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화 〉 1부 37. 한서우
* * *
"Zzz..."
숙소에서 자고있는 소피야의 옆에 조용히 서서 창가를 바라보는 중이다.
여전히 멍한 머리로.
ㅡ.
ㅡㅡ...
뭔가 들끓는 것 같지만, 여전히 이게 무엇인지는 알아내지 못한채.
"하아..."
응어리가 진 느낌이야. 답답한 감정인데 이게 뭔진 알 도리조차 없고, 지금 내가 뭔 생각을 하는지조차 모르겠으니.
그냥, 머리가 엄청 복잡하다.
이럴땐 보통 어떻게 하더라.
'...한숨 자면 나아지려나.'
하지만 잠은 이미 그 주점에서 충분히 자둬서 별로 오지조차 않는걸.
"..."
그러고보니 나 지금까지 몇시간 잔거지?
이것도 미스테리네.
아마 소피야가 자고있는 동안 앞에서 계속 기다렸던 거 보면 그렇게 오래잔 건 아닌게 아닐까.
근데 난 왜 그 피로가 다 풀렸다고 생각하고 있는건지.
'...여전히 알 수 조차 없는 몸이네.'
내 몸인데 나조차 제대로 몰라. 오히려 다른 놈들이 잘 알았으면 더 잘 알았지.
배를 만져본다.
소름끼칠정도로 차가운 감촉. 이게 정녕 생물이라고 말할 수 있는 상태인가.
정말로.
정말로, 뭔가가 끓고있는 느낌이야.
과거를 되짚어 보려고 할때마다, 원인불명의 이 두통이 찾아오는것도 그렇고. 아마 내가 환상속에 빠져있을때, 무슨 일이 일어난게 아닌가 싶다.
"...!!"
조용히 창가를 바라보고있자니, 다시 어디선가 소음이 들려온다.
아래의 거리를 내려다보니 사람 몇명이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중.
저 너머 블록에서는 총소리도 가끔씩 들려오고, 비명소리마저 들려오는 순간도 있다.
"개판이네."
확실히, 소피야의 말대로 정말 개판인 모습이다.
"...잠잠해지면 바로 이동할까."
소피야는 피곤하다는 듯 보였지만, 결국 여기서 이대로 있다간 다 죽어버리는 건 일도 아닐테니.
난 몰라도 이 사람은 목숨이 하나뿐이니 별 수 없어.
"...내가 왜이러는거지."
죽이고, 살리고. 분노하다가 상냥하게. 상충된 감정이 나타난다. 마치, 내가 내가 아닌것처럼.
나는 이대로 생각하고있는데, 뭐가 내가 아니란거야.
뒤섞이고 파탄난 파편들을 모아 어설프게 이어붙이면 대체 뭐가 만들어지는걸까?
그건 여전히 원래의 그것으로 볼 수 있는가?
내가 아닌것과, 나인 것이 합쳐져 만들어진 것.
"...머리아파."
생각하기엔, 그냥 너무 피곤해.
아마, 지금까지 계속해서 정상적으로 사고하고 모든걸 있는 그대로 마주했더라면 난 이미 오래전에 미치지 않았을까?
'지금도 정상적이라고 볼 순 없으려나...'
난 지금 생각한다.
지금 '나'인 상태로.
자기 자신을 미쳤다고 정의할 수 있는 사람은 정상인 사람 뿐이다.
모든건 상대적이고, 자기 자신이 미쳤다고 한 사람은 자신이 미쳤는데도 본인의 상태를 알 수 있는 상호모순적인 기이한 상태가 되어버리니.
"끄응..."
내가 말해놓고도 뭔말인지 모르겠네.
요즘 묘하게 혼잣말도 늘어난 것 같고, 감정도 오락가락 하는 것 같으니, 아마 난 미친게 분명해.
...적어도 난 내가 미친걸 알고 있으니 미친년은 아니다.
...난 미친놈은 아니야.
'하아...'
될대로 되라지.
귀찮아.
더는.
ㅡ
ㅡ
아.
집가고싶어.
*
"졸려..."
"...일어나, 빨리."
"으으으..."
"..."
짝!
뺨싸다구를 한번 후려쳐준다.
아프지도 않다는 듯 그냥 그대로 돌아서 자버리는 소피야.
그냥 침대에서 굴려 떨어뜨려버렸다.
"아으윽... 자꾸 왜그러는데..."
"그냥 불안해서. 빨리 따라나와."
"...넌 진짜..."
"...?"
다시 한번 내 모습을 본 소피야는, 결국 그대로 눈을 다른곳으로 치워버린다.
"손 잘잡아. 떨어지면 안되니까."
"왜 이렇게까지 하는건데?"
"응?"
갑자기 뭔소리야 이건.
"내가 너한테 해준것도 없는데, 왜 이렇게까지 해주는거야?"
"뭘 어떻게 해줬는데?"
"...아니, 됐다..."
아까부터 자꾸 눈을 못마주치는 소피야.
...하긴, 지금 나랑 눈 제대로 마주칠 사람이 별로 없긴 하지.
다들 뻥 뚫린 왼쪽 눈구멍을 보고선 기겁해서 도망칠테니.
슥
그래서, 앞머리를 살짝 왼쪽으로 모아 핀으로 고정시켰다.
언뜻언뜻 텅 비어버린 안와가 보이긴 하지만, 그래도 대놓고 불쾌감을 느끼진 않을 수준.
왼팔쪽 소매가 헐렁거리는것도 적당히 의수하나 달아주면 해결될 일 일수도.
"발 조심해."
벨트를 다시 두르고, 건물을 나섰다.
*
탕! 탕탕!
거리 여기저기서 총성이 들려온다.
소리를 들어보아 상당히 먼 거리인 듯 하지만, 그런 소리 자체가 아마 정상적인 사람한텐 심리적 공포를 넣어주기엔 충분했을거다.
거리 여기저기 치워진 시체들은 어느새 배경처럼 자리잡아 자연스럽게 어우러져간다.
"...적어도 어디에 있을지는 단서라도 찾고가는게 어때?"
오른손을 붙잡은 소피야가 뒤에서 중얼거리는 말.
"너도 가드니까 보통 의뢰받고 온 용병들이 어디서 활동하는지는 잘 알거 아냐?"
"나 여기 와본적은 이번이 합해서 두번이라니까."
"...에휴..."
하지만, 저것도 틀린 말은 아니지.
최소한의 단서라. 적어도 이건 확실히 짚고 넘어가자.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상황에서 가드를 끌어들일 세력이 있으려나?"
"뒷수습으로 적당히 몇명정도라도 두고갔을수도 있지."
"잔당처리팀을 따로 찾아야하나..."
가드에 의해 거대 마피아 세력 두개가 통째로 증발해버렸는데, 누가 다시 가드를 끌어들이는 미친짓을 한단 말인가.
가드는 대외적으론 중립정책을 내세우고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눈앞에서 벌어진 일은 마음속에 불신을 심어주기엔 충분하다.
"벨피스랑 루테슘 세력 관련 시설은 다 알고있어?"
"...당연하지. 거기 거치지 않고선 작은 갱단들은 활동하는 것 조차 거의 불가능할 걸?"
"대부분의 갱단이 다 둘중 한곳이랑은 협력관계였다는거구나."
"그렇지."
실마리가 잡힌다.
"그럼, 최대한 은밀한 시설. 깊숙한 곳에 있는 시설 하나만 대봐."
"...어?"
"아마, 잔당들이라면 그런 깊숙한곳에 숨어서 싸움이 다 끝나거나 가드들이 물러날 때까지 거기서 숨어지내겠지.
게다가 거대 마피아 세력이라면 원한도 많았을 것 같은데, 이런 상황에서 바깥에서 대놓고 활동한다는 건 말도 안되고 말이야."
"아, 그렇네."
"심지어 조직의 기반을 담당하는 최중요 시설이 그렇게 눈에띄는 곳에 있을 것 같지도 않고. 맞지?"
"그럴싸하네..."
"안내해."
"..."
물론 그곳에 가드가 있으리란 건 보장할 수 없으니, 적어도 전투는 각오해야겠어.
"가장 최근에 가드들이 왔다간 곳 근처로."
"알겠어..."
소피야의 손에 이끌려 다시 거리로 돌아갔다.
*
푸스슷!
눈앞에 선 남성의 몸에 손을 갖다대자 신체가 증발한다.
그대로 다시 적막으로 휩싸인 골목.
조명조차 들어오지 않아 어두침침하고, 주변엔 쓰레기통이 널려 악취를 듬뿍 풍기는 폐퇴적인 분위기의 골목이다.
소피야의 말에 따르면 저 깊숙한곳에 도박장 하나가 있다는데, 진위여부는 불명. 애초에 왜 이딴곳에 도박장을 만들어두는거야.
이 점을 물어보니 형태만 도박장일 뿐 실상은 마수들의 시체를 마약으로 가공하는 공장과 비슷한 공간이라고 한다. 그 덕에, 그곳엔 잡버러지들이 꽤나 많이 몰려있었고, 계속해서 벌레들이 기어나와 짜증나게 하는 중.
"루, 루시..."
"왜."
"너, 너..."
소피야가 떨리는 손가락으로 가르킨 곳을 보자 보인것은, 옆구리를 길게 관통하고 벽에 박혀있는 창 하나.
"아."
대충 뽑아서 저 구석으로 멀리 던져버린다.
"지혈! 지혈해야지!"
"신경꺼."
"아니... 그 정도 상처라면..."
"걱정해주는거야?"
"..."
얼굴이 갑자기 팍 일그러졌지만, 그래도 그 특유의 표정은 그대로 남아있다.
...상당히 기분 좋아.
가슴이 따뜻해지는 기분.
음, 오랜만에 느껴본 감정이네.
"여긴 가드는 없는 것 같으니, 그냥 다른곳으로 가볼까."
"루시, 붕대... 붕대라도..."
"신경쓰지말라니까."
"아니, 나때문에 그런건데 어떻게 신경을 안써...!"
그대로 걸음을 옮기려 했지만, 강하게 뒤로 잡아당기는 힘이 느껴졌다. 뒤를 돌아보자 보이는 건 죄책감을 머금은 표정으로 무릎을 꿇고 나와 시선을 맞춘 소피야.
"..."
음.
뭔가, 끓어오르는 감정.
ㅡ이건, 무슨 감정이지.
"너 이대로라면 진짜 죽어..."
"안죽는대도."
"안죽어도, 그냥... 그냥 여기서 조금만 쉬다가면 안될까?"
애절하게 외치는 말.
...이런 성격으로 소피야는 대체 어떻게 마피아가 될 생각을 한걸까.
계속해서 손을 붙잡고 흔드는 모습에, 괜스레 기분이 좋아진다.
그래서 그냥 지금은 소피야의 말대로 벽에 기대어 쉬어가기로 했다.
앞에 주저앉아 걱정스럽다는 눈길로 날 바라보는 소피야. 그 표정을 유심히 살펴본다.
그러자,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하나의 기억.
ㅡ아마 친구들과 놀이공원을 갔던 기억.
또다른 기억이 떠오른다. 화연이가 나를 바라볼때마다 지었던 표정.
또다른 기억이 떠오른다. 내가 마수의 등에 올라타기 전 서우가 지었던 표정.
ㅡ아.
지금 느끼는 감정이, 어떤 감정인지 깨달은 것 같아.
아마 이건, 사랑받고있다는 감정.
그래. 이건 사랑받고 있다는 감정이다.
꽤나 오랜만에 느껴본 감정이네.
기분 좋다. 따뜻해.
뭔가 마음속이 깨끗해져가는 느낌이야. 중독될 것 같아.
"...어..."
생각에 빠져있던 그때, 소피야가 앞에서 흘리는 음성에 정신을 차렸다.
소피야의 시선을 따라 뚫렸던 배로 한번 시선을 옮겨본다.
꽤나 아문 모습. 이젠 피가 흘러나오지 않는다.
안도하는 표정을 짓는 소피야에게, 문득 호기심이 들어 질문했다.
"...넌 왜 이런 일을 하게 된거야?"
"응?"
"성격보면 그런거 전혀 못할 것 처럼 보여서."
"...너도 그렇게 말하는거냐..."
"응?"
"내 오빠도 그렇게 말하더니만."
"..."
건드리면 안될 곳을 건드린 것 같네. 살짝 불안감이 몰려온다.
하지만 딱히 달라진 기색은 없이, 그대로 말을 이어가는 소피야.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한다.
"뭐, 살려고 그랬던거지. 이런곳에서 어린 남매들끼리 뭘 할 수 있었겠어."
"...하긴."
연구소에서 탈출하고 이 땅에 처음 발을 내딛었을 적이 떠오른다.
아마 두달새에 10번가까이 죽은 것 같은데.
음.
'...'
몰라, 이젠 죽는건 일도 아니네.
"...뭐, 재미없는 이야기야. 딱히 신념도 뭣도 없이 그냥 살아남으려고 선택한거니깐."
그대로 담담히 이야기를 이어가는 소피야의 모습.
오빠의 죽음부터, 깎여나가는 자신을 보며 저주했던 경험까지. 모두 숨김없이 말해준다.
생명을 소중하게 여긴다는 가식적인 표현따윈 이미 오래전에 집어치웠으니, 자신도 이젠 그냥 저들과 같은 쓰레기일 뿐이라는 말이 나왔을땐 꽤나 인상깊었다.
이런곳에서 평생을 자라온 사람도 생명이 소중하다는 인식을 한때나마 품었을 수도 있구나.바깥과는 전혀 다른 상식과 경험을 쌓아가며 살아왔을지라도.
어째선지 동정심이 든다.
"...이사람이고 저사람이고, 사연이 어째 다 비슷비슷하네."
물론, 딱히 재밌지도 감동적이지도 않았으니. 신파극으로서는 실격이야.
휴먼스토리로 라면 걸작일수도.
ㅡ지금 나한테 권총이라도 있으면 좋을텐데.
그대로 울다 지쳐 잠든 소피야를 벽에 기대어 눕혀두고선, 나도 잠시 눈을 붙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