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화 〉 1부 32. 정보
* * *
***Side 마스
"얘, 꼬마야. 이런데서 뭐 하니?"
성화연은 오지랖이 넓다.
"보호자 찾아줄동안만 같이 다녀도 되는 거지?"
...그렇기에, 실어증에 걸린 꼬마아이를 그냥 지나치지 못 하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지.
"혹시 다른 구역 출신이야?"
골목 한구석에서 발견한 남자아이는 묻는 말에 계속해서 고개만 젓는다. 저 뒤에서 따라오는 레프는, 갑작스레 멈춘 우리의 발걸음에 무슨 일이냐는 우리의 시선이 모인 곳으로 고개를 쭉 뺀다.
"...어린애네."
"원래 여기서 길잃은 어린애들이 흔한 건가요..."
아무리 생각해도 그럴만한 도시 분위기는 아니야. 군데군데 떨어져 있는 콘크리트 파편들에, 도시를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등에는 죄다 하나씩 단발 소총이 매여있어 살벌한 광경을 연출한다. 적어도 어린애가 그렇게 흔한곳은 아닐거라 예상했는데...
"...그럴리가. 원래 여긴 어린애들이 올 수 있는 곳이 아닌데?"
"그래요?"
"...그래. 최근 3년간 여기서 만난 어린애라곤... 루시랑 이 애 한 명뿐이야."
...루시 한명뿐이라.
다시 고개를 돌려 골목 한구석에서 벌벌 떨고 있는 흐릿한 금발을 가진 남자아이를 바라본다. 답지않게 옷만큼은 제대로 차려입고 있는 게 어딘가 어색했지만...
"레프아저씨, 혹시 그 영감이라는 사람이 애도 맡아줄 수 있나요?"
성화연이 그런 이상한 점을 신경 쓸 리가 없다. 그냥 눈 앞에 불쌍한 어린애가 있으니 도와줘야 한다는 생각만 갖고있겠지.
"...영감이? 아니, 그럴리가. 애초에 그 영감은 우리 둘도 겨우 맡아서 키워준건데."
"...둘이요?"
"응. 나랑 알비나. 지딴에는 우리 재능이 출중해 보여서 키웠다는데, 난 잘 모르겠다."
"별난분이실 것 같네요."
"...그래, 확실히 미친 사람이지."
"...?"
보통 키워준 사람한테 저렇게 말하던가. 여기선 상식이 다를수도 있나보다 하고 그냥 넘어간다.
골목에 숨어 떨고 있던 그 아이는 어느샌가 나와 성화연의 손을 꼭 붙들고 있는 모습. 유독 보호자 관련 얘기할 때만 더욱더 손에 힘을 준다. 절대 떨어지기 싫다는 것처럼.
...뭔가 기분이 꺼림칙한데.
"...꼬맹아."
수그리고 앉아 그 꼬마와 얼굴을 마주본다.
"혹시 이름같은 거 쓸 수 있냐."
도리도리.
"...너 우리 계속 따라다닐 거야?"
"...!"
잠시 고민하는 듯 고개를 숙인다.
그 사이, 난 결국 성화연한테 머리를 얻어맞았다.
"어린애한테 그게 뭔 말이야! 보호자가 없으면 히어로가 지켜줘야지, 계속 따라다닐 거냐니!"
"아으..."
거 진짜 엄청 쎄게 때리네.
옆에 서 있던 이준서는 어느샌가 그 꼬맹이에게 다가가 이것저것 물어보거나 초상능력 자랑하면서 놀아주고 있을뿐이다.
"...너도 쟤 뭔가 이상하다고 느끼지 않냐."
슬쩍 제인의 옆으로 다가가 말해 본다.
"...글쎄다, 난 잘 모르겠는데."
"아니, 저 말끔한 옷을 보고도 아무 의심이 안간다고?"
"다른 사람이 입혀줬을 수도 있지. 저런 어린애한테 동정심 느끼는 사람이 비단 쟤들만 있는 것도 아니고."
"아니 그럼 그냥 데리고가서 시설에라도 맡겨줄 것이지 왜 옷만..."
"그걸 낸들 아냐."
"...에휴, 답답이들."
"..."
한숨을 쉬는 날 보며 제인은 과장되게 머리를 흔든다. 묶어둔 머리카락이 따라서 흔들리는 모습. 괜히 더 짜증 나기만 한다.
그리고 그 때.
쿠구구구...
"...?!"
주변의 땅이 흔들리기 시작한 건.
'...?'
근데...너무 약한데?
거리 상점에 진열해뒀던 물건 몇개만이 쓰러진다.
"...지진인가?"
"...그런 것 같은데."
다행히 진동은 그리 크지도 않고 오래가지도 않아 별달리 피해란 없었다. 괜스레 놀란 가슴을 진정 시킨다.
'...지진이라니.'
여긴 러시아잖아. 보통 러시아에서도 지진이 일던가?
판구조론은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러시아쪽에서 지진이 그렇게 흔한일이 아니라는 건 잘 안다.
고개를 들어 옆에 있던 레프아저씨를 바라본다.
"레프아저씨?"
"...아, 깜짝아."
...레프아저씨도 어지간히 놀란 모양이다.
하긴, 보통 지진하면 이쪽 사람들한테는 트라우마로 박혀있을 테니까. 대재앙 사태땐 하루도 쉬지 않고 땅이 울려댔다고했으니 말이다.
그걸 직접 겪은 사람들의 뇌리엔 지진이라는 키워드 자체가 엄청 깊숙이 박혀있겠지.
방금 지진났다고대공황이라도 안온게 다행이라고 봐야 하나.
"아, 성화연."
"...왜."
"그 애 계속 데리고 다닐 거지?"
방금 지진이 일은 후 눈을 살짝 크게 뜬 어린아이를 바라본다.
"...당연하지. 왜, 또 놓고가라고?"
"아니, 내가 그렇게 나쁜놈같냐. 그냥 데리고갈 거면 빨리 업고 움직이라고. 레프아저씨가 말한 그 할아버지 보러 가기로 했잖아. 외부 안전구역들 소식들 확인해 보려고."
"아, 그래. 그렇지."
"이준서 너도."
"...끄응."
그제서야 둘은 자리에서 일어나 발을 뗀다.
'...'
...방금 전의 지진이 신경쓰이지 않는다면 거짓말이겠지. 확실히 진짜 엄청나게 신경쓰인다.
다만 현재로선 알아낼 수 있는 것도 없고, 안 그래도 정보 확보하려고 움직이는 중이기에, 일단은 덮어두기로 했다.
...
그나저나, 뭔가 찝찝한데.
"...아, 제인. 라디오 채널 맞춰놨어?"
"...깜빡했네..."
"말한지가 얼마나 지났는데."
"아니, 근데 솔직히 밖에서 여기까지 신호가 들어올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는 건 너무 과도한 기대 아니야?"
"유럽쪽에서 작전중이랬잖아. 작전 성공여부 따라서 외부에서 통신 닿을 수도 있지."
"주파수가 그쪽 군부대랑 아카데미에서 나눠주는 거랑 다르면 어쩌려고?"
...그러게?
"......적어도 같은 UN쪽이니까 아마 같지 않을까..."
"...어휴."
그걸 내가 어떻게 아냐.
휴대용 소형 라디오를 꺼내 작업하는 제인을 뒤로하고선 한숨을 푹 내쉬었다.
***Side 루시
"쿨럭..."
새하얀 눈밭에 핏덩이가 쏟아져 내린다.전부 내 입에서 나온 것들.
아무래도 내장기관이 전부 작살난 듯한데.
걸어간다.
익숙한 길로.
계속해서 걸어간다.
ㅡ지금은.
아무 생각도 하기 싫어.
*
여전히 하늘은 새하얗다.
걸어가다가 잘려버린 왼팔의 중심을 못 잡아 쓰러지길 수십 번, 이젠 어느샌가 적응돼서 적어도 10분에 한 번씩 쓰러질 정도는 아니다.
문득 궁금해서 내려본 몸 상태는 말그대로 만신창이.
아무리 좋게봐도 절대로 괜찮다고는 말 하지 못 한다.
쿨럭. 피가 다시 한 번 쏟아진다.
그 피가.
그 피를 보자 떠오르는 것들.
눈 앞에서 튀어 오르는 피가 되새겨진다.
...눈 앞에서 증발하던 시체들이 되새겨진다.
눈 앞에서 파여나가던 안구가 되새겨진다.
눈 앞에서 살려달라고 울부짖던 사람들이 되새겨진다.
눈 앞에서...
ㅡ그냥.
다 죽어버리라고했었지.
응, 다 죽어버리라고.
쓰레기 같은새끼들.
다 죽어버리라고.
그냥ㅡ 전부다.
*
걸어가다가 문득 생각 했다.
내가 그 사람들을 왜 죽였을까. 라고.
답은 간단했다. 그냥 날 아프게 했기 때문이었어. 그냥 내가 아프니까, 그 사람들을 다 죽인 거겠지.
화나서.
음, 후회같은 건 안 해.
처음으로 해 본 살인이라지만, 그다지 감흥이 들지도 않고 말이야.
ㅡ아마도.
어쩌면, 이미 내 몸이 부서지는 걸 몇 번이나 봐서 그런 걸수도.
ㅡ내가 왜 이렇게 됐을까.
어쩌면, 너무 많이 죽어봐서 미쳐버린 걸까? 에이, 그런 건 아니겠지. 그렇다면야 나는 왜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
나는 내가 그냥 평범한 사람이라고 생각 했는데, 이젠 사람 죽이는 것조차 그다지 감흥이 없게됐네.
뽀드득. 뽀드득.
익숙한 길을 계속해서 따라간다.
*
감정이란 게, 정말로 웃긴 거란 말이지.
한순간에 확 타올랐다가, 한순간에 확 식고.
분노란 감정은 어느샌가 배경처럼 자리 잡아 자연스럽게 희석되어간다. 그 후에 남은 건 그저 무(無).
그저, 텅 비어버린 허탈감만이 남았다.
잘박잘박.
어느샌가 눈이 사라진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걷는다.
*
걸어간다. 계속해서.
밤낮이 얼마나 바뀐 거지.살짝 뒤를 돌아본다.
뒤를 돌아보니 보이는 건 그저 하얀 눈으로 뒤덮인 도로의 광경 뿐. 거리의 양 옆에 높이 솟은 마천루들의 폐허가 보인다.
햇빛을 막은 그 마천루들은 거리에 빛 한점조차 들여보내지 않는다.
다시 고개를 내려 계속해서 앞으로 걸어간다.
*
다 찢어져 너덜거리던 후드를 벗어던지고, 거리 한구석에 버려져 썩어가고 있던 낡은 거적데기 하나를 둘렀다.
여전히 다리는 차갑지만, 그래도 볼 때마다 눈살찌푸려졌던, 더럽게 잘려 나간 왼팔은 이제 가려졌어.
텅 비어버린 왼쪽 안와에 손가락을 넣어본다. 간지러움이 몰려오고, 웃음을 터뜨린다.
텅 비어버린 웃음소리가 도시 한복판을 가득 메운다. 아무것도 느껴지지가 않아.
그 날 밤은 눈폭풍이 불었다.
*
"푸흡ㅡ"
눈을 뱉어내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주저앉은 채 주변을 둘러보니 여전히 눈으로 덮인 황량한 도시만이 보인다.
아래를 내려다 보니 보인 건 자그마한 피웅덩이. 아마 중간에 쓰러졌나 봐. 이 피는 아마 내 몸속에서 나온 거겠지.
지난번의 그 격렬했던 파티 이후에 몸 어딘가가 고장난 것 같으니까. 루스리아가 말했던 폭주라는 단어는 다시 한 번 머릿속에 둥실 떠오른다.
ㅡ폭주가, 왜 폭주라고 불리는지 몰랐던 거야?
극단적인 자기파괴의 형질을 띈 무식한 방법은, 언제나 자기 자신을 파멸시키기 마련이다. 코어를 얻어 완벽해진 상태라면 모를까, 이런 불완전한 깡통같은 몸으로는ㅡ
"하...하..."
이젠 자연스레 웃음이 지어진다.
표정이 자연스럽게 제어가 되는걸. 원하는 대로 안면근육이 움직이니 편히다.
...원하는 대로.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거적데기를 잡아매고 발걸음을 옮겼다.
*
나는.
'나는.'
ㅡ나는, 그저 내가 아프다고 떼쓰는 것뿐이었어. 어차피 뒤지지도 않는 거 그냥 몇 번 아프면 어때. 그래봤자 목숨 하나도 아니고.
ㅡ나는.
어린애였던 건가.
나 하나 아프면 뭐 어쩌라고, 죽인 사람은 수십인데.
ㅡ이게. 정말로 인간이란 말인가.
인간과, 마수. 마수와 인간.
ㅡ대체, 뭐가 다른 거야. 이래서는.
나는, 인간인가?
나는 사람이 맞는 거야?
나는ㅡ
어느 쪽인 거지?
*
뽀드득. 뽀드득.
익숙한 거리를 따라 걷는다.
온몸에 흥건하게 묻은 이 혈액들은 아직 사라지지 않아 흉흉한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새하얀 설원 한복판에서 난 걸어가고 있을뿐이다.
ㅡ그리고. 문득 느껴진 위화감에 땅만 보고 있던 고개를 들어 저 앞을 바라봤다.
'...제 24 안전구역...'
아마도, 그런 곳이겠지.적어도 저런 네온사인 듬뿍인 폐허는 그곳뿐이니까.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