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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해주세요, 마수님!-27화 (27/162)

〈 27화 〉 1부 23. 쥐새끼와 돼지들

* * *

"완벽한불멸의 조건이 뭔지 아나?"

눈앞의 연구자가 중얼거린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군. 뭐, 그러기야 하지."

아.아.

목소리가 안나오네.

꿈인건가.

"첫째, 번식을 할 수 있는 생물은 여기서 탈락일세."

"애초에, 이게 신의 장난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하, 과학자가 신이라니, 나도 정신 나간게 분명하군. 아무튼, 만약 불멸자가 번식이 가능해서... 그 불멸의 특성까지 자손에게 대대로 유전됐으면 어찌되었을 것 같나?"

갸웃.

"어우, 끔찍하지. 아마 밖에서 본 지구는 꿈틀대는 불멸자들로 가득 찬 징그러운 덩어리였을걸세."

...

"둘째, 극강의 재생능력. 시간도, 육체도 모두 극복하는, 그런 재생능력. 불멸한다해도, 망가지면 모두 끝이지 않은가?"

"적어도, 온몸이 짓이겨진채 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생물이란 존재할 수가 없지."

그런건가.

"마지막, 셋째."

내 명치를 손가락으로 툭툭 건드린다.

"본래부터. 필멸자일것."

"사실 이건 필수사항은 아니야. 그저 우리가 다루기 쉽게 조건을 붙인 것 뿐이지."

다루기 쉽게.

"너도 봐서 알고 있겠지만, 본래의 불멸자를, 그들을, 저 위에 존재하는 자들을."

툭툭.

"너는, 보았지 않나?"

"그 의도조차 헤아릴 수 없는. 알 수 없는 메커니즘에 의해 움직이는 그 끔찍한 것들을 말이야."

"대화를 하려면, 비슷한 점은 있어야지. 적어도, 대화가 통하게 하려면."

"한데 그것들은, 근본부터가 달라."

"우리와는 전혀 다른 환경에서, 우리와는 전혀 다른 가치관으로 살아온, 우리와는 전혀 다른 생물들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으리라 짐작할 수 있나?"

그림자로 가려진 연구자의 얼굴에서, 푸른 안광이 섬뜩하게 번쩍인다.

"모든것이,미지의 영역이지. 아무것도, 그 무엇도, 우리의 정신으로는 도저히 헤아릴 수가 없네. 그저 '불가해' 그 자체."

"우리에게 필요한건, 의도조차 알 수 없는 절대자가 아니라, 우리를 위해 헌신하고, 모든 걸 바치고, 심장마저 내어줄 수 있는. 그런신뿐이다."

"알 수 조차 없는 '무언가'에게, 세상을, 전부를 내어줄 순 없고, 우리의 힘과, 생명과, 지식마저 넘겨줄 순 없단말이다. 안그런가?"

신이라.

그것참 편리한 신이군.

******

­우득

...아파. 그만해.

제발.

"흣, 흐으..."

"...재미없어, 루시. 그만해"

제발, 그만해줘.

몇시간째야 이게.

아파, 아파, 아파, 아파.

"...아파..."

"...풋, 귀엽네."

­꿀럭...

"...아..."

방안이 온통 붉게 물든다.

붉어.

빨갛다?

응, 빨갛네.

눈앞이 붉은건 이제 익숙해서, 조용히 눈을 감았다.

­투둑

내 몸이 찢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뭐가 잘못된건지. 대체 내가 뭐가 문제인건지 생각해본다.

생각해보면.

나는, 지금껏.

지금껏, 나를 아프게 하는 사람들을 미치광이취급했어.

아니, 미치광이 맞잖아. 좋아한다고 아프게하는 사람들이 어딨어.

하지만 이곳에 와서 그런 사람들을 본적이 벌써 여러 번이다. 어쩌면, 어쩌면.

여기선 그런게 정상인걸까.

이런걸 미쳤다고 생각하는 내가 잘못된 걸까.

어쩌면, 이게.

그들이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 아닐까...

'...미친놈들.'

...그럴 리가, 없잖아.

만약 그런 거라면, 내가 지금껏 만났던 그 모든 관계가, 모두 거짓이란 건가?

그냥 미친놈들이야. 전부.

미치광이들 속에서 살려니 나마저도 미치광이가 될 것 같다.

아니, 미치광이들 속에서 혼자만 정상인거니깐, 나 혼자 미치광이려나?

아ㅡ 아니. 몰라.

복잡하게시리, 뭐 이런걸 고민하고있담.

***

"...!"

'...'

누구지.

어디서 많이 들어본 목소리야.

"...시!"

목소리가 뚝뚝 끊겨 허공으로 붕 뜬다.

"...루시!!"

어지러워...

좀만 자자...

그만좀 흔들면 안될까요...

"루시! 일어나!"

...엄청 끈질기네.

알겠어, 알겠어.

일어나면 되잖아.

움직이려 하지 않는 굳어버린 눈꺼풀을 강제로 위로 잡아 끌어올린다.

"...?"

알비나?

왜 여기 있는 거지?

루스리아는ㅡ

­"...오나보네, 지금은 본체가 아니라 미안."

­"나중에 데리러올 게. 준비해놔."

­꿀럭...

'...'

아.

맨발에 검은 덩어리가 밟힌다.

물컹거리는, 젤리같은 느낌의...

이게 한때 사람이었다는 것은 애써 잊는다.

알비나가 내 발에 사이즈가 살짝 큰 슬리퍼 한짝을 씌워줬다.

"아...알비나..."

"응, 루시. 괜찮아?"

"으...으..."

갑자기, 온몸에 탈력감이 밀려들어온다.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잘 버텼는데 갑자기 왜이러는걸까.혹시, 아드레날린이 쫙 빠져서 그런건가.알 수 없는 일이야.

그래도.

진짜 엄청나게 늦었지만.

결국엔.

늦었어도, 와준게 어디야.

눈물이 나올 시점이지만, 어째선지 웃음이 나온다.

"아하, 핫..."

왜?

'행복하니깐.'

아, 행복이라.

그래, 어쩌면 지금 난 행복한걸지도 모르겠다.

이런게 호의를 표하는 방식이지, 역시 루스리아랑 서아가 잘못된거였어.

내가 행복하면, 그걸로 된거다.

.

.

.

"윽..."

"미안, 조금만 참아."

­푸슛

움찔.몸에서 무언가 뽑혀나가는 느낌이 상당히 소름끼친다.

'...'

소름끼친다니, 벌써 몇십번 씩이나 느껴본 감각인데.

아, 그렇구나.

이런 것도 이젠 망각하기 시작한 거구나.

좋은 건가?

솔직히, 고통에 무뎌지는게 좋은 건 지 나쁜건진 잘 모르겠다. 그냥 내가 다칠 일이 많으니깐 고통을 망각하는 건 안좋은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뿐이다.

"...얼마나 남았어요..."

"한참남았어. 마취라도 해줄까?"

"마취약 지금 없잖아요..."

"...마약은 있는데..."

"...?"

"...미안."

...미안할게 뭐있어.

그냥 이렇게 와준 것만으로도 고마운건데.

괜히 투정부려서 심기나 건드리지 말자는 심정으로 그 후로 소리는 일절 내지 않았다.

***Side 루스리아

"에헤헤..."

온몸에 수십cm는 될 법한 거대한 꼬챙이가 박혀 고슴도치가 된 루시는 내 품에 안기려 손을 뻗은채 헤실실 웃는다.

"...효과 한 번 확실하군."

"알테리지아 니 마법은 솔직히, 나도 구분못할 지경이니깐. 이게 당연한 거 아니겠어?"

"...그런가."

몸에 박아둔 꼬챙이 하나를 쏙 뽑으니 아프지도 않다는 듯 까르륵거리며 어린애처럼 웃는 모습이, 방금전의 그 모습과는 심히 대조적이라 헛웃음만 나온다.

"편하네, 이거. 힘들이지도 않고."

"...그냥, 이 꼬맹이의 정신력이 그만큼 약해진게 아닐까 싶은데. 애초에 환영 마법은 받는 사람의 의지와 정신력에 큰 관계가 있다.솔직히... 이 정도로 쉽게 넘어오는건, 나도 처음 보는군."

"불쌍한 루시, 많이 힘들었구나."

동정심은 전혀 들지 않지만.

이 정도로 의심조차 하지 않으면 밧줄은 풀어줘도 되는거겠지.

손톱으로 밧줄을 툭 끊자, 루시는 비척비척 일어나 다가와선 내 다리에 앵긴다.

내 키가 커서그런지, 루시의 머리는 허벅지까지밖에 올라오지 않는 모습.

아직 몸에서 미처 다 빼내지 못한 꼬챙이들이 내 다리를 뚫지 못하고 그대로 다시 루시의 등 뒤를 꿰뚫고 지나갔다.

"헤헷."

그럼에도, 계속해서 상큼하게 웃어댄다.

어쩐지 기분나쁘네.

"...태도는 좀 일관적이면 좋겠는데말이야."

짜증나. 환영 마법때문에 자기 기억속에 있는 이미지를 끄집어내서 전혀 다른 광경을 보고있단 소리 아니야.

날 앞에두고, 전혀 다른걸 보며 저렇게 행복하게 실실 웃는모습이 기분나빠서.

­푸거걱!

루시의 온몸에 박힌 꼬챙이를 한꺼번에 모두 뽑아버렸다.

"흐, 핫."

그러자, 뿜어지는 핏줄기와 함께 발작하듯 숨소리를 내뱉은 루시는.

­풀썩

그대로 엎어졌다.

"...얘 갑자기 왜이러냐."

왜 갑자기 쳐 자고 지랄이야. 소름끼치게.

내 물음에 알테리지아는 한숨을 푹 쉬며 바닥에 널부러져있는 루시의 목에 손가락을 갖다댄다.

"...쇼크사한 것 같군."

"...?"

"쇼크사라고."

"농담도 적당히..."

"진담이다."

"..."

...하하.

쇼크사?

진짜 쇼크사라고?

"하하하..."

"..."

"풋ㅡ 아하하하하하하하핫!!!!"

이거 완전 코미디네.

산채로 찢어져도 살아있던 꼬맹이가, 고작 이런 거에 쇼크사?

농담도 정도가 있어야지.

"크, 흐흐흣..."

전부 다 뒤죽박죽인, 내 발치에 엎드려 퍼져있는 이 꼬맹이가, 너무나도 역겹고, 우스꽝스러웠기에.

­빠각!

발로 차서, 저 멀리 날려버렸다.

"...기분나빠."

***Side 한서우

­콰아아앙!!!

"2분대 앞으로! 3, 4분대는 엄호한다!"

"1시방향 드래곤타입! 대공 마력탄 준비!"

­"아레아E 궤멸 직전입니다! 15대대 지원 요청!"

금방이라도 쏟아져내릴듯한, 붉게 물들어가는 잿빛의 하늘 아래 천지가 뒤흔들린다.

하늘에선 전투기가 내는 굉음이 들려오고, 곳곳에서 포탄이 터져나가는 소리가 들려온다.

눈으로 덮인 드넓은 평원을 빼곡히 채운 엄청난 숫자의 인간과, 마수들이 끝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전쟁을 계속한다.

땅은 흔들리고, 눈앞에선 온갖 섬광이 번쩍이며, 순간순간 정신을 차릴때마다 어딘가에 있던 사람 하나가 흔적도 남기지 않고 찢어진다.

망설임따윈 없이, 마수도 인간도 기계도 가림없이 모두 터져나가는 이 풍경은 너무나 익숙해서 이젠 아무런 감흥조차 들지 않는다.

"벨라! 6시방향 핀!"

소리쳐 부르고, 곧바로 기동된다.

땅에서 검은색의 물결이 솟구쳐 넘실거리며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쿠구궁!

하늘에서 충격파가 쏟아져 내린다.

무슨일인가 싶어 올려다보니 돌파예정이던 전투기가 마수들의 장벽에 휩싸여 통째로 터져버린거다.

뒤따라가던 전투기들이 일제히 수직으로 높게 솟아오르지만, 그중 세 대가 이미 휩쓸려 증발해버렸다.

쏟아져내리는 불똥과, 철가루들과, 사체들이 땅을 한가득 적시고, 한순간 날아가버린 누군가의 수십년 인생은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은채 무심하게 전장은 흘러간다.

마치, 검은 파도와도 같은. 해안가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이 죽음의 땅 위에 서 있는 우리는, 그저. 계속해서 투쟁해나갈 뿐이다.

"이브 엄호해! 곧바로 2페이즈 돌입한다!"

"카인! 지금이다!"

­콰광­!

돌진과, 후퇴와, 살육의 끝없는 반복.

그 상황이, 그 결과가 얼마나 드러나고, 지속되고, 흘러갔을까.

무언가, 무언가.

하얀색이, 저 너머로. 저 거대한 검은색의 장벽 너머로 드러난다.

"□□ ■□■□ㅡ!!!"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른 채로, 그저 계속해서 무언가를 전달하고.

마침내 내려온 명령이란, 정면돌파.

좁은 통로를, 바늘구멍과도같은 저 좁은 통로를 돌파로로 삼는다는, 무모한 결정이었지만 지금 그런것에 신경 쓸 느긋한 여유따위는 날아가버린지 오래이다.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보인다면, 그저 실행할 뿐이고.

그렇기에ㅡ

­부우우우우우ㅡ

이 지옥은, 절대로 끝나지 않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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