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화 〉 1부 39. 알비나
* * *
파사삭!
피가 사방으로 튀어오른다. 짜증나다는 듯 손을 털어내자 보이는 건 저 아래에 길게 늘어져있는 시체들. 좁은 골목이라 그런지 마치 기차놀이라도 하는것마냥 주르르 기어나오는게 너무 짜증났다.
"아야."
가슴을 뚫고 지나간 하나의 마법. 형태구현계열의 마법이라 명치부분에 거대한 구멍이 뚫려버렸다. 옷 찢어졌네, 시발.
물론 수도없이 갈려나간 배에 비하면 상당히 적은 비율로 아작나고 있는곳이긴 했지만, 그래도 배에는 천조각같은게 없어서 신경도 안쓴다.
이럴거면 차라리 그냥 처음부터 다 벗고다니는 건 어떨까? 계속해서 이렇게 찢어지고 갈아입을바에야 그 편이 훨씬 더 나을 것 같은데.
덕분에 내 몸은 내 피와 다른 사람의 피가 서로 뒤섞여 한데 엉겨붙어있는 모습이다.
퍼센티지로 따지자면 다른 사람의 피가 훨씬 많겠지만.
"여기가 몇번째였더라."
"이제 6번째."
저 옥상에 서있는 저격수의 미간에 구멍을 내며 소피야가 중얼거린다.
소피야는 흉흉하게 생긴 검은 리볼버 하나를 꺼내 들고 서있는 중. 권총 치곤 정밀도가 경이로울 수준이긴 했지만, 아마 저런것도 마법이겠지. 하며 그냥 넘어간다.
"다음구역으로."
"...안지쳐?"
"뭐, 그냥 그렇지."
이런걸로 지치면 진작에 나가 떨어져버렸지. 죽는것만 해도 정신력 엄청 소모하는데.
그래도 최근 갑자기 정신력이 나락으로 떨어진건지 오른건진 모르겠지만, 죽음에 대한 거부감이 많이 옅어지긴 했다.내가 죽는거든, 남이 죽는거든.
"저번에 썼던 그 마법은 더이상 안쓰는거야?"
"뭔 마법. 난 마법같은거 안쓰는데."
"저번에 3번광장에서 썼던 그거 있잖아."
"아, 그거."
머리에 꽃피우는 거. 그거 말하는건가.
"근데 그거 이런 골목 사이에서 잘못 썼다간 벽까지 허물어뜨려서 건물 붕괴할텐데."
"..."
"게다가 나 지금 눈 하나밖에 없어. 거리감각 개판이란말이야. 아마 그때 너도 내 앞으로 나가있었으면 그 사람들이랑 같이 머리 터졌을거야."
"...미친."
뒤에서 다 들으라는 듯 중얼거리는 말. 뭐, 딱히 틀린말은 아니지.
적당히 발 아래 흩어져있던 시체들을 보다가, 그대로 다시 자리를 옮긴다.
*
"...아, 드디어 찾았네."
그리고, 대략 반나절 가까이 이 썩어빠질 도시를 배회하며 던전을 돌고있던 도중, 드디어 가드 특유의 뱃지를 가슴팍에 달고다니는 남녀 한쌍을 발견했다. 그들이 서있던 곳은 도시 한가운데 괴상한 탑 모양의 오브젝트.
지들딴에는 제 24구역에서 최소한의 관리라도 한답시고 세워둔 곳인가본데, 처음 봤을땐 여기저기 스프레이로 칠해져있고 판자도 다 뜯겨나간 형태의 모습이라, 이미 버려진 줄 알고 그대로 지나쳤다.
애초에 누가 이런 건물을 사용한단 말인가. 세워놨으면 관리라도 해야지 이런 어두침침한 도시 안에서 썩어가고있게 만들다니. 무능한 탁상행정에 오늘도 머리를 부여잡는 루시였다. 가드만큼은 믿었는데! 정상이라고 봤는데!
하지만 뭐 어떤가. 모든게 완벽할 순 없지. 완벽한 선이란게 존재한다면 그것은 필시 여러 사람의 연극으로 만들어진 가짜이거나 정말 뼛속까지 미친놈이 만든 것일게 분명했다. 무뎌지지조차 않는 그 강인함이란 언제든 사람을 미치광이로 만들어버리기엔 충분한 차이니까.
그 외, 천재와 광인은 종이한장 차이라는 말도 있지 않는가. 뭐, 어차피 천재랑 광인은 똑같은거니 별 할말은 없긴 하다만.
"안녕하세요!"
조심스레 탑을 향해 다가간다.
내 손을 붙잡은 소피야의 손이 바들바들 떨리는게 피부로 다 전해져온다. 무섭다는건가. 사람을 거리낌없이 죽여대던 방금의 모습과는 꽤나 거리감이 느껴지는걸. 물론 그 인간들이 나쁜놈들이라 그렇게 거리낌없이 죽여댄 걸 수도 있지만, 아무튼.
"정지해라."
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밝게 웃으며 인사했건만, 저 위에 서있는 오빠 언니들은 그런거 신경도 안쓰나보다.잠시 여기를 내려보더니, 지들끼리 다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러고선 아래를 내려다보며 하는 말.
"지금 제 24구역에서 마피아들에게 의뢰는 받고있지 않는다. 뇌물을 주러 올 생각이라면 얼른 꺼지고, 의뢰를 주러올 생각이라도 그냥 꺼져라."
"저 그런거 아닌데요"
"...꼬맹이까지 데려오다니, 설마..."
"인신매매도 아니에요."
"...?"
백열등아래 어둡게 드리워진 역광이 두 남녀의 얼굴을 가린다. 잠시 저 위에서 들려오던 금속 마찰음. 곧이어 계단실에서 텅텅거리며 울리는 소리와 함께, 눈앞의 문이 벌컥 열렸다.
꽝!
"아으으..."
열리는 문에 너무 가까이 서있던 난 코가 빨개져 부여잡으며 끙끙대고있었고, 계단실에서 내려온 언니는 놀란 눈으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을 뿐이다.
"...그 피는 다 어디서 난거야?"
"제 거 아니에요."
반 쯤 섞여있긴 하지만. 잠시 눈을 크게 뜬 언니는 이내 머리를 정리하는 듯 싶더니 다시 말을 걸었다.
"꼬마야, 이름이 뭐니?"
"루시요."
"...루시?"
그 말에 움찔거리며 내 몸을 훑어보는 언니.
아마 저 언니 눈에는 상당히 노출도 있는 복장을 입고있는, 눈이랑 팔 한짝씩 없는 귀여운 여자애 한명만이 보일 것이다. 그렇게 봐봤자 딱히 얻을 수 있는것도 없을테고 말인데.
"...머리 하얀 여자애가, 여기서 얼마나 나왔더라?"
뒤이어 계단실에서 내려온 오빠에게 그 언니가 중얼거린다.
"...아마 5명정도 왔을텐데. 죄다 그 버러지들이 가드한테서 뭐라도 뽑아먹으려고 온거겠지."
"...음."
"뒤에 여성분은 뭐하시는 분인지?"
"...아. 전 소피야라고 합니다. 칼람쪽이긴 한데, 빠져나오려고 여기 온거에요."
"빠져나오려고 하는데 왜 여길 옵니까?"
"...아니..."
툭툭. 어깨를 치는 소피야의 손길이 느껴진다. 지금 이 상황에서 날 믿을 사람이 그렇게 많진 않은것같아 보이니 떼라도 쓸까.
알비나는 어딨냐며 최대한 귀여운 목소리로 말해본다. 우웩, 토할뻔했어. 물론 듣기만 하면 고막이 녹아내릴듯한 좋은 음성이긴 하다만, 그게 내가 가식적으로 내뱉은 말에서 나온 음성이라면 또 얘기가 달라지지. 앞의 두 사람들은 머리를 긁적이며 얘기한다.
"...알비나 걔는 지금 루시 찾으러 나간다고 나가서 벨피스랑 루테슘 잔당 조져놓느라 며칠째 안들어오는 중인데."
"제가 루시라니까요?"
"미안하지만, 벌써 루시라고 주장하면서 마피아들이 데려온 소녀만 여섯이야. 좋게좋게 넘어갈 수가 없잖냐."
아니, 더러눈 사칭새끼들. 가끔씩 길가다 공고판에 보였던 쪽지가 있었는데, 설마 그게 다 나를 찾는다던 종이지였나.
힘쎈놈이 뭐 하나 찾으려 한다니 벌레들이 드글드글 달라붙어 그걸로 뽕 하나 뽑아볼려고 아주 별 지랄을 다하는구나. 괜스레 짜증나지기 시작했다.
"그럼 알비나한테 연락이라도 해봐요. 제가 진짜라면 아마 오면 바로 알아차리지 않을까요?"
"저번에 네번째 사칭 찾아왔을때부터 이미 이쪽에선 손 뗀지 오래야. 자기가 직접 찾겠다고 나간게 일주일 전인데, 이번에 또 연락하면 퍽이나 받아주겠네."
"아, 아니. 그럼 그냥 연락망이라도 연결 해주시면 안될까요?"
"...하아..."
한숨을 쉬는 저 둘의 모습은 어느샌가 수척스럽게 보이기 시작한다. 하긴, 누구는 이러라하고 누구는 이러지 말라고 하는데 중간에 낀 사람들끼리 뭘 어쩔 수 있겠어.
결국 이 순박한 사람들은 내 청을 들어주기로 했나보다. 비척비척 마공학 무전기를 들어올리며 뭐라뭐라 말한다. 그러자 그 너머로 들려오는 엄청난 고함소리. 이번에도 구라면 그땐 정말로 죽인다느니 하는 살벌한 이야기가 오가고있었다.
마침내 대화가 끝났을땐, 무전기를 들고 대화를 이어나간 언니의 표정이 한층 더 죽상이 되어있었다.
"...이번엔 정말로 사실이길 빌어야지. 너 정말 스스로 장담할 수 있는거 맞겠지?"
"네. 물론..."
그때, 마음속을 비집고 들어오는 생각 하나. 어쩌면 내가 내가 아닐수도 있다는 그런 막연한 불안감. 지난 수 주간 계속해서 이어져온 그런 실없는 불안감.그 의문에 결국 난 말꼬리를 흐리고 고개를 늘어뜨린다.
"..이려나."
"이, 이런 십...!"
"아무튼 생물학적으론 알비나랑 만났을때의 루시 맞으니 걱정마세요."
"...하아..."
계속해서 가슴을 졸이는 두명의 용병들.
"뭐, 은발 녹안이라는 조건을 다 갖춘 여자애는 이번이 처음이니, 믿어보기로 할까..."
"괜찮아요."
아마도.
음, 그래. 그렇게 우리는 계단실을 따라 올라가 더러운 시궁창냄새를 풍기던 거리를 벗어나 상대적으로 아늑한 감시초소 위로 올라갈 수 있었다.
여기서, 조금만 기다려볼까. 날 위해 알비나가 그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지만. 설마 발벗고 직접 뛰어나서서 찾고 있었다니. 직접 만나면 쓰담쓰담이라도 해줘야겠다.
이번엔 사람 대 사람으로. 예전처럼 어른 대 아이가 아니라. 그저 어린애가 귀여움을 받듯이 행동했던 그때와는 다르게.
아니 그나저나, 사람 대 사람이라, 이거 맞나? 애매한데.
음, 그럼 여자 대 여자라고 하지, 뭐.
아, 아니. 이것도 틀리려나. 난 지금 분명 겉으로는 그냥 여성의 외형이다. 하지만 이걸 어째, 여자라고 정의할만한 기관은 이미 다 뜯겨나간지 오랜데. 심장만 빼고 전부 교체했는데 남아있을리가.
아무튼, 뭔 상관이야. 난 지금 인간이라는 종과 암컷이라는 카테고리를 벗어난 완전히 별개의 무언가일 뿐이란거지. 상당히 기분이 안좋아진다. 그래서 그냥 눈을 감고 알비나가 올때까지 기다리자는 심정으로 의자에 앉아 잠이 들었다.
*
"ㅡ루시?"
저 앞에 알비나가 서있다. 너무나도 수척해진 얼굴로. 내 왼팔에 머무는 두 눈동자의 시선.
똑, 똑, 문을 두드리듯이, 턱을 타고 방울방울 눈물이 흘러내린다. 안기려고 굴기에, 나도 손을 마주뻗어주었다. 아, 나 지금 팔 하나뿐이라 양손 다 벌리는 건 불가능하지.
알비나는 넘어질 듯 뛰어와 나를 꼭 끌어안는다.
아니, 끌어안다가 내 비어버린 왼팔을 보고 30분, 머리카락이 흐뜨러져 드러난 내 왼쪽 안와를 보고 난 뒤에 1시간을 펑펑 울어댔다.
반쯤 중얼거리듯 내뱉는 말은 귀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으니, 나도 그저 하나남은 팔로 알비나의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 줄 뿐이다.
가슴이 따뜻하게 젖어들어가는 이 기분, 최고다. 짱이야. 어쩌면 최근에 겪어본 감정중 그나마 긍정적으로 할만한 감정이 이것 뿐인 것 같다.
한참을 날 보다가 울기를 반복하다가, 뒤에서 서서 기다리고있는 한쌍의 남녀들을 보고서야 그제서야 몸을 추슬렀다.
그리고, 작별인사와 함께.
어쩌면 소피야도.
소피야는 나를 데려와준 것에 대한 감사를 담아 다행히 부탁을 들어주기로 했다. 물론 반쯤은 내 애청에 의한 것이었지만. 나에게 그랜절을 박아도 모자랄 소피야였다.
소피야는 그대로 제 24구역에 주둔하는 3번대에 남아있어도 될 터였지만, 본인이 나에대한 은혜를 갚는다고 끝까지 쫓아오기로 했다나보다. 괜찮다고 하며 뿌리치려 해도 정말 애걸복걸 울며 달려들어서, 나도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고.
드디어 제 1구역으로 돌아가는 트럭에, 알비나와 모르는 아저씨 한명, 소피야와 내가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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