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화 〉 1부 34. 분기점
* * *
딸랑~
경쾌한 방울소리와 함께 주점의 문이 열린다.
천천히 둘러본 주점은, 한달 전 그때와 같이 변함없는 모습.
적목으로 깔린 마룻바닥은 삐걱거리며 존재감을 과시하고, 듬성듬성 달린 노란 전등은 어둑어둑하게 주점 내부를 밝힌다.
그리고, 저 앞에서 날 바라보는 사람 두명.
한명은 그때 봤던 근육질의 주인장 할아버지. 나머지 한명은...
"...웬 꼬맹이?"
...아무래도, 선객이 있었던 모양이다.
"...당신이랑 아는사람인가?"
테이블에 앉은 금발의 젊은 여성은, 할아버지를 향해 말을 건다.그 말을 듣자 날 슬쩍 쳐다보는 할아버지.
"...머리색 보니까 저번에 온 그 가드 꼬맹이인 것 같은데."
"가드? 저런 꼬맹이가?"
그 여자는 고개를 돌려 후드를 뒤집어쓰고있는 내 모습을 살펴봤다.
"...하, 꼬맹이가 가드라니. 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거야."
"...아무튼 그래서, 꼬맹아. 여긴 왜 왔냐."
할아버지가 바로 본론을 꺼낸다.
천천히 삐걱거리며 카운터로 다가갔다.
"...그나저나 꼬라지가 왜 저런건데."
"저번에 왔을땐 청년 하나랑 같이왔는데, 뭐 따로 떨어지기라도 했나보군."
뭐라뭐라 지들끼리 잡담하는 소리가 들린다.
멍하니 발걸음을 옮기는 나에게 꽃히는 부담스러운 시선들.
카운터 앞에 멈춰서 조용히 말을 꺼냈다.
"...혹시, 여기 잠잘 곳 있어?"
"...?"
당황스러워하는 낌새가 느껴진다.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냐."
"...혹시, 여기 재워줄 곳 있냐고 물었어."
"...여기서 자고가겠다고?"
"응."
"...미친년."
욕짓거리가 쏟아진다.
뭐, 당연한거겠지. 친한 사이도 아니거니와 애초에 이곳은 그냥 평범한 바(bar)인데.
난 그냥 적당히 테이블에 엎드려서 조금이라도 쉬려고 했지만, 아무래도 거기까진 무리였던건가.
"옷 꼬라지는 왜그런거지? 어디 밖에서 썩어가는거 주워오기라도 한거냐?"
"...응."
"...허..."
"......"
"옆에 붙어다니던 그 청년은 어쩌고?"
"...지금은 다른곳에 있어."
"아ㅡ"
주인 할아버지와 대화를 이어나가고있던 그때, 의자가 끼익거리며 끌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저씨, 이 여자애 이름 뭔지 알아?"
"...정보는 돈먼저 내고..."
"아, 아니. 됐다."
그냥 내가 물어보고 말지.
"야, 꼬맹아, 너 이름이 뭐야?"
"..."
"...말 안해줄거냐?"
"...루시."
"그래, 루시. 너 가드 소속이라고 했지?"
"..."
"자꾸 말 끊기게 하지 말고. 맞아, 아니야?"
"..."
...왜 자꾸 저런걸 물어보는거지.
"가드 내에서 친한사람 있어?"
혹시, 내가 가드와 연관되어있다고 해서 인질로 잡은 다음에 협상이라도 하려고 하는걸까.
어쩌면 나와 연을 터서 가드에 들어가려고 하는걸 수도 있다.
위 사항 모두 날 도구로 이용하는 방법 뿐이기에ㅡ 괜스레 기분이 나빠졌다.
"야, 말좀 해봐."
그래서 침묵으로 일관했을 뿐.
"...하."
5분가까이 귀 옆에서 알짱대던 그 여자는 이내 지쳤다는 듯 헛웃음을 짓는다.
"무시도 적당히 해야지. 아무리 참는다고 해도 이정도로 무시하면 기분 나쁜데 말이야."
"..."
"...야. 뭐라고 대답이라도 좀 해보지그러냐?"
파악!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이었다.
순식간에 손을 뻗은 그 여자는, 내 후드를 잡고선 곧바로 확 내려버렸다.
"윽..."
한순간 비추는 빛이 눈부셔 눈을 질끈 감는다.
그리고, 조심스레 들어올려보는 눈꺼풀.
빛에 적응되자 조심스레 고개를 들었다.
그러고선, 눈앞에 있는 여자의 두 눈을 바라봤다.
"...!"
눈을 마주친 여자의 얼굴은 일그러진다.
"뭐..."
곧이어, 쿠당탕 거리며 뒤로 뒷걸음질 치는 모습.
...대체 내 얼굴이 뭐 어때서. 자꾸 저런 태도로 나오면 기분 더 더러워지는데.
"어..."
할아버지를 바라보자, 그 사람조차 잠시 움찔거리는 모습이다.
"..."
주점내에 한참이나 지속되던 정적.
그런 불편한 상황이 지속되다가, 이내 겨우 말을 뗀건 할아버지였다.
"...너, 눈 한짝 어디간거냐."
...뭐야. 그런거였나.
"...뽑혔어."
"팔 한짝도 그 사람한테 뜯긴거냐?"
끄덕끄덕.
"..."
다시 주점 내부는 정적으로 물들었다.
"...자고가라. 그냥."
"고마워..."
그 말에, 깊숙한 구석 테이블로 발걸음을 옮기던 난 한가지를 깨닫는다.
"...돈은?"
"...필요없다."
"...!"
앗싸. 땡잡았구나.
순식간에 긴장이 풀려버린 난 그대로 테이블에 머리를 대고 엎드려 잠이 들었다.
***Side 루스리아
때는 일주일 전.
크로체 전(戰)직후.
황량한 평원에 서서히 눈이 쌓여간다. 하늘에서 내리는 눈은 고요한 바람소리를 내며 무심하게 시체들을 덮어갔다.
...그리고, 그 평원의 가장 끝자락, 전투의 여파에 의해 튕겨져 나와 엉망진창인 상태로 뒹굴고 있는, 눈에 붕대를 감은 장신의 여성 하나.
그게 나다.
"ㅡ커헉."
피를 토해내며 몸을 천천히 일으킨다.
온몸이 쑤시는게, 적어도 몸 상태가 정상은 아니라는 소리겠지.입고있던 검은 털코트는 어째선지 무사한 듯 하지만...
일어나 천천히 주변을 둘러본다. 보이는 건 그저 깎여나간 건물들과, 시체들과, 기이한 광석의 파편들. 그리고...
...저 광대한 평원.
"...크로체."
루시. 이 미친년.
서둘러 평원의 중앙으로 달려간다.비틀거리며, 반즈음 쓰러질듯이.
"하아, 하..."
마침내 그 광대한 평원의 중앙에 도착한 내 눈에 보인건, 작은 피웅덩이속 처참하게 흩어져 반짝이는 파편들이었다.
"...아..."
...크로체.
크로체.
모습은 다르지만, 이것은 분명 크로체였던 것.
조심스레 파편들을 주워모은다.
처참하게 부서져나간 파편들을 볼때마다, 가슴속에 감정이 쌓여간다.
...너무나도 강렬한 감정들.
어쩌면, 이 감정은 분노.
대체 누구를 향한 분노인가. 감정은 방향을 잃는다.
도대체, 이 분노는 누구에게 풀어야하는거지. 멍청하게 속삭임에 넘어간 크로체? 아니면 크로체를 유혹한 '그것'? 아니면, 처음부터 이런 상황을 만들어버린 연구자들?
아니면ㅡ
크로체를 죽인, 루시?
"...아."
...그래.
"...루시."
그.
빌어처먹을 년.
파편들을 쥔 손이 바들바들 떨린다.피로 범벅된 그 작은 파편들은, 감정을 더욱더 요동시킨다.
ㅡ분노든, 슬픔이든, 기쁨이든.
"...으, 윽..."
...난 지금 분노하고있는데. 어째서.
"... 크로체..."
눈물이 나오는걸까. 어째서.
"...루시, 이... 개자식..."
분노와 슬픔은 그저 한끗차이라는걸.
하지만 모든것은 그저 분노라는 감정 하나로 귀결된다.
갈곳잃은 분노는 그저 원초적인 사고만을 행하게 한다. 생각을 멈추게 만들고 사고능력을 파열시킨다.
"으, 아아아..."
눈물이 흐른다. 계속.
붕대는 계속해서 적셔지고, 이내 찢어지기 시작한다.
"ㅡ아아아아아아아아!!"
이내, 그 광막한 평원에는 그저 내가 오열하는 소리만이 남았다.
그 지옥에서, 날 꺼내준게. 누구였는데.
그 시절의 넌 어디가고, 도대체 왜...이렇게 허무하게.
왜, 벌써 죽은거야?
ㅡ넌.
뽀드득.
그때. 파편을 쥐고 계속해서 떨고있던 내 귀에, 발걸음소리가 들려왔다.
뽀드득. 뽀드득. 쌓여가는눈을 짓밟는 소리. 점점 더 가까워진다.
저 멀리서부터 메아리를 울리며 가까워지는 저 소리는, 이내 내 머릿속에 더욱 비참한 생각을 불어넣는다.
ㅡ그리고, 갈 곳없는 분노는 주인을 찾았다.
"...빌어처먹을 새끼들."
"..."
발걸음 소리가 멈춘다.
"크로체도, 너희들의... 체스말이었던거냐..."
"...의도한 바는 아니었다만... 그저 그 버러지의 욕망이 '이성을 뛰어넘었다 ' 뿐이지."
"입닥쳐!"
고개를 들어 눈앞의 여성을 노려봤다.
무심한 눈으로 내려다보는, 검은 생머리를 가진 평범한 생김새의 여성.
하지만, 몸에 입고있는 그 하얀 가운은ㅡ
"...오랜만이다, 오메가."
ㅡ연구자다.
"아니지, 이젠 루스리아인가?"
그 연구자는, 나직한 목소리로 말을 꺼낸다.
"빌어먹을정도로 감사한 심정이다. 오메가. 공들여 계획한 프로젝트를 이렇게 한순간에 날려버리다니."
"...크로체를, 대체 왜..."
"...아그래. 이번의 비컨이 그녀석으로 결정되서, 오메가 니가 껴들었던거군."
"대체! 왜! 하필 크로체였던거냐고!"
참지 못했다.결국, 감정을 터뜨린다.
눈앞의 연구자에게 계속해서 고함을 지르고, 떼를쓴다.
추하게.
ㅡ하지만, 나도 알고있어.
결국 이 사태에 대한 책임이 누구에게 있냐고 묻는다면.
"욕망에 몸을 맡긴 크로체라는걸, 너도 잘 알텐데말이야."
"개자식들..."
"본래 비컨을 피날레의 무대로 결정했다만, 훌륭해. 중요한부분을 싸그리 날려버려줬군."
ㅡ사고가 마비된다.
그저, 크로체를 하나의 장치로밖에 보지않는 그 역겨움에.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크로체를.
다른사람은 죽여도 괜찮다만, 왜 하필 크로체를?
그러나 눈앞의 연구자는 아랑곳 않고 계속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ㅡ아, 그리고. 그 벌레들도 있었지. 저 멀리 숨어서 같잖은 짓을 하던... 벌레들."
"...누굴 말하는거지?"
"...설마, 눈치 못챈건가? 정말로?"
잠시 뚫어져라 붕대로 감싼 내 눈을 바라보는 흑발의 여성.
곧이어, 조용하게 웃기 시작했다.
"크, 흐흐... 아, 하긴 그렇군. 진작 그들이 지켜보고있었다는 걸 눈치 챘으면 너도 알파를 납치하는 무모한 짓은 안했을테니 말이야."
"넌ㅡ"
"그 순진한 벌레들은 지들이 우리의 위에 있다고 착각하던 모양이던데, 오만해. 너무나도. 어째서 우리가 그들에게 휘둘릴거라 생각하는지 모르겠어."
"불확정인자는 초반부터 싸그리 제거해야했다만, 너희 벌레들이란것들은 왜그리 재빠른건지. 꽁지빠지게 도망쳐서 숨는 것 하나만큼은 재능이 있더군."
"아무튼, 너와 그 벌레들때문에 우리의 계획이 싸그리 틀어졌다. 다시 한번 무대를 마련해야할 것 같군."
"...하."
"...왜 웃는거지?"
웃겨. 오히려 웃긴건 나다.
힘을 모조리 잃은채 눈앞에 나타나선 하는말이 고작 저런 선민사상에 찌든 오글거리는 말들 뿐이라니.
이미 힘을 잃어 몰락한 연구자들은ㅡ
"...지들 주인에게도 버려진 것들이. 개소리야."
면전에 박아준다.
"...아, 설마. 우리가 타의로 힘을 빼앗겼다고 생각하는건가."
"...?"
"재밌어, 오메가. 재밌었다."
"ㅡ!"
그러나, 돌아온 반응이 어딘가 이상하다.
...저 말은, 연구자들이 버려진게 아니라 버린거란 말인가. 지들 스스로?
그럴리가 없는데.
소리쳐 그를 부르려던 찰나, 그녀의 몸이 검은 타르들로 변해 터져나간건 뜻밖이었다.
아무리 연구자들이 미약한 군체의식이라고는 하지만, 저렇게 스스로가 아무 거리낌도 없이 목숨을 버릴 부류는 아니었잖아.
그런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꾸르륵...
하지만 그때, 저 멀리서 그 연구자와 똑같은 생김새의 여성 한명이 끔찍한 마력을 흩뿌리며 나타난건.
"...뭐."
...저건, 연구자.
하지만...
쿠우우...
몰락하기 전의 힘을 온전히 갖고있는 연구자.
곧바로, 사방에서 검은 마수들이 쏟아져나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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