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화 〉 1부 28. 꼭두각시
* * *
한바탕의 소란 이후.
어느샌가 재생되어 피투성이로 홀 중앙에 앉아있는 루시.
"...아, 아."
얼굴을 부자연스럽게 꿈틀거린다.
마치 제 얼굴이 아닌양.
"아, 아하, 하핫..."
인형이 사람을 흉내내는 듯, 어설픈 웃음소리를 만들어낸다.
마치 제 감정이 아닌양.
"...씨발..."
마음대로 얼굴이 움직여지지 않는다는걸 깨달은 루시는 결국 욕짓거리를 내뱉었다.
'...미친년.'
...아까도 느꼈지만.
저게 뭐야.
'달라.'
적어도 인간성이라도 보였던 이전의 모습과는 너무나도 괴리감이 느껴진다.
저 딱딱하게 굳은 얼굴은 온몸에 소름이 끼치게 만든다.
저걸...이전의 그 짜증나던 꼬맹이라고 볼 수 있나.
"..."
저건...
뭔가, 근본부터 뒤틀린 느낌이야.
'대체...'
마음속 깊은곳에서 불편한 감각을 느끼며, 무표정으로 일관하는 루시를 안아 들고 다 낡아빠진 승용차에 올랐다.
*
부우우웅ㅡ
덜컹거리는 승용차 안, 어울리지 않는 조합의 네명이 타고 한적한 도로를 달리고있다.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잿빛 하늘에 걸친 폐허가 된 도시의, 폐허가 된 마천루들의 모습이 보인다.
차 내부는 지나칠 정도로 적막해서 들리는 소리라고는 여기저기 박살 난 아스팔트도로를 지나가며 만들어지는 소음뿐.
밤낮을 쉬지않고 달린다.
델리지아는 지칠 새도 없이, 중간에 쉬는 일도 없이 계속해서 차를 운전해 나간다.
주변의 풍경은 어느샌가 변화하기 시작해 이젠 마천루들이 사라지고 단독주택만이 보이는 한적한 도시외곽지역이 됐다.
'후우...'
창밖을 바라보는 걸 그만두고, 옆자리에 얌전하게 앉아있는 루시를 바라본다.
양손으로 볼을 잡고 위로 올려보려는 모습.
입꼬리가 부자연스럽게 꿈틀거리는게 마치 안면마비라도 온 듯한 인상을 심어준다.
마음속에서 피어나는 이 불편한 감정을 더이상은 도저히 쌓아두고 있을 수가 없기에, 다시 한 번 머릿속을 들여다보고자 마음먹었다.
"...알테리지아."
내 부름에, 조수석에 앉아 꾸벅꾸벅 졸던 검은머리의 중년 신사는 뒤를 돌아본다.
"얘 머릿속좀 다시 들여다볼 수 있냐."
"...그건 갑자기 또 왜?"
"소름끼쳐서."
"...?"
"...사람이라는게 원래 이렇게 한순간에 변하고, 그런 거냐?"
"난 인간을 잘 몰라서 모르겠군."
"...그러냐."
델리지아를 바라본다.
저 녀석도... 사람은 잘 모르겠지.
어째 이 차에 타고있는 세 명 모두가 인간이라는 종 자체에 무지하다. 이 어이없는 상황에 입에서 실소가 새어 나왔다.
알테리지아는 그 모습에 한숨을 푹 쉬며, 손을 뻗어 루시의 이마를 쥔다.
"...지,금... 뭐..."
정신을 잃기 직전, 루시가 음의 높낮이도 없이 중얼거리는 말.의문도 잠시, 루시는 곧바로 정신을 잃고 뻗은 알테리지아의 손에 기댔다.
그 뒤 새겨지는 마법진.
손과 이마의 맞닿은 부분에서 백색광이 새어나오고, 얼마 후 알테리지아는 침음성을 흘렸다.
"...뭐, 문제라도 있는 거냐?"
"...아니...음...이건..."
의문스럽다는 듯한 알테리지아의 목소리.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눈을 뜨며 알테리지아는 루시에게서 손을 땐다.
지탱점을 잃은 루시는 그대로 쓰러져 의자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그 후로도 한참을 고민하며, 여전히 뜸들이는 알테리지아.
'...원래 이렇게까지 뜸들이길 좋아하던 놈이었나.'
그렇게 차 안의 적막이 지속되던 찰나.
"이건..."
의문으로 시작되는 말.
"...오히려 문제가 너무 없어서 이상할 지경이군."
"...문제가 없는데 사람이 갑자기 이렇게 변할 수가 있어?"
"...일단, 무의식 자체에 문제는 정말 이상하다 싶을정도로 없다. 다만, 아무리 생각해도...이 정도로 의식이 순수하다는 건 믿을 수가 없군."
"뭔 말이야 그게."
"원래 사람은 살면서 경험을 쌓고, 그 경험은 무의식속에 새겨진다. 여러색으로 경험이 덧입혀지는거지."
"그런 거냐?"
"하지만 이건...이상해. 본래부터 온전했다기보다는...아예 처음부터 다시 지은 느낌이야."
"...뭐?"
"한 번 무너졌다가, 다시 재구성 시킨거라고."
"완전히 다른 인격이 됐다는거냐?"
"...아니... 그런 거랑은 거리가 살짝 멀다."
대체 저게 뭔말이야.
너무 복잡한데.
"한마디로 알기 쉽게 설명해봐."
"...그러니까, 음..."
잠시 고민하는 듯한 알테리지아.
"사실 이전에 머릿속을 들여다봤을때 의아해했다. 어째서 그런 기억을 가지고도 미치지 않았는지."
"...그래."
"알고보니, 단순한 문제였어. 그냥 단순히 정신병이었던거다."
"미치지 않았던게 정신병이라고? 대체 뭔소리냐?"
"...밖에선 이런 질병을 '해리성 정체감 장애'...라고 부른다더군. 쉽게 말하자면, 안좋은 기억들이란 기억들은 모두 인격 하나에 모조리 몰아넣고 평소에는 남은 인격으로 생활한다는거지."
"...이해하기 어렵네."
머리에서 김이 새어난다.
"당연하다. 심지어 이 경우는 조금 달랐으니까 말이다. 이 꼬맹이는 그 인격에 기억이 아니라 감정만을 몰아넣었어. 안좋은 감정을 모조리 인격 하나로 몰아넣어서, 기억은 가지고있지만 그때의 감정을 모조리 잊은 상태가 됐다는거지."
"유용한 수단이네, 그거."
"...근데, 지금의 무의식을 보면 그 인격이 모두 하나로 융합됐다. 모두 무언가의 매개체로 인해 완전히 부서지고 다시 하나로 재구성됐어."
"......"
"감정의 쓰레기통이라는 인격에 처박아뒀던 감정들이 모두 본래의 기억에 융합되어버렸다는거지."
"...그럼 일어나자마자 울어야 정상 아니냐."
"사실 감정이라는게 말이다, 순식간에 여러 개가 몰아치면 하나로 느껴지거든."
"그렇지."
"순식간에 몰아쳐 들어온 그 방대한 감정의 양은 되려 그때의 감정을 잊게 만들었을거다. 덕분에 몸에는 감정이 남아있지만 머리로는 전혀 그 감정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괴상망측한 상황이 발생한 거지."
"허..."
그러니까, 알테리지아의 말을 정리하자면.
루시가 안좋은 감정들은 모두 또 다른 인격에 쳐넣어서 나름대론 정상적으로 생활하고 있었다.
기억은 가지고있지만, 그 기억의 순간에 느꼈던 감정들만이 배제된 채로 알고있던거겠지.
한데 루시가 무의식속에 틀어박혀 있던 그때 외부에서 무언가의 매개체가 흘러들어와 두 개의 인격을 완전히 분해하고선 하나로 재조립시켰다...
말하자면 이런 거다.
몸으로는 이해하지만, 머리로는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몸은 그때의 감정들을, 상황들을 기억하고 있지만 머리로는 그저 그때의 상황만을 이해하고 있는 거다.
재조립되며 쓰레기통에서 흘러나온 무수한 감정들은 순식간에 하나로 뭉쳐 흘러들어왔고, 그 방대한 정보의 양은 되려 '감정'을 '무감정'으로 만들었다...
...이렇게 설명해두고도 모르겠다.
솔직히, 이런 걸 어떻게 이해해.
게다가 솔직히 지금 가장 의문인건 지금 루시의 무의식의 상태가 아니다.
알테리지아가 말했던, 외부에서부터 흘러들어온 '매개체'.
대체 그게 뭐지?
외부에서 흘러들어왔다니?
루시가 지금처럼 변해버리기 전 루시와 접촉했던 사람은 나와 알테리지아 뿐이었다.
외부에서 흘러들어온 매개체. 무의식으로 흘러들어간 매개체.
그것이 무엇인지, 무의식이란 공간의 변화가 대체 무얼 의미하는 건지.
"...씨발...존나 복잡하네."
"이해하지 마라. 그냥 지금 상태만 이해해도 충분하니까."
단순하게 이런 거다.
아레레? 나 어째서 눈물이?
비유가 좆같지만, 이렇게 이해하는 게 편하다.
그래.
*
"...저 앞이다."
어느샌가, 목적지는 가까워지기 시작한다.
저 창문밖으로 보이는, 분명 엄청나게 먼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두 눈에 뚜렷하게 들어오는 저 거대한 구조물.
너무나도 높아 구름조차 뚫고 대류권까지 솟아나있다.
안개에 가려 실루엣만이 보이는 저 기하학적인 모양의 구조물이, 우리를 향해 아가리를 벌리고있었다.
"...크로체."
장비를 정리하며, 루시를 깨운다.
머리채를 붙잡힌 루시는 여전히 멍한 표정으로 날 올려다본다.
"일어나. 일해야된다."
"아니..."
"닥치고, 빨리 일어나. 싫으면 저 아가리 속으로 집어 던져넣을테니."
"...으..."
여전히 머리를 흔들며 저항하는 루시.
몸을 붙잡고 강제로라도 복종하게 하려던 그때.
ㅡ쿠구구구구구!!!!
갑자기, 땅에서 엄청난 진동이 울리기 시작한다.
"뭐ㅡ"
의문을 내뱉을 틈도 없이, 그 거대한 진동에 타고있던 승용차는 공중에 한 번 붕 뜨더니, 이내 제자리에 추락했다.
쾅!
여전히 진동은 계속된다.
...감이 안 좋아.
이거 아무래도 서스펜션 나간 것 같은데.
결국 차는 미친 듯이 덜컹거리기 시작했다.
"뭐, 뭐야...! 갑자기 무슨 일이야!"
"이봐, 루스리아... 저 앞에..."
저 앞에, 뭐?
델리지아의 말에 정면을 바라본 나는, 할 말을 잃는다.
"...저게 뭔 씹..."
구름위로 솟아있던 초거대 구조물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정사면체와 정팔면체로 이루어져있던 그 입방체는 모습을 뒤틀며 차를 향해 아가리를 벌리기 시작했다.
분명 수km는 떨어져있을 법한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수초만에 소닉붐을 만들어내며 미친듯한 속도로 그 거대한 구조물ㅡ생물은 쏟아져내린다.
"ㅡ전부 차에서 뛰어내려ㅡ!"
그 말과 함께, 차의 문을 걷어차고선 전력으로 바깥으로 튀어 나간다.
그 직후 뒤에서 들려오는, 귀가 터질 것 같은 굉음.
충격파가 한차례 휩쓸었다가 공기를 휘젓고, 2차 충격으로 저 멀리 터져나간다.
콰과과과과광!!!!!!
쿠구구ㅡ
분리된 아스팔트 도로들은 도저히 믿을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파편으로 조각나 땅으로 쳐박히기 시작했다.
"개, 씨ㅡㅡㅡ발ㅡ!!!"
옆에 엎어져있는 루시의 후드를 잡아채 뒤로 확 잡아당긴다.
곧이어 그 자리에 떨어지는 차의 조각난 엔진.
...델리지아는, 알테리지아는 어떻게 된 거지?
콰아아아아앙ㅡ!!!!!
사방을 뒤흔드는 폭격에 균형감각을 상실하고 땅에 엎어진다.
눈앞에서 움직이는, 비현실적으로 거대한.
가닥 하나가 고층빌딩만한 입방체가 계속해서 꾸물대며 기이한 형태를 만들어나간다.
붉은색과 검은색으로 이루어진 그것은 언뜻보면 예술적이기까지 해서 정신을 혼미하게 만든다.
"...환영인사 한 번 거칠게 하네."
빌어먹을 크로체.
저 거대한 구조물은 다시 한 번 꿈틀거린다.
마치, 뱀이 움직이듯. 고개를 좌우로 흔들듯 기이한 모양새로 땅을 뒤흔들며 만들어내는 움직임.
그러다가, 이변이 발생한다.
파괴만을 계속하던 그 순간에, 구조물은 정지했다.
"...아...?"
정확히는, 루시를 눈앞에 두고서.
루시를 갈아버리기 직전까지 태동한 구조체는 루시에게 닿자 마자, 움직임을 정지한다.
그러고선ㅡ
차라라락
액체금속이 변화하듯, 정팔면체로 줄어들고, 압축되고, 수축하는 그 기이한 구조체는,'의태'하기 시작했다
차카칵
수백미터는 될법한 가닥하나가 고작 2m짜리의, 성인 키만한 크기로 줄어드는 비현실적인 광경이 펼쳐지더니.
키기긱
그것은, 이내 생명체의 형상을. 사람의 형상을 띄기 시작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