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화 〉 1부 31. 공(?)
* * *
바람이 불어오며 피로물든 볼을 간질인다.
주변은 온통 차가워 감각조차 마비시키고, 너덜거리는 새하얀 피부조차 얼어붙게 만든다.
살며시 떠보는 눈.
눈앞의 광경이 눈에 들어온다.
그저 검은 파도가 천지를 물들인 광경. 붉은 하늘이 그 아래에서 함께 일렁이는 광경. 괴이한 노랫소리가 지상을 가득 메웠다.
너무나도 음울한 그 광경은 어디선가 본 듯, 식물조차 보이지 않는 이곳이 익숙하기만 하다.
검은짐승들로 가득 찬 검은 땅에선 사방에서 바닷물이 휘몰아쳐 들어오고, 소용돌이 가운데로 휩쓸려 들어가는 이름조차 알 수 없는 것 들이 괴이한 소리를 내지른다.붉게 변한 하늘 아래 붉게 변한 달이 사방을 비추고, 그 아래에서 누군가 웃다가, 울다가. 절망한다.
모든것이 무너졌다가 솟아오르고, 눈앞이 하얗게 점멸한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홀로 모든 것을 지켜보고있는.
ㅡ노란색 눈이.
다시 한번 나를 주시한다.
나를, 누구를? 아마, 마수를. 마수를 주시하는 그 눈동자가 작게 요동치고, 몸이 찢겨나간다. 뇌수가 사방으로 터져나가고, 뼛조각들이 비산한다. 나였던 것이 저 멀리 보이고, 다시 한번 무언가 움직인다.
계속해서 되돌아오고, 다시 터져나간다. 하얗게 변한 공간 아래에서 무언가가 절규한다. 다시 한번, 땅이 작게 요동쳤다.
아.
아아.
~*아
.
아.
그래서, 전혀 이해치 못할 이런 광경에도 그저 그 사이 홀로 서있는 소녀 한명이, 작게 운다.
울음소리인지 웃음소리인지 모를 그 광경 속에서 다시한번 검은 짐승들이 천지를 검게 물들이고, 터져나간다.
밝게, 붉게. 온 사방을 붉게 메우는 괴이한 것들. 눈깔이 수백개는 달린 짐승들과, 다리가 8개달린 짐승들이. 모두 저 아래 한곳으로 몰아쳐 터져나갔다.
이 모든 광경이.
비현실적이라고 느끼지 않다 느낀것은 어쩌면 나 또한 그 광경에 동화되어버렸기 때문이었을까.
푸른 불길과 붉은 혈액은 사그라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여전히 떠오른다. 다시 한번 붉은 달과 노란 눈깔을 마주한다.
그리고.
감았던 눈을 뜨고, 세상을 마주한다.
다시 고요해진 설원.
아니, 애초에 시끄러워진 적 조차 없던 설원.
조용히 입을 벌려ㅡ
ㅡㅡㅡ를.
명확하게.
아마도.
그렇기에, 그 지옥의 광경은 눈앞에서 떠나가질 않았다.
검붉은 광석더미가 비산하고, 눈덩이가 휘몰아치고, 시체들이 저 위로 떠올라 날아다니는 장면들이.
부딪쳐 뭉게지고, 짓눌리고, 썩어나간다. 건물들은 조각조각 터져나가고, 하늘에서 내리치는 검붉은 빗줄기는 모든것을 증발시킨다.
아마도 땅에서, 하늘에서. 그 근원지조차 알 수 없는 그저 그런 광경들. 모든걸 증발시키고 부서뜨리는 그런 광경들.
저 하늘 위 모인 별무리들 사이에서 밝게 빛나는 하나의, 아니. 수백개의. 하나의 그런 ㅡㅡ들이, 어쩌면 빛나고 있으리라.
이건.
아마, 파티.
그래, 이건 파티야.
기분좋은, 달콤한 것들이 가득 차있는, 초콜릿 케이크가 연회장 한가운데 우뚝 솟아 존재감을 과시하고 짐승들이 모여들어 춤을 추는, 아름다운 파티.
교향곡의 합주가 은은하게 들려오는 무도회.
어쩌면 그런 밤하늘 아래 공간의 절정이.
뇌리의 신호를 차단하고 확장시키고 수정한다. 저 아래의 것으로.
이것은 그저, 하나의 파티.
모든 더러운것들이 모여 함께 춤추는 짐승들의 파티. 목적도 의식도 자아도 없이 그저 홀로 붉게물든 레드카펫 위에서 춤추는 것.
케이크는 다시 모여들고, 생크림들을 흩뿌린다. 짐승들은 울컥거리며 솟아나고, 달이 붉게 물든다. 벽이 솟아나고, 천장은 메워진다.
부숴지고, 메꿔진다. 한참을 반복되는 그런 빌어처먹을 광경의 나열들이 보였다. 케이크는 어느샌가 모든게 짓눌려 결국 하나의 초콜릿 더미. 짐승들은 짓눌려 하나의 고깃덩이들이 되었다.
하얗게 물들은 새하얀 파티장.
건물들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조용히 눈을 굴려, 다시 한번 새하얀 설원을 바라본다.
세찬 바람이 불어오는 평원아래 그저 서있는 유기체 덩어리가 하나밖에 남지 않은 녹색눈으로 주위를 둘러본다.
웃다가, 울고. 다시 주저앉는다.
폐허가 되어 흩날리는 도시 한가운데에 생긴 작디작은 공터.
어쩌면 수십,km는 될 법한 그런 작은 공터. 저 하늘 위에서 내려다보면 이 파티장은 어떤모습일까.
아마, 작은 도트 하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그런 광경들.
그런 소녀의 눈에, 자그마한 조각 하나가 들어온다.
마치 철가루에 갖다댄 자석마냥 쉴새없이 변화하는 날카로운 형형색색의 결정.
조용히 걸어가, 짓밟는다.
그 날카로운 파편들이 발을 도륙내는 건 꿈에도 모른채 계속해서 짓눌러 터뜨린다.
마침내 파편이 깨지고 소녀의 발도 조각났을때, 피를 흩뿌리며 새하얀 설원 위에 쓰러졌다.
붉게 물들어가는 새하얀 눈들.
소녀는 고깃덩이로 변해버린 발을 이끌고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난다.
하늘을 마주보며, 별들을 마주보며.
적막한 밤하늘 아래 울려퍼지는 시끄러운 짐승들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자란 여기서 그저 나뿐일 것이다.
주변의 벌레들이 시끄럽게 앵앵거리기 시작했다.
다시 한번 변하는 붉은색의 달빛과, 구름과, 별들.
멍하니 생기가 사라진 눈빛으로, 소녀는 자리를 떴다.
***Side 이유리
"저게 무슨..."
이반 대장이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경악에 차있는 목소리.난 이반을 혐오하지만, 지금의 심정만큼은 공감한다.
"..."
저 앞에서 움직이는 검붉은 파도를 보아라.
지상에서 창공까지 모두 뒤덮는 거대한 광선들을.
마치 핵폭발이라도 일어난 양 일대 수km를 말그대로 증발시켜버리는 저 무식한 규모를.
이변을 느끼기 이전에 재빨리 원래 대기하던 곳을 벗어나서 다행히었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이미 저것에 휩쓸려 흔적도 안남기고 증발해버렸을거다.
"...다른 팀은 무사한가?"
직, 지직..."여기는 1팀. 현재 1팀 25% 궤멸..."
치직..."여기는 4팀...옆의 3팀은 전멸, 4팀 기동불능상태..."
무전기 너머로 들려오는 피해의 집계는 통상규모를 아득히 벗어난다. 분명 팀 하나하나가 어지간한 중대 수준정도의 규모였을 터인데.
...원래, 그냥 단순하게 폭주한 번 일으키고 끝내려고 했는데, 대체 왜 이렇게 변해버린거지?
어쩌면, 마지막에 느껴졌던.
그 분노가, 이번 사태의 키포인트려나.
저 앞에서 불어오던 바람이 잦아들고, 그제서야 겨우 앞을 바라본다.
그러고선, 경악했다.
수십km는 될 듯한 저 거대한 초거대구조물의 아랫부분이 아예 뜯겨나가다시피 사라져있었으니.
비유하자면 에베레스트 산만한 광석더미가 통째로 증발해버린거라고 보면 된다.
하지만 그걸로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듯 구름 위에서 들려오는 괴이한 소리들.
다시 한 번 공간이 진동했다.
*
정신을 못차릴것 같다.
눈앞은 출렁이고, 오른쪽 고막은 터져나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나마 소리가 들리는 왼쪽 귀에선 끔찍한 이명만이 울려퍼질 뿐이다.
이반을 바라봤다.
무전기에 대고 뭐라 소리치는 모습.
저 사람도 분명 온전한 상태가 아닐 텐데, 또 뭘 하려는거야.
"아...?"
순간의 의문도 잠시, 이반대장은 날 공중으로 띄우더니 곧바로 전투가 끝난 구덩이의 중심지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알파를? 지금 상태로 알파를 만나러간다고?
주변에 숨어 지켜보고있던 대원들조차 휘말려 싸그리 증발해버린 마당에?
미친짓이야.
지금 알파는 제정신이 아니란말이야.
"야 이 멍청한 새끼야!! 지금 뭐하려는거야! 지금 건드리면 다 죽어!"
있는 힘껏 소리쳐본다.
하지만 내 목소리도 잘 안들리는 마당에 저 아래에서 뛰어가는 이반의 목소리가 들릴리가.
결국 다 포기하고 축 늘어졌다.
*
귀의 이명이 잦아들기 시작한다.
10분정도가 지나 거의 현장에 도착할 무렵이었다.
갑작스레 이반의 가슴팍에 달려있던 무전기가 지직거리더니, 음성이 들려온다.
칙, 지직..."...전방에 알파 발견! 바로 확보하겠..."
그러나 무전이 채 끝나기 전, 전방의 건물 너머 공터에선 다시금 검붉은 빛이 일어나며 블록 하나를 통째로 증발시켜버렸다.
동시에 끊겨버린 무전.
"...지금, 가면... 다 뒤진다고 멍청이들아..."
애초에 지금 여기 있는 세력들중에 알파에게 우호적인 세력이 있을 리가 없잖아.
크로체와 연구자는 엘로힘. 알파를 납치한 제 3의 세력또한 알파의 적대세력. 심지어 (신)연구자들조차 알파의 자아를 빼앗아 꼭두각시 엘로힘으로 만드려는 계획을 세우고있는 놈들이다.
ㅡ게다가 애초에, 이 근처에 우호세력이 없었다는건 알파 본인 자체가 가장 잘 알았을테고 말이야.
...그래, 이 시간에 여기 있는 세력들중에 알파에게 우호적인 세력이 있을 리가 없지.
하지만 계속해서 팀들은 알파와 접촉을 시도했고, 접촉을 시도하는 족족 흔적도 남김없이 증발해버렸다.
그렇게, 무전이 연결됐다 끊기길 5번.
블록 7개가 증발했을 시점.
"...전부, 정지하라."
마침내 이반은 결단을 내렸다.
"...사냥개를 제외하고, 전부 철수한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