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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해주세요, 마수님!-40화 (40/162)

〈 40화 〉 1부 36. 이것마저 희극

* * *

"지난 이주동안, 가드들이 미쳐 날뛰었어. 말그대로."

조용히 이야기를 시작한다.

"무슨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갑자기 상부의 명령이라면서 벨피스랑 루테슘 전부다 족치기 시작하더라."

...어째 전부 익숙한 이름이지만, 일단은 무시하자.

"장관이었지. 원래 제 24구역이 통행이 많긴 해도 그때만큼 많았던 적은 없었는데 말이야.

트럭들이 바깥에서 빼곡하게 들어왔다가 빠져나가고, 트럭들이 들어올때마다 도시 내에선 대규모의 전투가 벌어지고... 일주일간 완전 개판이었어."

"그러다가, 결국엔 끝난거지. 벨피스랑 루테슘 둘 다.

아예 그냥 전멸해버렸어. 씨조차 안남기고 싹싹 털어갔다니깐?"

"아직도 가드가 왜 이런 짓을 했는진 모르겠지만... 덕분에 제 24구역은 개판이 됐지."

"벨피스랑 루테슘이 사라졌는데 왜 제 24구역이 개판이 돼요?"

"그 둘이... 음... 뭐라고 해야하나. 대재앙 이전의 중국이랑 미국의 관계랑 비슷하다고 보면 돼."

"강대국들?"

"그래. 그렇지. 그 둘의 팽팽한 대립덕분에, 제 24구역은 외줄 위에 서있는 신세였지만, 그래도 무너지지않고 어느정도는 잘 돌아갔단말이야. 그런데 그 사이에 갑자기 가드라는 괴물이 툭 떨어진거지.

비유하자면 대재앙 사태랑 비슷한거야."

"...그런건가?"

"그래. 아무튼, 그렇게 두 강대국들이 아예 지도상에서 소멸해버렸지. 그럼 이제 남은건 뭘 것 같아?"

"..."

"'붕괴후 혼란기'. 이게 지금의 상태야."

말 그대로, 지금 제 24구역은 무정부 상태가 됐다는거구나.

이어지는 말을 들어보니 두 강대 세력이 사라진 덕에 이후의 패권을 차지하려고 여러 잡 갱단들끼리의 싸움이 하루에도 수십번씩은 일어난다고 한다.

심한날은 하루에 세자릿수까지 올라가는 일도 있다고 하는데...

덕분에 지금 밖에 싸돌아다니는 행위란 자살행위나 마찬가지. 게다가 본인도 갱단에 소속되어있으니 무사히 빠져나가기는 글렀단 것이다.

"가드는 날 빼내줄 수 있겠지? 응? 갱단으로부터 공격받지는 않을거 아냐?"

"...아마, 그렇겠죠..."

"나좀 빼내줘! 제발! 나 여기서 살아나가고싶어!"

"...이름이 뭐에요."

"소피야! 소피야 이바노브나!"

"...부칭이 있네?"

"당연하지. 고아는 아니거든?"

"말하는 꼴 보고 고아인 줄 알았는데..."

"아, 아니... 그건..."

"목숨을 구걸해야 할 상대한테 그렇게 나왔다는 것 자체가... 이미 나가리라는 거잖아."

"아니, 잠깐...!"

그대로 몸을 돌린다.

반응이 재밌어. 뭔가 가슴속에서 꿈틀거리는 느낌이다.

...

그러자 뒤에서 들려오는 절규.

"아 제발! 내가 잘못했어! 자꾸 무시하니까 짜증나서 그런거야! 미안해!"

"..."

"제발, 나좀 여기서 빼내주면 안될까? 나 살고싶어..."

"...엎드려."

"...응?"

"엎드려봐. 살고싶으면."

"..."

방금의 말을 들은소피야의 표정이 괴상하게 일그러진다.

저건... 무슨 감정일까.

공감이 안되니 도저히 무슨 감정을 가지고있는지 알 도리가 없다.

잠시 그렇게 고민하던 소피야는 이내 바닥에 엎드렸다.

"돼...됐어?"

"핥아."

"뭐?!"

"핥으라고."

발을 들이댄다.

더욱더 험악하게 일그러지는 표정.

물론, 당연히 농담이지만. 그냥 놀려먹는게 너무 재밌다. 어차피 가드한텐 데려다줄거고 말이야.

죽는다는데 뭐 어떡해. 눈앞에 이런 사람이 있는데 그냥 무시하고 지나가?

짜증나도 일단은 양심에 찔리니 어쩔 수 없네.

"아, 씨발..."

"목숨보다 체면이 더 중요해? 응, 소피야?"

"...씨이...발..."

"빨리 해봐."

"...지랄하지 마! 안해!"

"정말로? 그냥 이대로 죽을거야?"

"할 수 있는걸 시켜야지, 뭔 개 염병을...!"

"그럼, 혼자서 수고해봐."

"아, 아니..."

"..."

"핥, 핥을게요..."

진짜로 혀를 빼밀었다.

곧이어 눈을 질끈 감고, 내 발을 향해 얼굴을 들이민다.

결국 그 모습에, 웃음이 새어나오고 말았다.

"풉ㅡ"

"...?"

"진짜로 핥으려고 했어?"

"뭐..."

"농담인데."

"...!"

얼굴이 완전히 썩어들어간다.

재밌어. 왜 사람들이 괴롭히는 걸 좋아하는지 알겠네.

나도 저런 반응을 보였던가.

그래서, 다들 그렇게 괴롭히는 걸 좋아했던건가?

모르겠네.

지금이라면 이해가 갈 수도.

ㅡ아니, 이런게 아닌데.

몰라. 그냥 재밌어.

'...'

'...'

어쩐지 멍한 머리를 뒤로, 다시 소피야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럼... 애초에 처음부터 넌... 날 살려줄 생각이 없었던거구나!"

"후흐흐흐..."

"이, 이 나쁜년이..."

"애초부터 살려주려고 했으니까, 그냥 장난좀 쳐본건데 뭐 어때?"

"내가 너라도 죽이고... 어, 어...?!"

"못들었어?"

"정말로 살려준다고?"

"거짓말같아?"

"...아, 아니..."

"...그럼, 뭐... 그냥 따라나와. 최대한 빨리 돌아가고싶으니까."

"..."

뒤에서 죽상을 짓는 소피야.

할아버지를 바라보며 손을 흔들어준다.

"감사했습니다­ 나중에 또 올게요!"

"..."

"...왜 그러세요?"

"넌 왜 그렇게 변화가 극단적인거냐..."

"네...?"

"아니, 아니다..."

이상한 할아버지야.

그대로 소피야의 손을 잡아끌고 침침한 뒷골목으로 발을 옮겼다.

­"다 너덜너덜해져서 죽어가던 꼬맹이가..."

뒤에서 들려오는 할아버지의 중얼거림은 듣지 못한 채로.

*

"루시 넌 지금 복장 부끄럽지도 않아?"

"응?"

"다 썩어가는 모포잖아. 지금 악취 엄청 심해."

"응? 아니야!"

모포를 훌러덩 벗어 내 팔의 냄새를 맡게 해준다.

"피부는 냄새 좋은데?"

"야, 야 이 미친년아 뭐하는거야...! 빨리 옷 입어!"

"왜? 문제 있어?"

"아니, 아무리 사람이 없다고 해도 그렇지, 길 한복판에서 그렇게 옷을 훌러덩 벗으면...!"

"뭐 어때. 내 몸도 아닌데."

"...?"

"아, 아니. 됐다. 그나저나 그건 왜?"

"응?"

"내 냄새 어쩌구 하면서 욕했잖아."

"아니...숙소라도 들러서 목욕이라도 시키고 갈까 했었는데... 이제보니 그냥 옷 문제였네."

"그렇지?"

다시 모포를 뒤집어쓴다.

"...아무리 생각해도 안되겠어. 너 그냥 새로 옷 한벌 가져가라."

"지금 목숨이 달려있는데 무슨 소리 하는거야. 이런 상황에서 옷?"

"어차피 그냥 대충 너한테 맞춰서 재단만 하면 되니까 괜찮아. 금방 끝나."

"오히려 악취가 이런곳에서 더 자연스럽게 스며들어갈 것 같은데. 라벤더향은 너무 확 띄지 않아?"

"내가 안괜찮아. 게다가 가드 건드릴 간 큰 놈이 이런곳에 있을 리도 없고 말이야."

"어린애라고 그냥 공격할 수도 있지."

"그런가."

"뭐, 어차피 오는 사람들은 다 죽일거지만 말이야."

"...뭐?"

"아니, 됐다. 그냥 가자."

"어디로?"

"옷 맞춰준다며?"

"...아, 그렇지. 근데 너 서둘러야한다고 하지 않았어?"

"그건 필수적인게 아니라 선택적인거지. 그냥 내가 빨리 돌아가고싶어서 서두르려는거니 말이야."

"...그래?"

"응. 하룻밤정도는 그냥 대충 떼워도 되겠지."

"...그, 그래. 그럼 뭐."

그 후로 안내원과 방문객의 입장이 역전된 우리는, 그대로 알 수 없는 길을 따라 한참을 걸어갔다.

"..."

아까부터 뭔가 묘하게 위화감이 느껴지는데.

몰라.

몰라.

생각하기 귀찮아.

*

"예쁘네."

"그런가?"

건물을 나서기 전, 복장을 다시한번 점검해본다.

대충 소피야가 입고있는 복장의 축소버전.

티셔츠에 털자켓 입은걸 가슴 밑부분까지 잘라냈다고 보면 된다.

좀 더 정확하게 설명하자면.

명치까지 올라오는 상의에, 짧은 청반바지. 상의는 전체적으로 검은색의 계열이고, 붉은색으로 문양이 새겨져 있다. 자켓 후드부분과 소매, 밑부분은 모두 새하얀 털로 덮여있었다.

하의는 푸른색의 통이 큰 짧은 청반바지. 사이즈가 살짝 커서 벨트를 맸음에도 살짝 흘러내린다.

"...어."

검은색과 흰색의 대비라. 소피야가 입었을 땐 잘 몰랐지만, 상당히 튀는 복장이었다. 어쩌면 이런 생김새에 이런 옷이라 더 튀는 걸 수도.

명치부터 골반까지 훤히 드러나는 옷이었으니. 노출도가 너무 높았다.

그래도 간편하고 활동성도 좋아. 나중에 배에 칼침박힌다 해도 찢어질 옷도 없고.

게다가 어째선지 라인도 잘 잡혀서 꽤나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음, 아무래도 어린애가 입기엔 좀 그런가."

"어린애라니, 너 19살이라며."

"...생긴게 이상하지 않나."

"어린애가 무슨 너같은 라인을 가지고있냐. 적당히 어울리니까 신경 꺼도 돼. 안어색해."

"...그런가."

남자가 이런 옷 입은 모습도 상상해본다.

잘 생각해보니 복근 과시용 복장으로도 딱히 위화감은 없었다.

물론 지금까지 후드티에 츄리닝같은 온몸을 꽉 싸매는 복장만 입었던 나에겐 상당히 생소한 감각이긴 하지만.

본능적으로 노출은 꺼린다는게 다칠때마다 새로 옷을 구해입어야 한다는 귀찮음보단 적었던 것 같다.

좋아, 어찌됐든 이걸로 복장은 해결 완료.

그대로 소피야의 손을 이끌고 문 밖으로 나섰다.

*

"여기로 가는거 맞아?"

"응?"

"여기로 가면 가드 나오는거 맞냐고."

"나도 모르는데."

"...뭐?"

"사실 나도 가드 어딨는지 몰라."

"허..."

"그냥 대충 돌아다니다보면 의뢰받고 나와있는 가드들 몇명 마주치지 않을까?"

"제 24구역에서 아무리 의뢰가 많이 들어온다고 해도, 그렇게 막연하게 그냥 돌아다니는 건..."

"소피야 넌 가드 어딨는지 알아?"

"어?"

가던길을 멈추고 소피야를 올려다본다.

눈에 띄게 당황하는 모습.

"넌 가드가 어딨는지 알고있으니까 그런 말 하는거 아니야?"

"아, 아니..."

"모르면 그냥 조용히 하고 있어봐. 알아서 찾아볼게."

"아니 ㅆ..."

뒤에서 다시 꼬맹이 싸가지 어쩌고 하는 소리가 들려오지만, 그냥 무시해준다.

내가 이런거 하나하나에 휘둘릴 꼬맹이도 아니고 말이야.

그런 고통들도 다 겪어왔는데ㅡ

"...?"

"갑자기 왜그러냐."

"...아니, 그냥."

"..."

"그냥 따라와. 어차피 따로 대책도 없으니까. 넌 그냥 습격 안당하고 살아남기만 하면 되는거 아냐?"

"아, 그렇지. 응."

"그럼 그냥 붙어다니기만 해도 돼."

"..."

영 못미덥다는 눈치네.

뭐, 알아서 보여주면 되겠지.

그 날 오후는 계속해서 거리를 돌아다녔다.

*

"루시, 그만... 이제 그만좀..."

"나 혼자 돌아다니다가 만나면 어쩌려고. 그땐 그냥 나 혼자 가버릴건데."

"아, 아니...허억..."

"농담이야."

"이, 이... 미친년 진짜..."

어느새 밤에 감싸여 네온사인만이 번쩍이는 거리를 바라본다.

사람은 여전히 뜸한 상태.

...지금 밖에서 싸돌아다니는 건 자살행위라고 했었지.

괜히 머릿속에서 되새겨진다.

다시 거리를 걸어다닌다.

*

"아, 아...!"

코너를 돌아 나온 광장에, 웬 무리가 모여있다. 대략 수십명. 복장이 하나로 통일돼있는 모습을 보아 하나의 조직인 듯 하다.

"...?"

애처롭게도, 우리는 그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으며 골목에서 빠져나온거고.

"...저 복장...저거 칼람놈들이잖아...!"

...난 아닌데.

결국, 그 사람들은 각자 품에서 총 한자루씩을 꺼내든다.

그 중에 소총도 있고, 기관단총도 있고...

권총으로만 싸우던 영화와 비교해보면 상당히 살벌한 느와르물인걸.

괜스레 이곳이 어딘지 깨닫게 된다.

"죽, 죽을거야...!"

소피야가 내 손을 뿌리치고 저 멀리 도망가려고 한다.

...아직도 내가 그렇게 못미덥나.

이래뵈도 나름 사람을ㅡ

"..."

"...?"

"..."

됐어.

머리아파.

­파바밧ㅡ

"어, 어...?"

"이, 이거 뭐야!"

"누가 이거 머리에서 좀 떨어뜨려봐!"

"저 꼬맹이가...!"

내 손짓 한번에, 공터에 파동이 퍼지며 눈앞에 있는 남녀들의 머리에 거대한 검붉은 구체가 피어오른다.

엑스트라들답게 엑스트라다운 말을 내뱉는 버러지들.

조용히 그 아름다운 광경을 음미하다가, 모아둔 손가락을 활짝 펼치는 제스쳐를 취했다.

그러자.

­파스슷

일제히 꽃처럼 피어오르며 사라지는 구체들.

­푸화아아악!

...그 사람들의 머리와 함께.

"...!"

꼭 잡은 소피야의 손이 바들바들 떨리는게 보인다.

얼굴을 올려다보니, 경악스럽다는 표정으로 저 광장을 바라보는 중.

광장에선 목을 잃은 시체들이 나풀나풀 핏줄기를 흩날리며 허물어져가고 있을 뿐이다.

광장은 온통 피로 물들기 시작했다.

"...흐음."

다시한번 웃음을 지어보이며, 그대로 소피야와 함께 자리를 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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