날텐데..."

"...제발...루시."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딱히 뭐 어쩔 수 없긴 하다. 차 주인이 하지 말라고 하는데 억지로 더 해서 뭐해. 그대로 다시 의자에 기대어 창밖을 바라본다. 알비나가 훌쩍이는 소리를 배경음삼으며 지나가는 별자리들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스쳐지나가는 콘크리트 더미들 사이로 보이는 화사한 별들. 하늘을 밝은 남색으로 물들이는 모습이다. 저 멀리 있던 하늘을 바라보니, 별 몇개가 깜빡이는 모습이 보인다.

저번에 크로체랑 맞다이 뜰때만 해도, 기껏해야 보이던거라곤 수백개가 전부였는데, 그 사이에 거의 3배 가까이 늘어난 모습이다. 어쩌면 새로운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저렇게 관음하고 있는걸까, 생각도 해봤지만 저새끼들이 그럴리가 없지.

"..."

아니, 그나저나. 이 지식들은 다 대체 어디서 쏟아져나온걸까. 내가 겪어본 적 없는 기억같은거야 저번의 광대들에게 납치당했을 시절 떼거지로 휘몰아쳐 들어왔기에 새삼스럽지조차 않지만, 막상 이렇게 겪어보니 신기한 기분이긴 하다. 원래의 몸 주인이 대체 뭐하던 애였는진 이제 궁금하지조차 않다. 어차피 걔가 나고 내가 걔인데. 내가 나에대해 설명하는 것 만큼 멍청한 일이 또 있을까. 꽤나 웃긴 질문이다.

그렇게, 장장 3일에 걸쳐 제 1 안전구역으로 돌아갈 동안 그저 그렇게 깜빡이는 별자리만을 바라보며 시간을 떼울 뿐이었다.

*

"알비나, 일어나요."

자고있던 알비나를 깨운다. 현재시각은 밤. 은하수가 저 하늘 위에 떠있을 시점. 먼지구름이 별들을 가려 시선조차 못느낄 시점이기도 하다.

3일동안 정말 시간단위로 피를 쏟아냈기에 차 안은 이미 피비린내로 물들어버린 시점이라, 창문을 열고 질주하는 트럭이었다. 그 사이 도착해버린 제 1 안전구역.

저 멀리 노란 불빛들이 반짝반짝 빛나는 모습이 보인다. 어느샌가 제대로 다듬어진 도로도 나와 덜컹거리던 트럭도 잠잠해졌다. 3일동안 한숨도 안 잔 나는 자고있던 알비나를 깨웠다.

"아, 도착이구나..."

응, 도착이다. 어쩌면 내가 이런 곳에서 가장 안정감을 느꼈던 장소. 하지만 이렇게 봐봤자 아무런 감상도 들지 않는건, 저 도시는 그저 폐허를 기워만든 도시라 그런걸까. 잘 모르겠다.

입꼬리를 다시 살짝 움직여본다. 여전히 지어지는 거라고는 어색하디 어색한 미소. 눈이 웃질 않으니 소름끼치기까지 하다.

­덜커덩...

유리창을 바라보며 표정연습을 하고 있던 사이, 거리는 가까워져 어느샌가 제 1 안전구역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레프가 앞에서 기다릴거라고 했었는데, 혹시 레프아저씨마저 안아줘야 하는 건 아니겠지. 혹시 안아달라고 하면 그땐 거절해야겠다.난 예쁜 언니가 좋단 말이야.

차는 어느샌가 멈춰서고, 저 앞의 반짝이던 불빛도 환해져 이제 눈앞을 가득 메웠다. 덜컹거리며 알아서 열리는 문. 슬쩍 문밖을 바라보니 레프아저씨가 서있다.

"...안녕하세요."

"루시, 꼴이 그게 다 뭐냐."

문이 열릴때만 해도 분명 밝았던 얼굴이던 것 같은데, 다시 어두워지는 얼굴. 레프 아저씨마저 저러네. 솔직히 나도 지금 내 모습 볼때마다 기분이 더러워지긴 하는데, 막상 직접 눈앞에서 타인의 반응을 보니 더 우울해지긴 한다.

"...루시, 잠깐 나랑 얘기좀 하자."

그렇게 말한 레프 아저씨는 키에 맞지 않아 끙끙대며 트럭에서 내리고 있던 날 번쩍 집어들어 알비나의 시선에 닿지않는 곳으로 데려갔다.

"기분 나빠하지 말고 들어."

"네."

내 펄럭거리는 왼팔 소매를 잠시 주시하던 레프 아저씨는, 오른손으로 얼굴을 쓸며 입을 열었다.

"알비나가 너 봤을때 어떤 반응이었어?"

"어... 한시간 반정도 울었어요. 엄청 서럽게."

"왜 그랬는진 알고 있어?"

"...저 때문에 그런거에요?"

"맞아. 잘 아네?"

솔직히 너무 대놓고 그런 티를 내서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다. 아마 내가 내 모습 바라볼때마다 기분 더러워지는거랑 비슷한 감정때문에 그랬을수도.

잠시 날 바라보던 레프 아저씨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근데, 그거 알아? 사실 알비나가 그렇게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이 아니야."

"...네?"

"알비나랑 난, 사실 그다지 감수성이 풍부하다고 할 순 없거든. 지금까지 살면서 죽여온 사람이 십 단위를 넘어가고, 살아남기 위해서 등쳐먹어야 했던 사람이 몇십이나 존재하는데. 우리가 그렇게 감수성이 풍부해서야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을 리가 없잖아."

"...아, 네. 그렇죠."

레프 아저씨는 갑자기 급발진하며 어두운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런 알비나가 그렇게 울어댔다는건, 넌 아마 알비나한테 평범한 의미는 아닐거란 말이야. 알아들어?"

"...네."

"알비나가 말이지, 아무리 너처럼 귀여운 애라도 자신한테 해가 된다고 판단하면 감정도 없이 죽여버릴 수 있는 그런 사람이야."

"..."

딸꾹질이 나올 뻔했다. 알비나가 그렇게 무서운 사람이었다니. 막상 내앞에선 헤실실 웃기만 하고 어딘가 나사빠진 모습이라 방심하고 있었는데.

"아마, 알비나는 너한테서 자신을 투영해서 그런게 아닐까 싶은데."

"에?"

"너 예전에 입었던 그 드레스 있지."

"...네."

"그거 알비나가 14살때 영감님한테 사달라고 조르던거야. 몰랐지?"

"...아?"

상당히 신선한 정보다. 알비나가 날 그렇게 바라보고 있었다니. 하지만 기분이 나빠지기는 커녕 오히려 좋아지기만 한다. 날 그렇게까지 소중하게 여겨줬다는 거잖아.

"알비나는 아마 너한테 자신을 투영하고 있는 것 같은데...난 알비나한테 그거 알려줄 생각같은거 없어. 애초에 같이 다닌지가 몇년인데, 알비나 정신상태 불안정하다는 것 쯤은 십년도 넘게 전부터 알고있었으니까.'

"...네."

"그러니까, 어디가서 함부로 다치고 다니지좀 마라. 니 몸은 너만 사용하는게 아니란 말이야."

"...!"

그걸 어떻게 알았지, 하며 물어보려는 찰나 그 다른 한사람이 내가 아니라 알비나라는 걸 깨닫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괜스레 부끄러워졌다.

"너도 다치는 거 싫어하잖아. 안그래?"

"...전 딱히 신경 안쓰..."

"안썼으면 지금이라도 신경 써. 너 진짜 볼때마다 안쓰러워서 그래. 너 지금 자기 몸 상태 신경은 쓰고 다니는거야?"

"...죄송해요."

"아니, 넌 또 왜 죄송하다고...하아..."

또 뭔가 잘못 말한걸까, 하며 가슴을 졸인다. 하지만 레프아저씨는 그저 손을 뻗어 내 머리를 쓰다듬어 줄 뿐이었다.

"...그래, 안죽기만 하면 다행이지. 죽지만 마라. 그럼 다 괜찮아."

"네..."

역시, 다시 가슴은 따뜻하게 젖어들어간다. 한순간 간지러움 대신 통증이 느껴졌던 것도 같았지만 아마 내 정신상태 문제겠지 하며 그냥 넘어갔다.

"아, 밖에서 니 친구들도 들어왔던데, 저 앞에서 기다리고있어. 걔들 얘기하는 거 들어보니까 정말 너 알고있던 모양인데?"

"...친구요?"

친구? 나한테 친구?설마 한서우 일행 말하는건가? 걔들이 여기까지 들어왔다고? 레프 아저씨의 표정을 살펴본다. 그러나 이전과 다름없이 사근사근하게 웃고있는 모습. 거짓말을 하는 것 같아 보이진 않는다.

"뭐해? 만나보러 가야지."

"아, 네."

*

"딸꾹."

레프 아저씨와 대화를 나눌때 참았던 딸꾹질이 결국 튀어나왔다. 저 앞에 서있는 성화연과 마스를 보고. 이건 감격에 차서 감정이 동요하며 일어난 딸꾹질이 아니라, 오히려 황당함에 가까운 딸꾹질이다.

아니 시발 형이 왜 거기서 나와...?

망연자실하게 날 바라보는 화연이를 향해 나도 그저 멋쩍게 손을 흔들어 줄 뿐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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