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화 〉 1부 30. 파티
* * *
콰작, 콱.
시야가 까맣다.
왼쪽의 안와에서 느껴지는 간지러움에, 절로 웃음이 새어나온다.
"아, 흐흐..."
이상해.
눈에서 자꾸 뭔가가 떨어져 내린다.
아니, 떨어져내려? 쏟아지는 듯이.
눈으로 뒤덮인 바닥이. 눈으로 뒤덮인건가? 아니야. 이건 분명 금속 바닥인데.
간지러워.
간지러워요.
아파ㅡ?
아프진 않고, 간지러워.
눈물이 나오는건가?
눈앞이 흐릿하다.
하지만 눈에선 아무것도 흐르지 않는다.
눈물은 고사하고, 아무런 감정도, 무엇도 흘러내리지 않는다.
그저 비어버린 왼쪽 안구에서 핏물만이 뚝뚝 떨어져 발을 적시고있을 뿐이야.
"으, 이힛. 힛..."
간지러워서 자꾸 웃음을 터뜨리고 싶어진다.
하지만 느낌이 이상해.
전혀, 전혀ㅡ 나을 것 같지가 않잖아.
연구자들이 내 배를 찢을때와 비슷한 느낌이다.
절망적인, 눈앞이 까만 느낌.
눈에선 그 어떤 재생할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평소처럼 재생할 때 느껴지던 살이 꿈틀거리며 움직이는 감각 또한 없다.
"으, 흐..."
웃고 있는데, 분명 간지러워서 웃고싶은데.
곧있으면 평생 시야를 잃는다고 생각하니 절망적이네.
아니, 이런 감정은 옛날에도 수십번 느껴본 적 있는 감각이야.
...응.
익숙하네.
"..."
그나저나, 크로체가 분명 뭐라고 했더라.
사지절단하고 두눈을 뽑아버리면, 자아를 잃지 않겠냐고?
"흐, 으흐..."
그래, 분명 잃을거야.
내 몸은 아무것도 모른 채, 그저 끌려다니기만 하겠지.
근데ㅡ 그거 알아?
그건 지금까지도 똑같았어.
내가 이 빌어먹을 세상에 태어나서도, 항상. 똑같았단말이야.
그 누구도 진실같은 건 알려주지 않은 채 그저 날 끌고다니기만 하고, 어정쩡한 힘을 가진 난 그들에게 끌려다니기만 했을 뿐이다.
차라리 구제불능일 정도로 약하거나, 그 누구도 건드릴 수 없을 정도로 강하거나.
그 둘 중 하나였으면 덜 억울했을 것 같은데.
왜, 어정쩡하게 강해서 이상한 환상이나 심어주려는건지.
모르겠어.
푹, 푸거걱ㅡ
왼팔에서, 왼쪽 어깨에서 간지러움이 느껴진다.
내 얼굴에 들이대는 크로체의 저 십자모양 붉은색 눈동자는 소름끼치기만 한다.
소름끼쳐ㅡ
소름끼쳐.
재밌.
재밌어.
간지러워.
웃고싶어.
웃어야해.
입을 꿈틀거린다.하지만 움직이질 않는다.
온몸이 사시나무 떨듯 떨리고, 위에선 크로체의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푸화아악
피가 뿜어져나오는 소리가 들린다.
툭.
무언가가 저 땅 아래로 떨어진다.
보기싫어.
보여주지 마.
하지만, 크로체는 그것을 집어들어 내 무릎 위에 올려둔다.보드라운 피부의 감촉이,다만 소름끼칠 정도로 차가운 그 감촉이.
"아, 힛..."
계속, 웃음이 터져나오게 만든다.
웃고싶어.
크로체는 다시 한 번 손을 움직인다.
이번에 칼을 쥐고 움직이는 쪽은, 내 유일한 안구.
오른쪽 시야에, 크로체의 손가락이 비집고 들어오는게 보인다.눈을 감으려 하지만, 계속해서 벌리려는 모습.눈에 닿은 손가락이 간지럽다.따가운게 아니라, 간지러워.
간지러워.
간지러워?
간지럽대. 아픈 게 아니라.
하. 하하.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미쳤나봐. 진짜.
아니, 미친게 아니야. 몸이 그렇게 느끼는 것 뿐이지.
그게 미친게 아니면 뭔데?
이건 그냥ㅡ
"하, 지...마..."
치지지직. 지지직.
그때, 마치 구원의 손길과도 같은 그 소리가. 머릿속에서 들려온건 어쩌면 운명이 아니었을까.
□□□□□□□□
머릿속을 무언가의 목소리가 가득 채우기 시작한다.
말하고있다. 나에게.
죽여. 전부. 죽여. 죽여. 죽여.
전부다 죽여버려.
'그래.'
좋은 생각이네!
거부할 생각따위는 없어.
지금 내 눈이 다 날아가게 생겼는데, 그런걸 신경써서야.
그냥, 그냥.
그대로 정신을 맡긴다.
그 잡음에, 그 목소리에 몸을 맡겼다.
ㅡ후우우우욱...
공기가 역행한다.
[...?]
기이이이이잉ㅡ
푸른 연기가 보인다.방 안을 빼곡히 채워 엄청난 압력을 뿜어내는 푸른 연기가.
크로체는 온몸을 떠는 날 바라보더니, 한 번 피식 웃었다.
[벌레주제에. 밖에서 재미있는 짓을 하는구나.]
ㅡ쾅ㅡ!
시야가 허공을 뜬다.
아니, 뜨는건가?
그냥 붉게 물든다.
얼굴의 옆면부터, 간지러움이 몰려오기 시작한다.
찰나.
그런 간지러움은 그저 찰나였다.
크로체의 주먹이 눈앞을 스쳐 지나가는 듯 보인다.
푸확!
하지만, 아니었나봐.
머리를 터뜨리려 하는 것 같다.
시야가 완전히 암전됐다.
하지만, 곧바로 시야는 돌아온다. 오른쪽 눈의 시야만. 왼쪽 눈은 완전히뜯겨나간거야.
"커헉, 헉...허억..."
크로체는 놀란 듯 보인다.
분명 머리를 날려버렸는데.
이런 심정이겠지.
하지만, 하지만ㅡ
그거 알아?
강렬한 감정이란게, 고통만을 의미하는 건 아니거든.
입가를 꿈틀거린다.
웃음을 지으려고 노력한다. 최대한.
복수를ㅡ 분노를.
...그래, 분노라.
ㅡ죽여버리고싶어.
"힛, 히...히히..."
[...물들었나.]
공기가 휩쓸려 들어온다.마력이 휩쓸려 나간다.
공간에 있던 모든것이 정지한 듯 보인다. 튀어오르는 혈액도, 눈에서 방울방울 떨어져 내리려는 눈물도.
곧이어, 눈에 보일 정도로 거대한 마력의 흐름이.
방 안을 빼곡하게 채워버렸다.
ㅡ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ㅡㅡ!!
***Side 이유리
"헉, 허억... 허억..."
간섭을 끊었다.
알파의 머릿속에 연결해둔 가느다란 실을 완전히 끊어버렸다.
"...이유리, 성공한건가?"
"그렇...습니다."
눈 옆의 사내가 묶여있는 날 내려다보며 묻는다.
지금 있는 곳은 알파로부터 수km떨어진 건물의 옥상.
저 멀리 떨어진 초거대구조물의 전체 풍경을 확인할 수 있을 만한, 그 모든 광경이 한눈에 들어올만한 곳이다.
마지막의 알파가, 머릿속에 떠오른다.
죄책감에 몸이 바들바들 떨린다.
...아니, 죄책감이랄것까지야.
살기위해서, 목숨이 하나뿐인 날 살리기 위해서...목숨이 끝없는 알파를 이용하는 것뿐이다.
'...'
그저, '내가' 살기 위해서.이런 짓을 하는 중이다.
이런 날 보고, 이성주는 어떻게 말했더라.
'위선자'
위선자. 위선자라. 정말 너무나도 어울리는 말이야.
알고 있는데. 왜 난 바뀔 생각을 안하는 건지...
콰아아아아아아아...
저 먼 곳.
대략 수km는 떨어져있을지점에서 거대한 폭음이 들려온다. 마력의 폭주.
여기서도 폭발이 보인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거대한 푸른빛의 그 폭발은 마치 태양이 하나 더 떠오른듯한 착각을 심어준다.
...방금 상황이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 것, 루시의 저항없는 순응.
그것이 맞물려 정신간섭을 유래없이 성공적으로 완료했다.
다만, 그 반작용으로 연결해뒀던 실이 끊어진건, 앞으로 고의로 루시를 폭주시킬 수 있는 방법이 완전히 사라졌다는거지.
힘들다.
알파의 저 감정을, 기억을 모두 같이 느끼려니 정말 머리가 쪼개지는 줄 알았어.
그래서 축 뻗었다.
난간에 서서 저 멀리 폭발을 바라보는 사내도 딱히 날 돌아보진 않아서.
폭발의 여파에 휘몰아치는 바람을 느끼며 지난 4개월을 머릿속에서 되새겨본다.
*
(신)연구자들.
본인들을 연구자라 지칭하지만, 연구자들과는 전혀 접점이 없는 별개의 세력.
그들 세력에 잠입하기로 결정한 건 순전히 명령때문이었다.
이 지옥 안쪽에서 바깥과 연락할 유일한 수단인 나를 잠입시킨다는게 이해는 안갔지만, 명령이기에 따랐다.
정보는 다른 요원들이 모으고, 나는 그저 바깥으로 쌓아둔 정보를 전달하는 역할.
그 사이에서 '로 엘로아흐' 프로젝트와 그것을 활용하려 하는 두 연구자 세력의 정보가 넘어온 것도 필연이었으리라.
나는 행동요원으로써 연구자들의 본거지에 위장잠입하게 됐고, 그 과정에서 알파를 만났다.
ㅡ영 좋지 못한 인연으로.
내 손으로, 알파의 배를 찢어버렸으니 말이다.
알파는 내 얼굴을 모르겠지만, 그 소름끼칠정도로 강렬한 기억은 여전히 마음속 한구석에 박혀 죄책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래.
위선이다. 이것도.
아무튼, 그렇게.
잠입은 파토나고, 동료 요원의 배신도 겪으며.
고문도 받고, 그저 '내가' 살아남기 위해, 신 연구자들을 위해 내 능력을 활용할 계약까지.
그런 광경은 모두 한순간에 지나가버렸다.
연구자들이 여전히 살아남아있다는 걸 깨달은 건, 폐허가 된 연구자들의 본거지를 조사할 무렵이었다.
곳곳에 강렬하게 떠다니는 이 전이마법의 흔적들은 그들이 그저 모두를 농락하고 있을 뿐이란 걸 깨닫게 해줬다.
그때부터였다. 병력이란 병력은 될 수 있는 한 모두 풀어 연구자들을 찾기 시작한 것이.
몇몇은 거대한 마력파가 일어난 곳으로 갔고, 몇몇은 은밀히 돌아다니는 연구자들을 찾아 대륙 전체를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리고 1개월 전.
마침내 연구자들은 드러났고, 그들은 약해져있었다.
약해져있었다기에는, 그저 힘의 일시적인 양도일 뿐이었지만.
자신들의 힘을 마수로 옮겨 일시적으로 거대한 격리구역을 생성하려는 계획.
ㅡ이 모든 것은 모두, 이반 대장님의 머리에서 추리해낸 것이었다.
이반.
아무튼, 연구자들을 은밀하게 뒤쫓아다니며 발견한 건 또하나 있었다.
용병으로 활동하는 알파.
연구자들은 알파를 집요하게 뒤쫓아다니고 있었고, 알파는 그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상태였다.
그래서 우리도 그저 쫓아다니기로 했다.
알파가 가는 도시마다, 연구자들이 가는 도시마다.
연구자들이 괜히 눈치채서 다시금 힘의 양도라도 벌어졌다간, 대재앙 시대는 다시 재현된다.
적어도 연구자들이 알파를 가지고 무언가를 하려는 지금은, 조용히. 최대한 들키지 않게 쫓아다니는게 현명한 판단이었다.
...그리고 일주일 전.
연구자들이 알파의 움직임을 놓치기 시작한 그때.
하지만, (신)연구자들은 내 정신간섭 능력을 바탕으로 여전히 알파의 위치를 확보해나가던 그때.
알파가 제 3의 세력에게 납치당한 시점.
마력파가 벌어졌던 그 위치로 이동하고 있다는 정보가 들어온 건 분명 대사건이었으리라.
'엘로힘'과 알파의 접촉.
엘로힘이 뭔진 모르지만, (신)연구자들의 말에 따르면 그것은 연구자들의 정신체 꼭대기에 있는 것. 모든 마수와 마물의 근원. 연구자들의 모든 힘과 세력의 근원이 되는 것이라고 한다.
...그것.
그것은 일단, 적어도 생물은 아니었다.
생물과 비슷하지만, 저 모습은 어딜 봐도 무기물.
스스로 움직이지만, 도저히 어떻게 움직이는지 원리조차 파악 불가능한 무기물.
검붉은 색으로 뒤덮인, 대류권 끝까지 솟아나 광대한 몸집을 자랑하고있는 저 다면체로 이루어진 초거대구조물을 누가 생물이라고 보겠는가.
한 번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천지가 뒤흔들리고 구름이 갈라지며, 초고층빌딩이 무너져내린다.
그러나, 그것에서 분리되어 나온건 분명 생물이었다.
무전기로 상황이 계속 전달되어왔다.
루시를 납치한 제 3의 세력 인물중 하나와, 분리된 인간의 형체가 아는 사이인 듯 하다고.
그러나 그 무전은 곧 끊긴다.
"■■■■■■■■■■■"
'그것'이 한마디를 내뱉자, 약한 놈들은 죄다 머리가 터져 죽어버렸고, 그나마 강한 놈들은 뇌만이. 그보다 더 강한 사람은 코와 눈과 귀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수km떨어진 이곳까진 영향이 없었지만, 궤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은것은 분명했다.
결국 정신간섭을 시도하고, 알파의 눈과 귀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현실의 몸은 계속해서 이반 대장에게 상황을 전달하고, 눈은 알파의 눈을 통해 본다.
다만 이 상황을 오래 유지할 순 없다.
정신간섭의 가장 큰 단점은, 당사자의 감정과 생각까지 모두 느끼게 된다는 것 이니까.
방금 알파와의 정신간섭을 시도한건 고작해야 10분.
그러나 난 정신이 나갈뻔했다.
알파는 그 감정을, 고통을 간지러움으로 느끼고있었다.
하지만 내 뇌로 흘러들어오는 감각은 그저 고통뿐.
눈이 파이고, 왼팔이 떨어져나가는 그 감각은 상상을 초월한 고통이었다. 정신이 나가버리기에 충분한 고통.
다만 참았다.
명령과 협박때문에.
참고, 참았다.
그러다가, 알파의 두 눈이 모조리 뽑혀나갈 위기에 처했을때. 그제서야 폭주시키라는 명령이 내려온 것이었다.
'제발 얌전히 좀 있어...'
평소처럼 저항하면 어쩌나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그저 기우였을 뿐.
알파는 놀랍도록 빠르게 순응해버렸다.
연결이 끊어지기 직전, 알파의 감정을 떠올려본다.
그 감정.
그 감정은 분명ㅡ
'ㅡ죽여버리고싶어.'
분노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