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화 〉 1부 35. ?
* * *
죽는다는것이 무슨 일인지 깨닫는다는 것.
상당히 소름끼치는 일이다.
때는 돌리고 돌려져, 저 먼 옛날 내가 광대 하나에게 심장을 뽑히던 그때로.
눈앞에선 피가 분수처럼 쏟아져나오고, 가슴에선 엄청난 격통이 느껴진다.
극한으로 치달은 통증은 차라리 쇼크사하길 빌 정도로 처참해진 상태.
이 세계에 와서 눈앞에서 마법이 날뛰던 상황보다 가장 비현실적이던게 바로 그런 상황이었다.
ㅡ내가 곧, 죽는다는 상황.
분명 이정도 상처라면 죽는다는 걸 확신하고 있지만, 마음속으로는 부정한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생겼던 상처란 모두 언젠가 나을 상처들이었고, 실제로도 자연스럽게 모두 나았으니.
결정적으로, 지금 의식이 이렇게 멀쩡하게 살아있는데 누가 죽는다는걸 받아들인다는 말인가.
하지만 전신에서 힘이 빠지기 시작하는 그 순간 갑자기 덜컥 겁을 집어먹는다.
온몸에서 열이 나는 것 같지만 주위에서는 소름끼치는 추위가 느껴지고,마치 가위에라도 걸린 것 마냥 뜻대로 움직이질 않는 몸.
무엇보다 점점 둔해져가는 머리, 잠들어가는 뇌의 감각을 느끼고선 이내 극한의 공포가 몰려오기 시작한다. 눈꺼풀이 무거워지고, 시야가 흐릿해진다.
분명 난 지금 이렇게 살아서 세상을 보고있지만, 얼마 후면 완전히 이별이라는 사실이. 영원히 완전한 암흑에 갇히게 된다는 사실이 정상적인 사고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천천히, 그러나 자연사나 병사보다는 빨리. 마음의 준비를 할 틈도 없이.
죽어가는 틈에 사고를 할 수 있는 것이란 이렇게 가혹하다.
무슨 처치를 할 새도 없이, 허물어져 가는 자신의 몸을 바라보는것은ㅡ
그저, 무섭고, 슬프고, 억울하고.
그런 감정이다.
의문에서, 공포로. 그 이후에 현실부정. 마지막에는 절망.
ㅡ결국.
모든 인간은 최후에 절망을 느낀다.
모든 인간은 태어난 순간부터 절망을 향해 걸어간다.
그것이, 절망에 익숙해져가는 과정. 우리가 '인생'이라고 부르는 것.
...아무튼, 그렇다고.
***
"ㅡ크학."
거친 숨을 내뱉는다.
"...으윽..."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는 사지.
다리를 움직이려 해도 그저 바들바들 떨릴 뿐이고, 입에 고이는 침조차 제대로 제어가 되지 않는다.
당연한거겠지. 애초에 루시와 크로체의 전투여파로 이미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몸인데, 떼거지로 쏟아지는 마수의 공격을 버티려니 제대로 남아날리가 없지.
몸을 추스르며 주변을 둘러본다.
새하얀 눈밭을 어느샌가 한가득 채워버린 검은색의 불쾌한 덩어리들. 시야에 닿는 곳마다 모두 마수의 시체들이 쌓여있다.
하지만 마수들은 아직도 빼곡히 몰려 이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상태.
...아마, 여기서 더이상 빠져나가는 건 불가능할 터.
결국 연구자들이 원하는 바에 따라, 이곳에 고립된거다.
저 앞에 홀로 고고하게 서있는 연구자.
마수들의 시체 위에서 정신을 못차리는 날 가만히 내려다보고있다.
"...오메가, 의문스럽다는 표정이군."
고요한 검은 평원위에 나지막히 울려퍼지는 말.
"...물론, 당연히 답해줄 생각은 없지."
"...놀리는거냐?"
"하지만, 솔직히 이 사실은 알려줘도 별달리 너희들이 할 수 있는 일도 없을 것 같군."
"뭐...?"
연구자가 얼굴에 무기질적인 미소를 품는다.
"궁금한가?"
"...나가죽어."
"호오..."
"그딴거 안들어도 되니까, 그냥 여기서 죽이라고 망할자식아."
"하지만, 말해주고싶어서 입이 근질거려. 미치겠군."
"..."
"뭐, 그냥 말해주도록 하지. 안다고 해도 이건 그저 불가항력적인 '사실'의 나열일 뿐이니."
"하..."
"오메가 너는, 연구자들에 대해 어디까지 알고있지?"
갑자기 이상한 소리를 하는 연구자.
"오메가 네가 연구자들에 대해 아는 사실이라봤자 크로체 그년이 해준 이야기밖엔 없겠군. 딱 연구실에 잠입한 스파이들이나 알 법한 수준낮은 정보들."
"..."
"하나 이야기해주지. 연구자들 가운데에서 실제로 존재하던 인물은 모두 합해 30인 뿐이다."
...?
"...뭐? 그게 뭔 개소리야."
"말 그대로다. 연구자들 가운데 실제로 존재하던 사람들은 모두 30명 뿐이다."
거짓말인가?
눈앞의 여성이 머금은 표정을 살펴본다.
허나 그저 무기질적인 조소만이 보일 뿐.
'저게 뭔 개소리야.'
방금 연구자가 뱉은 말은 너무나도 비현실적인 말이었다.
애초에 밖에서조차 추산한 연구자들의 규모가 전부 합해 5000명정도로 보았건만, 고작 30명의 인원만으로 집단이 돌아간다니.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야?
하지만, 일전에 눈앞에서 터져나간 그 연구자가 떠오르는것은, 내 마음속에 의심의 싹을 틔우기엔 충분한 기억이었다.
제 3부지 양산체 공장에서 탈출하려던 그때의 광경으로, 기억을 돌려본다.
눈앞에 손을 잡은 크로체의 얼굴이 보인다. 이미 성인이었던 그때와, 비슷한 키높이.
...지금 원하는 기억은 이런 기억이 아니야.
부정하고, 뉴런을 태워간다.
혼탁한 의식 속에서 뇌를 쥐어짜내 겨우 기억을 떠올렸다.
'양산체 생산공정..."
"...클론."
"잘 아는군. 하긴, 너도 눈앞에 가득한 그 배양기들을 봤을테니."
"자기 자신을 복제해서...충실한 종으로 부리고 있다는건가."
"그들의 의식은 애초에 우리와 하나다만, 대체 무슨소리인가. 종이라니."
"미친새끼들."
결국 욕짓거리를 내뱉는다.
아무리 생각해도, 5000명이 넘어가는 규모라면 적어도 30명 각자 한명씩 클론 200개씩은 만들었다는 거 아닌가.
이쯤 되면 이건 그냥 미친놈들이다.
...이미 알고 있었지만.
"재밌지않나? 고작 30명에 의해 세상이 이정도로 뒤집혔다는게."
"..."
"뭐,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르지. 인류란 그저 처음부터 꼭두각시에 불과했던..."
"너희들은 미쳤어."
"미친건 우리가 아니라 너희들이다."
"미친새끼들."
"..."
대화는 끊겼다.
다시 적막한 바람소리만이 나도는 평원.
"...오랜 시간이 걸렸어."
"..."
"다시, 되찾을 시간이다."
눈앞의 연구자가 뻗는 손에 시야가 가려지며, 이내 생각은 끝이났다.
***Side 루시
"으으으..."
눈을 조심스레 뜬다. 물론 오른쪽 눈만.
여전히 적응 안된다.
머리는 조금 깨끗해진 것 같네.
"아..."
그러다가 떠오른 방금 꾼 그 악몽의 내용에, 서둘러 왼팔을 뻗어 가슴부근을 만져보려고 했다.
하지만 모포를 비집고 튀어나온건, 끔찍할정도로 너덜거리는 왼팔의 흔적.
피가 말라붙은 뼈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
괜스레 무안해져서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봤다.
그러다가 마주친 두 눈.
"...?"
잠들기 전 옆에서 알짱댔던 그 여자가, 여전히 저 앞에 앉아 날 바라보고있다.
"...뭐해?"
"아, 일어났냐."
그녀는 서둘러 고개를 들다가 튀어나온 내 왼팔(이었던 것)을 잠시 보더니, 이내 확 시선을 돌려버렸다.
"...루시."
"응?"
"너 지금 몇살이냐?"
...저건 갑자기 왜 묻는거야.
내가 지금 몇살이냐니.
정확하진 않지만, 만약 내 기억이 확실하다면...
"...19살."
"허? 진짜?"
"네."
애매하긴 해도, 적어도 19살이라는 건 확실하니까. 어쩌면 1년이 이미 지나버려서 성인이 됐을 수도 있겠다.
...여기선 하등 쓸모없는 법령들 뿐이지만.
"그런데 키는 왜그렇게 작아?"
"...아니, 씨발."
그러다가 들려온 그 콤플렉스적인 발언에, 급격히 화가 치밀었다.
누가 이렇게 작아지고 싶어서 작아진 줄 아나.
내 욕짓거리를 들은 그 여자는 놀라며 고개를 돌려 내 얼굴을 바라본다.
"너 방금 뭐라고..."
"아까부터 나한테 자꾸 왜그래요."
"하...애새끼 싸가지 진짜..."
남 싸가지타령 하기전에 자기 싸가지는 되돌아보지 않는걸까.
"@@@@@@@@@..."
하나뿐인 눈을 비비적대며 잠을 떨쳐내고있던 그때, 그 여자가 궁시렁대는 소리가 귀에 들려왔다.
"뭐라구요?"
"뭐."
저 철면피 진짜.
"아니 방금 나한테..."
"뭐, 문제라도 있어?"
"...에휴."
말을 말자.
무시하며 고개를 돌려 카운터를 바라보니, 오묘한 표정으로 허공을 바라보는 할아버지 하나가 보인다.
내 시선을 느낀건지 고개를 돌리다가 눈을 마주치니 황급히 표정을 굳히는 모습.
...불편해.
아무래도 빨리 여기서 나가야겠어. 이러다가 내가 쪼그라들 것 같다.
덜컥!
나가기 위해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난다.
하지만, 내가 일어나는 동시에 일어나 나를 향해 뛰어오는 그 미친년.
테이블을 뜨려던 내 오른팔을 팍 잡아챈다.
"...잠깐! 너 지금부터 어디갈거야?"
"...?"
"너 지금부터 가드로 갈거 맞지? 방법같은거 있는거지?"
"...아마도."
"그, 혹시 나도 같이 데려가줄 수 있냐?!"
"???"
미치셨나요?
방금 전까지 꼬맹이 싸가지 어쩌구 하면서 구시렁댔던 사람이, 뭐가 어쩌고 어째?
"나도 살고싶어!!"
"...뭐?"
게다가 왜 또 갑자기 살고싶어 타령인지. 가드 안들어가면 죽는것도 아닐텐데 말이야.
그리 말하자, 그 여자는 의아하다는 감정을 숨기지 않고 내게 물어본다.
"...너 제 24구역에서 사는 애 아니지?"
"당연하죠. 누가 이런데서 살아."
"너 여기 언제왔어?"
"그야... 아마..."
한달 전에 한번이랑, 어제 한번.
"...아, 그래서..."
"..."
"음, 뭐... 일단은 지난 이주일동안 벌어졌던 일부터 설명해야겠네."
"큰 일이야?"
"당연하지. 가드가 직접 나서서 세력 하나 통째로 궤멸시킨 사건인데."
저건 또 뭔소리야.
"가드가 뭘 어째?"
"처음부터 얘기해줄테니까 잘들어."
"...응."
그 후, 장장 한시간에 걸친 이야기가 시작됐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