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화 〉 1부 33. 희극
* * *
***Side 마스
끼이이...
"콜록, 콜록."
윽, 먼지.
손을 휘적거리며 먼지를 털어낸다.
"...어우."
골목 구석의 허름한 잡화상점을 열고 들어가자 우릴 반기는것은, 지직거리는 라디오 하나와 방을 빼곡히 채운 먼지들.
문이 열리자마자 바깥으로 먼지가 훅 빠져나올때부터 눈치챘다.
잡화점은 상대적으로 꽤나 좁은, 원룸만한 크기의 자그마한 곳이다. 저 카운터 뒤에 보이는 문으로 들어가면 공간은 꽤나 나오겠지만, 지금 눈에 보이는거라곤 휴식을 위한 테이블과, 카운터에 발을 올리고 옆의 라디오만 만지작거리는 할아버지 한명.
조명은 상당히 밝아서 잡화점 내부를 적당히 밝혀준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그 할아버지는 고개를 돌려 잡화점으로 들어오는 우리 6명을 바라봤다.
잠시 질겅질겅 연초를 씹는 듯 하더니, 이내 내뱉은 말.
"...어서오슈."
"..."
"이런곳에 웬 젊은놈들이래. 피부 한번 때깔 좋네."
위아래로 우릴 훑어본다.
"아, 안녕하세요..."
"밖에서 들어온 놈들이냐? 여긴 무슨일로 왔수?"
"..."
삐질거리며 어느 장단에 맞춰야할지 몰라 허둥대던 우리의 앞으로 레프아저씨가 나섰다.
"영감, 그만해요. 손님이야, 손님."
"레프 넌 이런곳에 저런 꼬맹이들을 데려오면 어떡하냐. 내가 애들 질색하는건 잘 알잖냐."
레프아저씨는 그 모습에 한숨을 푹 쉬며 카운터에 기댄다.
"영감이 그래서 친구가 없는거야."
"...없는게 아니라 안만드는거다."
"아니, 누가 지금 영감같은 모습 보고 긍정적으로 평가해. 제발 성격좀 죽여."
"내 살고싶은데로 사는건데, 뭐 문제라도 있나."
"아, 그래. 맘대로 하슈. 나중에 어디 작은 방같은데 쳐박혀서 고독사하지만 않으면 다행이지."
"커허..."
그 할아버지는 카운터에서 발을 내려 다시 카운터로 자세를 옮긴다. 그러고선 레프아저씨의 머리에 딱밤을 두는 모습. 딱 하며 경쾌한 소리가 난다.
"컥."
"이게 지금 뭐라 지껄이는거야. 거 버릇 한번 잘못들였네."
"아이, 씨..."
"아무튼, 거기 현관에 서있지 말고 빨리 문닫고 들어와라. 찬바람 다 들어온다."
"...아, 네."
그제서야 우리에게 고개를 돌려 말을 건다. 살짝 이상한 할아버지네. 레프아저씨가 했던 말이 이해가간다.
일전에 발견했던 그 꼬마는 준서의 등에 업힌채 같이 따라들어온다. 자고있는 듯 했지만, 자는척 하는건 이미 다 알고있다 이자식아.
뭐, 지금은 저런 점을 지적할 생각은 없으니 서둘러 카운터로 걸어갔다.
내가 다가가는걸 보자 말을 꺼내는 할아버지.
"...청년 이름이 뭐유?"
"대한민국 헬리온 아카데미 소속 3학년, UN 히어로 협회 견습히어로 마스라고 합니다. 같이 온 저 셋은 같은 소속 제인이랑, 이준서. 성화연이라고 하구요. 혹시 실례가 안된다면 할아버지 성함은..."
"그냥 알렉세이 영감이라고 불러라."
"아, 네..."
레프아저씨는 그 모습에 다시 머리를 쥐어싸며 한숨을 푹 쉰다.
"영감... 제발 애들앞에선 좀 정상적으로..."
"난 언제나 이랬어."
"아니, 처음보는 사람이잖아! 사회생활! 사회생활!"
"이게 어디서 어른한테 소리를 버럭 질러!"
빡!
"아아악, 진짜!"
"아무튼 그래서 마스. 마스라고 했던가?"
"아, 넵."
"레프소개로 여기까지 왔다는건, 역시 원하는 거라곤 정보겠지?"
"맞아요."
"...가치 따라서 가격은 달라질 수 있고, 나도 그게 정확하다곤 장담은 못해. 환불은 안되고, 선불이다. 원랜 100셀이지만 여기서 딱 50셀만 더 내면..."
그 소리를 얼빠지게 듣고있던 레프아저씨는 이내 소리를 빽 지른다.
"영감!"
"아, 뭐!"
"애들한텐 좀 적당히 하라고!"
"계산은 확실하게 해야지, 이런걸로 손실 하나하나 나면..."
"어차피 영감 우리가 버는돈으로 먹고살잖아! 그게 뭔상관이야!"
"하, 니들이 벌어주는 돈만으로 내가 어떻게 먹고사냐, 요즘 블랙드림 값도 엄청 올라서 이젠 빡빡하기만 한데..."
"그거 끊으라고 몇번을 말했어 망할 영감탱이야!!!"
"내 맘이라니까!!"
...아무래도 이야기가 빨리 진행될 기미는 없어보인다.
그 후로 장장 30분에 걸친 시트콤을 감상하고 난 우리는, 그제서야 본론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
"하얀 여자애라니? 그런 정보는 최근에 들어온 게 없다만."
"...끄응."
"가장 최근에 들어온 것부터 하나씩 들어볼텨?"
"...뭐, 그러죠."
뒤를 돌아 테이블에 앉아있는 셋을 보며 허락을 구하자 괜찮다고 끄덕인다.
영감님은 그 모습을 보자 카운터 뒷공간으로 들어가 수신기에 딸린 상자 하나를 꺼내들고 온다.
"으음... 역시 가장 최근에 들어온 정보라면..."
종이를 휘적휘적 뒤적이는 알렉세이 영감님.
곧이어 찾았다는 듯 다 낡아빠진 종이 하나를 집어든다.
"살아 움직이는 산... 아마 이게 가장 유명할테지."
"...그게 무슨 정보인데요?"
살아 움직이는 산이라니.
무슨 오컬트 관련 채널에서 나올법한 소리다.
"가드소속의 공명 계열 초상능력자 한명이 대규모 마력파를 감지한 이후의 이야기다."
"...공명이요?"
"마력을 느낄 수 있는 특이체질들을 말하는거다. 극단적으로 드물어서 하나하나가 귀중한 전력이다만, 혹시 밖에선 그런게 없는거냐?"
"아, 아뇨... 있긴 있는데 그냥 용어가 생소해서요."
"...그러냐."
한서우가 떠오른다.
그녀석 초상능력이 공명이라 했을땐 아리송한 단어라 그냥 그 특이한 대검을 다룰 수 있는 능력인가보다 하고 넘어갔는데, 그런거였구만.
"아무튼, 그 날 이후에 대륙 군데군데에서 산맥이 솟아나고있다는 모양이야. 이것때문에 여기랑 다른 안전구역이랑 도로도 막혔고."
"산맥이 솟아난다니, 그게 무슨..."
"심지어 산이 이상할정도로 매끄럽다더군. 마치 누군가 인위적으로 깎아낸 것 처럼."
"...그거 미신 아닌거 맞아요?"
"적어도 가드 보안채널로 송신되는 정보들이니까 신뢰도는 확실해. 그런건 신경쓰지마라."
"아, 네..."
팔락. 다른 종이들도 뒤적거리며 꺼낸다.
"아무튼, 정보에 따르면 그 산맥이 도중에 끊어지는 일도 없이 계속해서, 연속적으로 솟아나고있다는 모양이더군. 마치 누군가를 따라 계속해서 움직이는것처럼."
"...그런가요."
저게 당최 뭘 의미하는건지.
분명 엄청난 사건인 건 맞지만 의미불명, 진위여부불명. 그냥 미신일 것 같다는 삘이 강하게 난다.
"...다른 정보는요?"
"기다려라. 지금 찾아보는 중이니까."
덜거덕, 덜거덕.
"아, 여깄었어. 이건 지난달부터 계속해서 이어져온 송신이야. 이건 소문이라기엔 그냥 보고정도로 보면 좋을 것 같군."
"그 '가드'라는 쪽 보고인가요?"
"그래... 어디보자. 마력파 관련 보고군. 지난달부터 그 공명한다는 놈이 감지한 마력파."
"...그런가요?"
"마력파 발생 빈도가 최근 2주내에 급격하게 높아졌다는 보고다. 아마도..."
영감님이 연초를 씹으며 말을 이어가던 그때, 갑자기 라디오에서 지직거리며 신호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
곧바로 종이와 펜을 꺼내든 알렉세이 영감님.
라디오에서는 모스부호와도 같은 신호가 계속해서 송신되고, 영감님은 그 신호를 계속해서 종이에 받아적는다.
그리고 5분 뒤, 마침내 신호가 끊겼을 때.
영감님은 그 신호 아래 기호와 문자들을 적어가며 해석하기 시작했다.
"...허."
그리고 해석이 끝났을때, 그제서야 겨우 입을 여는 영감님.
나도 숨죽이며 그 과정을 지켜보고 있었던터라 그 내용이 궁금해진다.
"...뭐래요?"
"...너희들, 일전에 지진난건 기억하지?"
"아, 네... 그다지 강한 지진은 아니었던거라 기억하는데..."
"그 지진의 근원지에서 도저히 말도 안될만큼 강력한 마력파가 수십번이나 불어닥쳤다는 보고다. 그 지진은 자연적인게 아니라 인위적으로 만들어진거였어."
"...네?"
이어진 소리는 상상 이상의 충격이었다.
지진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내다니, 그게 말이 되는건가?
심지어 계속된 영감님의 말을 들어보면 그 지진의 근원지라는곳이 이곳으로부터 수천km는 떨어져있다는 곳인 듯 하다.
수천km떨어져있는 이곳까지 진동이 오게 할 정도면 대체 얼마나 격렬하게 흔들어재낀거지?
"...아."
그때,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모두가 그곳을 돌아봤다.
"...꼬마야?"
소리를 낸것은 놀랍게도 실어증에 걸렸을거라 판단되던 그 꼬맹이. 성화연은 그 모습을 보고 아이에게 뭔가 잘못됐냐는 듯 물어보고, 제인과 준서도 그 아이에게 말을 걸며 진정시키려고 노력한다.
아마 쟤들은 아이가 마력파라는 단어를 듣고 어디 트라우마에라도 걸린게 아닌가 걱정된거겠지.
소리가 들리자마자 바로 뒤돌아봤을때, 나를 제외하곤 그 아이의 얼굴을 본 사람은 없었다. 모두 한발짝 늦게 그 이변에 반응했으니까.
결국 그 아이의 얼굴에서 순간 스쳐지나간 표정을 봤던 사람은 나밖에 없다.
목덜미로 스쳐지나가는 이 소름끼치는 감각은, 그저 기우일 뿐인걸까.
ㅡ그 꼬맹이가 소리를 내던 그 순간, 그는 분명 어딘가 살짝 웃고있는 표정인 것처럼 보였으니.
***Side 루시
잘박, 잘박.
모포의 후드를 뒤집어 얼굴까지 덮어쓰고 칙칙한 거리를 지나간다.
여전히 멍한 머리에 낀 이 먹구름은 도저히 걷어내질 기미를 보이지 않아, 그저 내가 걸어가려는 이 길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맨발에 채이는 담배꽁초와 쓰레기들은 이미 익숙해진지 오래.주변에서 휘황찬란 빛나는 엉성한 네온사인들이 눈부시기만 하다.
가끔씩 말을 걸어오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 다들 내 얼굴을 보고선 삐질거리며 도망가기 일쑤.
왜 저러는거지.
*
"하아, 하아..."
계속해서 걸으려니 숨이찬다.
제 24 안전구역에 들어온 이후, 눈에 익숙한 공간으로 가보려하지만 미로같은 골목들과 도시의 구조는 계속해서 길을 잃게 만들 뿐이다.
그렇게, 대략 1시간정도 거리를 헤메고 있던 그때, 눈에 익숙한 가게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건.
"...아."
저 위에 쓰인 필기체로 이루어진 네온사인.
음침한 골목 한가운데의, 이용하는 사람이라고는 거의 없는 주점.
천천히 머릿속에서 떠오른다.
저번의, 그 정보상점.
분명 돈이 없어서 이용하지는 못했던.
그 주점이 저 앞에, 잔골목 사이 음습한곳에 떡하니 보인다.
"..."
그러자, 머릿속에 떠오르는 하나의 생각.
ㅡ여기가, 내가 향했던 곳인가.
천천히 발을 옮겨 그 주점으로 향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